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을 망친 자본주의
마크 스톨 지음 | 선순환
거의 모든 것을 망친 자본주의
마크 스톨 지음
선순환 / 2024년 11월 / 404쪽 / 22,000원
자본주의의 시작
인류가 자본을 만났을 때
제국과 환경: 진화가 인간에게 소통하고 협업하고 조직하고 기술을 발전시킬 특별한 능력을 주자 지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참고로 인간은 스스로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 가는 곳마다 멸종을 야기했고, 불을 다루게 되면서는 지형을 바꿨다. 또 식물을 옮겨 심었고 작물을 원하는 대로 다루었으며, 부싯돌과 석간주를 캐냈고 주변국과 그것을 거래했다. 그렇게 하여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며 수를 불려 나갔고, 늘어나는 개체 수를 효율적으로 부양하기 위해 목축과 농사를 통해 생태계를 더욱더 교란했다. 그렇게 인구는 늘었고, 마을은 도시가 되었으며, 자본이 쌓였고, 불평등이 늘고 자유가 박탈되었다. 그리고 경쟁과 폭력으로 왕국과 제국이 일어섰다. 한편 그리스와 로마에서 태어난 혁신들은 경제를 더 빠르게 발전시켰다. 상인들은 풍력을 활용해 지중해를 누볐는데, 화폐 덕분에 거래는 빨라지고 대중화되었으며, 노예와 상품을 사고파는 시장이 형성되었고, 과세제도와 임금 노동, 전쟁이 촉발되었다. 한편 대규모 토지를 소유한 지주의 이익을 위해 노예들은 와인과 올리브유를 생산했고, 이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 곡물이 되어 돌아왔다.
이처럼 초기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규모의 번성한 도시 인구를 부양했다. 또한 옛 선조들의 문명이 염류화와 토양 고갈을 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삼림 파괴와 여러 동식물의 멸종, 물과 대기 오염, 침식, 기후 변화를 불러왔다. 또 금속에 대한 수요는 탄광과 제련소 주변에 환경적 ‘희생 지역’을 만들었다. 이후 역병과 변화한 기후는 로마 제국을 무너뜨렸다. 이렇게 6세기 자본주의에 대한 실험과 환경은 충격음과 함께 쓰러졌다. 한편 농장 자본주의는 500년도 더 지난 후 지중해 연안 국가들 사이에서 다시 부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박과 항해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전 세계 해양이 유럽의 앞마당이 되어 버린다. 유럽 자본주의와 제국들은 전 세계 모든 대륙에 나타났고, 저항은 무력했다.
무역과 제국
라틴아메리카의 광산들: 이탈리아 제국들은 무역상에 의해 세워졌고 이베리아 반도의 제국들은 십자군에 의해 세워졌다. 그런데 땅과 기계, 노예 노동에 자본을 투자하는 농장자본주의는 산업자본주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포르투갈의 사탕수수 재배자들은 복식부기를 작성하거나 이탈리아 사업가들처럼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브라질에서 난 금의 80퍼센트는 포르투갈의 동맹국이자 주요 거래국인 잉글랜드로 흘러 들어갔고, 포르투갈 산업이 자본에 목말라 허덕일 때 잉글랜드에서 금은 무역과 은행업, 산업을 활성화했다. 그런데 유럽 북부의 산업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려 하고 있었다.
석탄과 기계라는 경이
무역과 산업, 물과 석탄, 자본주의와 환경: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계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세계 경제의 성장, 자원 사용의 증가, 환경 파괴와 마주했다. 한편 부와 권력을 위한 관문은 서구 경제의 중심이 지중해였던 이전과 달리 해풍과 해류를 이용해 더 많은 기회에 접근할 수 있는 대서양 연안의 유럽으로 이동해,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덴마크와 스웨덴까지 세계 무역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고 다투었다. 제국 기업이 유럽 북서부 사람들을 또 다른 상업자본주의적 경험을 하고, 개신교적 정신을 접하고, 파티에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의 공격적 기회주의가 무엇인지 깨우치게 해 주었는데, 이들은 급진적인 개신교 지역에서 일어나 유럽과 북미로 빠르게 확산된, 이전과는 다른 산업자본주의를 만들었고, 농장과 공장은 세계의 풍경을 바꾸기 시작했다.
