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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그 자체

울프 다니엘손 지음 | 동아시아


세계 그 자체

울프 다니엘손 지음

동아시아 / 2023년 8월 / 260쪽 / 16,800원





모든 것은 물리학이다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겠다. 살아 있는 존재는 기계가 아니고, 우리 머리 밖에는 수학이 존재하지 않고, 실재하는 세계는 시뮬레이션이 아니고, 컴퓨터는 생각하지 못하고, 의식은 환각이 아니고, 의지는 자유롭지 않다. 참고로 나는 이론물리학자이며 수학을 활용해 우주의 토대를 탐구하는 일로 먹고산다.

그런데 역사에서 알 수 있듯 수학은 성공을 거둔 방법이며 우리가 우주에서 발견한 모든 것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물리학은 우리 주위의 세계가 보편적 법칙을 따르는 미립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주의 역사가 태초까지 140억 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우리가 성공에 도취해 쉽게 잊어버리긴 하지만, 수학적 모형과 실제 물리적 세계는 같지 않다.

수학은 우주를 다스리지 않는다. 수학은 우리가 우주에서 발견한 것을 기술하는 수단일 뿐이다. 자연법칙도 마찬가지다. 항성들 사이에서나 원자의 가장 안쪽에서 작용하는 자연법칙 같은 것은 없다. 자연법칙은 우주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을 우리 나름대로 요약하는 방법에 불과하다. 생물학적 유기체로서 우리는 자신이 경험하는 것을 최대한 이해하고자 애쓰지만 자연은 자연일 뿐이다.

모형을 실재와 동일시하는 이런 오해의 바탕에는 인간 의식이 세계 자체보다 우월하다는 이원론적 존재론이 깔려 있는데, 여기에는 역사적 뿌리가 있다. 우리는 필멸하는 물질을 다스리는 영원하고도 초월적인 영역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고는 한다. 과학이 우주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냈음에도, 사실상 종교적 세계관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개념과 비유는 계속해서 우리의 사고를 오염시키고, 물리학은 물질을 지배하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를 상정한 채 아름다운 수학적 법칙을 발견하는 과학을 표방한다. 또 단순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법론은 많은 경우에 성공을 거두었지만 여기에는 위험도 따른다. 우주가 근본적 의미에서 아름답거나 단순하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이 모든 오해는 초월적 영혼에 대한 믿음과 은밀하고도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자아의 뿌리는 몸일 수밖에 없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수학, 언어, 더 중요하게는 의미가 물리적 몸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아 자체는 환각이 아니다. 자아는 몸에 깃들어 있으며 물질의 속성이므로 반드시 물리학으로 기술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당신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책에서는 모든 것이 물리학이며 물질 바깥에는 어떤 실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물질 세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려면 갈 길이 멀었다. 우리가 정답에 가까이 접근했다고 믿을 근거는 전혀 없다.

생물학적 조건에 따른 한계로 보건대, 세계에는 우리의 이해 범위를 크게 넘어서는, 질문조차 떠올릴 수 없는 핵심적 진리가 있는 듯하다. 그 진리는 우리가 가닿을 수 없는 특이한 현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포함하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바로 이 세계의 모습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 주관적 경험이 존재할 수 있는지, 생명이 있는 물질과 생명이 없는 물질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할 것이다. 뉴턴이 역학을 고안했을 때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등장했을 때만큼이나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 전환은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 삶을 영위하고 우리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세계의 참모습


우리는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오락과 소셜미디어에서 허구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 그리고 안녕과 생존의 물리적 기초와 맺는 관계가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우리는 세계가 문화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세계의 규칙을 우리 스스로 정한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대중문화에서는 우주 전체가 컴퓨터에서 실행할 수 있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라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리고 또 현실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기술적 수단을 써서 의식을 몸으로부터 해방시켜 전자 장치에 업로드할 수 있다고 상상하기까지 한다. 아무튼 과학이 우리 자신에 대해 밝혀낸 진실은 때로는 매우 가혹하고 그와 동시에 경이롭지만, 물리학에서 제시하는 그림은 사뭇 다르다. 우리는 유기체의 필멸하는 몸뚱이에 갇힌 생물학적 존재이지만, 무엇보다 신비하고 장엄한 우주의 일부이기도 하다.

과학을 대변한다고 자처하면서도 세계가 정말로 실재하는지 의심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수학과 컴퓨터과학에 어찌나 매혹되었는지,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서 어떤 차이도 보지 못한다. 심지어 세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순수수학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물리학이 우주에 대해 하는 말에 매혹되고 수학의 위력과 아름다움에 압도당한다. 이런 탓에 선한 기술이나 악한 기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놓고 종교에 가까운 미신이 횡행하기도 한다.

