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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

유창선 지음 | 새빛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

유창선 지음

새빛 / 2024년 4월 / 284쪽 / 19,000원





제1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오펜하이머의 방황, 실패로 끝난 ‘악마와의 거래’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1945년 7월 16일 미국 앨라모고도 사막의 기지에서 행해진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했다. 폭발과 함께 거대한 버섯구름이 하늘로 솟아오르자 ‘트리니티(Trinity)’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기뻐하며 환호했다. 실험을 이끌었던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또한 성공에 들뜬 얼굴로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 속의 오펜하이머는 이내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구절을 떠올린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그 순간, 킬리언 머피는 기쁨과 불안, 환희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오펜하이머의 복잡한 내면을 생생하게 연기한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선택을 했던 천재 과학자를 엄습한 의식의 분열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놀라운 절제력:
그러나 영화는 핵폭발 실험이 성공해도 흥분하지 않는다. 영화의 하일라이트격인 폭발 장면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냉정한 절제력을 보인다. 놀란은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고 재래식 폭약을 폭발시켜 트리니티 실험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막상 핵이 폭발하는 장면은 열광적이지 않고 건조하며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엄청난 폭발의 굉음은 몇 초의 시차를 두고서야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세상을 뒤흔들듯 요동쳐야 할 순간에 나타난 무음의 시간은 관객들로 하여금 아직 터져 나오지 않은 앞날에 대한 불안을 예고한다. 핵무기의 등장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인가도 시간이 지나서야 실체를 드러냈던 것과 같다.

놀란 감독은 핵폭발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표현하는 데 몰입하면서도 정작 심리적 거리를 두는 제3자적 태도를 유지한다. 그는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핵폭발 실험 성공의 의미를 객관화한다. 트리니티 실험 성공 연설을 듣던 청중들의 환호와 발 구르는 소리는 오펜하이머의 고통으로 반전된다. 박수갈채는 폭발음이 되어 들리고 원폭의 섬광은 청중들의 살갗을 찢어내며, 거리에서는 방사능을 맞아 주저앉고 구토하는 사람들의 환청과 환각에 오펜하이머는 고통스러워한다.

‘악마와의 거래’에서 실패한 과학자의 이야기:
성공과 함께 고통이 시작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과연 성공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영화 ‘오펜하이머’는 ‘악마와의 거래’에서 결국은 실패한 과학자의 얘기이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의 말처럼, 오펜하이머가 학살 무기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파우스트의 거래 같은 것’이었다. 파우스트와 마찬가지로 오펜하이머 역시 거래의 조건을 재협상하려고 시도했지만, 그런 행동 때문에 박해받고 배제되는 처지가 되고 만다. 오펜하이머가 맺었던 계약에는 애당초 ‘군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워싱턴의 권력자들에게 “각하, 제 손에 피가 묻은 것 같습니다”라며 겁에 질려 징징대는 오펜하이머는 트루먼이 표현한 대로 “울보 과학자일 뿐이었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오펜하이머는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이전에 이미 권력자들에게 속았다. 그는 일본에서의 전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워싱턴의 군사정보 부대가, 일본 정부는 전쟁이 패배로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고 항복 준비를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도청하고 해독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트루먼도 이미 일본이 항복하기 일보 직전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트루먼은 소련이 개입하기 전에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원자폭탄이라는 신무기를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저자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은 만약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의 사용이 필수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면 어떻게 반응했을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미 패배한 일본에게 그대로 원폭을 투하한 상황은 전쟁이 끝난 후 오펜하이머로 하여금 자신이 속았다고 믿게 만들었다. 어쩌면 오펜하이머가 군축을 위한 여론 활동을 그토록 강력하게 했던 것도 자신이 속아 넘어간 것에 대한 반작용이었을지 모른다.

