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라는 중독
토머스 커런 지음 | 북라이프
완벽이라는 중독
토머스 커런 지음
북라이프 / 2024년 9월 / 368쪽 / 18,500원
당신도 완벽주의자인가요?
우리가 사랑하는 그 결점 - 완벽주의에 집착하는 세상의 풍경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반점』에서 저명한 화학자 에일머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여성 조지아나와 결혼한다. 조지아나에게 흠이 있다면 단 하나, 왼뺨에 난 작은 반점뿐이었다. 조지아나의 청초한 얼굴에 대비되는 이 반점은 완벽주의자 에일머의 신경에 거슬렸고, 오직 그 결점만 보였다. 에일머에게 조지아나의 반점은 ‘치명적인 결점’이었다. 에일머의 혐오는 곧 조지아나에게 번졌고, 그녀 또한 남편이 싫어하는 자신의 반점을 미워하게 됐다. 그래서 조지아나는 남편에게 과학적 능력을 발휘해 자기의 결점을 고쳐달라고 애원했다. 에일머는 치료약을 발견할 때까지 수많은 실험에 매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일머가 실험에만 몰두해 있는 사이, 조지아나가 그의 일지를 들여다보다 실패한 실험들을 정리해놓은 목록을 발견했다. 조지아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남편은 이미 성공했어. 다만 아직 자기가 목표했던 최고의 약을 만들지 못한 것뿐이야.’ 그때 갑자기 “유레카!”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에일머가 마침내 약을 완성한 것이다. 약을 받아든 조지아나는 “천국의 샘에서 길어온 물이군요.”라고 기뻐하며 단숨에 약을 들이켰다. 다음 날 에일머가 잠에서 깨어나 아내의 얼굴을 보니 반점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에일머는 자신의 성공에 기뻐하며 이제 결점 없이 완벽해진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당신은 완벽하오!” 그러나 조지아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에일머의 약은 조지아나의 반점을 제거했지만 그 대가로 그녀의 목숨을 거둬간 것이다. 결국 반점과 함께 조지아나도 사라지고 만 것이다.
호손이 『반점』을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작가 에드거 앨런 포도 완벽주의의 비극적인 심리를 파고드는 글을 썼다. 포의 단편 『타원형 초상화』에서는 전쟁에서 부상당한 남자가 쉴 곳을 찾아 이탈리아의 어느 별장으로 숨어든다. 그의 부하가 상처를 치료하려 애썼지만 가망이 없어 보였다. 자신의 상태를 파악한 남자는 별장의 침실 중 한 방에 누워 죽음을 기다린다.
침대에 누워 점차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 남자는 침실 벽에 걸린 여러 점의 그림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머리맡에 조그마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살펴보니 그림을 설명하는 책이었다. 남자는 촛대를 움직여 책장을 비추다 침대 기둥 뒤쪽에 놓여 있는 타원형 액자 속 젊은 여자의 초상을 발견한다.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 마음을 빼앗긴 남자는 더듬거리며 책을 펼치고, 화가의 이야기를 읽어나간다.
타원형 초상화 속 여자는 재능은 있지만 강박증에 시달리는 한 화가의 어린 신부였다. 아내는 보기 드문 미인이었지만 남편은 예술에 집착해 그녀에게 관심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는 아내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마침내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여자는 기꺼이 응했다. 다음 날 여자는 높은 첨탑 위에 있는 남편의 작업실로 갔다. 화가가 그녀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그리는 동안 그녀는 높고 어둑한 첨탑 안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에일머와 마찬가지로 화가도 완벽주의자였다. 작품에 자신의 명예가 걸려 있었기에 그는 화폭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고, 작업은 몇 주 동안 계속되었다. 아내와 꼭 닮은 모습을 화폭에 담는 데 집착한 화가는 아내가 쇠약해져 간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그런데도 그녀는 남편의 완벽주의에 말없이 따랐다. 그렇게 몇 주가 더 흘렀다. 마침내 화가는 마지막으로 붓을 놀리며 크게 외쳤다. “됐어! 정말 당신이 그림 속에서 살아 있는 것 같소!” 화가가 아내를 향해 몸을 돌렸을 때 아내는 이미 그 자리에 숨져 있었다.