한편 와트가 태어났을 때 스코틀랜드는 막 제국에 접근하여 혜택을 누리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글래스고에서는 플랜테이션의 자본과 광업의 필요성, 스코틀랜드 계몽운동, 장로교 문화가 혼합되어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 내고 있었는데, 와트의 효율적이고 강력한 증기기관은 이와 같은 환경에서 탄생한 것이다. 제임스 와트와 그의 동업자 매튜 볼튼은 평생 부유하게 살았다. 직물, 곡물, 염료, 제지, 철 등 30개 이상 산업 분야에 속한 공장들이 볼튼 앤드 와트의 회전식 증기기관을 구매했고, 고객의 대부분은 면화 공장이었다. 와트의 분리식 응축기에 대한 특허권은 1800년 만료되었지만, 그의 회사는 그가 84세의 나이로 사망한 1819년 이후에도 증기기관을 판매해 국가적 업적으로서 칭송받았다. 와트의 특허권이 만료되면서 증기기관 기술이 폭발하듯이 발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기술은 응축기가 필요 없으며, 더 작고, 보트와 열차에도 동력을 공급할 수 있을 정도의 이동성을 갖춘 고압 증기기관이었다. 아무튼 1830년대, 산업 혁명은 전성기를 맞았다. 자본주의는 가속화되었고,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더 커졌다. 바야흐로 볼튼과 와트가 상상하지 못했던 시대가 열리려 하고 있었다.
증기와 철강의 시대
철강업은 환경을 어떻게 바꿨나: 카네기의 철강 사업은 철강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피츠버그의 상황은 연기로 가득한 계곡 그 이상이었다. 양질의 철을 생산하기 위해 카네기는 1,600킬로미터 너머 미네소타의 메사비 산맥까지 갔다. 존 록펠러는 최근 개발된 메사비 산맥의 철광석 매장지에 있는 낡은 광산을 사들였고, 슈피리어 호수로 가는 철도와 오대호의 광석 수송선의 통제권을 손에 넣었다. 이에 맞서 카네기는 여러 곳의 광산을 사들이며 철도와 선박들을 직접 만들겠다면서 록펠러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두 사람은 카네기에게 무척 유리한 조건에 합의했으며, 메사비 산맥의 철광석은 카네기에게 독점적으로 공급되었고, 메사비 산맥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철광석은 얕은 곳에 묻혀 있기 때문에 노천광 방식이 작업에 유리했다. 노천광 방식은 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데, 여러 품질의 광석을 파악해 저급 광석과 고급 광석을 섞어 제품을 만들고, 광미사에 잔류하는 철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방식으로는 터널 광산이었다면 땅속에 남겨 놓아야 했을 철광석도 채굴할 수 있었다. 레일을 구덩이에 바로 연결해 굴착기에서 수레에 직접 실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노천광 방식이 남긴 거대한 구멍은 땅과 강 유역, 생태계에 큰 피해를 입혔다. 석탄이 없으면 철강업도 있을 수 없었다. 제철소에 전력과 코크스를 공급하는 펜실베이니아 서부의 탄광들은 대기를 오염시켰고, 광산과 광미사에서 배출된 산성수는 오하이오의 강을 심각하게 오염시켰다. 간혹 탄광에 화재가 발생하면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동안 느리게 타는 경우가 있다. 어떤 때는 탄광이 무너져 광부들이 매몰되고, 그 위로 싱크홀이 생기기도 한다. 1959년에는 광부들이 불법적으로 녹스 광산에서 서스케하나강 아래로 터널을 뚫다가 천장이 무너진 사건이 발생했다. 몇십억 리터에 달하는 물이 순식간에 터널로 쏟아져 들어왔고 열두 명의 광부가 익사했다. 구멍은 나중에 막혔다.
