K컬처, 삶을 말하다
김성일 지음 | 미다스북스
K컬처, 삶을 말하다
김성일 지음
미다스북스 / 2024년 11월 / 256쪽 / 18,000원
1장 K컬처에서 배우는 인생
문화 성장은 개인의 성장을 이끈다
한류에서 K컬처로: 한류의 출발은 대개 1990년대 후반으로 본다. 기록을 세운 작품과 스타를 보면 공교롭게 시기가 비슷하다. 대중문화의 3대 장르가 주도했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7), K팝의 H.O.T.(1998), 그리고 영화 <쉬리>(1999). 임팩트와 파괴력은 K팝이 앞서고, 지속성과 저변의 힘은 드라마와 영화가 뒷받침한다. 지금까지 한류와 K컬처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이들이다.
K컬처는 2020년 전후에 세계의 관심과 공인을 받으며, 주류 무대의 정점에 올랐다. 영화 <기생충>이 칸과 오스카를 동시에 석권하고, BTS의
가 빌보드 메인 차트인 핫100 1위에 올랐다. 이어서 <오징어 게임>이 세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을 휩쓸면서 ‘K컬처 트라이앵글’을 완성하게 된다.
한류는 ‘변방의 북소리’처럼 문화판의 주류 바깥에서 하나의 가능성으로 미미하게 시작했다. 2010년대를 거치면서 점차 주류 내부의 한 경향으로 부상하고, 2018년 이후에는 ‘K컬처’라는 이름의 글로벌 문화 현상으로 떠오른다. K라는 브랜드 또한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2000년대 초에 형성되어 2020년 이후 사회 전 분야로 확산하는 ‘K담론’으로 확고히 자리 잡는다.
지속 가능한 K컬처와 인생: K컬처의 발전상을 우리 자신의 인생에 체화하고 내면화하는 작업은 K컬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길이 될 수 있다. K컬처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반영한 것이고, K컬처와 한국인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K컬처는 단순히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내 인생의 믿을 만한 친구이자 동지가 된다. 또한 유능한 멘토나 조언자로 활용하면서 성공의 노하우로 삼을 수 있다. 바로 ‘K컬처와 삶’이 서로 의미 있게 만나고, 또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
K컬처에서 배우는 성장 노하우 7가지
K컬처와 우리 삶은 함께 간다: 한 나라의 역량과 성취는 문화로 꽃을 피운다. 1990년대 말 ‘한류’가 태동한 배경이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인기를 끈 한국 문화 현상은 이제 ‘K컬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화제에 오른다. 바야흐로 한국은 ‘감탄과 동경의 세계’로 떠오르고 있다. 뭔가 신박하고, 재미있으며, 역동적인 이미지로 세계인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K컬처 붐을 앞장서 이끈 건 대중문화의 3대 장르로 일컬어지는 음악, 영화, 드라마다. 한류 태동 이후 20여 년 만인 2020년 무렵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세계 무대의 공인을 받았다. 빠른 시대 변화와 거센 개방의 파고 등 위기와 도전을 이겨내고 이뤄낸 놀랄 만한 성과다.
K컬처의 성공은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한국 현대사의 독특한 경험은 한국 문화의 역량 축적과 도약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모두 한국인의 삶과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의 삶과 문화, 역사가 상호 긴밀하게 연결된 채,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전한 것이다. K컬처와 인생을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K컬처와 우리 인생을 연결하는 일은 지속 가능한 K컬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문화는 사람들의 삶과 끈끈하게 연결된 채 함께 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자화상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잘파세대(Z세대+알파 세대) 3명 중 “1명은 한국인인 것이 싫다”고 해 충격을 준다. 경쟁이 심해 피곤하다는 게 그 이유다. 삶의 만족도 또한 OECD 38개국 중 36위에 그칠 정도로 최하위권이다.
한국외대 이지영 교수는 “K콘텐츠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더라도 그 관심과 사랑을 유지하려면 결국 우리 사회가 진짜 매력적인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홍대 주변을 비롯해 성수동, 익선동 같은 서울의 핫플에는 요즘 외국인 관광객이 넘친다. 그들의 발길이 계속되려면 한국인과 한국 사회가 끊임없이 흥미롭고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보여 주기 위해서라기보다 우리 자신이 행복하게 살면 된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누굴까: 2024년 봄 하이브와 어도어(민희진)의 폭로전이 거셀 무렵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에스파를 언급하면서 나온 카톡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뉴진스 데뷔를 앞둔 시점에 민희진 대표에게 보낸 메시지, “에스파, 밟으실 수 있죠?” 정작 당사자들은 생각이 달랐다. 에스파의 카리나는 뉴진스와 대기실에서 만나면 같은 동료로서 하트를 주고받을 정도로 관계가 좋다고 말했다. 멤버 닝닝 또한 각자의 개성이 있어 서로 비교할 수 없고, 우리의 경쟁 상대는 과거 자신 뿐이다”며 웃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멋진가. 우리의 젊은 세대는 오늘도 여전히 도전과 의욕을 키우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간다. 경쟁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의 현실을 힘들어하면서도 그 속에서 꿈과 우정을 키워가는 것이다. 그들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우리 사회와 국가가 할 일이 많다는 걸 실감한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다른 나라, 다른 사회, 다른 문화권이 아니고 결국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과거, 어제의 나야말로 경계하고 넘어서야 할 대상이다. 날마다 조금씩 성장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일상과 삶이 자연스레 행복해진다. 그래야 K컬처 또한 오래도록 세계인의 마음과 함께할 수 있다. 한국인의 DNA에 내재한 흥과 역동성이 K컬처의 미래를 열어갈 것으로 믿는다.