2023년도의 시각으로 호손과 포의 작품을 읽기는 쉽지 않다. 이 이야기들은 으스스하게 정곡을 찌른다. 호손의 조지아나는 완벽한 신체를 추구해 성형수술을 받다 불구가 되거나 숨지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마찬가지로 포의 화가는 가족이나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대신 거래를 성사시키고 계약서를 쓰기 위해 밤낮없이 일에 매달리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은행원이나 변호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소설의 등장인물과 현대 사회의 군상이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에서 더욱 명확히 두드러지는 것은 양쪽의 차이점이다. 잭슨 대통령 시절의 미국에서 완벽주의는 대중적인 고딕풍 공포의 산물이었으며, 조롱의 대상이자 가장 기피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완벽주의를 바라보는 심리는 달라졌다. 이제 완벽주의는 우리가 추종하는 자질이자 기대하거나 존경하는 대상, 열심히 노력한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특성이자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특색에 가까워졌다.
우리는 사회 역시 완벽함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호손과 포의 시절과 달리 현대 사회에서 완벽주의는 필요악이며 명예로운 약점이자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결점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 논리적 모순에 너무 깊이 물든 나머지 그런 생각이 부조리하다고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호손의 에일머와 포의 화가는 완벽성의 극치까지 오르는 데 필요한 삶의 대가를 싸늘하게 경고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완벽주의가 무엇이며, 실제로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어느 때보다 왜 이 시대에 더욱 두드러지며, 이 모든 상황에 무엇을 해야 할지 살펴보려 한다.
잘하고 있다고 말해줘 - 주변에 숱하게 존재하는 완벽주의자의 3가지 유형2017년 어느 여름밤, 나는 신망을 받는 교수 고든 플렛, 폴 휴잇과 함께 외출했다. 우리는 맥주를 마셨고, 교수들은 내게 저마다의 연구 실적을 들려줬다. 고든은 전형적인 학자 차림이었다. 체크무늬 셔츠를 치노 팬츠에 단정하게 넣어 입고, 편안하면서도 기능적인 워킹 슈즈를 신고 있었다. 폴은 훨씬 사색적인 모습이었다. 조용하고, 생각이 깊으며, 여러모로 얽히고설킨 복잡성을 지닌 순진한 사람이었다. 필요한 때만 말했지만 입을 뗄 때마다 엄숙한 현실에 잠시 넋이라도 잃은 듯 부드러운 단호함이 빛났다. 덕분에 음울한 심리학자의 기운을 풍겼는데 이는 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서로 완전히 다른 두 남자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다. 지난 30년 동안 이들은 진료실과 강의실에서 완벽주의가 자주 나타나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그 내적 작용을 조사했다. 나는 두 심리학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이 연구가 단순히 ‘일’을 넘어섰다고 느꼈다. 완벽주의 연구는 아이 한 명을 더 기르는 일처럼 몹시도 사적이었다. 나는 이 거장들이 완벽주의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그들과 함께 토론토에 있었다. 대의에 헌신하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겨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완벽주의는 사적이면서 공적이고, 개인적이면서 관계적이라는 다양한 측면들을 갖췄다는 사실을 인식한 폴과 고든은 그들의 이론을 ‘완벽주의의 다차원적 모델’이라 명명하고 1991년 《성격 및 사회심리학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이 모델에 따르면, 완벽주의는 우리가 그다지 완벽하지 않으며 이 불완전함을 감춰야 한다는 결핍적인 핵심 신념에서 시작하는,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세계관이다. 이 핵심 신념은 완벽주의가 지닌 다양한 측면이자 그 측면들을 하나하나 구분해주는 특징이다. 폴과 고든은 처음에 이 다양한 측면들을 설명하면서 완벽주의를 연구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이례적일 정도로 높은 기준을 지닌 고독한 주인공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관계적인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다음은 각 인물에 대한 약력이자 이를 명확하게 보여줄 사례들이다.
