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다정한 전염
크리스 앤더슨 지음 | 부키
가장 다정한 전염
크리스 앤더슨 지음
부키 / 2024년 10월 / 344쪽 / 19,800원
1부 관대함도 전염이 되나요
다정한 전염의 원리나는 미디어 기업가다. 경력의 전반부엔 영국과 미국에서 회사를 운영하며 취미 생활자들을 위한 잡지를 수십 종 출간했다. 그중 상당수는 기술 분야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다 1998년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한 콘퍼런스에 초대받았는데, 여기선 특이하게도 한 가지 산업 분야가 아니라 테크놀로지, 엔터테인먼트, 디자인 세 분야를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그렇다. 바로 TED 콘퍼런스였다. 강연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문외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발표했고, 그렇게 하다 보니 교차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프트웨어 제작자는 물리적 구조에 영감을 받았고, 시나리오 작가와 예술가는 과학기술자에게 마음을 빼앗겼으며, 다들 자기 작업의 잠재력과 중요성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느꼈다. 그 점이 참으로 놀라웠다.
2년쯤 뒤, TED를 인수할 기회가 생겼을 때 나는 그 기회를 덥석 붙잡았다. TED의 활동 영역을 확장할 수 있겠다는 전망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 엔터테인먼트, 디자인뿐만 아니라 온갖 분야를 교차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내가 세워 두었던 비영리 재단에서 TED를 인수했다. TED는 이제 비영리 단체이므로 공익을 위해 운영되어야 했다. 그 말인즉슨, 우리가 제공하는 강연을 듣게 할 더 폭넓은 청중을 찾아야 했다. 첫 10년 동안은 예상외로 힘겨웠다. TV 방송국을 찾아다니며 TED 강연이 높은 시청률을 보일 거라고 설득했지만, 대중 강연은 지루하다며 비웃음만 샀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무모한 도전: 그 무렵 온라인 비디오라는 신기술이 막 생겨났다. 2006년까지만 해도 온라인 비디오는 데스크톱 화면 구석에 조그맣게 떠 있는 신통찮은 창에 불과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시험 삼아 강연 여섯 개를 통째로 우리 웹사이트에 올려 봤다. 놀랍게도 이 강연들은 입소문을 타고 급격히 퍼지면서 조회 수가 수만 건에 달했다. 시청자들은 열렬히 환호했고 한껏 고무되었다. 우리는 돌연 딜레마에 빠졌다. 비영리 단체답게 좋은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전부 무료로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청중은 TED 콘퍼런스에 오기 위해 큰돈을 지불했다. 그 돈이 우리에게는 주요 수입원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콘텐츠를 무료로 볼 수 있다면 누가 돈을 내고 현장에 오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기어이 실행에 옮겼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실로 놀라웠다. 우선, 콘퍼런스 참석자 대부분이 이러한 조치를 지지하며 이 심오한 경험을 이제 남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강연을 온라인으로 처음 시청한 사람들의 반응은 훨씬 더 놀라웠다. 강연을 듣고 크게 감동했다면서 강연자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널리 퍼뜨리는 데 동참하고 싶다는 메시지가 쇄도했다. 웹사이트 방문자가 수백만 명으로 급격히 늘어났고, TED는 특정한 청중을 겨냥한 콘퍼런스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났다. 순전히 입소문 덕분이었다. 콘퍼런스의 수요가 꺾인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났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강연 내용을 현지 언어로 번역하겠다는 제안이 각국에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일을 실행할 시스템이 구축되자 실제로 수천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 번역가들이 발 벗고 나섰다. 17년이 지난 지금, TED 강연은 5만 명의 관대한 사람들 덕분에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나눠 주자는 결정이 불러 온 결과는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저 비영리 재단의 사명에 따라 가치 있는 지식을 세상과 공유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강연을 무료로 배포하기로 결정했을 뿐인데, 그 대가로 받은 것은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었다. 인터넷은 TED 강연을 널리 널리 퍼뜨려 수십억 조회 수를 올렸고 상당한 후원 수익을 끌어 모았다. 그 뒤로 3년 동안 TED의 수입은 열 배 이상 늘어났다. 그 덕에 우리는 새롭고 흥미로운 가능성을 고민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가능성을 구체화하고자 우리는 한 가지 원칙에 주목했다. 당시엔 그 원칙을 ‘철저한 개방성’이라고 불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저 관대함의 전염성이다. 인터넷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을 나눠 주면 그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돌려받게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져 봤다. 콘텐츠 말고 뭘 더 나눠 줄 수 있을까?
