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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케빈 랠런드 지음 | 동아시아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케빈 랠런드 지음

동아시아 / 2023년 5월 / 536쪽 / 26,000원





문화의 기초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다운하우스에서 교외를 바라보며, 찰스 다윈은 만족감에 차서 비로소 자신이 자연 세계의 복잡한 구조가 존재하게 된 과정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해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종의 기원』의 마지막 구절에서 다윈은 식물과 새, 곤충, 벌레가 가득 차 있으며 그 모두가 복잡하고 체계적으로 상호작용 하는, 얼기설기 얽힌 강 둔덕에 대한 명상에 잠긴다. 다윈의 거대한 유산은 서로 뒤얽힌 이러한 웅장함의 대부분을 이제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창문 밖으로 스코틀랜드 남동부의 한 작은 마을인 세인트앤드루스를 바라본다. 덤불과 나무 그리고 새들도 보이지만, 석조 건물, 지붕, 굴뚝과 교회의 첨탑이 풍경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신주와 고압선 철탑도 보인다. 남쪽을 바라보면 멀리 학교가 보이고, 바로 옆 서쪽에서는 병원 주변으로 통근 버스가 부산스럽게 지나간다. 과연 진화론은 자연 세계를 설명하듯이 굴뚝과 자동차, 전기를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종의 기원을 설명하듯이 기도서나 교회 성가대의 기원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쓰는 컴퓨터, 인공위성, 중력에 관한 과학적 개념에도 진화적인 설명이 있을까?

언뜻 보기에 이러한 질문은 그리 골치 아파 보이지 않는다. 분명 인간은 진화했고, 과학과 기술에 능숙한 비정상적으로 똑똑한 영장류가 되었다. 다윈은 “가장 고귀한 고등동물”은 “자연의 전쟁”을 통해서 등장했으며, 확실히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종보다 우리 인간 종이 고귀하고 고등한 종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지구를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지배하게 된 이유가 우리의 지능과 문화, 언어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이겠는가?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런 식의 설명은 곧바로 보다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을 낳는다. 생존과 번식 능력의 향상으로 지능과 언어, 정교한 인공물을 만드는 능력이 인간 종에서 진화했다면, 왜 다른 종은 이러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까?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자 유전적으로 가장 비슷한 다른 유인원들은 왜 로켓과 우주정거장을 만들거나 달에 가지 못했을까? 동물들은 특정한 먹이를 먹거나, 주변 지역의 지저귐 소리를 내는 전통(연구자들이 ‘동물의 문화’라고 부르는 것)을 갖고 있지만, 동물의 문화에는 법, 윤리, 제도가 없으며 인간의 문화처럼 상징이 스며들어 있지도 않다. 또한 동물이 도구를 사용하는 전통은 우리의 기술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성과 다양성이 증가하지 않는다. 이처럼 인간과 동물의 인지적 능력과 성취물 사이에는 어떤 간극, 외관상으로는 결코 좁혀지지 않을 듯한 간극이 존재한다.