자기지향 완벽주의 - 이들은 내면의 지시를 받는다. 나는 완벽해야 하고 완벽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존재 방식을 골자로 한다: 이들은 마음의 눈으로 완벽주의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처음 생각나는 모습일 것이다. 일에 미친 동료나 지나치게 열정적인 학생이 그 예이다. 폴과 고든은 ‘완벽해지고자 하는 내적 강박과 압박감’을 자기지향 완벽주의의 특성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동기를 부여하는 데는 최고지만 궁극적으로 이 동기가 넘쳐흐르다 보면 무조건 완벽해져야 한다는 기진맥진한 의무로 발전하는데, 사이클 선수 빅토리아 펜들턴의 사례는 이렇게 자진해서 짊어진 압박을 잘 보여준다.
펜들턴은 100년에 한 명 나오기도 어려운, 상을 가장 많이 받은 올림픽 선수 중 하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성취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08년 인터뷰에서 펜들턴은 사이클을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회고했다. 그녀는 성취를 통해 지속적으로 만족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올해 월드 챔피언십 우승 2회와 올림픽 금메달을 모두 차지했어요.’라 말해요. 그러면 저는 생각해요. ‘맞아. 그런데 나는 어째서 또다시 불만족스럽고 압박받고 있지?’”
자기지향 완벽주의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성은 단 한 번도 충분히 잘한다고 느끼기를 거부하는, 이 초경쟁적인 면일 것이다. 초경쟁은 일종의 역설을 보여준다. 기묘하게도 자기지향 완벽주의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다른 사람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으로 경쟁에서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지향 완벽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불안해한다. 한편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충분하지 못하다는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려고 한다. 이런 갈등 탓에 자기지향 완벽주의자들은 완벽을 추구하다가 자기 자신을 꾸짖느라 갈팡질팡하며, 생각 과잉과 미루기처럼 스스로 방해하는 행동을 하기 쉽다.
하지만 자기지향 완벽주의자들은 가끔 다른 사람들이 뛰어나다고 여기는 일들을 해낸다. 성공했다는 흔적을 감추고 우선 노력하려 할 때부터 잔혹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뿐이다. 펜들턴은 이런 특성을 잘 보여준다.
사회부과 완벽주의 - 이들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완벽하길 기대한다는 신념을 골자로 한다: 개인적 기준이 그저 과도하게 높은 정도를 넘어서며, 특히나 치명적인 사회적 뿌리를 지닌 완벽주의를 폴과 고든은 사회부과 완벽주의라 부르며, 이는 모든 사람이 항상 자신에게 완벽하기를 기대한다는 포괄적인 신념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 불가능한 기준에 못 미칠 때 다른 사람들이 가차 없이 자신을 평가한다고 믿는다. 폴과 고든에 따르면 사회부과 완벽주의는 끊임없이 평가받는다는 착각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이런 착각 탓에 언제나 다른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려 애쓰게 된다. 이런 식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자신의 결점에 관해 신랄한 발언을 듣는다. 자비로운 의견조차 자기 상상 속 불완전함에 대한 비난이라고 해석한다. 사회부과 완벽주의자들의 내적 대화는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대로 행동하고 모습을 드러내고 수행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 완벽해져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사회부과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이 불완전하다면 가혹하게 평가받으리라 믿는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 가끔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검증과 인증을 확보하기 위해 완벽을 추구한다. 완벽함을 뿌려대는 세계에서 우리가 평가받고 있다는 신념은 실제의 살아 있는 경험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사회부과 완벽주의는 진짜이든 상상이든 간에 다른 사람의 요구를 해석하는 렌즈일 뿐이다. 내 대학 친구 네이선은 사회부과 완벽주의자이다. 과묵한 성격에, 조용하고 꼼꼼하게 매우 높은 성과를 거뒀지만 다소 우울하고 불안을 표출하곤 했다. 이 특성들의 집합체는 우리가 다니는 교육대학에서는 단연 특이했고, 그는 그 특이함 탓에 ‘가벼운 농담’을 엄청나게 들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나는 그 농담이 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기지향 완벽주의자들처럼 사회부과 완벽주의자들은 상상 속의 불완전함을 고치려고 평생 노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사회부과 완벽주의자들의 근본적인 동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사랑과 인정을 받겠다는 명확한 목표 아래 그 기대에 충족하려는 것이다. 폴은 내게 말했다. “채우지 못한 이 관계적인 욕구는 완벽주의자들을 망가뜨리고 해를 입혀요. 사회부과 완벽주의자들은 이 점에서도 괴로워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불완전함을 영원히 감추기 때문이죠.”
