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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 메이트북스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메이트북스 / 2023년 11월 / 356쪽 / 14,900원





행복론 _ 삶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하여


내 의식의 수준이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
사회적 지위와 부유함의 차이가 행복과 만족감의 내적인 차이와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인간에게 일어나는 그 모든 것들은 오로지 인간의 의식 안에서 존재하고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의식의 수준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며, 더 본질적으로는 대개 그 형태보다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성질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 어떠한 사치와 향락이라도 멍청한 이의 아둔한 의식 속이라면, 힘든 감옥 안에서도 <돈키호테>를 썼던 세르반테스의 의식에 비하면 빈곤하다.

내면이 풍요롭다면 운명에 많은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우리의 운명, 혹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운명은 나아질 수 있으며, 내면이 풍요롭다면 우리는 우리의 운명에 그다지 많은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는 그저 어리석은 자에 머물 뿐이며, 아둔한 자는 천국에서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있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아둔한 인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괴테는 이렇게 말한다. “백성과 노예와 지배자, 그들은 고백한다. 늘 언제나 연약한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그저 인간의 성격일 뿐이라고.” (<서동시집>)

사회적 지위나 부유함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안의 장점들:
우리의 행복과 즐거움에는 주관적인 면이 객관적인 것보다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건강은 그 어떤 외적 재산보다 월등하게 중요하다. 완벽한 건강과 행복한 조화에서 만들어지는 차분하고 밝은 성품, 맑음, 생기 넘침, 통찰력과 분별력, 의지와 선한 양심 등 이러한 것들은 사회적 지위나 부유함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장점들이다. 자신을 위한 것이자 혼자 있을 때도 늘 그를 따라다니는 것, 그 어떤 누구에게도 주거나 받을 수 없는 것들이야말로 그가 소유한 다른 것이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격을 가능한 한 유리하게 이용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인격을 가능한 한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인격에 맞는 것에 힘을 쏟고, 개성에 적합한 수준의 교육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맞지 않는 것은 피해야 하며, 거기에 맞는 위치와 직업, 생활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가진 능력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인 일을 한다면, 결국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고 평생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들 것이다.

부를 얻으려 노력하기보다는 건강을 유지하고 능력을 키워라:
부를 얻으려 노력하는 것보다 건강을 유지하고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학업에 힘을 기울이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삶에 필요하고 적절한 것을 얻는 데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현실적이고 자연적인 필요 이상의 부는 사실 우리의 만족감에 아주 미미한 영향만을 줄 뿐이다. 오히려 너무 많은 재산을 유지하느라 필수적으로 따르는 근심을 불러와 행복에 방해를 받는다.

인간을 이루는 것에 대하여


그가 행복한지 알고 싶다면 그가 밝은 사람인지를 보면 된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만족할 이유가 있는지를 먼저 알려 하기 때문에, 혹은 우리의 진지한 고민과 무거운 걱정에 방해가 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명랑함을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한다. 그러나 상황을 나아지게 하는 데는 고민과 걱정보다 밝음이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밝음만이 현재의 행복에 직접적인 것이고, 가장 최고의 자산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재산을 가지려 하기보다는 이러한 자산을 얻는 것을 최우선으로 노력해야 한다.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사물의 객관적이고 실제의 모습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고, 바로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혹은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열에 하나라도 성공한다면 몹시 기뻐하고 스스로 격려하자:
우울한 사람은 열 가지의 일 중 아홉 가지를 성공하더라도 기뻐하지 않고 실패한 한 가지 일에 대해 화를 낸다. 반면에 밝은 사람은 성공한 한 가지 일에 기뻐하며, 실패한 나머지 일에 대해서도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기쁨의 근원을 내부에서 찾아야 더욱더 행복한 존재가 된다:
가장 좋고 바람직한 것은 각자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더 많을수록, 그래서 그 결과로 기쁨의 근원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을수록 더욱더 행복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행복은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의 것이다.” (<에우데모스의 윤리학> 7권 2장)

지적인 생활이 한 인간을 많은 것으로부터 구해준다:
우리의 실제적인 생활은 열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지루하고 건조한 것이다. 하지만 열정에만 의지해 움직이면 곧 고통스러워진다. 그렇기에 지성을 갖춘 자만이 행복하다. 그들은 실제의 삶과 동시에 지적인 삶을 함께 영위하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않고도 활기차고 열정적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지적인 생활은 권태를 막아줄 뿐 아니라 그것에서 오는 치명적인 결과로부터도 보호해준다. 즉 나쁜 무리와 어울리는 것, 수많은 위험과 불행, 손실과 낭비로부터 지켜주는 벽이 되어주는 것이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에 대하여


