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의 지도책

다리우시 보이치크 지음 | 윌북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의 지도책

다리우시 보이치크 지음

윌북 / 2025년 1월 / 232쪽 / 33,000원





1장 역사와 지리



금속 화폐 등장 _ 주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은 문명의 역사를 말해준다.


인류는 금융을 발명한 이후 조개껍데기, 곡물, 금속 등을 화폐로 사용해왔다. 모든 재료 중에서 특히 귀금속은 가단성과 내구성, 내재적 가치 덕분에 널리 화폐로 쓰였다. 주화는 금속의 무게를 측정하고 기호를 새기고 순도를 확인하는 등 금속 화폐를 표준화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탄생했다. 금속을 두드리고 구멍을 뚫고 주조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주화는 처음에 주로 도매에 쓰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매와 일상에까지 퍼지며 경제와 사회를 변화시켰다.

귀금속을 화폐로 썼다는 최초의 증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나왔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주화는 튀르키예 동쪽 소아시아에서 발견됐다. 이곳에서는 주로 은으로 화폐를 만들었으며, 이후 금속 화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유럽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등 지중해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한편 유럽과는 별개로 중국에서는 청동으로 화폐를 만들었고 인도에서는 구멍 뚫린 은화를 발행하면서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에 주화가 보급됐다. 16세기에는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채굴한 금과 은으로 화폐를 만들어 그 지역에 도입했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식민제국들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호주, 오세아니아에 주화를 도입했다. 대다수 국가에서는 가장 먼저 은을 주재료로 한 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19세기 중반에 이르자 알루미늄, 구리, 니켈 주석을 섞어 만든 동전이 널리 쓰였다. 그러다 이후 액면가가 더 높은 지폐가 발행되면서 값비싼 은이나 금을 사용할 필요가 사라졌다.

돈을 쫓아라 _ 로마의 주화는 로마제국을 넘어 널리 영향을 끼쳤다.


‘돈을 쫓아라’라는 격언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그와 관련된 돈의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로마 제국의 금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화폐가 발견된 곳을 추적해봐야 한다.

공화국 시절, 로마는 이탈리아 남부와 그리스 일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그리스 화폐를 도입했다. 로마는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 카르타고를 물리친 뒤, 은화 데나리우스를 중심으로 화폐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로마 제국에서는 금화, 은화, 청동화로 구성된 화폐 제도가 발전했다. 가장 값비싼 주화(금화 아우레우스)의 액면가는 가장 값싼 주화(동전 콰드란스)의 1,600배에 달했기에 사람들은 융통성 있게 여러 주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

금화 아우레우스는 가치가 높아 주로 국가가 사용하거나 장거리 무역에 쓰였다. 그리고 국가가 주화 생산을 장악하면서 황제는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 로마의 화폐가 제국 내 각 지역의 화폐를 대체하기까지는 500년이 넘게 걸렸다. 로마는 기원후 290년대에 이르러서야 로마 제국 전역에서 표준화된 주화를 독점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지도를 보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무역로와 주요 도시 주변에 주화 발견지가 밀집되어 있다. 로마의 주화는 라인 강과 다뉴브강 같은 경계 지역이나 유다이아처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로마는 북서부 유럽에서도 화폐를 생산하면서 지중해 지역과 유럽의 온대 지역 간의 연결을 공고히 했다. 로마의 주화는 로마 제국의 정치적 경계를 훌쩍 넘어 발트해 연안, 우크라이나, 인도에서까지 발견된다. 로마의 돈은 무역뿐만 아니라 전리품, 군인의 임금, 외교 비용 등 다양한 형태로 제국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 정작 제국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중부와 남부 지역에는 화폐 발견지가 많지 않다. 고대 사람들은 흔히 땅에 돈을 묻었지만, 그중 현대에 발견되는 것은 소유자가 미처 회수하지 못해 땅속에 남은 돈이다. 따라서 다른 곳보다 평화로워 소유자가 돈을 회수했을 가능성이 큰 중심지에서는 화폐가 실제 유통량에 비해 적게 발견되지만, 정세가 불안정했던 국경 지역에서는 실제 유통량에 비해 많은 화폐가 발견된다. 2019년, 밭에서 일하던 한 농부가 데나리우스 5.5킬로그램을 발견했는데, 이는 3세기 무렵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고트족의 침입을 피해 달아나며 숨겨둔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이란 미인대회? _ 케인스가 1929년 대공황 직후에 쓴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은 금융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와 월가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애덤 스미스가 자본주의의 정신을 포착하고 마르크스가 그 어두운 이면을 탐구했다면,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자본주의가 혼돈에 빠지는 광경을 지켜보며 이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는 동시에 당대의 주요 사건에 적극 관여했다.