타인지향 완벽주의 - 이들은 외부를 향한다. 다른 사람들이 완벽해야 한다는 신념을 골자로 한다: 폴과 고든이 구분한 마지막 얼굴은 타인지향 완벽주의다. 이 완벽주의는 친구나 가족, 동료처럼 다른 사람들을 향한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은 보통 타인지향 완벽주의자들과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의미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 분노의 표적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고든은 이렇게 설명한다. “타인지향 완벽주의자가 자신이 만물의 척도라고 느낄수록 자기 기준을 더 많이 고집하죠.”
타인지향 완벽주의자들은 눈에 쉽게 띈다. 이 사람들은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 자제심을 잃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으며, 특히 인간관계 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에게 완벽하기를 요구하면서 비판적으로 군다면 항상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요구사항이 많은 직장 상사나 비판적인 코치, 늘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친구와 말다툼했던 때를 떠올려보자.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아무튼 타인지향 완벽주의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기준을 적용한다. 자신의 상상 속 불완전함을 감추려 하기 때문이다. 폴이 말했다 “이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자의식이 강해요. 이들의 타인지향 완벽주의는 자아로부터 주의를 돌리려는 무의식적인 방법이죠.”
타인지향 완벽주의자 중 가장 악명 높은 사람은 아마 스티브 잡스일 것이다. 선지적인 천재였던 잡스는 월터 아이작슨이 전기 『스티브 잡스』에서 밝혔듯 복잡한 사람이었다. “잡스의 인생과 성격에는 분명 극도로 엉망진창인 면들이 있었어요.” 잡스의 아내 로린 파월이 아이작슨에게 말했다. 《애틀랜틱》의 저널리스트 리베카 그린필드는 잡스의 복잡함을 파악하려 시도하면서 그 특성에 그의 완벽주의가 관련한다는 사실을 밝혔는데, 그는 이렇게 썼다. “완벽주의는 잡스를 갉아먹은 병이었다.” 그리고 말콤 글래드웰이 《뉴요커》에 기고했던 글 가운데 뉴욕의 한 호텔에서 잡스가 실내장식에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던 다음 일화를 인용했다. ‘잡스는 언론 인터뷰를 위해 뉴욕의 호텔 스위트룸에 도착해 밤 10시가 되자 피아노 위치를 바꿔야 하고, 딸기가 부족하며, 꽃은 칼라로 교체해달라고 말했다.’
타인지향 완벽주의자의 전형이었던 잡스는 자신의 완벽주의를 권력의 도구로 사용했다.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잡스는 당신의 약점이 뭔지 정확히 알고, 어떻게 하면 당신을 스스로 보잘것없다고 느끼고 움츠러들게 할 수 있는지 아는 능력이 있어요.” 잡스의 이런 묘사에는 많은 의미가 담겼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에도 잡스는 완벽주의 탓에 자존감이 낮아 쉽게 위협당했고, 이 위협으로 자주 가혹하게 행동했다. 잡스 같은 타인지향 완벽주의자들은 물불 안 가리고 이겨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는데, 그 자체로는 괜찮다. 하지만 우세함에 위협받을 때면 격분하고, 어떤 경우에는 공격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폴이 말했다. “이런 행동은 다정하고 조화로운 인간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모든 완벽주의자를 하나로 묶는 변하지 않는 요소가 있다면 이 모든 것이 시작된 지점, 즉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리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라지지 않는 확고한 불안감이다. 한편 자기지향 완벽주의와 사회부과 완벽주의, 타인지향 완벽주의의 복잡한 상호작용 때문에 폴과 고든은 완벽주의를 다음과 같이 스펙트럼으로 취급한다. “우리의 차원들은 마치 거미집을 이루는 거미줄 같아요. 모든 거미줄은 같은 거미집의 일부이지만 거미집은 저마다 독특한 구조를 가졌으니까요.” 거미줄이 얼마나 멀리까지 뻗치는지는 각 사람이 각 완벽주의 스펙트럼에서 위치한 지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기지향 완벽주의가 높고, 또 어떤 사람은 사회부과 완벽주의와 타인지향 완벽주의가 낮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