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불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김현집 지음 | 크레타
내 불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김현집 지음
크레타 / 2024년 2월 / 252쪽 / 17,000원
I. 위로 없는 마음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대한민국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같이 어울린다고 꼭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대화한다지만, 혹시 오해가 생길지 몰라 조바심치는 게 대화다. 말을 잘못 뱉으면 곧 거만한 인간, 편협한 녀석, 또는 모자란 놈으로 찍힌다. 한번 굳어진 구획은 무너뜨리기 어렵다. 사회는 구획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을 보면 오해를 되풀이한다. 말은 주고받지만 서로의 내면은 꿰뚫지 못한다. 그래서 다투고, 멀어진다. 어쩌다가 때와 운이 맞아 오해가 풀릴지 모른다. 여기까지는 희극이다. 아니면 사랑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엇비껴 나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건 비극이다. 현실이라고 다르지 않다.
누구도 남의 본모습을 알지 못한다. 진정한 마음은 각각 유리되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남이 다 알아주는 글로벌 기업에 취직한 내 친구 카메란도 외로워한다. 뉴욕에 살면서도 외롭다고 한다.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의 태풍 같은 소음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잃으니, 자기 자신이 하찮아 보이고, 영원한 침묵을 선택한다.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외로움을 감싸 안으라”고 했다. 한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숲속의 목신 ‘판(Pan)’처럼 나무에 드러누워서 얘기한다. 인간, 특히 젊은이의 문제는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것에 있다고.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자기 자신과 시간을 보낼 줄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처럼 혼자 있어도 지루해하지 않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오스카 와일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한평생 이어질 사랑의 시작이라고 했다. 와일드답다.
외로움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시인 릴케는 조언한다. “다른 사람들과 나눌 것이 없다면, 사물을 가까이하길 바랍니다. 사물은 당신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밤은 여전히 함께 합니다. 나무 사이로, 여러 땅을 거쳐 부는 바람도.”
인간 아닌 사물이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에 몹시 공감한다. 보통의 우리는 마음과 정신을 인간관계에 연연하는 데 다 써버린다. 문학이 되었든, 음악이 되었든, 자연이 되었든 다른 ‘사물’에 마음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좋은 도시에 산다는 것은 산책할 곳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혼자서든 여럿이든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리포트나 에세이 등 뭔가 써야 한다면 대부분 혼자 걸을 때 써진다. 외로우면 걸어라.
가끔은 인터넷을 끄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도 좋아한다. 인터넷이 켜진 컴퓨터는 시끄럽다. 마치 문을 열면 큰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와 내 몸을 번쩍 들고 어딘지 모를 곳에 던져놓을 것 같다. 인터넷으로부터 고립된 컴퓨터는 비로소 나의 것이 된다. 단순한 타자기도 되고, 도서관도 된다.바깥세상의 목소리들은 멀어진다.
II. 아직도 운명을 들먹일 것인가
내 불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머리에 새똥을 맞는다든가, 버스를 놓친다든가, 이럴 때 우리는 흔히 재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거기서 고통이 더 커지면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든다. 내 마음속을 한번 들여다보자. 저기 깊고 어두운 어딘가에, 과거 언젠가 저지른 실수 또는 죄가 작은 진주처럼 반짝이고 있다. 무서운 일이다.
내가 아는 인도 친구는 이런 것이 바로 ‘카르마’라 했다. 어느 날 창문 밖을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일상생활 속 시시한 일도 유심히 관찰하면 카르마로 엮여 있는 게 보인다고.내가 물었다. “전쟁 중에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도 자신들의 죄 때문에 벌 받은 걸까?”
그가 대답했다. “아니. 불운은 본인이 자초하기도 하지만, 가까운 사람 사이에 감기 옮기듯이 번지기도 해.”