케인스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열린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 영국 대표단으로 참여했고, 독일에 막대한 부채를 부과하는 조약 조건에 항의해 대표단에서 사임하면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러한 조건이 독일 경제가 회복할 가능성을 없애고 분노를 불러일으켜 또 다른 전쟁을 야기하리라 생각했고,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1929년 월가의 붕괴를 목격한 케인스는 주식시장을 단기적 투기가 지배하는 카지노에 비유했다. 주식시장에서는 평범한 참여자들이 지식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이, 전문 투자자들이 장기수익률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시장수익률을 앞서는 데 지나치게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에 케인스는 주식 투자를 가리켜 자기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들이 누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할지를 추측해 우승자를 맞히는 미인대회에 빗댔다. 케인스는 그 결과 금융시장에서 중시하는 가치가 실제 기업의 근본적인 가치와 동떨어지게 되었다고 봤다.

케인스는 대공황 이후 출간한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케인스는 그가 ‘동물적 충동’이라 부른 과도한 낙관주의가 투자와 경제를 이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대중의 심리가 불확실성에 압도되면 상품과 서비스 수요를 유지하고 대량 실업을 막기 위해 정부가 투자에 나서야 하며, 필요한 경우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인스는 패권국의 지위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살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케인스는 국제 중앙은행과 결제 기구, 새로운 국제 통화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의 주장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설립에 영향을 줬지만, 미국 달러에 기반한 국제 통화 체제는 그의 급진적인 제안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케인스가 제안한 정책들이 미국의 금융 권력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발상은 미국의 권력보다 더 오래도록 영향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2장 자산과 시장



리스크도 꿰내면 보배 _ 프랑스에서 발전한 해상보험 시장은 무역을 촉진하고 프랑스의 힘을 키우며 파리의 엘리트 계층에 부를 가져다주도록 설계됐다.
선박은 좌초·침수·납치·난파·화재·지연·전쟁 중의 침몰 등 갖가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선주들은 늘 엄청난 위험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해상 무역을 지속하려면 보험이 필요했다.

프랑스에서 해상보험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장바티스트 콜베르다. 태양왕 루이 14세 아래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콜베르는 1668년 파리에 왕립보험회의소를 세워 보험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는 에드워드 로이드가 런던의 거대 보험거래소 로이즈(Lloyd’s)의 모태가 된 유명한 커피하우스를 열기 18년 전 일이었다.

왕립보험회의소는 민간 보험업자를 위한 단체이자 보험업자, 상인, 선원이 만나는 장소였다. 보험업자들은 화물 손실과 선박 손상에 보상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보험을 체결했다. 많은 보험사가 고위험 보험을 인수했고, 보험회의소가 설립된 첫해에만 보험 약 400건이 체결됐다. 보험회의소는 이후 관행을 성문화하고 증권을 표준화했으며, 중재 절차를 개발하고 선박과 거래 등록부를 만들었다.

