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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지배 사회

최정균 지음 | 동아시아


유전자 지배 사회

최정균 지음

동아시아 / 2024년 4월 / 276쪽 / 17,500원





가정 - 사랑이라는 자기 기만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사랑은 고귀하지도 신성하지도 않다. 남녀 간의 사랑도, 부모의 자식 사랑도 포괄 적합도 최대화의 원리에 따라 유전자를 효과적으로 번식시키기 위한 진화적 전략일 뿐이다. 그리고 동물의 세계에서 관찰되는 자발적 유산이나, 인간 사회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부모의 자식 살해는 투자 가치가 높은 자식만을 남기고자 하는 부모들의 가차 없는 선택의 결과다. 원시적인 수렵채집 사회나 농경 사회에서는 남아에 비해 쓸모가 덜한 여아가 주로 살해의 희생양이었고, 현대사회에서는 경제적 형편에 따라 아들이나 딸에 대한 선호가 무의식적으로 혹은 생리학적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우리가 ‘섹스’라고 부르는 유성생식은 자손의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진화된 짝짓기 전략으로, 호르몬의 불장난과 유전학적 차이의 매력에 이끌려 맺어지는 이 관계의 대부분은 불행한 결혼 생활로 종결된다. 이렇게 가족 혹은 혈연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진화적 계산이나 기만 등은 모두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유전자의 명령에 따르는 과정에서 벌어진다. 현대사회, 특히 한국과 같은 경쟁 사회에서 갖가지 불행을 초래하는 과잉된 교육열이나 능력주의 문화 역시 결국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유전자의 번식 욕구에 기인한다. ‘결혼이라는 기만적 거래’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결혼이라는 기만적 거래


유전자는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나 페로몬과 같은 화학물질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짝짓기를 하도록 충동할 뿐 아니라, 심지어 유전적 조성에 따라 상대를 선별적으로 선택하게끔 유도한다. 다시 말해, 진화적 관점에서 결혼이란 자기 유전자의 50퍼센트를 후손에게 남기고 최대한 잘 살아남게 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상대와 맺는, 욕망에 이끌린 거래라 할 수 있다.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인간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공식적인 번식 동맹을 맺었으며, 결혼이라 불리는 이 이익 공동체에서 부부는 유성생식에 가담하고 육아를 함께함으로써 이를 실현한다.”라고 했다. 재혼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하는데, 데려온 자식이 있는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결혼 생활이 성공적이지 못하며, 첫 번째 결혼에서와 달리 자녀 문제가 가장 큰 갈등 요인으로 지목된다. 왜냐하면 재혼한 여성은 새로운 남편이 전남편의 자식에게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기를 원하지만, 이것이 새 남편의 진화적 이해관계와는 완전히 배치되기 때문이다.