이 책은 인간 문화의 얼기설기 얽힌 강 둔덕의 기원과 인간 마음의 동물적 뿌리에 대해 탐구한다. 인간을 둘러싼 이야기 가운데 가장 어려우면서도 신비한 측면, 즉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다른 동물들과 완전히 다른 종이 되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설명을 제시할 것이다. 이는 우리 조상이 어떻게 개미와 덩이줄기, 견과류로 연명하던 유인원에서 교향곡을 작곡하고, 시를 낭독하며, 무용을 하고, 입자가속기를 설계하는 현대인으로 진화했는지와 관련 있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은 자연선택의 법칙에 의해 진화하지 않았으며, 우주정거장은 다윈적인 투쟁의 “기근과 죽음”으로부터 등장하지 않았다. 컴퓨터와 아이폰을 디자인하고 개발한 남성과 여성들이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보다 더 많은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법칙이 기술의 끊임없는 진보와 다양화, 예술의 유행을 설명할 수 있을까? 문화적 형질들 간의 경쟁으로 인해 행동과 기술의 변화가 발생했다는 문화적 진화 이론은, 먼저 복잡한 문화를 발생시키는 마음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지를 밝혀야 비로소 만족스러운 설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 종에게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지적 능력은 문화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공진화적 되먹임이라는 소용돌이로부터 형성된 것이다. 물론 나의 핵심적인 주장 가운데 하나는 인간 마음의 진화에서 단 하나의 주요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나는 점점 가속되는 진화적 되먹임의 주기가 중요하며, 그런 되먹임으로 인해 복잡하게 얽힌 문화적 과정들이 서로 불가피하게 줄달음 역학을 주고받아 마음의 경이로운 정보처리 능력을 형성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 종의 특별한 성취는 문화에 대한 우리의 특별히 강력한 능력 덕분이다. 여기서 ‘문화’는 공유되고 학습되는 지식의 광범위한 축적과 시간에 따른 기술의 끊임없는 개선을 의미한다. 때로는 인간 종의 성공이 우리가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지만, 사실 우리를 똑똑하게 만드는 것은 문화다. 물론 지능이 관련 없지는 않지만, 우리 종을 고유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통찰력과 지식을 한데 모으고 각자의 해결책 위로 새로운 해결책을 누적해 나아가는 능력이다. 어떠한 새로운 기술도 어느 외로운 발명가가 홀로 찾아낸 것이 아니다. 사실상 모든 혁신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술을 재가공하거나 개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가장 간단한 인공물을 예로 들어야 할 텐데, 우주정거장과 같은 것을 한 사람이 발명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로, 종이 클립을 생각해 보자. 당신은 아마도 종이 클립이 그저 상상력이 뛰어난 어떤 사람이 지금의 형태를 고안해 낸, 굽은 철사 한 조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참고로 종이는 중국에서 1세기에 발명했으나, 충분히 많은 종이가 생산되고 사용되던 중세 유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종이 몇 장을 일시적으로 묶어두는 수단에 대한 수요가 창출되었다. 초기의 해법은 핀을 사용해서 집는 것이었다. 이 핀은 녹이 슬고 보기 흉한 구멍을 남겼는데, 그 때문에 핀으로 집은 모서리는 종종 너덜너덜해지기도 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오늘날의 클립보드와 닮은, 부피가 큰 용수철 도구와 작은 금속 버클이 사용되었으며, 그 후 몇십 년 동안 다양한 클립들이 등장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굽은 철사 종이 클립에 대한 특허는 1867년에 부여되었다.

하지만 저렴한 종이 클립을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가소성을 지닌 철사와 그 철사를 구부릴 수 있는 기계가 개발되어야 했는데, 이 둘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개발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최초의 종이 클립이 최적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예컨대 오늘날 흔하게 보이는, 2개의 둥근 루프가 겹쳐진 형태가 아니라 사각형 철사 중 한쪽이 겹쳐진 형태였다. 생산자들이 (‘Gem’ 클립으로도 알려진) 오늘날의 표준적인 디자인으로 통일하기 전까지, 20세기의 수십 년 동안 다양한 형태가 실험되었다. 언뜻 보기에 단순하기 그지없는 인공물도 알고 보면 몇 세기 동안의 재가공과 개선을 거치며 다듬어진 것이다. 오늘날에도 젬 클립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십 년 동안 제조된 조금 더 저렴하고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을 비롯해 새로운 디자인의 종이 클립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종이 클립의 역사는 기술이 어떻게 변하고 복잡해지는지에 대한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변형은 다른 영역에서도 발생한다. 인류의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는 유별나게 복잡한 지식, 인공물, 제도에서 잘 드러난다. 이처럼 문화의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측면은 한 걸음 만에 만들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기존의 형태에 대한 반복적이고 점진적인 개량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누적적 문화’라고 한다.) 다른 동물과 우리를 구분 짓는 것으로는 우리의 지성뿐만 아니라 언어, 협력, 초사회성이 주로 언급되지만 이런 특징들은 우리의 특별한 문화적 능력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과학자로서의 경력을 인간 문화의 진화적 기원을 탐구하는 데 바쳤다. 나의 연구 실험실에서는 동물 행동 실험과, 실험이 여의치 않은 문제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는 수학적 진화 모델을 사용해 그 기원을 연구한다. 모방을 통해서, 동물들은 무엇을 먹을지, 먹을 것을 어디서 구하고 어떻게 가공할지, 포식자는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피할지 등을 학습한다. 초파리나 띠호박벌부터 붉은털원숭이나 범고래까지, 여러 야생 집단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새로운 행동이 확산된다는 수천 개의 보고가 있다.

