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공학
빌 해맥 지음 | 윌북
삶은 공학
빌 해맥 지음
윌북 / 2024년 7월 / 352쪽 / 22,000원
수학도 과학도 자도 없이 대성당을 짓는 법중세 도시의 무질서 속에서 대성당 건축 현장은 놀랍도록 질서 있는 곳이었다. 교회 건물의 규칙적인 비례와 깨끗한 석재는 더러운 주위 환경과 대비되었다. 건축 현장의 바깥 주변은 진흙과 쓰레기, 썩어가는 고기, 인간의 배설물로 뒤범벅이었는데, 이들은 인간의 끊임없는 활동이 남긴 찌꺼기였다. 이런 풍경 속에서 작업 현장도 온갖 활동으로 북적거렸지만, 도편수의 지시에 따라 질서가 유지되었다. 도편수는 5가지 역할을 맡았는데, 바로 공학자, 건축가, 자재 조달업자, 건설업자, 건설 감독자였다.
도편수가 관리하는 100여 명이 넘는 인원은 현장 여기저기에 흩어진 채 온갖 소음을 만들어냈다. 참고로 도편수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숙련 석수들이 돌을 다듬을 때 기준으로 삼을 나무 본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 일이 매우 집중해야 하는 일임을 아는 만큼, 젊은 석수들은 오두막 주위로 ‘인 트라수라’라는 라틴어가 소곤소곤 돌아다니면 도편수가 일하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이 말이 들리면 모두들 도편수가 도안실에서 작업 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제도실에 해당하는 도안실 안에서 도편수는 특별히 수입한 얇은 참나무나 전나무, 소나무 널빤지를 늘어놓고 분필로 돌의 면 모양을 그렸다. 이때 사용하는 도구는 컴퍼스(디바이더), 곧은 자, 그리고 끈이 전부였다. 문맹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그는 청사진도, 심지어 서면 설계조차도 없이 이런 모양을 그려냈다.
도편수는 머릿속에서 건축물을 수천 조각의 3차원 퍼즐로 분해했는데, 조립하면 완전한 대성당이 되는 퍼즐 조각들이었다. 건축 설계가 거의 전적으로 도편수의 머릿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후원자들은 건축이 진행되는 내내 도편수가 현장에 있을 것을 요구하곤 했다. 하지만 도편수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먼 곳까지 여행하면서 유럽 전역에 걸쳐 다수의 건축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도편수의 설계는 단순한 퍼즐 조립이 아니었다. 그 결과물은 오랜 세월 동안 우뚝 서서 귀족 후원자의 부와 신앙심을 기리는 독특한 기념물이 되어야 했다. 어느 도편수는 훈련생인 아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명예로운 작품은 주인에게 영광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서기만 한다면 말이지.” 본을 만듦으로써 도편수는 안정적인 구조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식을 보존하고 전달했다.
도편수는 자신이 지을 대성당의 넓은 내부 공간을 떠받치기 위한 기법을 두 가지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하나는 기둥-상인방 구조로, 기둥으로 지붕을 떠받치는 구조라 할 수 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평면을 기둥이 빼곡히 채우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 만드는 건물은 방이 작고 어두웠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아치였다. 중앙에 집중된 거대한 공간에 돔을 얹은 형태로, 로마에 있는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인 판테온이 좋은 예다. 그런데 중세기 석수 입장에서 이런 유형의 아치는 한 가지 문제를 안겨주었다. 반원형 아치는 높이가 언제나 너비의 절반이라는 점이었다. 도편수는 드높이 치솟은 대성당을 세우고자 했지만, 고대 로마의 아치 기법을 사용하면 높이가 1미터 높아질 때마다 너비는 2미터가 커진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대성당이 비대해져 도시 블록 몇 개씩을 차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이슬람에 의해 개량된 형태에 주목했다. 바로 ‘첨정 아치’, 즉 뾰족한 아치였다. 높고 날씬한 생김새가 특징인 이 양식은 서기 2세기에 불교 국가인 인도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7세기에 이르러 근동 지역까지 전래되었다. 뾰족한 아치는 아랫부분의 너비가 얼마가 되건 높다랗게 솟아오를 수 있었기에, 비록 종교적 차이가 있을지언정 유럽의 석수들이 중세기 대성당에 높고 장엄한 천장을 만들기 위한 완벽한 도구였다. 대성당 건축을 맡은 석수는 건축물을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건설하기 위해 아치를 떠받치는 벽 두께를 정확하게 설정해야 했다. 너무 얇으면 아치 무게 때문에 벽이 휠 것이고, 너무 두꺼우면 석재가 낭비되고 대성당 내의 탁 트인 공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벽 두께를 정하기 위해 도편수는 전해 내려온, 로마의 판테온과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를 세운 법칙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벽 두께가 아치 폭의 5분의 1을 약간 초과할 때 안정적인 아치가 만들어진다는 법칙이다. 그렇지만 도편수는 치수 비례 계산은 고사하고 문자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숫자가 표시된 자 없이, 유클리드 기하학도 없이 가장 기본적인 수학만을 가지고 이 법칙을 적용했다.