재혼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인간과 동물의 짝짓기에서 나타나는 비극은 유전자적 관점에서 한쪽에게 이익이 되는 전략이 다른 한쪽의 이익과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태어난 자식이 생존하는 데 부모 중 어느 한쪽의 기여가 필수적이라면, 아비와 어미 중 누가 먼저 양육의 책임을 저버리고 더 많은 자손을 만들고자 다른 상대를 찾아 나설지를 두고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많은 종의 경우에는 수컷이 아예 떠나버리거나 최소한의 투자로 여러 살림을 꾸린다.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섹스의 진화』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는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수정란에 투자하는 정도가 암컷이 월등히 높다는 점이며, 둘째는 암컷이 임신 및 수유 기간에 다른 수컷과 교미를 하더라도 임신이 되지 않으므로 새로운 짝을 통해 얻게 되는 이득이 없다는 점이고, 셋째는 암컷의 몸속에 있는 새끼가 자신의 것인지 수컷으로서는 암컷과 동등한 수준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도덕적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간 대신 널리 연구된 알락딱새를 예로 들어 어떻게 수컷들이 교활한 방식으로 암컷들을 속여가며 일부다처를 실현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런데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떠안은 만큼 암컷은 ‘권리’라는 무기로 대항할 수 있는데, 자연 세계에서 암컷에게 주어진 권리는 바로 짝짓기 선택권이다. 수컷은 때때로 생존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경쟁적으로 암컷에게 절박한 구애를 하는데, 이때 어느 수컷을 선택할 것인지는 암컷의 몫이다. 번식에 대한 권한을 가진 암컷이 수동적인 경우는 거의 없고, 암컷의 선호도가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사실상 번식 활동은 암컷에 의해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예일대학교 조류학과 교수 리처드 프럼은 그의 책 『아름다움의 진화』에서 수컷 새들의 세계에 넘쳐나는 아름다움이 바로 미적 감각을 활용하는 암컷의 짝짓기 선택권에 의해 진화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물론 늘 아름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42센티미터의 거대한 페니스를 자랑하는 수컷 오리들은 이미 짝이 있는 다른 암컷과 강제 교미를 감행하고 때로는 윤간도 시도한다. 그러나 그런 오리조차도 어떻게든 암컷의 선택권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예를 들어 암컷 오리의 질 구조는 반시계 방향으로 꼬여 있는 수컷 오리의 페니스와 반대로 시계 방향으로 꼬여 있다. 그래서 수컷이 강제로 삽입하더라도 수정이 될 만큼 깊이 진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암컷이 편한 자세를 허용하지 않으면 수컷의 정자는 난자 가까이 도달하기 힘들다. 실제로 다수의 오리 종을 대상으로 실시한 친자 확인 검사 결과, 강제 교미를 통해 탄생한 새끼는 2~5퍼센트에 불과했다. 암컷 오리가 갖는 전체 교미 가운데 40퍼센트가 강제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치 않는 임신을 할 확률은 매우 낮은 것이다.

나아가 암컷은 유전학적으로 더 우수한 수컷의 아기를 낳아 양육에 보다 헌신적인 수컷에게 키우도록 한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에게는 함께 살고 있는 자식들이 자신의 친자식이라는 보장이 없다. 2010년에 이루어진 미국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늘날에도 약 15퍼센트의 아내가 혼외정사를 한다. 모든 사회에서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자식과 산모의 관계였다. 따라서 외할머니는 자신의 유전자가 손주에게도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반면, 외할아버지의 경우에는 자신의 딸에 대한 확신도 없는 상황에서 손주에게 자기 유전자가 있다고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가장 안 좋은 상황에 있는 것은 친할아버지다. 자신의 아들뿐 아니라 그 아들이 데리고 있는 손주들도 어떤 어머니 아래에서 태어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진화적인 본능은 현대인들에게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평균적으로 친조부모에 비해 외조부모가 손주들에게 더 많은 돈을 쓰는데, 특히 외할머니가 가장 많은 돈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모와 외삼촌 등 어머니의 형제가 고모나 삼촌 등 아버지의 형제보다 조카에게 더 많은 돈을 쓴다.

또한 미국인들의 유언장을 분석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아내보다 남편이 먼저 사망하는 경우 남편은 대부분의 재산을 아내에게 물려주는 반면, 남편보다 아내가 먼저 사망하는 경우에는 아내가 남편의 상속인 자격을 박탈하고 직접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생물학적 이유는 분명하다. 둘 중 하나가 사망할 즈음의 나이가 되면 대다수의 여성은 가임 연령을 지나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남편은 자신의 자식을 돌볼 아내를 위해 자금을 남기는 것이 의미가 있다. 반면 남편은 그 나이가 되어도 다른 여성과 새로 가정을 꾸릴 가능성이 높으므로 아내로서는 자신의 재산을 남편과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 새로 생길 수 있는 자식들에게 남겨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참고로 진화심리학의 대가 데이비드 버스는 『욕망의 진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짝짓기에 대해 내가 발견한 사실 가운데 대다수는 윤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예컨대 성적인 목표를 무자비하게 추구하는 과정에서 남녀는 경쟁자를 깎아내리거나, 이성을 기만하거나, 심지어 자기 자신의 배우자를 파멸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발견들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인간의 짝짓기에서 경쟁적이고, 갈등을 유발하고, 속임수에 능한 측면은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들이 이 땅의 모든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기만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다거나 평생 서로의 불륜을 의심하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 아버지를 비롯한 친가의 가족들이 그 자녀, 손주 혹은 조카가 어머니의 외도로 태어난 남의 자식일지 모른다고 항상 의심하고, 그런 이유로 그 아이들에게 일부러 애정을 덜 쏟는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배우자를 믿고 속임수를 행하지 않으며 새끼들의 양육에 최선을 다했던 수컷들이나 암컷들이 다른 유전자들의 번식에 희생당하며 스스로의 유전자를 번식시키는 데 실패했을 뿐이다. 오늘날의 우리 안에는 그러한 진화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기만적인 유전자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행동들이 발휘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발견이 불쾌하다고 그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인간 짝짓기의 불순한 측면으로 인해 생기는 가혹한 결과들을 치유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들과 맞닥뜨리는 수밖에 없다.