초기 보험회의소에서 활동한 보험업자 중 위그드 상퇼이라는 부유한 상인이 있었는데, 그가 사망한 뒤에는 아내 엘리자베트 엘리상이 사업을 이어받아 프랑스를 대표하는 보험업자가 됐다. 엘리상은 네덜란드행 소금과 카리브산 설탕을 비롯한 갖가지 화물에 보험을 제공했다. 엘리상은 짧은 국내 항해에는 가장 낮은 요율을, 유럽 내 항해에는 그보다 높은 요율을, 대서양을 건너는 항해에는 가장 높은 요율을 부과했다. 보험료는 선박의 질·선장·계절적 위험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졌다.

해상보험은 프랑스 식민제국의 발전과 권력의 중앙집권화, 부의 쏠림을 가져왔다. 보험업자 단체가 커지면서 마르세유나 루앙 같은 항구 도시가 아닌 파리가 프랑스 보험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했으며, 파리의 엘리트 계층은 보험업을 장악하며 여러 세대에 걸쳐 부와 권력을 공고히 했다.



3장 투자자와 투자



거꾸로 뒤집힌 세상 _ 초부유층의 재산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며, 그 결과 오늘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66명이 하위 50퍼센트보다 많은 부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1995년 이후 전 세계의 부는 매우 불균등한 비율로 증가했다. 전 세계 성인 인구 대다수의 자산은 매년 3~4퍼센트씩 늘어난 반면, 상위 1퍼센트는 자산이 매년 9.3퍼센트씩 빠르게 늘어났다. 달리 말해, 상위 1퍼센트는 지난 25년간 전 세계에서 새로 증가한 부의 38퍼센트를 가져갔지만, 하위 50퍼센트는 고작 2퍼센트만을 가져갔다.

전 세계의 부는 한 국가 내, 그리고 국가들 사이에서 피라미드 형태로 분배된다.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최하위 계층(자산 1만 달러 미만)에 속하며, 이들은 주로 글로벌사우스(북반구 저위도와 남반구에 집중된 비서구권 개발도상국)에 산다. 저소득 국가에서는 대다수가 최하위 계층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소득이 높은 선진국에서도 빈곤과 실업에 시달리는 계층과 청년·노년층은 상당수가 최하위 계층에 머문다.

자산이 100만 달러가 넘는 부자 중 70퍼센트가 북아메리카와 유럽 출신이며, 17퍼센트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중국과 인도 제외) 출신이다. 부는 상위 1퍼센트와 나머지 계층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상위 1퍼센트 사이에서도 불균등하게 분배된다. 자산이 1천만 달러가 넘는 사람은 상위 1퍼센트 중에서도 3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상위 1퍼센트 집단 전체가 가진 부의 36퍼센트를 차지한다.

부유층의 자산이 더 빠르게 늘어나는 이유는 ‘돈이 돈을 벌면서’ 자산을 불리기 때문이다. 부유층은 주식, 채권, 부동산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며 끊임없이 자산을 늘린다. 그에 반해 가난한 가정에서는 주로 월 소득에 의지해 생활비를 충당하며, 저축이나 투자에 돈을 쓸 여력이 없다. 게다가 자동차를 비롯한 저소득층이 보유한 자산은 보통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떨어진다.

불평등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거꾸로 뒤집는다. 게다가 불평등은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부의 피라미드에서 상위 1퍼센트에 속한 사람은 대개 호화로운 생활과 과시적 소비를 즐기며 전 세계 평균보다 17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날로 심각해지는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부와 소득이 가장 높은 계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부를 재분배하며, 조세회피지를 이용한 탈세를 엄중하게 단속해야 한다.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돈이 모든 걸 지배하는 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4장 중개와 기술



‘돈비’를 내리는 사람들 _ 세간의 인식과 달리 은행의 신용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업은행은 예금을 빌려주지도, 단순한 중개자 역할을 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무언가를 ‘빌려준다’고 할 때는 대개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을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다음 주에 돈을 갚겠다고 약속하는 친구에게 지금 가진 돈을 빌려주듯 말이다.

하지만 상업은행은 이런 식으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상업은행이 신용을 제공할 때는 누군가가 가진 돈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듯 돈을 만들어낸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은행의 금고에 쌓인 돈이 아니라 은행과 대출자 사이의 신뢰다. 은행은 대출자가 대출금을 상환하리라 믿고, 대출자는 필요할 때 은행이 돈을 빌려주리라 믿는다.

