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인사이트: 세계의 판도가 바뀐다
이세형 지음 | 들녘
중동 인사이트: 세계의 판도가 바뀐다
이세형 지음
들녘 / 2024년 1월 / 474쪽 / 22,000원
1장 중동과 어색함 풀기
오늘의 중동을 만든 중요한 약속들오늘날의 중동 지도는 제1차 세계대전(1914년 6월~1918년 11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중동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이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와 함께 연합국(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에 패하면서 이 지역에서는 대규모 영토 조정 작업이 진행된다.
이 작업은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분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영국 보수당 국회의원이었던 마크 사이크스와 훗날 프랑스 외교장관이 된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는 1915년 11월부터 1916년 3월까지 비밀 협상을 펼쳤고, 1916년 5월 공식적으로 협정을 맺었다.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다. 협정에 담긴 핵심 내용은 오스만 제국이 지배 중인 중동 지역을 영국과 프랑스가 임의로 나누어 관리한다는 협의였다.
실제로 영국과 프랑스는 협정 내용처럼 지금의 많은 아랍권 나라를 통치하고, 나아가 이 나라들의 국경선까지 합의해 결정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자국의 이익과 편의에 따라 인위적으로 국경선을 결정했기 때문에 적잖은 중동 국가들이 직선에 가까운 반듯한 국경선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신생 국가를 만들고 국경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현지 아랍 사람들의 성향, 문화, 바람 등은 고려되지 않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맺어지기 전 영국은, 지금의 요르단 왕실과 같은 하심 가문의 구성원으로 당시 아라비아반도의 메카를 통치하고 있던 후세인 빈 알리와도 ‘중요한 약속’을 맺었다는 점이다. 1915년 7월부터 1916년 3월까지 후세인 빈 알리는 영국의 고등판무관 헨리 맥마흔과 10여 차례의 서한을 주고받았다. 이는 사실상 비밀 외교 협상이었다.
서한의 핵심 내용은 후세인 빈 알리가 주도해 오스만 제국에 대해 아랍권의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후세인 빈 알리가 중심이 되어 아랍권을 통합한 국가를 세우는 것을 허락한다는 내용이었다. 영국 정부는 일단 후세인 빈 알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랍권은 오스만 제국에 맞서 적극적으로 싸웠고, 영국이 승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영국은 ‘이중 플레이’를 펼쳤고, 결과적으로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집중했다. 영국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 조정 작업 파트너로 프랑스를 선택했고, 아랍권을 배제했다. 후세인 빈 알리와 그의 진영은 크게 실망했고 격노했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와 싸울 수 있는 여력은 없었다.
사이크스-피코 협상과 더불어 1917년 11월 ‘밸푸어 선언’을 통해 ‘이스라엘의 건국’까지 이뤄진다. 영국 외교장관 아서 밸푸어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는 것을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재정에 파격적인 도움을 준 유대인들에 대한 지원이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의 씨앗이 뿌려졌고, 후세인 빈 알리가 구상했던 아랍 국가의 꿈이 또 한 번 좌절되었다.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가 된 근본적이며 핵심적인 원인으로 사이크스-피코 협정과 밸푸어 선언을 지적하는 이유다.
2장 변화하는 중동
롤러코스터 두바이, 성장과 몰락 그리고 재도약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7개 토후국 중 하나로 아랍에미리트의 일부다. 따라서 두바이를 완전히 별도의 나라로 보는 건 잘못된 접근이다. 다만, 아랍에미리트의 경우 외교·안보와 국방은 통합 체제로 운영되지만, 경제는 독립된 구조다. 통상 석유가 주로 생산되는 아부다비의 국왕이 대통령, 금융과 물류 등 경제 중심지인 두바이의 국왕이 부통령 겸 국무총리를 맡는다. 7개 토후국 중 가장 영토가 넓고, 경제적 영향력이 큰 아부다비와 두바이가 아랍에미리트를 이끈다고 생각하면 된다.
두바이의 성장과 몰락: 두바이가 유명했던 이유는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발전 전략을 내세우며 사막 한가운데서 다양한 ‘세계 최고’, ‘세계 최초’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부르즈 할리파는 829m의 높이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초고층 빌딩이다. 야자수를 연상시키는 모양의 인공섬 팜주메이라는 또 어떠한가? 두바이에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관문 역할을 하는 대형 국제공항과 항만, 국제금융센터가 있다. 각종 국제 항공사 평가에서 늘 최상위권에 오르는 에미레이트항공 역시 두바이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두바이의 혁신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9년 11월 25일, 두바이는 다양한 개발사업을 진행해오던 국영기업 ‘두바이월드’의 채무상환 유예(모라토리엄)를 전격 선언했다. 2000년대 들어 ‘세계 최고, 최대’란 표현이 붙는 다양한 건축물, 관광시설 등을 개발하며 ‘사막의 기적’으로 불렸던 두바이가 하루아침에 ‘사막의 신기루’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당시 두바이월드는 세계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두바이 전체 부채(약 800억 달러)의 74%인 590억 달러의 빚을 안고 허덕였다. 두바이 월드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두바이가 추진하던 다른 개발사업들도 줄줄이 중단됐다. 경제난을 겪으면서 두바이는 아부다비의 대규모 경제 지원을 받았다.