도편수는 끈을 마치 아치 자체에다 걸친 것처럼 아치 본을 따라 늘어뜨렸다. 그런 다음 한쪽 벽에서 아치의 곡선을 따라 올라갔다가 꼭짓점을 지나 반대쪽 벽까지 아치 전체의 길이와 같도록 끈을 잘라냈다. 그리고 이렇게 자른 끈을 직선으로 놓고 세 등분이 되게끔 접은 뒤 그곳을 색분필로 표시했다. 이제 3등분으로 표시된 끈을 다시 원래의 아치 본에 놓고 아치를 따라 늘어뜨렸다. 그다음 끈의 분필 표시대로 아치 자체에다 핵심 지점이 될 곳 두 군데를 표시했다. 각기 아치 꼭짓점으로부터 양쪽으로 약간 내려온 지점이었다. 끈의 분필 표시가 된 지점을 핀으로 고정한 다음, 끈 양쪽으로 나머지 3분의 1 부분을 직선이 되도록 팽팽하게 당겨 아치와 지지벽이 만나는 지점에 오게 했다.
이 선분의 길이와 선분의 경사각이 법칙의 핵심이었다. 석수는 이 선분과 똑같은 길이의 끈을 따로 잘라 원래 선분과 일직선이 되도록 그 끝에 이어놓았다. 이렇게 이어진 두 선분이 석수의 머릿속에 있는 직각삼각형의 빗변이 되었고, 그 삼각형의 가장 짧은 밑변이 그가 찾는 최종 수치인 아치를 떠받치는 벽의 두께가 될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빗변과 밑변이란 단어는 평생 들어본 적이 없었겠지만, 이후 몇 세기 내내 안정성이 보장되는 수치를 수학 계산조차도 동원하지 않고 알아낸 것이다.
이 비례 법칙은 1,000년에 걸쳐 적용하고 다듬은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법칙의 수치대로 많은 건축물이 세워짐에 따라 법칙은 구전으로 전해지며 반복해 활용되었다. 그 예로 13세기에 생트샤펠 성당이 세워지고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뒤 960킬로미터 남짓한 곳에 세워진 지로나 대성당 앞면에 이 법칙이 적용된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도편수에게만 알려진 지식체계에 포함되는 수많은 법칙 중 하나였다. 이러한 법칙은 석수 한 명이 평생토록 건물을 지으면서 쌓은 직관에서 생겨난 것들이었다.
“너 자신의 좋은 생각을 활용하라.” 어느 도편수는 아들을 가르치며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형적으로 쓰인 한 가지 판단 방법은 블록으로 쓸 석재의 품질 평가 방식이었다. 약한 암석층이 끼여 있는가? 망치로 톡톡 두들길 때 부서지거나 금이 가는가? 몇 주 동안 물에 노출시켰을 때 블록이 약해지는가? 품질이 뛰어난 석재를 사용할 때는 위에서 계산한 두께에서 7.6센티미터 정도를 뺐고, 약한 석재라면 7.6센티미터를 더했다. 도편수는 시공 도중에 수정을 가할 수도 있었다. 만일 움직이거나 흔들리는 돌이 눈에 띄면 다른 모양의 돌로 교체했다. 또는 마른 모르타르를 점검하여 응력 때문에 균열이 생긴 곳이 있는지를 살핀 다음 구조를 보강하기도 했다. 바로 이것이 공학적 방법이다. 이 방법은 체계적이고 실행 가능한 문제 해결 과정이자, 인류 세계를 창조한 힘이다. 13세기 프랑스 석수가 이 힘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공학적 방법을 정의할 수 있다.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경험칙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 간단한 정의는 언뜻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이 덕분에 중세기 도편수라고 불리던 공학자는 정교하고 멋진 대성당을 지을 수 있었다. 그에게는 재료의 강도나 돌 블록 한 개의 내부에서 작용하는 응력·변형력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오늘날 중요하게 여기는 기술적 지식도, 심지어 간단한 비율을 계산할 수 있는 수학적 능력도 없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자신은 그런 지식이 없다는 자각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그 어떤 순간에도 ‘내가 이 암석의 파괴 강도만 계산할 수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법이 없었다.
