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생명의 지문
라인하르트 프리들, 셜리 미하엘라 소일 지음 | 흐름출판
피, 생명의 지문
라인하르트 프리들, 셜리 미하엘라 소일 지음
흐름출판 / 2024년 10월 / 380쪽 / 24,000원
피
피바다전반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전화가 왔다. 화면에 뜬 번호를 보니 병원에서 온 전화다. 나는 전반전 내내 축구장을 뛰어다니는 어린 아들의 금발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병원에서 긴급 전화가 온 지금, 나는 아들에게서 눈을 뗄 수밖에 없었다. 동료 의사가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안녕하세요, 프리들 박사님. 소생실입니다. 칼에 찔린 부상자가 병원으로 오는 중이에요. 구급대원 말로는 칼이 아직 가슴에 꽂혀 있대요. 구급차를 타고 오고 있어요. 안개가 심해서 헬기를 띄울 수가 없다네요. 환자는 심각한 출혈성 쇼크 상태이고, 우리에게 도착할 때까지 살아 있기만을 바라는 중입니다!” 나는 즉시 대답했다. “지금 출발할게요. 환자가 살아서 도착하면 곧바로 심장 수술실로 올려주세요.” 이런 환자는 응급실에서 CT를 찍어 포괄적 진단을 내릴 시간이 없다. 서두르지 않으면 과다 출혈로 사망하게 된다. 생명을 위협하는 출혈을 멈추려면 외과 의사가 필요하다. 바로 나와 내 팀.
아드레날린: 환자와 얼추 비슷한 시간에 나는 병원에 들어섰다. 환자는 아직 의식이 있었다. 20대 중반의 이 남자는 수술대로 옮겨지는 내내 쉴 새 없이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를 반복했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그렇게 미안했을까? 피해자가 더 있었던 걸까? 어디에? 그 피해자는 죽었을까? 질문은 많고, 대답은 없다. 그는 뭔가 매우 중대한 일이 벌어진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그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피 한 방울 한 방울과 함께 그의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니, 세차게 흘러나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양이 흘러나갔는지 그 순간에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당시 이 환자의 생명은 얕은 실개천처럼 겨우 흐르고 있었다. 심장은 ‘아직’ 빠르게 뛰고 있었고, 호흡은 ‘여전히’ 얕고 가빴다. 그리고 그는 죽음과 협상이라도 하는 듯, 쉴 새 없이 뭔가를 말했다. 미국 유학 시절에 잠시 있었던 병원에서는 이 환자처럼 중상을 입은 사람을 “Talk and Die”, 즉 죽을 때까지 말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의사는 이것에 속으면 안 된다. 이것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다. ‘말을 할 수 있는 걸 보니, 그렇게 심각하진 않군.’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외상 전문가와 응급 의사들은 이 징조를 신체 시스템이 곧 붕괴될 것이라는 경고 신호로 해석한다. 대부분 심각한 사고나 폭력 범죄의 피해자인 과다 출혈 환자들은 쇼크 단계에서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그 순간에도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는 쇼크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이 한 방울씩 분비된다.
이때 아드레날린의 임무는, 남아 있는 피를 사용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심장과 뇌에 최소한의 응급 순환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른 모든 기관의 혈액순환이 희생된다. 아드레날린은 혈관을 수축하여 혈액 공급을 최소화한다. 심하면 혈액 공급이 완전히 끊겨 기능이 점차 멎는다. 참고로 우리 인체의 가장 큰 기관인 피부가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다. 피부는 차갑게 식어 눈처럼 하얗게 변하고, 땀이 얼음물로 바뀐다. 그런데 뇌로 들어가는 비상 회로 덕분에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생각을 할 수 있다. 의식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자율성이 남아 있고, 뭔가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다 출혈 환자들은 자발적으로 계속 말을 한다. 말을 하는 한, 아직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속삭이듯 단어를 뱉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는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환자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빤히 보며 물었다. “이제 죽는 건가요?”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저는 하미트입니다.” “저는 프리들입니다.” 하미트는 겨우 고개를 끄덕이고 내 손을 찾았다. 나는 얼음처럼 차갑고 땀에 젖은 그의 손을 잠시 잡고 있다가 가볍게 움켜쥐며 말했다. “해낼 수 있습니다.”