또한 많은 이들은 우리로 하여금 이 모든 발견을 가능하게 한 컴퓨터야말로 우주 자체에 대한 최상의 비유라고 결론 내린다. 그런데 이것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19세기의 첨단 기술은 증기기관이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우주를 경이로운 기계장치에 비유했다. 그들보다 더 잘 안다고 자부하는 우리는 우주를 컴퓨터에 비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한술 더 뜨기도 한다. 우주가 순전히 정보에 지나지 않으며, 당신과 당신을 이루는 모든 것을 일련의 0과 1로 변환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잘하면 이 방법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틀림없이 굉장할 것이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이 믿음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생명과 의식을 비롯한 우리의 물질적 우주)은 동일한 세계의 다른 측면들이다. 과학의 임무는 이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속속들이 알아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과학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같은 여러 학문의 도움을 받으며, 그 결과는 의학과 신경과학에 전수되고, 인문학, 사회과학, 철학에 접목된다. 그런데 이 모든 학문에는 나름의 언어와 진리 판단 기준이 있으며, 우리는 이 다양한 지식 분야들이 어느 정도 서로 독립적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모든 것의 토대, 어쩌면 꼭대기에 물리학이 있고, 나머지 모든 것을 물리학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생물학자가 동식물의 세포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이해하려면 화학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고 화학자는 물리학의 원자 이론을 신뢰한다. 그런데 기초 물리학의 발견은 겹겹의 체에 걸러지므로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사실상 아무 관련이 없다. 복잡하고 아름다운 우주가 입자물리학의 기본 법칙이 낳은 결과일 수는 있겠지만, 이 지식은 화학자에게 그다지 쓸모가 없으며 북유럽 신화 전문가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양자중력 분야의 추론은 철새 전문가가 눈여겨볼 사안이 아니며, 비슷한 맥락에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생명체에 대한 지식이 빅뱅의 수학적 연구와 무관하다고 확신한다.

우리의 우주는, 특히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과학자가 최대한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도록 편의적으로 짜여 있다. 그래서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같은 물리학 이외의 과학이 끼어들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동떨어진 분야들의 접점에서 낡은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들여다보다 때때로 선구적인 과학적 진보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물리학을 정점에 놓는 유구하고도 총체적인 서열은 좀처럼 도전받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세계에 대한 나의 시각이 언뜻 보기에 훨씬 극단적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물리학은 그저 모든 것의 토대가 아니라 모든 것이다. 나는 물리학을 세계 자체의 모든 측면에 대한 연구로 정의한다. 우리는 유기체로서 이 세계의 일부를 이루며, 진화를 거치는 동안 서서히 자신을 영원한 잠에서 깨어난 물질로 인식하게 되었다. 물리학은 자유롭고도 독립된 관찰자가 세상 바깥을 떠다니며 멀찍이서 관찰하는 학문이 아니다. 우리의 유기체적 몸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과학적 모형을 비롯한 우리의 모든 생각은 우리가 그토록 절실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바로 이 세계의 일부다. 내가 상상하는 물리학은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모든 것을 다룬다. 물리학은 말 그대로 생사가 걸린 문제다.

의식은 물리적 현상이다


우리가 아는 물리적 현상들 가운데 단연코 가장 경이로운 것은 생명과 의식이다. 모든 것이 물리학이라면, 빅뱅의 뜨겁고 빽빽한 플라스마에서부터 인간의 의식에 이르는 연속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한다. 물리학은 이 모든 과정을 기술할 수 있어야 한다. 내적 자아는 사물이나 물질의 여느 측면처럼 실재하며, 우리의 세계상 속에 모순 없이 엮여 들어야 한다.

나는 의식을 환각으로 치부하며 살아 있는 유기체를 기계로 묘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의식이 영원히 설명 가능하지 않고 정의상 물리학의 영역 바깥에 놓여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도 동의하지 않는다. 의식이 까다로운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 말마따나 “난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불멸의 영혼이라는 형태로든 그것의 현대적 대체물인 정보의 형태로든, 자아가 물질적 토대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둘 다 희망 사항일 뿐이며 동화 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로 물리학이 모든 것일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이런 세계관이 어떤 의미와 가치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계에는 아직 포착되지 않은 어떤 부분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심지어 이론적으로도 그렇다. 저 너머의 무언가에 대한 갈망이 어떤 이들에게는 종교로 충족되는 반면, 어떤 이들은 정보의 형태로 의식을 컴퓨터에 전송하고 업로드함으로써 영생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 꿈꾼다.

어떤 이들은 세계 자체를 순수수학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근본적으로 생명과 의식이 포함된다. 끊임없이 현존하는 불가분의 주관적 1인칭 시점도 그중 하나다. 우리는 세계 바깥에 설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몸으로서 세계 한가운데에 선 채 유일하게 존재하는 시점인 내부로부터 세계를 바라본다. (내가 정의하고자 하는 방식에서의) 물리학은 우주의 신비를 짓밟지 않으며, 제한된 지성으로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경이로운 실재를 보여준다.