매카시즘의 희생자가 된 오펜하이머:
핵무기의 존재가 전 세계에 위협이 될 것이며, 핵무기에 대한 의존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믿은 오펜하이머는 전쟁이 끝나자 군축 요구에 적극 나선다. 정반대로 미국의 핵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믿은 세력에게 오펜하이머는 눈엣가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펜하이머는 미국 원자력에너지위원회 보안 청문회에 회부돼 원자력 비밀 취급 인가를 취소당한다. ‘원자 폭탄의 아버지’가 ‘군축의 아버지’가 되려던 행보는 제동이 걸리고 오펜하이머는 매카시즘의 희생자가 되어 정부자문위원회로부터 축출당한다.

오펜하이머를 내모는 청문회 장면은 영화 후반부의 압권이다. 컬러와 흑백 화면을 번갈아 오가는 기법은 청문회 장면의 긴박감을 갈수록 고조시켜 나간다. 놀란 감독은 컬러 장면에서는 오펜하이머가 바라보는 시선을, 흑백에서는 오펜하이머의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담았다. 두 가지 화면에서 오펜하이머의 입장에 갇히지 않고 객관적 시선을 보여주려는 놀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가 중심적 사건임에도 그 장면을 한 컷도 담지 않은 놀란 감독의 참을성도 대단하다. 원폭 실험이 성공했으니 그다음에 예상되는 영화의 장면은 원자폭탄을 실은 비행기의 출격, 혹은 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의 참상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영화에는 일본이나 일본인의 모습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놀란 감독의 이런 연출은 ‘오펜하이머’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전쟁영화가 아님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놀란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핵무기 시대를 열었으면서도 결국 실패해야 했던 오펜하이머가 겪은 내면의 복잡한 갈등이었다. 감독은 자신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관객들을 자신이 원하는 지점에 몰입시킨 뒤 이끌고 가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예측가능하고 상투적인 장면들을 제외함으로써 놀란은 자신이 생각하던 메시지의 전달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30대 후반의 루드비히 고란손이 만든 음악이다. ‘오펜하이머’로 제91회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고란손은 놀란 감독이 자신에게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곡을 써달라고 요청했음을 인터뷰에서 밝혔다. 바이올린은 표현력이 풍부한 악기라 아름다움에서 공포로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놀란의 생각이었다.

놀란의 예상은 정확했고, 고란손은 놀란이 원하던 것을 120% 담아냈다. 고란손은 현악기 소리 위에다가 신디사이저 소리를 입히고 다듬어 나갔다. 현악기의 선율은 아름다웠다가 혼란스러웠다가 긴장감을 고조시켰다가 하면서 인물들의 내면적 분열을 표현한다. 그래서 오펜하이머의 배경 음악은 인물들이 겪는 감정적 딜레마를 관객들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고란손의 음악은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지성과 감정을 잘 표현해냈다”고 놀란은 만족했다. 놀란은 비주얼로 인물들의 깊은 내면을 표현해냈고, 고란손은 음악으로 이를 표현해낸 것이다.

오펜하이머에게 최선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180분의 상영 시간이 너무 길다는 반응들도 있다.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은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면서 오펜하이머의 내면적 갈등을 표현하는 대서사에는 사실 그 시간도 부족해 보인다. 사실 놀란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마치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과도 같은 대서사를 180분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원작을 읽으면 막상 영화 가운데 들어낼 부분이 없음에 공감하게 된다.

영화는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쓴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두 저자는 25년 동안의 답사와 인터뷰, FBI 문서 열람 등을 거쳐 이 책을 썼다. 최근 국내에 나온 ‘특별판’도 1,056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이지만 영화 이상으로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허구가 아닌 자료에 기초해서 쓴 책이니 당시의 상황들, 특히 오펜하이머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영화를 보고서 뭔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영화 마지막에 오펜하이머는 아인슈타인과 얘기를 나눈다. “알버트, 파멸의 연쇄 반응이 이미 시작된 것 같아요.” 자신이 낸 길이 결국 ‘파멸의 연쇄 반응’이었다면 오펜하이머에게 최선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그가 핵폭탄 개발에 참여하지 않고 히틀러가 먼저 핵무기를 갖게 되었다면 인류에게는 어떤 재앙이 닥쳤을지 상상할 수 없다.