먼저 펠로우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TED에 참가할 만한 여유가 없는 전 세계의 비범한 사상가들과 실천가들을 불러 모았다. 초창기 펠로우인 교육자 로건 스몰리가 전 연령대 학습자에게 지식을 공유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의 TEDEd 교육 프로그램은 관대함에서 동력을 얻었다. 교사들과 애니메이터들이 무료나 낮은 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부자들이 나머지 비용을 부담했다. 2011년 이후 로건의 팀은 1,500개가 넘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그중 상당수가 상을 받았으며, 수만 곳의 학교와 수백만 가정에서 널리 활용되면서 10억 회 이상 호기심 불꽃을 터트리고 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기적: 이후 자기네 도시에서 TED 콘퍼런스를 개최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그들이 각자 알아서 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각국 주최자들에게 무료 라이선스를 발급했다. TED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되자 어디서나 연설자와 청중을 모집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우리는 그저 브랜드에 조그마한 X(엑스) 표식을 추가했다. TEDx는 ‘x라는 지역에서 자체 조직된 TED’를 뜻했지만, 실제론 TED의 역량을 곱하기로, 더 나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주었다.
이로써 TED는 단발성 연례행사가 아니라 연간 수천 번 열리는 행사로 바뀌었다. 각 행사는 시간과 재능을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현지 팀에 의해 진행되었다. 그들은 TED 행사를 영화관, 대학, 스포츠 경기장, 오페라 하우스, 국회뿐만 아니라 열대우림, 감옥, 난민 캠프 등 기상천외한 장소에서도 열었다. 우리는 그저 브랜드를 나눠줬을 뿐인데, 그에 따른 관대함의 연쇄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놀라웠다. 지역 주최자들은 귀중한 경험을 쌓았으며, 애써 익힌 지식을 널리 공유하고 우리에게도 알려 주었다. TEDx는 우리 힘만으로는 결코 찾아내지 못했을 놀라운 목소리들을 전 세계에 들려주기도 했다.
15년쯤 지나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2만 5,000번이 넘는 TEDx 행사가 개최되었고, 20만 개 이상의 온라인 강연 아카이브가 구축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강연은 해마다 10억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한다. 불과 열두 명밖에 안 되는 본사 팀이 전체 운영을 감독하면서 교육과 지침을 제공하고 우리의 사명을 고수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전통적인 지휘 통제 구조라면 이 정도 규모의 행사 조직을 단 열두 명으로 운영하기란 어림도 없다. 오로지 관대함의 전염성이라는 마법 덕분에 가능했다. 우리가 나눠 준 브랜드와 조언은 결국 전 세계에 지식을 전파하는 기적으로 돌아왔다.
끝없이 퍼지는 선한 바이러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TED는 예외적 사례 아닌가? 그런 성과는 당연히 TED와 그 강연자들이나 거둘 수 있는 거지.’ 물론 실제로 우리에게는 유리한 점이 많았다.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훌륭하고 재능 있는 팀을 꾸릴 수 있었고, 탁월한 강연자들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시간과 지혜를 나눠 주었다. 온라인 영상이 막 성장하던 시기에 때맞춰 무료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타이밍도 딱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관대함의 상승효과를 목격한 곳이 TED 하나만은 아니다. 나는 이러한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 조직과 개인 양쪽에 두루 적용된다고 확신한다.