산업자본주의의 사회적ㆍ환경적 비용: 1870년경, 산업자본주의가 제2차 산업혁명으로 접어들면서 제임스 와트에서 시작된 영국이 이끌던 혁신과 기계화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었다. 독일, 그리고 이후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또 다른 세기가 시작되었다. 이 물결을 타고 카네기는 20세기로 넘어갔다. 그런데 카네기의 양심은 그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쉬도록 두지 않았다. 개혁주의 개신교 문화는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부유층의 책임이라는 도덕적 신념으로 그를 가득 채웠다. 가난한 방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본가로 성장한 카네기는 자기 관리, 자기 교육, 자기 동기 부여가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확신했다. 동시에 그는 운이 자신의 인생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카네기는 1868년 초 부를 “최악의 우상 숭배”라 칭하며 “매년 발생하는 이익을 자선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쪽지를 남기기도 했다. 부와 영향력의 규모가 더 커진 1889년에는 <부의 복음>이라는 짧은 글을 발표했는데, 글에서 카네기는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더 큰 사유 재산을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부유한 자는 사회 발전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사용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카네기는 1901년 철강업을 J. P. 모건에 매각하고 세계 최고 부자의 반열에 오른 뒤 은퇴했고,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려 다양한 노력을 했다. 도서관을 지었고 대학교에 기부를 했으며, 다친 노동자와 참사 사망자 유족을 위한 구호 기금을 조성했다. 또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평화를 위한 활동에 몸을 던졌다. 그렇기에 철강과 기술, 화학 분야의 발전이 끔찍한 학살을 초래한 세계대전은 그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카네기는 1919년 세상을 떠났고, 그가 일어서도록 도와 융성케 했던 세상도 사라지고 있었다. 사회와 문화는 변하고 있었다. 철강업도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 자체가 달라지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대가
자원보존 운동의 시작
산업자본주의와 성장의 한계: 1860년대 중반, 앤드루 카네기가 철강 사업에 처음으로 투자를 하고 있을 때, 대서양 반대편에서는 산업자본주의 기반의 발전이 지속될 수 있으리라는 대중의 안일한 믿음을 뒤흔드는 책들이 출판되었다. 1864년, 찰스 스크리브너 출판사가 조지 P. 마시가 쓴 『인간과 자연: 혹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 변하는 자연의 지리』를 뉴욕에서 출간했다. 1년 후 런던에서는 맥밀란 출판사에서 윌리엄 제번스의 『석탄 문제: 국가 발전과 인간이 개발하는 탄광의 고갈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발표했다. 수천 년에 걸쳐 효율성은 높아지기는 했지만 인간은 늘 흙과 돌에서 자원을 추출해 왔다. 그러나 마시와 제번스는 천연자원을 추출하는 산업자본주의의 유례없는 능력 때문에 미래 세대가 혜택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자원이 줄어들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의사결정권자들 사이에서 걱정 어린 대화가 오갔고, 20세기 후반에는 ‘성장의 한계’라 불리게 될 내용을 다룬 불안을 야기하는 내용의 정기 간행물이 서점가를 채웠다. 지난 수 세기, 심지어 수천 년 동안 여러 사상가가 자원 파괴, 특히 삼림 파괴 행위에 경종을 울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번스의 말대로 “마치 황금알을 얻자고 거위를 죽이는 것처럼” 인간이 문명의 물질적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제기한 것은 마시와 제번스가 처음이었다. 마시는 이를 해결할 여러 대책을 제안했고, 제번스는 이익을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는 한 자원을 도덕적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마시의 저서는 미국에 거대한 정치적 영향을 미쳤다. 『인간과 자연』은 서둘러 미국 내 환경 및 삼림 보호를 위한 움직임을 일으켜야 한다는 의식을 제고시켰다. 한편 제번스의 책은 유관 정부 위원회를 세우고 추가 연구를 진행하는 데 불씨가 되었고, 지금은 에너지 경제학의 고전이 되었다. 마시와 제번스의 저서는 두 저자와 마찬가지로 개혁주의 개신교도이거나 개신교적 배경을 지닌 남녀 모두가 보이는 놀라울 정도의 규칙적인 기질이 이끄는 새로운 국제적 움직임이 태동하도록 만들었다. 아무튼 자원보존 운동(conservation of resources)은 1850년대와 60년대에 벌어진 도시 위생, 오염 감소, 도시 공원 및 구립 공원 조성 등을 위한 다른 운동들과 결합하여 20세기 환경보호주의를 일으켰다. 하지만 산업자본주의 자체에 진지하게 의문을 던진 자원보존 운동가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여 거위의 건강과 안녕을 지켜 황금알을 영원히 낳도록 하려 했다.
저물어 가는 산업자본주의: 자원보존 운동가들은 산업자본주의 자체에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원보존은 산업화가 야기한 환경 문제를 바로잡는 것만을 의미했다. 그래서 산업자본주의는 그 울음을 만들고 숨을 쉬기 힘들게 하기는 했지만, 제번스가 빗댄 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인간에게 약간의 신선한 공기와 깨끗한 물, 쾌적한 녹지 공간만 주어진다면 거위는 영원히 알을 낳아야 했다.