고대 그리스 비극의 줄거리들을 보면 온통 불운투성이다. 미케네의 왕 아트레우스는 조카들을 죽이고 베어낸 살을 그들의 아버지에게 저녁식사로 대접했다. 아트레우스의 장남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에서 귀환하는 기쁨도 잠깐, 아내와 그녀의 애인에게 욕조 안에서 암살당한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친어머니를 살해했다가 이에 노한 악령들에게 쫓긴다. 이 집안은 저주받았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아가멤논>에서 반복되는 모티브다. 랍다코스의 후손들은 어떤가?
우선 오이디푸스가 있다. 의도치 않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한 가장 유명한 그리스 비극의 영웅이다. 그의 형제이기도, 자식이기도 한 아들들은 전투에서 겨루다 서로 죽이고, 딸 안티고네도 동굴에 묻히는 사형을 당한다.
이렇듯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전염되는 ‘죄’. 그리스 사람들에겐 ‘죄’가 신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삶이고 현실이었다. 아테네에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사회를 더럽힌다며 경멸했다.
근대 의학은 인류의 목숨을 연장했을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도 크게 이바지했다. 이를테면 과거에 성격이나 도덕적 결함 때문에 생기는 줄 알았던 것들, 우울증, 조현병, 강박증 등이 많은 경우에 질병 탓이라고 밝혀낸 점이다. 이럴 때 우리는 묻는다. 사람의 모든 행동이 유전자 때문이고, 환경 때문이고,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의지 밖의 문제 때문에 비롯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스탠퍼드대학교의 저명한 신경생리학자이자 생물학 교수인 로버트 새폴스키의 생각은 ‘그렇다’다. 그에 따르면 선택의 자유는 존재하지만 오늘 저녁 윗니와 아랫니 중 어디를 먼저 양치질할지 결정하는 자유 의지 정도가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한계라 보았다. 나머지 인생의 큰 결정들, 그 모두는 유전자와 환경에 의해 철저히 지배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죄와 벌은 마냥 억울한 것이 아닐까. 자유로운 의지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지 아닌지는 철학의 오래된 토론 주제이고 오늘도 계속된다. 우리는 어둠 속을 헤맨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혹은 아니라고 하기도 어중간한, 무서운 세상 속을 헤맨다. 오이디푸스는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 죄의 무게를 짊어지며 어떻게 처신했던가. 자신의 두 눈을 도려냈다.
III. 독한 생각
안쪽 방의 공무원들내가 나를 간지럽힐 수는 없다. 내 손이 어디로 갈지를 뇌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이 나를 간지럽힐 때 비로소 내가 간지럽다.
뇌는 정보를 오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쉴 틈 없이 우리의 경험을 걸러내고 미리 계산하고 예측한다. 영국에서 ‘인지철학(cognitive philosophy)’이란 독특한 과목을 가르치는 앤디 클라크 교수는 이를 ‘예측처리(predictive processing)’라고 부른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손으로 도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통해 생각을 ‘다르게’ 다룬다. ‘예측처리’하는 뇌는 연필을 쥔 손이 어떻게 움직일지도 계속 고민한다. 연필은 필기도구일 뿐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꾼다. 이 현상을 클라크는 ‘확장된 정신(the extended mind)’이라고 불렀다(’mind’는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다. 흔히 사용되는 ‘마음’은 오역에 가깝다).
우리의 정신은 뇌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의 몸, 손에 익숙한 물건, 이 모두가 정신의 연장 혹은 도구인 셈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우리 사고의 모양을 바꾼다. 사유를 직업으로 하는 철학자들이 말하는 비결도 의외일 때가 있다.
옥스퍼드대학교의 철학 교수 데렉 파핏은 사유 과정에 있어 의식적인 것은 거의 없다고 봤다. 예를 들면 사람의 뇌 안에는 고급 공무원이 한 명 앉아 있다. 그가 종이에 ‘문제’를 하나 적은 후, 그것을 서류함에 넣어 둔다. 그러면 저 ‘안쪽 방’의 공무원들이 그 ‘문제’에 대해 열심히 고민한 다음 ‘답’을 찾아 서류함에 넣는다. 그러면 고급 공무원이 다시 그 답을 찾아 쓰는 식이다. 파핏의 사유 방법이다.