우리 안에 숨은 선한 본능종교적 믿음이 서서히 식어가던 20대 시절, 한 가지 중요한 의문 때문에 머뭇거렸다. 내 인생에 신이 없다면, 대체 무슨 이유로 옳은 일을 하려고 애쓸 것인가? 나는 늘 양심이 가장 중요한 도덕적 나침반으로서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슨 명목으로 때로는 공익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속세의 생물학이 가르치지 않았나?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 경쟁을 벌이면서 진화한 동물이라고? 하지만 뛰어난 사상가들과 교류하면서, 현대의 진화생물학이 가르쳤던 내용이 다 맞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기적 성향만 띠도록 타고나는 게 아니라, 이타적으로 행동하려는 강한 욕구를 지닌 생명체로 진화할 수도 있다. 그러한 본능 덕분에 관대함을 베풀 수 있는 것이다.
2022년 2월 5일 저녁, 서른일곱 살 난 모하메드 메붑이라는 목수가 인도 보팔의 한 철도 건널목에 서 있었다. 모스크에서 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를 비롯한 사람들은 화물 열차가 먼저 지나가도록 멈추었다. 빨간 옷을 입은 소녀도 어깨에 배낭을 멘 채 가족과 함께 근처에 서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쌩쌩 달려오던 열차가 멈추었다. 소녀와 가족은 사람들과 함께 선로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열차가 갑자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피하려고 얼른 내달렸지만, 소녀는 선로에 발이 끼는 바람에 넘어지고 말았다. 모하메드가 비명을 듣고 돌아보니, 소녀가 선로에 자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기차는 여전히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소녀는 일어서려 애쓰다 다시 넘어졌고, 겁에 질려 그대로 굳어 버렸다. 모하메드는 재빨리 돌아서서 선로 쪽으로 달렸다. 소녀를 끌어내기엔 너무 늦었다고 판단한 그는 선로로 엎어져 소녀의 머리를 보호하며 지면에 납작 엎드리게 했다. 순식간에 열차가 굉음을 내며 달려왔고, 끝없이 이어지는 객차가 그들의 머리 위로 닿을 듯 말 듯 스쳐 지나갔다. 고막을 찌르던 덜커덩 소리가 마침내 안도의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모하메드와 소녀 둘 다 일어나서 걸어 나왔다. 모하메드는 소녀에게 이름을 묻지도 않고 집으로 가던 걸음을 재촉했다. 목숨을 건 그의 영웅적 행위가 영상으로 널리 퍼졌다. 모하메드는 그저 본능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도대체 어떤 힘이 그로 하여금 낯선 사람을 향해 이런 식으로 행동하게 했을까? 이는 분명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힘이다. 그 힘에서 비롯된 행동은 갑작스럽고 자발적이며 이루 말할 수 없이 이타적이고 용감하다. 행동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놀라움을 선사한다.
어쩌면 당신은 절대로 모하메드처럼 행동할 순 없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당신도 분명히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돌진하는 기차를 보고서 그 가엾은 소녀를 보호하고 싶은 격렬한 충동 말이다. 아마도 그 충동은 목숨을 걸고 싶지는 않다는 강렬한 욕망으로 상쇄되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애초에 그런 충동을 느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타적 본능은 늘 ‘손실 회피 성향’이라는 다른 본능에 의해 어느 정도 상쇄된다. 현재 수준의 안락함을 포함해 우리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실 회피 성향에 굴복하더라도 일단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싶다는 강력한 충동을 느끼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원초적 욕구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왜 존재해야 할까? 자신의 이익이 아닌 타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만드는 위험한 감정에 도대체 왜 주의를 빼앗겨야 할까?
이기적 유전자는 어떻게 이타적 인간을 만드는가: 우리는 간혹 진화의 역사를 피비린내 나는 경쟁의 연속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경쟁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한 무리의 동물이 생존하고 번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본능에 따라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밝혀졌다.