이 약속을 이행하려면 은행은 중앙은행에 지급준비금을 예탁해야 한다. 지급준비금은 은행 사이에만 거래되는 통화의 한 형태로, 중앙은행 역시 이 돈을 ‘무’에서 창출한다. 지급준비금 금리는 중앙은행의 주요 정책 수단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상업은행은 고객의 예금을 언제든 환영하겠지만, 이는 예금이 신용을 제공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어서가 아니라 적은 비용으로 유동성을 늘릴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신뢰란 본래 미래지향적이다. 따라서 신용 창조의 진정한 원동력은 대출자와 은행이 가진 기대다. 반대로 신용창조의 제약 요인은 은행의 수익성·상환 능력 평가 시 고려 사항·가계와 기업의 신용 수요·은행 규제에 따른 제한 등이다.

은행들이 엄청난 액수의 신용을 창출하는 와중에도 실제 현금의 양은 적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특히 위기가 발생할 때는 돈이 ‘비처럼 쏟아지는’ 시기다.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19 기간 통화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중앙은행이 시행한 경기 부양책의 결과다.

전기 먹는 하마, 비트코인 _ 비트코인은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암호화폐이지만, 불안정성과 에너지 소비를 놓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가 창시한 비트코인은 암호화폐를 향한 기대를 높였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획기적인 두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비트코인 개발자 라즐로 한예츠가 비트코인으로 피자 두 판을 주문해 비트코인으로 처음 실제 상품을 구입한 일, 다른 하나는 온라인 암시장 실크로드에서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도입한 일이다. 그러나 2013년 중국인민은행이 중국 금융기관의 비트코인 사용을 금지했으며, 2014년에는 세계 최대의 암호화폐 거래소였던 마운틴곡스가 해킹을 당해 파산했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이 같은 악재들에도 불구하고 가파르게 상승하는가 하면 그만큼이나 갑작스러운 하락 추세를 보이는 등 극적인 등락을 반복해왔다. 2017년 12월엔 1BTC당 2만 달러를 찍었다가 불과 1년여 만에 3,177달러까지 떨어지며 많은 이에게 실망을 안겼다. 하지만 다시 꾸준히 가격이 올라 2021년 3월에는 비트코인의 총가치가 세계 최대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의 시가총액과 비슷해졌고, 직후에는 크게 꺾였다가 2024년 11월에는 10만 달러 가까이까지 치솟았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과 분산원장 기술을 기반으로 거래를 검증한다. 여기서 핵심은 비트코인에는 결제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중앙 기구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보호하는 것은 중앙 기구가 아니라 전 세계의 비트코인 채굴자들이 제공하는 방대한 연산 능력이다. 이론상 누구나 비트코인 채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비트코인의 블록체인을 떠받치는 연산 능력은 대부분 비트코인 채굴용으로 특수 제작된 컴퓨터, 즉 ‘채굴기’를 운영하는 크고 작은 사업체들이 제공한다. 2021년 중국인민은행이 비트코인 채굴을 금지하기 전까지 비트코인 채굴은 주로 에너지 비용이 비교적 저렴한 중국의 여러 지방에서 이뤄졌다.

비트코인은 거래 비용이 낮아지고, 블록체인으로 보안성을 갖추고, 채택률이 상승하는 등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비트코인 블록체인이 소비하는 에너지는 벨기에나 칠레 같은 국가 전체가 사용하는 에너지와 맞먹는다는 문제가 있다. 거래를 검증하는 데 쓰이는 비트코인의 작업 증명 알고리즘은 특성상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한 건의 거래에 약 707.6킬로와트시의 전기가 들어가는데, 이는 미국의 일반 가정에서 24일 동안 사용하는 전력과 맞먹는 양이다. 이에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트코인은 형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생성하고 유지하는 일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금융 혁신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