실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의 힘우리는 이 같은 결점에도 석수가 성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경험칙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또 공학적 방법은 경험에서 파생된 잠정적 지침으로만 이루어지며, 그중 어느 것도 정확한 답을 보장하지 않지만, 함께 엮일 때 신뢰할 만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방법으로 세계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동굴에서 부싯돌을 사용하던 과거부터 놀라운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공학자는 경험칙을 동원해 창의성을 보여주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고, 인간의 독창성이 갖는 한계를 넓혀왔다.
경험칙의 공식적인 용어는 ‘발견법(heuristic)’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한 지름길로서 사용되는 부정확한 방법을 뜻한다. 이는 너무나 오래전부터 널리 퍼져 있는 발상이어서, 모든 언어권에 이에 해당하는 단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신체 부위와 관련된다. 프랑스어로는 코(‘르 피프’), 독일어로는 주먹(‘파우스트레겔’), 일본어로는 ‘눈대중’, 러시아에서는 ‘손가락으로’이다. 이런 용어는 모두 간단한 상식을 길잡이 삼아 추정하는 부정확한 방법을 나타낸다.
정의에 따르면 경험칙은 “비교적 구조화되지 않은 방법”을 동원하여 결과를 이끌어낸다. 이는 문제 해결에 그럴 법하게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과학이나 철학 관점에서는 결과 말고는 무엇으로도 뒷받침될 수 없는 까닭에 정당화되지 않는 모든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런 사전적 정의는 명료하지도 않다. 경험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가진 다음 4가지 특징을 알아두는 쪽이 더 낫다. 체스를 잘 두는 방법으로 알려진 “체스판의 중앙을 지배하라”라는 경험칙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다.
첫째, 경험칙은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줄여준다. 체스 기사는 최대한 많은 갈래의 구체적 시나리오에 맞춰 계획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체스판 중앙 공간을 차지하도록 말을 움직인다면 그 대부분의 경우 세세한 부분 때문에 고민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둘째, 경험칙은 주어진 변수 안에서 성공 확률을 확보해 주지만,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체스판의 중앙을 지배하는 선수가 게임마다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취미로 체스를 두는 사람이 이 법칙에 신경을 쓴다면 이 법칙을 무시하는 상대를 이길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셋째, 경험칙은 같은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다른 경험칙에 위배되는 동시에 유효성을 유지할 수 있다. 즉 체스 선수가 체스판 중앙에 대한 지배력을 포기하게 된다 해도 “나이트를 위한 전초기지를 확보하라”나 “비숍을 대각선 위치에 유지하라” 같은 경험칙을 기억해 이길 수도 있다. 넷째, 경험칙은 절대적 기준을 거부한다. 경험칙은 문제가 갖는 맥락에 따라 적용하고 판단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런 만큼 추상적으로나 객관적으로 따질 때는 덜 유용하거나 심지어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체스 이론가는 “체스판 중앙을 지배하라”가 “게임 후반을 위해 킹의 수를 아껴라”보다 더 나은 경험칙이라고 말할 확실한 근거를 찾지 못한다. 체스 선수는 이제까지 지키던 모든 법칙이 스피드 체스를 두려고 하자 갑자기 쓸모가 없어지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런 특징을 대성당 도편수에게 적용해보자. 첫째, 비례 법칙을 활용하면 수학 지식을 배우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도 단 몇 분 만에 안정적인 벽 두께를 결정할 수 있다. 둘째, 어떤 웅장한 석조 건축물이라도 무너질 위험이 있다. 그러나 비례 법칙으로 설계된 기존의 대성당이 안전하게 유지되고 있고, 그래서 자신의 대성당 역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확신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셋째, 이 법칙만으로 지지벽 두께를 결정하면 벽이 너무 약해질 수도 있으므로, 도편수는 석재의 품질을 판단하면서 다른 경험칙을 동원하여 계산을 보정했다. 넷째, 대성당을 지을 때는 이런 고딕 양식 설계 법칙이 너무나도 알맞게 쓰이지만 중세 석조 건축물이라는 범주를 넘어 적용하면 절대적으로 실패하며 심지어 재앙으로 끝난다.