피의 흔적모든 생명은 피에서 시작된다. 피가 흐르지 않으면 우리는 태어나지 못하고, 여성은 임신하지 못한다. 참고로 다양한 조직으로 구성되어 고유한 전문 기능을 담당하는 신체 부위를 우리는 기관이라고 부르는데, 피는 독특한 특성을 가진 액체 기관이다. 피는 다른 모든 기관을 관통하여 흐르며 그것들을 연결해준다. 따라서 몸에 피가 흐르지 않으면, 순환도 혈압도 맥박도 없다. 당연히 혈액 수치도 없다. 거의 모든 병원 진료는 피검사로 시작된다. 의사의 진료 시간은 평균 7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피가 말해준다. 모든 진단의 60퍼센트가 혈액 수치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현대 의학은 혈액 수치를 철저히 점검하는데, 모든 기관과 작은 세포들마저도 피를 통해 자신의 안부를 전한다. 감염되었는지, 희귀 유전 질환이나 심장마비 또는 신장 질환이 있는지, 건강 상태가 양호한지, 세포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등등, 당신이 자각하기 훨씬 전부터 당신의 피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의사들은 피의 도움을 받아, 병을 예측하고 확인하고, 예측 범위를 좁히거나 폐기하고, 치료의 성공 여부를 점검한다.
한편 피에 정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은 피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피부는 혈액순환이 가장 잘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피부는 쉽게 혈색을 드러내 우리의 건강 상태뿐 아니라 기분까지도 알려준다. 피부에 드러나는 혈색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아이의 발그스름한 볼은 생기 있어 보이고 대개는 실제로도 건강하다. 멍과 혈종은 어딘가에 부딪혔거나 심지어 학대를 받았는지 드러낸다. 그리고 시뻘게진 얼굴은 혈압 상승을 알리고,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은 그 반대일 수 있다. 그리고 피는 면역 체계의 액체 고속도로이고, 우리가 다치면 피는 즉시 응고하여 상처 부위를 봉쇄하려 한다. 피에 들어 있는 적혈구는 산소를 운반하는데, 산소가 없으면 심장은 뛰지 못하고 뇌는 생각하지 못한다. 또 혈액응고단백질과 혈소판 덕분에 우리는 출혈이 있더라도 즉시 사망하지는 않는다. 또 피에 들어 있는 백혈구는 치명적인 병원체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 그리고 큰 부상으로 아주 많은 피를 흘리면, 대개는 영혼도 같이 피를 흘린다. 이런 상처는 잘 아물지 않고 흉터가 깊게 남는다.
한편 우리의 언어에는 피, 의식, 영혼의 삼각관계를 이용한 관용어구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마음 아픈 일이 발생하면, 영혼 또는 심장이 피를 흘린다고 표현한다. 뭔가에 강한 욕구가 생길 때, 피 맛을 봤다고 말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말하고, 지쳤을 때는 온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간 기분이 든다. 요리, 춤, 기계 수리 등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몸에는 그와 관련된 특별한 피가 흐를 것이다. 살다 보면 때때로 실패도 하여 출혈을 맛보기도 한다.
그리고 얼굴뿐 아니라 마음도 창백한 사람을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지루하고 빈약한 글을 핏기 없는 글이라고도 부르며,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에게는 뜨거운 피를 가졌다고 말하고, 피가 끓어오르지 않게 ‘피를 식히라고’ 조언한다. 아울러 피는 물보다 진해서,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피가 부글부글 끓거나 굳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피는 심장에서 솟아오른다. 물이 샘에서 솟아오르는 것과 똑같다. 진화 측면에서 볼 때, 피와 심장은 한 기관이고, 기능 면에서 분리할 수 없는 동일체다. 그러므로 피는 언제나 심장의 피, 심혈이다. 심장의 피는 우리가 어떤 활동에 쏟아 붓는 사랑과 헌신이자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추진력이다. 그 누구도 피의 마법에 냉담할 수 없다. 심장외과 의사인 나 역시 피가 없으면 심장을 관찰할 수 없다. 인공심폐기를 사용하는 수술 때처럼 심장과 피의 연결을 끊을 수 없다. 심장은 피의 샘이고, 샘이 없으면 강도 없다.