사회 - 혐오로 가장된 두려움




사랑이 유전자의 ‘번식’을 위해 ‘혈연’을 향해 ‘조건적으로’ 발휘된다면, 혐오는 유전자의 ‘생존’을 위해 ‘타인들’을 향해 ‘무조건적으로’ 행사되는데, 혐오의 진화적 근원은 유전자의 두려움이다. 병을 옮기거나 유발할 수 있는 대상을 기피하기 위해 진화적으로 발달한 행동면역계의 반응은 인간을 대상으로도 동일하게 발현된다.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인간상은 광범위하다. 이민자를 비롯한 다른 인종의 사람들, 각종 장애나 기형, 심지어 비만과 같은 정상에서 벗어나 보이는 겉모습을 가진 이들, 동성애자를 비롯한 다양한 성소수자들이 현대사회에서 주된 혐오의 대상이다.

특히 동성애는 스스로가 선택한 성적 취향이라는 흔한 오해와 달리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형질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편도체라는 뇌 기관은 교감신경을 통해 혐오라는 두려움의 감정을 주관한다. 그리고 이 정서적 반응은 결국 우리의 인지 기능까지 지배해 고정관념, 편견, 차별 그리고 공격성의 원인이 된다. 각 사람을 개성 있는 고유한 개체가 아닌 인종과 같은 특정한 부류로 무조건적으로 재빠르게 분류하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침팬지와 인간 집단에서의 연구 결과는 공격성이 문명의 산물이 아닌 자연적 본능의 결과임을 말해준다.



경제 - 자본주의 세상의 번식 경쟁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은 독립적인 경제 주체들이 각자의 합리적인 욕구에 따라 자유롭게 활동하는 시장이 자연적으로 균형 상태에 도달하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화적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생물학적 인간들의 경제 행동을 반영하지 않은 잘못된 가정에 기반해 있다. 무한한 번식 욕구와 경쟁심에 따라 움직이는 생물학적 소비자들의 한계효용은 결코 감소하지 않는다. 번식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값비싼 신호를 과시하는 동물적 본능은 과시적 소비의 형태로 현대인들의 경제활동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번식을 위해 필요한 자원 획득 경쟁도 마찬가지다.

생태학에서 정의되는 간섭 경쟁과 착취 경쟁은 인간 경제에서 독점과 착취로 나타난다. 특히 부동산, 주식, 대중 예술과 스포츠, ‘혁신’ 기업들의 시장에서 지대라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가치 착취 행위는, 그저 운 좋게 유리한 위치를 선점함으로써 다른 개체들이 자원을 이용할 기회를 빼앗는 생태계 경쟁의 모습을 되풀이한다. 집단이 아니라 개체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선택이라는 진화 원리는 착취 행동에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나 홀로 사회’를 초래했는데, 주류 경제학에서는 이런 착취 개념을 정의조차 하지 못한다. 그 결과 우리는 불균형으로 붕괴되어 가는 자본주의 세계를 목도하고 있다.

