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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인문학

싯다르타 히베이루 지음 | 흐름출판


꿈의 인문학

싯다르타 히베이루 지음

흐름출판 / 2024년 3월 / 584쪽 / 35,000원





왜 우리는 꿈을 꾸는가




5살 소년은 악몽을 꾸며 불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꿈속에서 소년은 우중충한 도시의 잿빛 하늘 아래에서 아무런 연고 없이 홀로 지냈고, 도시에는 수시로 번개가 내리쳤다. 그리고 소년과 그 도시의 아이들은 매번 식인 마녀들이 사는 저택으로 보내졌다. 한 아이가 3층 건물로 들어가고 남은 아이들이 불 꺼진 창문들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창문 하나가 환해지더니 아이와 마녀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곧이어 소름 끼치는 비명이 들려왔다. 꿈은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매일 똑같은 꿈이 반복되었다.

이후 잠들기가 무서워진 소년은 다시는 잠들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선언했다. 소년은 자기 방 침대에 혼자 가만히 누워서 졸음과 필사적으로 싸웠다. 하지만 번번이 잠에 무릎을 꿇었고, 어김없이 꿈이 다시 시작되었다. 소년은 자기가 선택을 받아 마녀들의 집으로 보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압도당해 반복되는 꿈의 서사를 막지 못하고 매번 똑같은 몽환의 덫에 걸려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은 전문가에게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가 기억하는 것은 상담실의 매력적인 상자에 보관된 보드게임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심리치료사가 꿈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그 후 마녀들이 등장하던 악몽은 다른 꿈으로 대체되었다. 그런데 대체된 꿈 역시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편집으로 간담을 서늘케 하는 히치콕 특유의 스릴러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소년은 마치 본인이 주인공인 영화를 감상하듯 자신이 아닌 외부의 시선으로 그 꿈을 경험했다. 꿈은 매일 밤 공항에서 시작해 늘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끝났다.

흑발의 성인 남자가 소년과 동행하며 미치광이 범죄자를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소년은 끝내 범인을 찾지 못하고 그 남자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 그때 엄청난 불안감이 밀려왔고 ‘카메라’가 움직이더니 터미널 천장의 벽과 벽 사이에 거대한 거미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는 범죄자를 비추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범죄자가 내내 그곳에 있었는데도 더 일찍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몇 차례 더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꿈을 통제하는 방법에 관해 대화를 나눈 후, 소년은 악몽보다는 모험담에 가까운 세 번째 서사를 만들어냈다. 꿈속은 여전히 위험으로 가득했지만, 두려움과 불안감은 전보다 훨씬 덜했다. 소년은 <정글북>의 주인공 모글리가 되어 영국 식민지 시대 복장을 하고 인도 정글로 호랑이 사냥을 떠났고, 그와 동시에 그런 자신의 모습을 삼인칭 시점으로 지켜보았다.

이번에는 흑발의 남자가 처음부터 함께했다. 우거진 숲을 통과하니 절벽과 거친 바다가 나타났다. 오른쪽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섬이 우뚝 솟아 있었고, 그 뒤로 잿빛 하늘과 대비되는 눈부신 석양이 지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 남자의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둑을 발견한 소년은 호랑이가 저기에 숨어 있을 거라며 놈을 궁지에 몰아넣자고 제안했다. 남자가 소년에게 동의하고는 이제부터는 혼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소년은 소총을 쥔 채로 거센 폭풍이 몰아치고 포말이 들끓는 연녹색 바다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둑을 건너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석양이 드러나자 수평선이 주황색과 빨간색,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이윽고 소년은 섬에 발을 디뎠다. 어느덧 녹음이 짙은 숲을 마주한 소년은 나뭇잎 뒤에 호랑이가 있다고 상상하며 소총을 겨누었다. 그러다 문득 호랑이가 등 뒤에 있음을 깨달았다. 궁지에 몰린 것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이었다. 소년은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곧장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는 절벽 아래로 떨어졌고, 따뜻한 몸이 차가운 수면에 부딪히는 순간 생생함이 고조되면서 삼인칭이던 시점이 순식간에 일인칭으로 바뀌었다.