피는 흘러야 한다심장외과 의사는 엄밀히 말해 혈액외과 의사다. 물론 피를 수술할 수는 없다. 그들의 역할은 심장에서 분출된 피가 심방과 심실, 판막과 혈관을 통해 원활히 흐르게 하는 것이다. 피는 적절한 속도와 압력으로 흘러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심장병으로 피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면 심장외과 의사는 밸브 역할을 할 새 심장판막을 이식하여 역류를 막거나, 심장 중간 벽에 생긴 구멍을 막거나, 우회로를 내거나 인공 혈관을 삽입한다. 심장외과 의사는 심장보다 오히려 피와 더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살과 피하미트의 목부터 가슴뼈 끝까지 피부를 절개하자, 하얀 결합조직과 노란 지방이 보였다. 여느 환자라면 피가 흘렀겠지만, 하미트는 출혈에 필요한 혈압이 없었다. 쇼크가 심하면 피부와 피하조직에 피가 공급되지 않고, 모세혈관이 너무 좁아져 혈구 하나조차 통과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자연의 비상 전략이다. 혈액순환이 점점 줄어 결국 심장과 뇌에만 피가 공급되었다. 마취과 의사는 사후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수혈팩을 하나씩 추가하며 상황을 보고했다. 나는 손에 쥔 메스가 가슴뼈에 닿을 때까지 깊이 넣어 단단한 근육을 단번에 절개했다. 그리고 전기톱으로 가슴뼈를 세로로 길게 완전히 갈랐다. 절단면에서 골수가 보였다. 골수 안에 있는 줄기세포는 분명 적혈구와 응고인자, 그리고 면역 방어를 위한 백혈구를 생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을 터다. 나는 갈라진 가슴뼈 틈새에 금속 리트렉터를 넣고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환자의 가슴이 연극 무대의 막처럼 활짝 열렸다.
수술실의 밝은 조명 아래 주인공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대 안쪽 깊숙한 곳에서 심낭 안에 든 심장의 박동이 느껴졌다. 여느 심장 수술 때와 마찬가지로, 심장의 일부가 가슴샘으로 덮여 있다. 이곳에서 면역 체계의 특정 세포들, 이른바 T-림프구라는 특수 백혈구들이 외부 세포의 표면 특징(항원)을 인식하고 공격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들은 비록 칼의 공격에 맞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칼날에 있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에는 맞설 수 있다. 심장에 접근하기 위해 우리는 전기칼로 빠르게 가슴샘을 제거해야 했다. 심낭은 검은 피로 가득 차서 잔뜩 부풀어 있었다. “준비됐죠?” 나는 주위를 보며 물었다. 모두가 끄덕였다. “응고인자를 해동해두었어요. 나중을 대비해.” 마취과 의사가 말했다. 응고인자가 심장에서 빠져나온다면, 응고인자를 쏟아 부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극복된다면 우리는 그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 젊은 환자는 과연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목숨을 살린 범행 도구: 우리 팀은 하미트의 심장에 도달했다. 하미트를 살릴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피였다. 아주 많은 피. 먼저 심낭을 열었다. 심장은 흉곽 안의 시퍼런 피 웅덩이에 빠진 펑크 난 타이어처럼 누워 있었다. 그러나 피 웅덩이에는 피가 그리 많지 않았다. 다 어디로 갔을까? 밖으로 빠져나갔거나 몸 안의 다른 곳에 고여 있을까? 하미트의 심장이 다급하게 뛰었다. 수축할 때마다 찌그러졌고, 마취과 의사가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계속해서 쏟아 붓는 아드레날린 채찍질에 고삐 풀린 말처럼 질주했다. “피를 줘야 해요. 아드레날린은 도움이 안 됩니다!” 내가 외쳤고, 신성한 수술실에서 목소리가 유난히 거칠게 울렸다. “피, 피, 피가 필요하다고!” 생명, 생명, 생명이 필요하다고, 외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생명이 정확히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튼, 비닐팩에 담겨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마취팀이 차분히 대답했다. 당연히 맞는 말이었다. 나는 출혈 지점을 찾아 막아야 했다. 흉곽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넣어 심장 밑을 받쳐 내 쪽으로 살짝 돌렸다. 심장은 아직 힘을 잃지 않았으나, 근육 조직은 꺼져가는 불꽃의 색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칼은 좌심실 측벽에 꽂혀 있었고, 심장이 뛸 때마다 칼날에서 작은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상처는 물탱크에 생긴 좁은 균열과 같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내용물이 모두 빠져나올 것이다. 피는 심낭에 고이지 않고, 절개된 부위를 통해 왼쪽 폐로 사라졌다. 심장을 들어 올릴수록 피 분수는 더 세게 뿜어져 나왔다. 칼은 심장근육에 플러그처럼 꽂혀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느슨해졌다. 그것은 범행 도구이면서 동시에 구원자였다. 칼은 좌심실을 관통하지 않았고, 구멍을 내지도 않았다. 그랬더라면 하미트는 살아서 우리한테 오지 못했을 터다.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네요. 운이 좋았어요.” 마취과 의사가 말했다. 그리고 불안한 얼굴로 모니터를 보았다. 심장을 건드릴 때마다 심전도가 풀쩍 뛰어오르고, 혈압계의 빨간색 숫자가 주가 폭락 때처럼 빠르게 하락했다.