이제 ‘두바이 쇼크’가 발생한 지 10년이 넘었다. 많이 회복했지만, 아직도 두바이 경제는 당시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금융, 물류에만 의존하는 취약한 산업구조, 저유가 장기화, 중동 정세 불안, 아부다비와 카타르 도하 등 경쟁 도시들의 급성장 등으로 앞으로도 과거의 영화를 완전히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두바이 경제가 흔들린 주요 이유로는 저유가의 장기화가 꼽힌다. 이로 인해 두바이에 매력을 느껴 적극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하던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등 주변 산유국 부유층들의 지갑이 가벼워지면서 이들의 투자도 크게 줄었다. 부동산과 함께 경제를 떠받치던 물류와 금융 분야의 사정도 좋지 않다. 특히 미국이 대이란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주도한 2017년 6월 ‘카타르 단교 사태’가 터지면서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
카타르 단교는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이집트 등 아랍권 수니파 주요국들이 카타르가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밀착한다며 단교를 선언한 ‘외교 전쟁’이었다. 이는 두바이의 항만 시설을 통해 물자를 조달해온 카타르가 ‘물류의 탈두바이’를 선언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카타르는 단교 후 자국의 항만 시설을 대폭 늘렸다. 2021년 1월 단교 사태는 해결됐지만, 여전히 앙금은 남아 있다.
두바이는 코로나19 사태 발생 전인 2019년에도 좀처럼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2019년 6월에도 전년 동기 대비 주택가격이 15.3% 하락했다. 두바이는 2020년 10월부터 열리는 ‘엑스포 2020’을 재도약의 계기로 삼기 위해 엑스포 역사상 가장 큰 438만 제곱미터 규모의 행사장을 조성해 가며 엑스포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2020년 2월부터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코로나19는 두바이의 노력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행사는 1년 연기되어 2021년 10월에 겨우 개막했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19의 확산 속에 전 세계가 신음하던 상황이었다. 행사장은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과 친환경 기술을 이용한 시설로 크게 주목받았지만 엑스포의 특징이며 효과인 관광객 유치는 당초 계획에 미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덕분에 회복한 두바이 부동산: 하지만 두바이의 경제는 2022년 2월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회복세를 맞이한다. 아랍에미리트가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러시아 상류층들의 투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는 투자를 목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경우에 장기 거주용 비자를 취득하기도 쉽다. 또한 지리적으로 유럽과 가깝지만, 반러 감정은 약하다. 그러다 보니 아랍에미리트는 러시아 부자들이 안정적으로 투자하고,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오래전부터 러시아 부자들 사이에서는 러시아의 추운 겨울을 피해 지중해같이 겨울에 따뜻한 지역에 고급빌라를 구입하는 게 유행이었다. 하지만 유럽의 반러 감정이 커지고, 경제 제재까지 강화되면서 두바이가 대체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두바이는 ‘2022 카타르 월드컵’으로 인한 특수도 누렸다. 카타르 도하와 비행기로 40~50분 거리에 있는 두바이는 월드컵을 위해 카타르를 찾는 관광객들의 ‘숙박과 쇼핑 천국’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카타르보다 관광 인프라가 더 잘 갖춰져 있고, 문화적으로도 더 개방돼 있어 큰 수입을 올렸다. 축구 관람은 카타르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기는 두바이에서 한 관광객들이 많았다.
재도약을 위한 체질 개선: 두바이는 2009년 경제위기 이후 체질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부실 금융회사를 구조조정하고, 외국인 대출 기준을 강화했다. 정부와 공기업 내 자국민 직원 비율을 증가시키는 데도 공을 들였다. 이런 노력이 실질적인 경쟁력 개선으로 이어졌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두바이 국가 재정에는 여전히 우려할 점이 많다. 2022년 국제통화기금(IMF)은 두바이의 공공부채가 1,53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보았다. 두바이 정부는 2022년 5월 공공부채 관리기관을 설립해 더욱 체계적으로 부채 관리에 나설 것임을 선언했다. 사실 두바이 경제구조가 단순하며 석유와 천연가스가 거의 없기 때문에 과감한 체질 개선이 어렵다. 일반 제조업도 사실상 전무해 부동산, 물류, 관광 등 특정 산업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부동산, 물류, 관광 등이 안정적인 산업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경기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제2, 제3의 두바이’를 지향하며 외국 기업 유치와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주변 국가들이 늘어나는 것도 두바이에는 악재다. 차로 약 1시간 거리인 아부다비와 비행기로 약 1시간 거리인 카타르 도하를 보자. 이 두 도시는 두바이가 독점해온 ‘중동 허브’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최근에는 쿠웨이트의 쿠웨이트 시티, 오만의 무스카트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중동 허브를 꿈꾸고 있다.