값비싼 신호의 경제학


경제학적 경쟁 심리에도 진화적 요소가 빠질 수 없다. 참고로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절체절명의 화두는 생존과 번식이다. 그런데 생존이란 번식 시점까지 살아 있느냐 살아 있지 못하느냐, 즉 0과 1의 이분 체계인 반면, 번식은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좋은 다다익선 체계이며 주변의 경쟁자들에 비해 수치적으로 더 많이 낳는지가 중요한 비교우위 체계다. 따라서 가장 치열한 전쟁은 바로 번식을 두고 일어난다. 그래서 어찌 보면 생존 투쟁은 결국 번식 경쟁을 위한 전초전일 뿐이다.

그런데 남자들이 번식량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부다처를 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식량의 공급이 불안정하고 저장하는 방법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일부다처보다는 생식능력이 더 좋은 상대를 차지하거나 혼외정사를 통한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그러나 약 1만 년 전부터 신석기 혁명이 시작되고 농경 사회로 접어들면서 해결책은 더욱 단순해졌다. 다시 말하면, 안정적인 식량의 축적과 신분 사회의 시작은 본격적인 일부다처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한편 자신과 부양가족의 한계효용 이상으로 더 많은 사냥을 했던 것이 과시적 소비의 원시적 형태였다면, 농경 사회로 접어든 이후로는 자연적으로 가용한 자원에만 의존하지 않는 경제학적 노동과 생산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거기서 비롯된 잉여가치의 획득을 통해 본격적인 과시적 소비와 신분 향상의 추구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권력자들이 누렸던 온갖 장식물과 사치스러운 생활이 이를 잘 보여준다. 왕이나 귀족들이 입었던 휘황찬란하고 거추장스러운 의복은 입고 벗고 세탁하는 데도 많은 하인이나 신하가 필요했을 텐데, 이는 공작의 꼬리나 사슴의 뿔과 같은 값비싼 신호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과시와 지위 향상 욕망이 성선택에서 비롯된다고 해서 이것이 남자(수컷)들에게서만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값비싼 신호를 만드는 유전자가 Y 염색체에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고, 다만 생리학적인 번식 욕구와 상호작용해 작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자들이 딸에게 물려주는 값비싼 신호 유전자는 남성적 생리학 특성과 맞물리지 않으므로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다른 양상으로 작용할 것이고, 딸이 결혼해서 아들을 낳게 되면 다시 할아버지와 비슷하게 발현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값비싼 신호를 감지하는 유전자들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서 여성적 생리학 특성과 함께 더 강하게 발현되겠지만, 이것이 아들에게 유전되면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다른 양상으로 작용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남녀를 불문하고 값비싼 신호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감지해 내는 유전자의 기능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현대사회의 여러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간섭(interference)과 착취(exploitation)를 통한 자원 경쟁


값비싼 신호가 상대 암컷들이나 경쟁 상대인 수컷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자원이 많거나 자신에게 많은 자원을 획득할 유전적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신호가 거짓이며 암컷이 이 위장 신호에 속아 짝짓기를 한다면, 거기서 태어난 자식들의 생존율은 낮을 것이고 결국 이러한 거짓 신호는 진화 과정에서 도태될 것이다. 따라서 실제 자원 획득 능력을 보여주는 ‘정직한 신호’만이 진화적으로 작동한다. 수컷 공작의 경우, 꼬리에 많은 무늬를 가지고 있고 과시 행위를 많이 하는 수컷들이 면역학적으로도 더 건강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게다가 인위적으로 감염과 비슷한 염증 반응을 유도해 보면 전체적으로 과시 행위가 줄어드는데, 이때 꼬리의 무늬 개수가 많은 수컷들은 이러한 감염 반응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평상시와 비슷한 수준의 과시 행위를 유지한다.

칠면조의 부리 위에 달린 ‘스누드’라는 구조 역시 특별한 기능 없이 번식을 위한 신호로만 사용되는 장식물이다. 암컷 칠면조들이 짝짓기에서 이 스누드의 길이가 긴 수컷을 선호한다는 것이 관찰되었는데, 10여 년 후 수행된 유전자 수준의 연구에서 밝혀진 것은 스누드 길이가 긴 수컷들이 집단 내 다른 수컷들에 비해 면역학적으로 더 유리한 MHC 변이 조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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