소년은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채로 주위를 둘러싼 캄캄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잠시 모든 것이 납덩이처럼 느껴졌다. 소년은 섬을 둘러싼 바다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과 나란히 헤엄치고 있는 거대한 상어를 발견하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충격과 긴장감에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 싶더니 일순간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 소년은 거대한 상어와 함께 어둠이 짙어지는 바다와 하늘 사이를 차분히 헤엄쳐 나갔다. 밤새 헤엄치고 또 헤엄쳤지만, 이튿날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호랑이와 상어가 나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꿈들은 소년을 영원히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악몽이 사라지고 잠에 대한 두려움이 사그라들자 소년의 집에 평온한 밤이 찾아왔다.

명확한 수수께끼


앞의 예처럼 자면서 꾸는 꿈에 나타나는 수많은 상징과 풍부한 디테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가지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일련의 꿈들이 느닷없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현상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잠들기가 무서울 정도로 끔찍한 악몽을 반복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 같은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꿈의 유래와 기능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깨어 있을 때, 즉 밤이든 낮이든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 다양한 형태와 소리, 맛, 냄새, 감촉을 잇달아 경험하는데, 깨어 있을 때 우리의 시선은 주로 외부를 향한다. 그런데 밤이든 낮이든 두 눈이 꼭 감겨 있는 동안에는 일반적으로 현실의 화면이 꺼지는 무의식 상태로 들어가며, 잠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고 기운을 회복시키며 기억에 거의 남지 않아서 사고가 부재하는 상태로 여겨진다.

잠은 살아 있지 않은 상태, 일상에서 경험하는 작은 죽음으로 여겨지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잠의 신 히프노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의 쌍둥이 형제이고, 둘은 밤의 여신 닉스의 자식이다. 히프노스가 선사하는 질 좋은 수면은 일시적이고 대개는 즐거우며 인간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꿈을 꾼다고 표현하는 흥미로운 상태에서는 완전히 다른 일이 일어난다. 우리의 꿈을 만들고 지배하는 것은 모르페우스다.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모르페우스는 히프노스의 형제 또는 아들이고,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모르페우스는 신의 메시지를 왕에게 전달하고 자신의 형제 무리인 오네이로이를 이끈다. 검은 날개를 단 이 영혼들은 밤마다 박쥐 떼처럼 날아다니며 뿔과 상아로 만들어진 2개의 문을 통과한다. 그들이 뿔의 문을 통과하면, 내면의 진실을 덮고 있는 베일이 투명해지면서 예언적이고 신성한 꿈이 만들어진다. 반면 아무리 얇아져도 투명해지지 않는 상아의 문을 통과하면, 거짓되거나 무의미한 꿈으로 유도된다.

고대 사람들이 꿈의 안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우리는 이처럼 기억하기 어려운 환상에 대해 훨씬 더 무지했을 것이다. 대부분 꿈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아침에 깨어나서 그 꿈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보통 우리는 러닝타임이 제각각이고 대개 시작은 불확실하나 결말은 확실한 영화를 보듯 꿈을 꾼다. 다시 말해 꿈은 기억의 조각으로 구성된 현실의 모조품이다. 우리가 꿈의 주인공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서사를 구성하는 사건의 순서까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시나리오나 연출에 대한 지식 없이 꿈이 이끄는 대로 연기하면서 놀라움은 물론 큰 기쁨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깊은 좌절감이나 실망감을 느낄 때도 흔하다. 한편 꿈은 당연히 꿈꾸는 사람의 최대 관심사를 반영하겠지만, 대체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사건의 논리는 현실과 비교해서 불규칙하고 일관성이 없다. 꿈의 이미지들은 또한 우리가 깨어 있는 동안 경험할 수 없는, 비논리적이면서 전환이 갑작스럽다는 특징을 갖는다. 예로 꿈에 나오는 사람이나 장소는 다른 사람이나 장소로 쉽게 바뀌며, 이는 심적 표상이 갖는 자유로운 변화의 힘을 보여준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상징의 연결은 공백, 파편화, 압축, 전위(轉位) 등이 특징인 시간 감각을 설정함으로써, 복합적이며 때로는 모순된 의미의 사건들을 잇따라 창조해낸다. 꿈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고 특이한 데다 비현실적이며 혼란스럽다.