2장 K컬처 3대 장르로 떠나는 여정
(팝) 자신을 디스하는 자는 강하다
대학의 K컬처 강의 첫 시간에 나는 래퍼 에미넴(Eminem)의 자전적인 영화 <8마일>(2002)을 소개했다. 세계 팝 음악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K팝의 위치와 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미넴은 드라마 같은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에미넴은 2000년대 이후 최고의 음반 판매를 기록한 뮤지션이다. <8마일>의 주제가인 는 힙합 역사상 최초로 12주간 빌보드 핫100 1위를 기록했다. 2000년대 미국 힙합을 대표하는 명곡으로, 그래미와 오스카를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힙합곡에도 올랐다.
탄생 50주년 맞이한 힙합, 대중문화 주류로: 힙합은 2023년 탄생 50주년을 맞았다. 1973년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에서 유래해 대중음악의 주류 장르로 떠올랐다. 열악한 경제 상황에 대한 사회적 저항의 목소리로 시작해, 음악, 미술, 춤, 패션, 언어 등을 넘어 세계적인 문화 현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3년 8월에는 힙합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뉴욕의 링컨센터에서 열렸다고 한다.
보통 힙합의 기본 요소로 랩(rap), 디제잉(DJing), 비보잉(B-boying). 그라피티(graffiti) 등이 꼽힌다. 우리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는 힙합 문화는 한국에서 흔히 ‘X싼 바지’라고 불리는 ‘배기팬츠’(baggy pants, 헐렁한 바지)다.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듀스, 지누션 등의 힙합 가수들이 즐겨 입었고, 1990년대 ‘X세대 문화’를 상징하는 패션이 됐다.
힙합 배틀과 우리 인생의 닮은 점: 디트로이트 슬럼가 출신인 에미넴은 흑인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진 힙합에 도전해 조롱과 멸시, 차별과 장벽을 이겨내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약물중독인 싱글맘 아래에서 흙수저 인생을 살면서, 왜소한 체구로 왕따 당하고 고등학교도 중퇴했다. 결국엔 힙합과 랩에서 놀랄 만한 인생 드라마를 썼다.
영화 <8마일>의 압권은 힙합 배틀이다. 단 45초라는 짧은 시간에 ‘시원하게 썰을 까서’ 상대의 기를 홀딱 빼야 한다. 열기로 가득한 장내에서 관객들이 외친다. “쫄지 마!” 결승전 시간은 1분 30초, 에미넴은 “엄마 트레일러에 빌붙어 사는 백인 쓰레기”라고 자신의 찌질함을 스스로 폭로한다. 모든 것에 솔직해지기로 하고 자신을 디스하는 것이다. 그리곤 배틀 챔피언인 상대 흑인을 ‘무늬만 갱스터’라며 약점을 공격한다.
어릴 때부터 이야기꾼의 소질이 있었던 에미넴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자신만의 스토리와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무기는 ‘솔직함과 진정성’이었다. 인생의 불운과 실패를 인정하고 그 지점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모든 여정을 함축해 보여주는 것 같다.
K팝이 흑인음악이라고?: K팝은 힙합과 관계가 깊다. 힙합이 처음 한국에 들어왔던 1990년대에는 홍대 주변 클럽의 ‘언더그라운드’에서 주로 소비되다가, 드렁큰타이거, 에픽하이, 다이나믹듀오 등의 뮤지션들에 의해 ‘오버그라운드’가 만들어지고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게 됐다. 2012년에 시작한 엠넷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힙합 대중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가 처음에 힙합 전문 음반기획사로 출발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크리스털 앤더슨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케이팝은 흑인음악이다』(2022)에서 K팝과 흑인음악의 연관성을 강조한다. K팝은 힙합, R&B 등 흑인 음악의 영향을 받아 이를 한국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2017년 언론간담회에서 “서구인들에게 낯선 K팝의 베이스로 (이미 익숙해진) 흑인음악을 섞었던 것이 미국 음악시장에서의 성공 비결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K팝의 정점에 선 BTS는 2013년 힙합 아이돌로 출발했다. 근래 주로 팝 댄스 풍의 곡을 선보였어도 초창기 정체성은 단연 힙합이었다. 데뷔 전 RM, 슈가 등이 힙합 크루로 활동했다.
문화교류와 융합 통해 발전: 이처럼 K컬처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홀로’ 빛나는 문화 현상도 아니다. 세계의 거대한 문화 흐름 속에서 길지 않은 기간에 모방과 변용, 파괴와 창조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다. 힙합 탄생 50주년인 2023년 BTS는 데뷔 10주년을 맞이했다.