그러한 본능을 발달시킨 동물은 많다. 가령 개미, 돌고래, 개, 보노보노가 그렇고, 인간도 마찬가지다. 이타적 본능을 발달시키는 방법도 많다.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가 말했듯이, “현실적으로 어떤 유기체가 자신에게 ‘적은’ 비용으로 다른 유기체에게 ‘큰’ 이익을 줄 수 있고, 그러한 역할이 뒤집힐 수 있으며, 지능적이고 사회적인 종의 구성원들이 이러한 비대칭성을 활용할 수 있으면 된다.”
다시 말해서, 각 구성원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기억할 만한 정교한 사고력이 있다면, 그 집단은 호혜적 관대함을 선뜻 채택할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지금 음식이 넉넉하게 있어서 당신에게 나눠 줄 수 있다. 이 음식이 나한테는 별것 아닐지라도 당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당신은 내가 한 일을 기억해서 훗날 당신의 음식을 내게 나눠 줄 것이다. 그러면 우리 모두 이득을 본다.
이러한 방식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인류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몇 가지 핵심적 감정 적응을 채택해야 했다. 가령 곤궁한 사람을 향한 동정심, 도와준 사람을 향한 고마움, 속임수를 쓰거나 은혜를 갚지 않은 사람을 향한 분노,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등이 포함된다. 바로 이러한 감정이 연합하여 우리의 이타적 본능을 자극하고, 또 그 본능을 자주, 공정하게,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돕는다. 아울러 이러한 감정을 채택한 유전자는 스스로 생존하고 번성하며 후대로 대물림될 수 있도록 놀라운 전략을 구사한다. 실제로 우리 조상들은 그러한 전략을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 중 대다수는 실제로 사람들을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분류한다. 일반적으로 내집단은 함께 자랐거나 같은 공동체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공감 본능은 내집단에 속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강하게 분출된다. 외부인으로 인식되는 사람들에게는 일단 무관심하거나 의심하거나 심지어 잔인하게 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사회과학 실험을 통해 내집단과 외집단 간의 경계가 유동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경계는 피부색이나 종교, 지리, 말투 같은 특징에 영속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다양한 개인들에게 단일한 팀 이름을 부여하거나 그들을 단순히 함께 앉히기만 해도 내집단 충성심이 빠르게 생겨났다. 어떤 사람이 당신과 똑같은 두려움과 희망과 꿈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내집단의 일원처럼 대한다. 소설 읽기가 사람들의 공감 범위를 넓히는 데 기여하며,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도 비슷한 효과가 있다.
우리 인간은 내집단 안에서 관대함을 발휘하는 본능을 진화시켰다. 아울러 그 내집단을 무한히 확장할 능력도 갖추었다. 참으로 대단하다. 그렇다면 이번엔 관대함의 범위를 확장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또 다른 본능에 눈을 돌려 보자.
똑같이 반응하려는 충동: 인간은 온갖 사회적 행동에 대해 보답한다. 나한테 즐겁게 대해 주면, 나도 너한테 즐겁게 대할게. 나한테 못되게 굴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받은 대로 돌려주려는 욕구가 관대함 엔진의 핵심이다. 남들이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다. 우리가 이미 그들의 내집단에 속해 있는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실제로 이러한 반응 충동은 내집단을 확장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나는 여러 상황에서 이러한 반응 본능을 시험해 보았고 매번 그 결과에 놀랐다. 언젠가 내 모교인 영국 고등학교의 초청을 받아 강연하러 간 적이 있었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맨 앞줄에 앉은 학생들에게 내 휴대폰을 건네며, 개인 정보도 노출해야 하는 성가신 실험에 참여할 의사가 있으면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 달라고 했다. 그들은 대부분 졸업을 앞둔 열일곱에서 열여덟 살 학생들이었다. 열세 명이 용감하게 자신들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했다. 강연을 마칠 즈음, 나는 그들에게 한 명당 1,000파운드(약 170만 원)씩 보내 줄 테니 다음 달에 각자 원하는 대로 쓰라고 했다. 다만 어디에 썼는지 나중에 보고해달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들의 부모들과 교직원들은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