꿈은 꿈꾸는 사람의 인지적?감정적 맥락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앞의 예에서 소년은 왜 마녀와 범죄자, 호랑이, 상어에 대한 꿈을 잇달아 꾸었을까? 당시 화면에 자주 등장했던 월트 디즈니의〈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나오는 늙고 사악한 마녀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에 나오는 상어가 그런 끔찍한 만남을 주선했다고 설명하면 충분할까? 명확하고 감정적인 악몽의 요소와 플롯은 무엇을 의미할까? 뭔가를 의미하기는 하는 걸까? 그 뒤에 논리라는 게 있을까? 꿈은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적 현상일까, 아니면 신비롭고 이해하기 힘든 수수께끼일까? 꿈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소년이 첫 번째 악몽을 꾸기 몇 달 전인 어느 일요일 해가 질 무렵에 그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소년의 어머니는 침착하게 대처했지만, 남편 없이 두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같이 일하면서 자투리 시간에 대학 수업까지 듣다가 몇 달 지나지 않아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소년의 남동생은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마녀들이 등장하는 끔찍한 악몽의 반복은 가족의 고통이라는 맥락 속에 있었다. 소년은 고아가 된 기분뿐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외로움을 너무나 생생히 체험했고, 불현듯 그 감정이 진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안에 있었다. 돌이킬 수도 없고 금방 나아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반복되는 꿈은 그 당시 견고하고 불가피해 보이던 막다른 길을 표현하고 있었다.

전문가의 개입은 소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치료를 시작하고 마녀가 나오던 꿈은 형사와 범죄자가 나오는 꿈으로 바뀌었다. 공포 대신 긴장감을 느꼈고, 마녀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상황은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으며, 소년은 아버지와 치료사처럼 흑발의 어른 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꿈의 배경은 강제수용소 같은 보육원이 아닌 공항, 즉 먼 여정을 시작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세 번째 꿈에서 소년은 호랑이를 사냥하고 상어와 함께 헤엄쳤다. 긴장감은 모험심으로 대체되었고, 아버지 같은 존재와의 이별은 필연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으며, 결말은 상어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남겼다. 삶이 혼자만의 여정이라는 깨달음은 주황, 빨강, 보랏빛으로 기억되었다. 꿈속의 황혼은 잊히지 않는 오래전 일요일, 그의 아버지가 쓰러졌던 그 순간과 똑같은 빛깔로 물들어 있었다.

소음, 서사 그리고 욕망


비록 그 꿈이 삶에서 발생한 단발성 사건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소년, 즉 과거의 내가 경험한 일련의 꿈은 충격적인 기억 너머의 환상적이고 은유적인 차원을 포함한다. 기억의 재활성화가 수면과 꿈의 인지 기능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꿈의 서사가 갖는 복잡한 상징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깨어 있을 때 겪은 일이 똑같이 재현되는 꿈은 드물다. 대개는 비논리적인 요소와 예상치 못한 연관성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꿈은 친숙하거나 친숙하지 않은 존재, 사물, 장소들에 의해 해체되고 구성되는 주관적 서사이며, 보통 이야기의 전개를 지켜보기만 하는 주체의 자기상(自己像)과 영향을 주고받는데, 꿈의 강도는 희미하고 불분명한 느낌부터 생생한 이미지, 예상치 못한 반전과 전환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서사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시종일관 유쾌하거나 불쾌한 꿈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갖가지 감정이 뒤섞인다. 꿈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예측하기도 한다. 특히 극도의 불안과 기대감을 느낄 때 꾸는 꿈은 흔히 맥락과 주제를 암시하는 세부 사항들로 가득 채워진다.

꿈의 서사를 전부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전형적인 서사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형적인 플롯 중에서 벌거벗고 있다든지, 시험 준비를 못 한다든지, 회의에 완전히 늦는다든지, 이가 빠진다든지, 여행 중에 중요한 사람과 헤어졌는데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든지 하는 제법 불쾌한 꿈들은 불완전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주로 친인척과 가까운 친구, 주기적으로 상대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낯선 사람이 나오기도 하고 특정 시기에는 모르는 사람이 숱하게 나오기도 한다.