교류와 융합은 문화에서 필수적이다. 에미넴은 흑인들의 홈그라운드라고 할 힙합 장르에서 일종의 역차별과 사회적 장벽을 허물고 새로운 혼종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문화는 경계나 차별이 없고 얼굴색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준 셈이다.
‘한국인이 없는’ K팝의 정체성 논란: 최근 들어선 오히려 정체성 논란이 자주 제기된다. ‘한국인 없는’ 다국적 K팝 아이돌 그룹이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벨기에·미국·독일·인도의 4인 멤버로 구성된 ‘블랙스완’은 국내에서 한국어로 노래를 부른다. JYP가 배출해 일본에서 맹활약 중인 ‘니쥬’는 전원 일본인 멤버인 9인조 걸그룹이다.
2023년 BTS의 하이브는 다국적 그룹을 육성하기 위한 글로벌 오디션 프로젝트를 대중음악의 본산지인 미국에서 진행했다. 전 세계에서 20만 명이 몰려 무려 6,000 대 1의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예비 멤버 20명 중 한국인은 2명에 불과해 자국 출신 지원자에게도 문턱이 높다.
이쯤 되면 도대체 K팝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할지 고민이 된다. 한국인 가수, 한국어 노래, 칼군무와 댄스 퍼포먼스, 비주얼과 패션, 특유의 비트와 리듬 기반의 음악 자체, 아이돌 양성 시스템 등 어느 한두 가지로 말할 수 없을 만큼 K팝은 이제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무쌍한 음악적 시도와 변주로 확산하지 않을까. 예측불허의 진화 양상이다.
정체성 논란을 딛고 성장의 길로 가려면: 문화는 국경을 넘고 음악은 장르를 넘나들기 마련이다. K팝도 사실 서양의 팝 음악과 일본 J팝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장르이기에 국적 논란이 무의미할 수 있다. K팝을 둘러싼 대중음악계의 변화상과 산업적 지형이 그만큼 변화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K팝이 세계 시장을 정복하고 세계 음악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미국 중심 대중문화의 헤게모니를 흔들면서 세계 문화의 흐름과 역사에 새로운 활력과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K팝은 일정한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앞으로 지속 가능한 음악적 성과와 문화적 현상으로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K팝의 정체성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극복해야 할 과제인 이유다.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괄목상대할 때 드러난다. 어떤 경우든 과거와 달라질 때,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주목받을 때 제기된다. 앞으로 혼란이냐, 발전이냐는 지금부터 하기 나름이다. 나 자신과 우리도, 또한 K팝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미래의 성장으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영화) 혼란이 특별함을 만든다
한국영화가 훌륭한 이유: “한국 영화가 훌륭한 이유는 이런 영화를 탄생하게 한, 훌륭하지 않은 사회 때문이다.” 아일랜드 출신 영화 평론가 피어스 콘란의 지적이다. 한국 영화에 빠져 2012년에 한국에 온 그는 2023년 펴낸 『필수는 곤란해』에서 혼란스럽고 암울한 한국의 현대사는 다양한 이야기 소재가 됐다고 말한다. 억압적인 정부 덕분에 감독들은 에둘러 말하는 표현법을 터득했다고도 한다.
『신경 끄기의 기술』의 마크 맨슨은 한국 방문 소감을 담은 유튜브 영상에서 “짧은 기간 한국의 급속 성장은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우울한 국가가 된 원인이다”라고 진단한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사회에서 한국은 집단적인 정신건강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과학, 기술부터 영화, 음악, 스포츠까지 세계를 선도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혼란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항상 길을 찾았다’면서, “드물지만 특별한 회복력을 보여줬다”고 강조한다. 그가 한국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라며 덧붙인 결론이다.
한국영화의 역사와 위기: 한국 영화의 역사를 보면 작품의 면면이 화려하다. 영화 한류를 촉발한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9)부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단숨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 세계 영화사의 정점을 찍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까지,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하다.
최근 한국 영화 위기론이 거론되고 있다. 팬데믹 이후 OTT 시대가 도래하면서 영화계가 겪는 심각한 후유증이지만, <기생충> 이후 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대표작이나 문제작이 드물다는 지적은 우려할 만하다. 그렇다고 위기론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국 영화의 전성기는 1960년대로 영화는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최고의 대중오락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TV의 보급과 다양한 문화·오락 시설의 등장으로 침체기에 빠진다.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직배 등 시장 개방과 자유화 물결은 한국 영화계를 위기로 내몰았다(이후 설상가상으로 한국 영화 의무 상영 제도인 스크린쿼터마저 축소되는 상황에 이른다).
한국적 리얼리즘 영화의 탄생: 한국 영화계는 절치부심, 돌파구를 찾아나가면서 체질 개선에 주력한다. 영화 한류의 시작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다양한 한국 영화의 모색과 질적 수준 상승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시기다. 사실적이고 사회적인 성향을 띤 독특한 색깔의 한국영화 모델이 만들어진다. 이른바 ‘한국적 리얼리즘’ 영화다. 박광수, 홍상수, 이창동, 김기덕, 박찬욱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