이러한 행동의 확산은 너무나 빠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연선택에 의한 적합한 유전자의 확산 때문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러한 확산에는 의문의 여지 없이 학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몇몇 종의 행동 레퍼토리는 지역 내부나 지역들 간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러한 변이는 생태적 변이나 유전적 변이로 쉽게 설명할 수 없으며 때때로 ‘문화적’ 변이로 기술된다.

어떤 동물들은 특별히 폭넓은 문화 레퍼토리를 지니고 있으며, 다수의 다양한 전통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공동체가 독특한 행동 레퍼토리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몇몇 고래나 조류에게서 풍부한 레퍼토리가 관찰되었지만, 인간을 제외하면 최고의 전통을 자랑하는 동물은 영장류다. 도구 사용과 사회적 관습을 비롯해 사회적으로 전달되는 다양한 행동 패턴이 몇몇 종에서 관찰되었으며, 그중에서도 침팬지, 오랑우탄, 흰목꼬리감기원숭이는 특별하다. 사육 상태에 있는 유인원에 대한 실험 연구에서도 모방, 도구 사용, 그리고 다른 복합적인 인지능력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보고되었다. 적어도 이들은 다른 동물에 비해 복잡하다.

이러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유인원이나 돌고래의 전통조차도 인간의 기술처럼 시간에 따라 복잡성이 증가하지 않는 듯하며, 동물에게 누적적 문화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아마도 가장 믿을 만한 증거의 후보 가운데 하나는 스위스의 영장류학자 크리스토프 보에시가 제시했는데, 그는 견과류를 깨는 침팬지들의 망치돌이 시간이 지날수록 정제되고 개선되었다고 주장한다. 몇몇 침팬지들은 또 다른 돌을 그들이 부수고자 하는 견과류를 놓는 모루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그중 일부는 모루를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해 또 다른 돌을 사용하기도 했다. 보에시의 주장은 그럴듯하며, 사실임이 확인되면 누적적 문화의 일부 정의를 만족한다고 할 수 있지만, 확정적인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견과류를 깨 먹는 복잡한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한 개체가 발명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며, 이는 이런 도구 사용이 침팬지 조상의 전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침팬지에게 누적적 문화가 있다는 다른 주장들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조금 더 복잡한 변형이 더 단순한 것에서 발전한 것이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동물의 누적적 문화에 대한 주변적인 증거도 마찬가지로 이론의 여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뉴칼레도니아까마귀인데, 이들은 잔가지와 나뭇잎을 사용해 복잡한 사냥 도구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동물 집단에서 새롭게 학습된 행동이 확산되는 사례는 제법 있지만, 조금 더 나은 해법으로 개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와는 정반대로, 인간에 의한 혁신의 발명, 개정, 전파에 대한 증거는 대단히 많다. 이는 고고학적인 기록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알려진, 인간의 직계 조상일 가능성이 높은 아프리카 호미닌의 한 집단이 사용했던 석편 조각은 34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고지에서 처음 발견되어 ‘올도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기술은 망치돌로 석핵에서 떼어낸 석편으로 구성되며, 도살된 짐승을 분할하거나 고기를 떼내고 골수를 채취하는 데 사용되었다. 180만 년 전에 이르러서는 어슐리언이라고 알려진 새로운 석기 기술이 등장했으며, 또 다른 호미닌인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에르가스터가 이를 사용했다. 어슐리언 기술은 주먹도끼들로 구성되는데, 이 도끼들은 보다 체계적으로 디자인된 것으로, 특히 큰 동물을 도살하는 데 적합하다.

아프리카 바깥에서 호미닌이 발견된 것, 그리고 체계적인 사냥과 불의 사용에 대한 증거와 더불어, 어슐리언 기술은 인류의 역사에서 이 시점에 우리의 조상들이 누적적인 문화적 지식의 혜택을 보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30만 년 전, 호미닌들은 부싯돌로 만든 얇은 돌조각들과 나무 창을 결합하기 시작했고, 화로가 있는 집을 지었으며, 큰 동물을 사냥하기 위한 불로 단련한 창을 만들었다. 20만 년 전에는, 네안데르탈인과 초기 호모 사피엔스가 하나의 돌덩이에서 완전한 석기 한 세트를 만들었다.