셰일가스 생산 활황으로 저유가 기조가 고착할수록 탈석유와 산업 다각화를 위한 중동 각국의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주변 산유국과 달리 석유와 천연가스 없이 경쟁해야 하는 두바이에 장기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아직 다른 중동 나라들이 두바이의 개방성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많은 전문가가 지적하기도 한다. 그래서 중동 허브 자리를 놓고 벌어질 경쟁은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과연 두바이는 사막의 기적일까, 신기루일까? 다시 도약할 수 있을까?
국부펀드, 중동 산유국들의 ‘경제 영토 넓히기’2022년과 2023년 국내 콘텐츠 업계와 금융업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핫이슈 중 하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인 PIF가 2022년 넥슨과 엔씨소프트에 각각 약 2조 3,000억 원, 약 1조 1,000억 원을 투자했다. 그리고 2023년에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약 6,000억 원을 투자했다. 단기간에 한국의 대표급 콘텐츠 기업들의 주요 주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2023년 9월에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국부펀드 중 하나인 무바달라가 KT 자회사인 KT클라우드에 약 3,993억 원 투자를 추진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조성된 중동 산유국 국부펀드는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2023년 3월 기준 자산총액 상위 20개 국부펀드 중 중동 국가의 펀드가 10개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PIF는 자산총액이 약 6,100억 달러로 전 세계에서 6위에 해당한다. 아랍권에서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국부펀드가 약 7,900억 달러 규모(세계 3위)로 가장 큰 펀드다. 중동 산유국들의 국부펀드가 ‘세계적인 큰 손’이며, 국제경제와 글로벌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우디는 왜 2030 엑스포에 ‘진심’일까2023년 11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 총회 투표 결과, 사우디아라비아가 179개 회원국 중 119개 국가의 표를 획득해 ‘압승’했다. 한국은 29표, 이탈리아는 17표를 얻는 데 그쳤다. 사우디아라비아에 2030 엑스포는 여러 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차기 국왕이며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의 개혁, 개방 성과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이벤트가 될 수 있다. 정확히는 시기적으로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직접 기획한 국가 중장기 발전 계획인 ‘비전 2030’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이벤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2030 엑스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의 개혁, 개방 성과를 ‘국왕의 신분’으로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의 나이(1935년생)를 감안할 때,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는 2030 엑스포를 국왕의 신분으로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국가 자존심’ 차원에서도 2030 엑스포는 특별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역과 종교 면에서 중동의 중심 국가 면모를 확실히 갖췄고, 국제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영향력이 큰 나라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가 브랜드를 높이고 세계적 주목을 받는 국제 이벤트를 유치하지 못했다. 특히 이웃 나라인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가 각각 2020 엑스포와 2022 월드컵을 이미 유치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아쉬움을 키웠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삼성전자 지사장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단 무역관장을 지낸 윤여봉 전라북도 경제통상진흥원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카타르에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아랍 최초 개최’를, 아랍에미리트에 ‘아랍 최초 엑스포 개최’를 빼앗긴 만큼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2030 엑스포에서 파격적인 규모와 성과를 보여주려는 데 더욱 초점을 맞추려 할 것이다. 특히 왕세자가 절대적으로 이런 성과를 원한다. 그러니 정말 절박하고, 진지한 태도로 2030 엑스포 개최 준비를 할 것이다.”
2030 엑스포는 석유 의존도를 줄이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 체질 개선’ 작업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2030 엑스포는 분명 사우디아라비아의 장기적인 기업 투자유치 전략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이벤트이며 매력 자산이 될 수 있다. 2034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은 월드컵과의 파급 효과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2030 엑스포 유치와 개최를 계기로 과연 사우디아라비아의 소프트 파워 역량이 얼마나,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3장 아직은 세계의 ‘화약고’
‘이스라엘판 9·11 테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공존할 수 있을까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에서는 하마스의 이번 공격으로 2023년 12월 말 기준 1,200여 명이 숨졌다. 반면 가자지구에서는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숨졌다. 또 240여 명이 인질로 하마스에 잡혀갔다. 이 중 많은 수는 아직도 잡혀 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나 헤즈볼라 같은 ‘반이스라엘 무장정파’의 공격으로 이렇게 많은 사망자를 낸 건 처음이다. ‘이스라엘판 9·11 테러’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아이언돔(Iron Dome)으로 대표되는 첨단 방공망, 모사드로 대표되는 막강한 정보력을 갖춘 이스라엘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하마스의 공격에 뚫린 것에 전 세계가 놀랐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궤멸시키겠다”며 대규모 지상전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하마스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에게는 항복과 죽음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