오펜하이머가 먼저 핵무기를 만든 일은 최악의 상황을 막은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최악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다른 재앙들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어차피 누군가는 핵무기를 만들 것이 시간문제였으니, 오펜하이머에게는 손에 피를 묻히는 것 이외의 다른 선택이 없었던 것일까. 영화는 여전히 여러 질문들을 남겨놓고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하느니라.” 오펜하이머의 방황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파우스트의 방황은 천상의 구원을 받았지만, 오펜하이머의 방황은 버림받은 채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더욱이 우리는 핵전쟁 위협에 처한 당사자이기에 그의 방황과 실패의 서사가 남의 일만은 아니게 되었다.



2부 우리를 위로해주는 영웅들



임영웅은 조용필을 넘어설 수 있을까 - 임영웅 콘서트 〈IM HERO TOUR 2023〉


“한국 가요사상 최고의 남자 가수 베스트 3을 꼽는다면 남인수·조용필·임영웅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마 통계적으로도 분명 그렇게 나올 것 같아요.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건 임영웅입니다.” (조성진 외 『우리가 몰랐던 임영웅 이야기』)

“현시점에서 이 장르 저 장르 넘나들며 모두 소화하는 유일한 가수는 임영웅이 아닌가 합니다. 조용필 선배님 이후로, 따라서 진정한 크로스오버를 해보고 있는 ‘혁명가’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권태은 음악감독, 앞의 책)

노래의 전달력이 뛰어난 가수:
대중음악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임영웅에 대한 찬사가 사실인지 궁금했다. 평소 트로트를 듣는 일이 없기에 임영웅의 노래도 TV 채널을 돌리다가 잠깐씩 스쳐 지나갈 뿐,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을 직접 관람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영웅의 콘서트장에 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임영웅 콘서트 IM HERO TOUR 2023>은 올해 초까지 계속되지만 일찌감치 전일 전석 매진이다. 놀라운 티켓 파워다. 직접 관람할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대구 엑스코 공연을 앞두고 천신만고 끝에 ‘취켓팅’(취소표 티켓팅)에 성공하여 지난해 11월 24일 기차를 타고 대구에 가서 마침내 임영웅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대단하고 좋은 가수였다. 다른 출연자 없이 혼자서 노래하고 댄스하고 사회까지 보면서 150분간의 공연을 알차게 이어간다. 가수에게는 최대의 찬사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노래를 정말 잘 부른다. 특별히 힘들이지 않고 인상도 쓰지 않으면서 옆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노래를 부른다. 다른 트로트 가수들처럼 과장된 바이브레이션이나 꺾기 창법 같은 기교 없이 자연스럽게 노래한다. 고음역대에 가서도 남들처럼 힘들이는 표정이 아니다. 목소리 자체도 좋은 데다가 발성도 제대로다. 그래서 듣기가 편하다. 노래의 전달력이 뛰어나니 가수로서 그만한 강점이 어디 있을까.

임영웅은 트로트를 넘어선 전방위적 뮤지션:
이날 임영웅이 부른 트로트 곡은 전체 가운데 일부였다. 임영웅은 트로트뿐만 아니라 발라드, 모던 록, 시티 팝 같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 ‘두 오어 다이(Do or Die)’를 부르며 EDM에 도전하고 ‘런던 보이’, ‘폴라로이드’ 같은 모던 록 계열의 노래들을 ‘칼군무’와 함께 부르는 임영웅을 보면 그가 ‘트로트 가수’였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실제로 임영웅은 ‘아이돌 차트’ 평점 랭킹에서 139주 연속 1위에 오르고 있어서 다른 아이돌 그룹들을 제치고 있다. 그런데 임영웅은 어떤 장르의 노래를 불러도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린다.