샤워를 하거나, 화장실에서 아이디어가 문득 떠오르는 경험은 누구나 했을 것이다. 무의식 속에서 일하는 안쪽 방의 공무원들 덕분이다. 니체는 서재에 앉아 책에 둘러싸여 써낸 생각은 가치가 없다 했다.‘모든 편견은 내장에서 비롯된다.’ ‘좌식생활은 성령에 대한 모독이다.’
몸이 가볍고 ‘온 근육이 춤을 출 때’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최선이다. 니체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산책했다. 철학을 자유로운 몸에 맡기기 위해서였다. 창의적이고 진실한 생각의 원천은 무의식에서 온다. 이미 만들어진 공식이나 테크닉만으로 진실에 가닿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철학자일 것이다. 빨리 익는 것은 빨리 썩는다. 기술로 쌓은 건 금방 무너진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무의식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숙제다. 철학자뿐 아니라 작곡가, 소설가, 발명가들은 어둠 속에서 스위치를 더듬듯 그에 맞는 정신상태를 추구해 왔다. 베토벤은 커피를 만들 때 커피 알을 정확히 60개 세서 갈아 마셨다고 한다. 스티븐 킹은 자기 전에 손을 씻고, 베개 커버의 열린 부분을 침대 반대쪽을 향하도록 맞춘 후 잠에 들었다 한다. 니콜라 테슬라 역시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발가락을 100번씩 꼼지락거렸다. 두뇌기능에 좋다고 테슬라는 확신했다. 모두 더 나은 창조를 위한 의식행위들이다. 안쪽 방의 공무원들은 우리가 모두 잠든 후에도 잠을 자는 법이 없다.
IV. 영국의 유머와 여유
여왕이 없는 나라영국 1파운드 동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전이다. 작고 두툼해서 손에 쥐어주면 그 매력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흔히 ‘금화’라고 불리는 그 묵직한 느낌이다. 하지만 2017년부터 매력의 1파운드는 보통의 1파운드로 바뀌었다. 영국 동전의 또 다른 재미는 엘리자베스 여왕(1926~2022)의 변하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그것도 끝이 났다. 영국은 몇 남지 않은 입헌군주국가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칼끝처럼 꿰뚫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변화는 언제나 또 다른 변화를 위한 홈을 남긴다.”
무언가를 애써 고치면 그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따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혜를 바탕으로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이들이 있다. 작가 C. S. 루이스(1898~1963)는 “헐뜯기보단 진단하고, 찬미하기보단 분별하라”고 했다. 그는 군주제를 옹호했다. 군주제를 부정하긴 쉽다. 하지만 인간이 왕을 섬기지 않는다면 백만장자, 운동선수, 영화배우를 섬길 것이라 했다.
영국의 보수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도 ‘섬김’의 대상을 고민했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평화를 위협한다. 하지만 이를 억눌러선 안 된다. 충성을 바칠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는 그것이 국왕이라 보았다. 좀 극단적인가? 하지만 보수주의자들만 입헌군주제를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좌성향 작가 조지 오웰은 스크루턴보다 50년 전 먼저 이 얘기를 꺼냈다. 오웰은 국왕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위험한 감정을 배출시킬 배기 밸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파시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충동을 왕실이 해소한 것이, 영국이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인물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라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루이스도 윗글을 1943년에 썼다. 절대군주를 열망하며 쓴 글은 아니란 것이다.
영국 총리는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씩 국왕을 찾아가 국정에 대해 보고하고 자문을 구한다. 기자도 보좌관도 없는 자리에서 총리와 국왕은 둘만의 대화를 나눈다.
물론 운이 좋게 태어났다 해서 혜택을 누리는 건 불공정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자를 믿고 섬겨야 할까?