6만 5,000년 전에서 9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프리카 유적지에는 추상적인 미술, 돌날 도구, 뼈로 만든 미늘이 있는 작살, 자루를 달 수 있는 도구나 옷을 바느질하기 위한 송곳과 같은 복합적인 도구 등이 발견된다. 3만 5,000년 전에서 4만 5,000년 전 사이, 또는 그보다 앞선 시기에는, 돌날, 끌, 긁개, 찌르개, 돌칼, 뚜르개, 던지는 막대기, 바늘 등의 새로운 도구가 엄청나게 많이 등장했다.

이 시기에는 동물의 뿔, 상아, 뼈로 만든 도구, 원재료의 장거리 수송, 정교한 오두막의 건축, 예술과 장식품의 제작, 의례화된 매장도 등장했다. 농업의 출현과 함께 기술은 더 복잡해지고, 바퀴, 쟁기, 관개시설, 가축화된 동물, 도시국가를 비롯한 수없이 많은 혁신이 빠르게 이어졌다. 변화의 속도는 산업혁명과 함께 다시 가속화되었다. 인간의 문화는 그 복잡성과 다양성이 끝없이 증가했고, 오늘날의 혁신적인 사회가 보여주는 믿기 어려운 기술적 복잡성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다.

침팬지나 오랑우탄, 뉴칼레도니아까마귀가 도구를 사용하는 초보적인 습관에서 약간의 진보를 이루었든 말든, 인간의 기념비적인 발전과 서로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크다. 일부 제한된 측면에서 동물의 전통이 인간의 문화나 인지와 닮았다고 하더라도, 오직 인간만이 백신을 개발하고, 소설을 쓰며, 〈백조의 호수〉에 따라 춤추며, 〈월광 소나타〉를 작곡한다. 이에 비해, 문화적으로 가장 발달한 비인간 동물조차 여전히 열대우림에서 견과류를 깨 먹고 개미와 꿀을 사냥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문화’를 인간과 나머지 자연계 사이에 놓인 장벽으로 규정하고 싶겠지만, 분명 인간의 문화 능력도 진화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과학과 인문학의 중대한 과제가 놓여 있다. 그 과제는 동물 행동과 동물 인지의 오래된 뿌리로부터 어떻게 인간의 특별하고도 고유한 문화적 능력이 진화했는지 밝혀내는 것이다. 문화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이해하는 것은 놀랍도록 어려운 수수께끼이며, 커다란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과정에서 다른 수많은 진화적 수수께끼도 함께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는 동물들이 왜 서로를 모방하는지 이해해야 하며, 그들의 사회적 정보의 이용에 관한 규칙을 밝혀내야 한다. 그다음에는 누적적 문화를 선호하는 결정적인 조건과 누적 문화의 표현을 위한 인지적 조건을 알아내야 하고, 혁신하고, 가르치며, 협력하고, 순응하는 능력의 진화를 불러오는 환경이 무엇인지도 밝혀내야 한다. 또 하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언어를 어떻게 그리고 왜 발명했는지, 그로 인해 복잡한 형태의 협력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모든 과정들과 능력들이 어떻게 서로 되먹임 과정을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형성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연구자들은 비로소 우리를 번영하게 만든 인지적 기술들의 모음을 어떻게 인간만이 지니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 연구 팀도 오랫동안 이 문제들을 풀려고 씨름했으며, 우리와 같은 분야에 있는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는 이제 막 그 해답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다윈이 인간의 진화에 대한 장문의 글을 남긴 것도 150년 전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동안 상당한 진보가 이루어졌다. 사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인간과 인간의 역사의 기원에 대해 빛이 던져질 것”이라고 언급한 것 말고는,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인간의 진화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다윈이 이러한 불가사의한 주장을 상세히 설명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한참 뒤였지만, 결국 그 주제에 대해 2개의 대작을 남겼다.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1871)과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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