“혈압이 떨어지고 있어요! 얼른 내려놓으세요.” 마취과 의사가 내게 경고했다. 심장을 내려놓자, 상황이 조금 안정되었다. 숨을 쉴 때마다 왼쪽 폐가 심장 앞쪽으로 밀렸다. 폐 역시 칼에 찔렸고 상처에서 피거품이 일어 시야를 가렸다. 조금 더 명료한 시야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왼쪽 폐를 완전히 열어 얇은 흉막을 떼어냈다. 이곳 횡격막 위쪽 깊은 곳에 피 3리터가 고여 있었다. 이제 그것이 솟아올라 내 크록스 위로 방울방울 떨어졌다. 아까운 피를 이렇게 낭비해야 하다니!
심장외과 전공의 시절에 만났던 한 교수님이 생각났다. 그는 종종 우리 같은 심장외과 전공의들을 윙크와 함께 핏덩이 초보자라고 불렀고, 언제나 환자의 피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강조하며 성경 구절을 암송했다. “육체의 심장은 피에 있음이라, 레위기 17장 11절.” 또 우리의 과격한 손놀림으로 수술 부위에서 피가 너무 많이 나면, 이렇게 경고했다. 나는 그의 말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것은 생물학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수술은 환자에 대한 큰 사랑과 피와 조직에 대한 존중으로 수행해야 하는 기술이다. “피를 통제하는 자만이 생명도 통제할 수 있느니라.” 그는 즐겨 이렇게 덧붙이곤 했다.
현재 하미트의 출혈은 통제 불능 상태였다. 셀 세이버라는 흡입기로 최선을 다해 피를 빨아들였다. 이 기계는 흡입물을 배수구에 버리지 않고 재활용한다. 생명의 붉은 다이아몬드(나는 적혈구를 이렇게 부른다)가 걸러져 모이고, 나중에 환자에게 다시 투여된다. 이제 폐가 흉곽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서 다시 약간의 공간이 더 생겼고, 심장이 더 선명하게 잘 보였다. 다음 단계를 계획해야 했다. 찔린 곳이 우심실이냐 좌심실이냐에 따라 크게 다르다. 오른쪽 심장에는 정맥혈이 채워져 있고, 이 피는 낮은 압력으로 폐로 흐른다. 우심실에서는 봉합 수술이 간단하다. 그러나 생명의 고속충전기인 좌심실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이곳은 압력이 매우 높다. 그래서 봉합 수술이 근육을 찢을 위험이 있다.
인공심폐기를 쓰면 모든 것이 더 쉬워질 것이다. 치료를 위해 환자의 심장을 멎게 한 다음 여유롭게 수술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피는 이질적인 플라스틱 관을 통해 흐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피는 플라스틱 관이 견고하지 못하다고 여겨 응고를 시작한다. 전신 염증 반응이 생기고 귀중한 혈소판이 플라스틱 관 내부에 축적되어 쓸데없이 소모된다. 그러면 신체에서 사용할 혈소판이 남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방지하려면 헤파린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헤파린은 혈액 응고를 방지하지만, 그러면 출혈 성향이 높아진다. 그러나 하미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응고와 면역 체계일 것이다. 우리는 딜레마에 빠졌다. 인공심폐기는 심장 수술을 더 쉽게 해주지만, 한편으로 출혈 상황을 악화시킨다. 나는 결정했다. “봉합할 준비해 주시고, 실도요.” 나는 간호사에게 말했고, 체외순환사에게 “머리는 밑으로 수술대는 왼쪽으로 기울여요.”라고 말했다. 수술대가 지시대로 조절되었다. “인공심폐기 없이 해봅시다.”
칼날: “내가 뽑을 테니, 그 자리에 손을 올려 출혈을 막아요.” 나는 어시스트 아포스톨로스에게 말했다. “그 다음 봉합해봅시다. 그게 안 되면, 인공심폐기를 쓸 수밖에 없어요.” 나는 밖으로 나와 있는 칼자루를 잡고 천천히 당겼다. 아포스톨로스가 왼손을 밀어 넣어 심장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후 상처를 압박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피가 덜 분출했다. “평범한 생선칼이지만, 칼끝이 가시처럼 아주 뾰족해요.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 아포스톨로스가 말했다. 그가 손가락을 옆으로 치우자, 작은 피 분수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내 얼굴로 분출했다. 루페 안경을 닦기 위해 잠시 고개를 돌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