현대의 공학자는 현대적 방법을 사용해 특정 구조가 지탱할 수 있는 최대 하중을 알 수 있다. 그런 다음 예상 하중의 다섯 배까지 지탱하도록 안전 여유를 두고 구조물을 설계한다. 만일 그러지 않고 현대의 초고층 건물을 설계할 때 석수의 비례 법칙을 되살려 적용하기로 한다면 그 건물은 아마도 완공도 전에 그 자체 무게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러나 같은 비례 법칙에 따라 석수들이 지은 대성당 중 많은 수는 오늘날에도 전통 있는 예배 장소나 관광 명소로 살아남아 있다.
최첨단 기술로 초고층 건물과 우주선을 건설하는 이 시대, 옛 건축가가 쓴 방법의 역할은 그저 ‘진짜 해답’이 나올 때까지 자리를 맡아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싶은 유혹이 든다. 우리는 석수의 설계 방법을 ‘원시 공학’으로 볼 수도 있다. 현대 공학자가 사용하는 세련된 방법으로 진화하기 전의 방법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고딕 건축물에서 이런 비례 법칙이 통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쓸 수 있는 석재가 남아돌다 보니, 석수가 석재를 파괴 강도에 근접하는 정도의 응력에 절대로 노출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돌기둥은 높이가 2,000미터에 이르기 전에는 제일 아랫부분의 돌이 짜부라지지 않는다. 중세기에 세워진 가장 높은 대성당인 솔즈베리 대성당의 첨탑 높이인 123미터보다 훨씬 높다. 석수의 경험칙은 그 시대 그곳에서 필수이자 무적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고딕 설계 법칙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자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모습을 감추었다. 중세기 도제 제도의 구전 전통으로 현장에서도, 기억에서도 사라진 것이다. 수많은 시간이 흘러 건축사학자들이 15세기의 소책자와 대성당 자체의 측정치를 바탕으로 역공학을 동원해 갖가지 경험칙을 그러모아 재구성했다.
경험칙은 여럿이 공존할 수도 있고 쉽사리 내다 버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과학적 방법과 차이가 드러난다. 경험칙의 가치는 과학 이론과는 달리 다른 경험칙과의 대립을 통해 확립되지 않는다. 뉴턴의 이론을 대체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생각해보자. 뉴턴은 공간과 물질은 절대적이며 불변하다고 상상했다.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단단한 물체의 길이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 그렇지만 아인슈타인은 물체가 움직일 때 길이가 줄어든다는 것을 증명했다. 기회가 주어져 우리가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인다면 이 현상을 정확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아인슈타인의 복잡한 방정식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원리가 발견되면서 뉴턴의 이론은 틀렸음이 입증되었고, 그는 역사적으로는 존경받지만 이론물리학자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반면에 중세기 석수의 비례 법칙은 한 번도 틀렸음이 입증되지 않았다. 대성당 아치는 오늘날에도 그 증거로 남아 있다. 그 법칙을 과거에 남겨둔 계기는 그저 물질 세계였다. 시대가 바뀌어 철과 강철이 발달한 결과였다.
달리 말해 과학적 방법과 공학적 방법은 목표가 다르다. ‘과학적 방법은 우주에 관한 진리를 드러내고자 한다. 반면 공학적 방법은 실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과학적 방법에는 정해진 과정이 있다. 질문을 내놓고,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시험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무엇이 발견될지, 어떤 진리가 드러날지는 모른다. 그와 달리 공학적 방법에는 ‘대성당을 세운다’는 구체적 목표가 있지만 정해진 과정은 없다. 공학적 방법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정해진 절차로 압축할 수 없다. 공학적 방법의 힘은 이 ‘반드시’라는 것이 없다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올바른 전략을 찾아내고, 많은 경험칙 중에서 고르고 결합하여 해결책으로 이어질 새 경험칙을 만들어내는 것이 공학자의 기술이다. 경험칙의 결과물은 대부분 어떤 양을 추정하는 수치이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 방법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후자가 어떤 부류의 법칙인지 잘 보여주는 좋은 말이 있다. “복잡한 문제는 다룰 수 있는 크기의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라.” 공학적 방법은 문제를 대하는 태도 또는 접근법, 또는 나아가 그 해법을 만들어내는 철학이라고 묘사하면 가장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