한편 조금이라도 자기 성찰을 하는 사람이라면 꿈의 3가지 기본 유형을 금세 떠올릴 것이다. 바로 나쁜 꿈, 좋은 꿈,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대개는 헛수고로 돌아갈) 꿈이다. 첫 번째 유형인 악몽은 불쾌한 상황을 통제하거나 회피할 힘이 없음을 보여준다. 두려움은 악몽을 꿀 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악몽은 두려운 결과를 미룸으로써 지속된다. 꿈속에서 죽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은 보통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잠에서 깨기 때문이다. 아마 이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믿음과 양립할 수 없는 뇌의 표상을 활성화하는 것이 꿈에서조차 대단히 어려워서일 것이다.

한편 좋은 꿈은 악몽과 정반대로 일말의 갈등도 남아 있지 않은 만족스러운 상황임을 나타낸다. 이런 유형의 꿈은 흔히 깨어 있는 삶에서는 불가능한 욕구를 실현함으로써, 비현실적이기는 해도 완전한 만족감을 준다. 하지만 극단적인 기쁨이나 두려움만으로는 우리가 꾸는 대부분의 꿈을 설명할 수 없다. 이처럼 강렬한 감정을 꿈꾸려면 깨어 있을 때도 그것을 경험해야 한다. 아무튼 꿈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이며, 살아 있지 않고서는 꿈꿀 수도 없다. 꿈에 관한 신경생물학 연구의 선구자인 조너선 윈슨은 이렇게 말한다. “꿈은 지금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신비주의에서 정신생물학까지


각양각색의 수많은 사람이 꿈에서 신탁의 기능을 목격했고, 지금도 목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성 자체를 거부하는, 누가 봐도 얼토당토않은 이런 발상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논리적인 설명이 조금이라도 가능할까, 아니면 산더미처럼 쌓인 무의미한 우연과 미신 위에 세워진 오해에 불과할까? 그리고 꿈이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예측한다는 견해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지 않으며 그와 관련된 여러 요인을 고려해야만 답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시도의 출발점에서 우리는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연구를 만난다.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


정신분석학은 기본적으로 꿈을 근거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며, 꿈 해석에 없어서는 안 될 전환점이다. 프로이트는 꿈을 해석하려면 먼저 꿈꾼 사람의 주관적 경험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깨어 있는 동안 겪은 일에 대한 기억이 꿈을 구성하는 뼈대가 된다고 말했다. 프로이트 이론에서 주간잔재(day residue)라고 불리는 이 기억을 중심축으로, 꿈꾼 사람의 감정들이 뭉쳐 강력한 상징성을 지닌 심상을 만들어낸다. 한편 프로이트는 깨어 있을 때의 상황과 반대인 꿈 이야기들을 꼼꼼히 분석하고 환자가 의식하는 가장 내밀한 동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프로이트는 꿈을 인간 정신을 연구하는 특별한 도구로 여겼는데, 이는 깨어있을 때보다 꿈속에서 도덕적 검열이 덜하기 때문이다. 꿈에 나타나는 어린 시절과 현재 사이의 갈등은 현재에 깨어 있는 동안 접하는 현실과 상관없이 환상적인 정신의 영역에서 간단한 욕구를 실현함으로써 해결되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꿈과 현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의 최극단에서 꿈과 정신질환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조현병 연구의 선구자인 오이겐 블로일러와 에밀 크레펠린도 프로이트의 견해에 동의했다. 프로이트는 일부 환자들의 꿈은 물론 자신의 꿈까지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분석한 뒤, 꿈이 꿈꾸는 사람의 욕망과 두려움을 반영한다고 밝혔고, 주관적인 자기 보고, 자유연상, 꿈과 환상에 대한 해석, 억압된 기억과 욕구, 상징적 연관성에 대한 의식적 확인을 바탕으로 한 치료법을 만들었다. 참고로 한 세기 가까이 신경과학 분야에서 무시되었던 프로이트 이론은 1989년에 주간잔재의 전기생리학적 상관관계가 처음으로 확인되고 나서야, 뇌와 정신에 관한 과학적 논쟁의 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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