그러나 산업자본주의는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다. 물론 실험실과 작업장에서는 계속해서 놀라운 기술이 쏟아져 나왔고 유럽 귀족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임박한 불안한 시기에도 여전히 공작처럼 점잔을 빼고 다녔다. 그렇기는 했으나, 지구에 얼마 남지 않은 식민지화되지 않은 지역을 손에 넣으려는 제국주의 경쟁은 거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고, 지배하는 행위에서 오는 상대적인 지루함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한편 유럽과 미국에 철도 인프라가 자리를 잡자 미국 철강 산업이 보이던 경이에 가까운 성장 속도는 둔화되었다. 또 미국과 영국의 석탄 생산량은 정체기를 맞았다. 한편 50년 전만 해도 자신만만하고 낙관적이었던 서구의 과학과 예술, 음악은 세기말이 되면서 자신감이 줄어든 눈치였다. 물리학자들은 설명하기 어려운 특이한 현상들의 발견에 당황했고,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초기에 생겨난 미학 사상을 버렸고 게르만식 교향곡과 오페라가 방종한 자만의 시간 동안 멋대로 뻗어 나갔다.
미래는 불만과 억압된 폭력성으로 흐려졌다. 20세기는 질서 있는 세상, 도덕적인 세상에 대한 희망과 더불어 빅토리아 시대를 사납게 내쳤다. 무정부주의자, 혁명적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들은 폭력과 암살을 통해 자신들의 대의를 드러내려 했다. 참고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05년 발표한 상대성 이론은 불변의 외적 기준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입체파, 야수파, 표현주의 등 새로운 예술운동은 19세기의 예술 관습을 거부했다. 작곡가들은 전통적인 조성과 리듬을 버렸다. 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정신의 어두운 구석에 빛을 비추며 서구가 자랑하던 합리성이 허상이었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산업자본주의는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이 시기 거위는 황금알을 거의 낳지 못했다)을 거치며 수십 년을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산업자본주의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었다. 1945년 이후 위대한 유럽 제국들은 믿기 힘든 속도로 무너졌다. 증기기관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굴뚝도 하나둘 연기를 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세기로 넘어가며 생산보다는 소비를 조장하며 전에 없던 더 위협적인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시동을 걸었다.
구매 먼저, 결제는 나중에
소비의 역사: 소비자본주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소비주의(consumerism)와 다르다. 최초의 소비자는 초기 농경 사회에서 생활에 필요한 것 이상의 잉여물로 부를 쌓은 사람들이었다. 소비자는 무역상과 장인, 서기관으로부터 희귀하거나 고급의 물건을 구입했다. 크고 위용 있는 건축물을 지었고, 하인과 용역을 사서 자신의 성공과 권력을 자랑했으며 경쟁자를 놀라게 했고 외관을 가꾸었다. 그러나 아직 현대적 의미의 소비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질 좋은 먹을 것, 마실 것을 제외하면 다 써서 버릴 물건이라는 건 거의 없었다. 시대에 따라 가끔 상인이나 상류층 사람들이 곧 사라질 최신 유행을 따르는 옷을 입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역사상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원해서 물건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오래 가고 가치 있는 물건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을 사기를 원했다.
한편 특정 소비재에 대한 욕구는 제국과 서구 자본주의의 부상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고대 사회에서는 설탕, 향신료, 중국산 비단, 인도산 면직물 같은 사치품이 북반구에서 활발히 거래되었다. 로마가 멸망하며 서유럽과 북유럽 사이의 무역 고리는 끊어졌지만, 십자군 전쟁은 이국적인 사치품에 대한 관심을 다시 끌어올렸다. 그래서 포르투갈인들은 사치품을 찾아 아프리카, 인도, 동아시아로 향했고, 그곳에서 명나라의 활발하고 광범위한 무역을 만나게 된다.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는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면화, 설탕, 향신료와 함께 유럽행 선박에 실렸고, 네덜란드와 영국 제국이 커지면서 유럽인들은 낯선 소비재가 주는 새로움을 즐기게 되었다. 화려한 색의 인도산 면직물, 담배, 차, 커피, 초콜릿은 모든 사회 계층에 있는 유럽인의 삶에 천천히, 그리고 결국 완전히 유입되었다. 소비주의는 무역로를 따라 퍼졌다. 아메리카 대륙의 유럽 식민지 정착민들은 마데이라산 와인, 포트 와인, 차, 설탕, 초콜릿, 커피, 유럽산 공산품을 소비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유럽의 총과 인도의 면화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