철학자 마르틴 헤글룬드는 획기적 저작 『내 인생의 인문학』에서, 기독교 교부 아우구스티누스가 썩을 운명인 지상에 대한 사랑과 영원한 천국에 대한 매혹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헤글룬드의 주장에 따르면, 근본적 문제는 영원의 관점에서 볼 때 찰나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의미가 생기려면 무언가가 결부되어야만 한다. 시간이 사라지고 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당신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천국은 우리가 사랑하는 지상의 것들에 영생을 선사하긴커녕 그것들의 의미를 부정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과학도 비슷한 갈등을 맞닥뜨리고 있다. 천국에 대한 믿음은 세계를 컴퓨터 프로그램 속 수학적 정보에 온전히 담으려는 꿈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식으로 모형과 실재를 뒤섞는 것은 세상 밖에 서서 자신을 불확실한 것과 썩어버릴 것으로부터 들어 올리려는 시도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생물학적 존재이며, 우리를 정의하는 특징은 의미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란 썩을 운명을 전제한다. 오늘날의 세계는 우리에게 세계가 환각이라고 속삭이지만, 분명 세계는 실재한다. 환각에 지나지 않는 것과 피와 살로 이루어진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의 주제는 세계 자체다.



컴퓨터는 의식이 없다



그 안에 사람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컴퓨터에게 의식이 있는지 판단하고 싶다면 의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나름의 견해가 있어야 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의식은 내면의 주관적 관점, 즉 ‘자아’다. 자신의 자아를 바라보는 것은 확실히 독점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철학적 추론에 뛰어들지는 말고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이 문제와 씨름해 보자.

모든 것이 물리학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의식은 (그것이 무엇이든) 물리학 이론에 들어맞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의식이 그 밖의 물리적 현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의식이 어떻게 물질로 표현되는지 기술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가설이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미래에는) 측정으로 검증할 수 있는 새로운 예측을 내놓아야 한다.

일단 의식과 닮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전혀 모른다고 가정해 보자. 용감한 실험물리학자로서 우리는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채로 새롭고 흥미로운 현상을 찾아 나서고, 과학적 도구로 관찰할 수 없는 것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우리의 임무는 오직 관찰하고, 계산하고, 보이는 것에 대해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과학에 전념한다. 우리가 암석이나 계산기를 연구하든, 체스를 두는 정교한 컴퓨터를 연구하든, 또는 어떤 대상과 흥미로운 대화를 시도하든, 우리는 물질적 요소들을 기술할 때마다 동일한 기본 모형들을 사용한다. 우리의 모형들은 낱낱의 부분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 하고 우리가 관찰하는 현상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암석을 연구하면서 광물학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화학의 탈을 쓴 물리학은 굳기와 색깔이 어떻게 원자의 배열에서 도출될 수 있는지 알려준다. 여기서 양자역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우리가 세계에서 발견하는 모든 형태의 물질에 대해 그 속성을 설명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는 법을 알아내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의 기본 법칙이 이미 확립되었다고 확신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문학자들은 정교한 컴퓨터 연산을 이용해 항성을 모형화할 수 있는데, 그들은 항성 안의 뜨겁고 요동치는 플라스마에서 일어나는 핵물리학적 현상들을 시뮬레이션한다. 항성이 빛을 내는 핵물리학 원리는 지구 내부를 녹이는 원리와 동일하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복잡하며 이따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한계에 다다르기도 한다.

계산기를 설계하는 재간둥이 공학자들은 자신의 발명품을 속속들이 이해한다. 구성 요소들을 제작하고 지정된 대로 조립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데는 재료물리학이 동원된다. 전류는 회로를 따라 흐르면서 우리가 실행하고자 하는 수학적 계산을 실행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알파제로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소프트웨어에 써놓은 규칙을 따른다. 그 덕분에 진화적 적응이 가능해지는데, 이를 통해 시스템은 자신의 체스 능력을 점진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그 결과는 경이로울 수도 있고 알파제로가 찾아내는 전략들이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여전히 이론상의 차이가 아니라 복잡도의 차이일 뿐이다. 모든 것은 물리학의 기본 법칙에서 도출된다. 암석이 무엇을 하는지, 컴퓨터가 체스에서 어떻게 사람을 이기는지에 대해서는 신비로울 것이 전혀 없다. 의식의 존재에 대해 우리가 이끌어 낼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일까? 암석이나 체스 두는 컴퓨터를 기술하는 데 의식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관찰하는 것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데모크리토스와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존재하는 모든 것이 원자와 진공이라는 것을 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어쩌면 우리의 논증은 생물학적 뇌에까지 적용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뇌도 물리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합리적 결론은 개의 내적 삶이 체스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컴퓨터보다 월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살아 있는 모든 유기체에 적용되며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이 추론이 옳다면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는 내면의 빛이 결여된 영혼 없는 기계에 불과하다. 이 결론은 본질적으로 끔찍하지만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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