그러니 ‘트로트 가수’가 아닌 ‘임영웅’을 청중들은 거부감없이 다 수용한다. 군무와 함께 ‘런던 보이’를 부르는 임영웅을 향해 응원봉을 흔들며 환호하는 60~70대 여성들의 모습에서 두 세대의 문화가 합해지는 광경을 발견한다. 이미 팬들에게는 트로트냐 발라드냐 모던 록이냐가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임영웅’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임영웅은 대중가수로서 많은 것들을 갖추고 있다. 노래 잘하지, 잘생겼지,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친근한 말솜씨에 굳이 호불호가 나뉠 이유도 없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가수다. 특히 어려웠던 환경을 딛고 성공했다는 휴먼의 서사도 선한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대중의 정서에 부합된다. 임영웅은 곤궁했던 시절을 거쳐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는 ‘흙수저’ 서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 달 수입이 30만 원이던 무명 시절 군고구마 장사도 하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던 사연, 그런 시간을 거쳐 ‘미스터트롯’에서 자기 실력으로 1등을 차지한 스토리는 그를 향한 응원의 마음이 들게 한다.

임영웅, 한국 트로트의 역사를 새로 쓰다:
임영웅은 지금 한국 트로트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트로트 하면 반짝반짝하는 보라색 의상을 입고 ‘쌈마이’를 떠올리던 세간의 인식을 허물고 고급스럽게 현대화된 트로트의 시대를 열고 있다. OST곡으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사랑은 늘 도망가’, ‘우리들의 블루스’ 같은 노래들은 참 애틋하고 아리면서도 울림이 큰 깊이를 느끼게 한다. 청승맞게 감정을 드러내던 예전의 트로트와는 전혀 다른 감성적 발라드들이다.사랑이란 게 참 쓰린 거더라/ 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더라/ 이별이란 게 참 쉬운 거더라/ 내 잊지 못할 사람아/ 사랑아 왜 도망가/ 수줍은 아이처럼/ 행여 놓아버릴까 봐/

꼭 움켜쥐지만/ 그리움이 쫓아 사랑은 늘 도망가 (’사랑은 늘 도망가’)



하지만 우리 부모들에게는 그런 애틋한 사랑과 아린 이별의 추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힘들게 살아온 인내의 시간이 있었다. 그런 부모들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임영웅은 노래한다.아프다 말도 못하는 사람 이제는 내가 지켜줄게/ 어린아이로 돌아가 버린 사랑하는 내 아버지/사랑해요 내 아버지 (’아버지’)



이제 하얀 머리와 주름만 남은 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노래는 부모 세대의 가슴을 울린다. 그리고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슴에 묻어두었던 얘기를 임영웅이 먼저 꺼낸다.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30대 초반의 가수에게서 이문세나 김광석 같은 선배 가수들이 불렀던 것보다 더 깊은 울림이 전해지는 것은 희한한 일이다. 자신들의 마음을 이렇게 헤아려주니 부모들에게 이런 효자가 어디 있겠는가. 특히 장년 세대들이 임영웅의 노래를 들으면서 가슴이 찡해지는 것은 고단했던 삶에 대한 위로와 힘을 주기 때문이다. “거친 세상이지만 나를 믿고 가오”(‘HERO’), “언제든 내 곁에 쉬어가요”(‘모래 알갱이’)라는 그의 노래는 결코 쉽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

고달픈 삶에 위로와 행복감을 주는 가수:
공연 도중에 임영웅은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을 한 바퀴 돌면서 노래를 부르며 청중들에게 인사를 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임영웅에게 열광하며 그의 손을 잡아보고 싶어 했다. 그날 임영웅은 ‘어머니들의 대통령’이었다. 공연장을 찾았던 어머니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노라면 자식들도 해주지 못했던 위로와 행복감을 임영웅이 주고 있다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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