우리는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사람을 가리킬 때 흔히 ‘정치적인 인간’이라 한다. 이 말은 이제 경멸을 담은 욕이 되었다. 반대로 좋아하는 영어단어 중 하나는 ‘dignity(품위, 격)’이다. 영국 여왕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말이다.
처칠, 클린턴, 만델라도 여왕을 만났다. 그녀는 역사였다. 영국 동전엔 단아한 젊은 여성의 옆모습이 새겨져 있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목은 짧아지고 턱밑에 조금씩 살이 붙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머리 스타일만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균형을 잡아주고 그 균형은 아름다운 비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우리 세대에 더 이상 영국 여왕을 만날 일은 없어졌다.
V. 남성미에 대하여
블레넘가에서 다우닝가 10번지로처칠은 영국 보수의 상징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가 태어났던 블레넘궁은 천장이 성당처럼 높다. 직접 가서 보면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놀란다. 잘난 인물일수록 오해받기 쉽다. 소포클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귀한 사람에게 겨눠진 화살은 결코 빗나가지 않는다. 과녁이 넓기 때문이다.
처칠은 30년을 보수당에서, 그전 20년은 자유당 소속의 진보적 개혁가로 활동했다. 그는 최저임금 제도 도입을 위해 의회에서 열변을 토했고, 1925년 재무장관으로 일할 때는 ‘과부 연금’과 ‘고아 연금’도 도입했다. 저소득층 지원에도 열심이었는데 “모든 사람이 이 섬나라를 진정 자기 집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보어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던 경험 덕분이었을까. 교도소 수감자의 권리법안 개혁도 추진하면서 처벌과 감금의 값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처칠은 정치가였던 자신의 아버지 랜돌프 처칠처럼 ‘보수 민주주의(Tory democracy)’를 원했다. 계층의 장벽이 없는 보수주의 말이다.
처칠은 격식도 가벼이 부숴버렸다. 직접 디자인하고 즐겨 입었던 오버롤 스타일의 작업복 ‘사이렌 슈트(siren suit)’는 유명하다. 큰 포대를 연상시키는 이 옷을 입은 처칠은 마치 통통한 어린아이 같다.
처칠은 (남자)비서 앞에서 벌거벗고 일하기도 한 괴짜였다.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길 구애하기 위해 백악관에서 머물던 어느 날, 루스벨트 대통령은 처칠의 침실 문을 여는 순간 처칠의 나체를 보고 만다. 처칠의 위트는 이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보시다시피 저는 미국 대통령님께 숨길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식사마다 풀코스를 고집했던 처칠을 소탈한 서민 지도자로 그리기엔 무리다(처칠은 특히 ‘테마가 없는 디저트’를 혐오했다고 한다). 처칠의 씀씀이는 말버러가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평생 빚에 시달렸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
처칠을 보수와 진보를 품은 지도자라 하기에도 적절치 않다. 처칠은 말했다. “나는 양쪽 당 모두의 소속이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다만 둘 다 똑같이 경멸한다”고. 처칠의 역설은 그의 정신의 넓은 폭을 보여준다. 휘트먼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모순인가? 좋다.
그럼 나는 모순이다.
나는 거대하다.
나는 수많은 것들을 포괄한다.
물론 모순이 있다 해서 거대한 건 아니다. 가짜는 늘 진짜와 거의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가끔 처칠을 전쟁광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처칠이 보어 전쟁 중 종군기자로 일할 때 쓴 기사 한 줄을 인용해 그를 변명해 주고 싶다. “우리 시대의 지도자들과 계몽가들이 전쟁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았다면, 평범한 보통 사람은 전쟁의 얼굴을 보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VI. 소소하지 않은 문학
<전락>, 나는 참회자이고 판사다 팰로앨토는 실리콘밸리와 매우 가까운 얌전한 동네다. 이곳에서는 일상 대화가 살짝 다르다. 처음 만난 사람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대화라기보다는 추궁이다. “당신의 전문 분야는 무엇인가.” “대표적인 개념 세 가지를 대볼 수 있는가.” “유익한 정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