부귀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고, 만족시키기가 굉장히 어렵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필요(욕구)를 세 단계로 나누었다. 첫째는 자연스럽고 필요 불가결한 것으로, 충족되지 않으면 고통을 가져온다.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욕구가 해당하는데, 이 욕구는 충족시키기가 쉽다. 두 번째는 자연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것으로, 성적인 욕구가 해당한다.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세 번째는 자연적이지도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로, 사치·부귀·화려함에 대한 욕구이다. 이것은 그 끝이 없고, 충족시키기가 굉장히 어렵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어도 위로를 받지 못하는 이유:
각각의 사람은 자신이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자신만의 지평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지평선까지 가려 한다. 그 범위 안에 있는 대상을 자신이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 그는 행복을 느끼지만, 어떤 어려움이 생겨 그런 확신이 사라지면 그는 불행을 느끼게 된다. 이 지평선 시야 밖에 있는 것들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의 거대한 부에 괴로움을 느끼지 않지만, 부자들은 자신의 의지가 수포로 돌아가면 이미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어도 그것으로 위로를 받지 못한다.

영원한 고통도 없고, 영원한 기쁨도 없다:
큰 재산이나 유복을 잃고 난 뒤 처음 만나는 고통을 이겨내고 나면, 우리의 기분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운명이 우리의 소유물을 줄이고 나면, 우리 스스로 원하는 수준을 크게 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라면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점점 줄어들고, 결국은 느끼지 않게 된다. 상처가 아문 것이다. 반대로 행복한 일이 갑자기 일어나면 우리의 요구를 억누르던 압축기가 밀려 올라가 우리의 욕구는 팽창되고, 바로 거기에 기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역시 이 과정이 끝나면 기쁨도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우리는 팽창된 요구에 익숙해져 이미 달성한 소유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에 대하여


타인의 견해 그 자체는 행복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너무 많이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아주 조금만 생각해보면 타인의 견해 그 자체가 우리의 행복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명예라는 감정이 인간의 특징인 한, 이것은 도덕성을 대신해 많은 사람들의 훌륭한 행동에 있어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행복, 마음의 평화와 독립에는 해로운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관점에서 이러한 특성에 한계를 설정하고, 다른 이들의 치켜세우는 말이나 상처를 주는 의견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대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들이 뭐라고 하는지 신경 쓰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사람들이 노력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거의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타인에게서 더 큰 존경을 받는 것이 최종 목표라는 점은 불행하게도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증명하는 것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너무 큰 가치를 두는 것은 일반적인 착각일 뿐이다. 그러한 착각은 우리의 행동 전체에 지나친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행복에 적대적인 영향을 주며, 남들이 뭐라고 할 것인가 신경 쓰는 노예가 되어 불안에 떨게 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지 말자: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견해에 가장 높은 가치를 두고 자신의 의식보다 타인의 생각에 더 집중한다. 자연 질서를 거꾸로 뒤집어 다른 이의 의견을 자신의 존재에 실재하는 것처럼 보는 반면, 자신에게 실재하는 것을 단순한 이상적인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자신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타인의 머릿속에 있는 관념적 그림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는 직접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허영이라 지칭하는데, 이것은 그러한 노력의 공허함과 무의미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허영심은 수다스럽게 만들지만 자존감은 과묵하게 만든다:
자존심은 자신이 우월한 가치를 가진 것에 대해 굳건한 확신이다. 하지만 허영심은 이러한 확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지도록 하려는 욕망이다. 허영심은 사람들을 수다스럽게 만들지만 자존감은 과묵하게 만든다. 하지만 허영심이 있는 사람들은 말하는 것보다 계속 침묵하는 편이 스스로가 추구하는 다른 이들의 높은 평가를 받기에 훨씬 더 쉽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우월한 장점과 특별한 가치에 대한 내적인 강건한 확신과 흔들림 없는 신념만이 사람에게 진짜 자존감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좋은 평판을 듣는 것보다 용기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건 없다:
타인에게 호의적인 의견을 듣거나 확실성을 얻는 것보다 그의 삶에 대한 용기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없다. 이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힘을 모아 자신을 보호하고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도움은 자신이 만든 것보다 인생의 재앙에 대해 더 큰 방어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현재만이 유일하게 실재하는 것,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다:
현재만이 진실된 것이고 실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를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직접적인 고통이나 불쾌감 없이 견딜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을 즐겨야만 한다. 과거에 가졌던 희망이 실패로 돌아간 일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우울한 얼굴로 현재를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지나간 일에 대한 근심이나 다가올 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현재의 좋은 시간을 제멋대로 망치고 팽개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일이다. 걱정이나 슬픔, 양심의 가책을 위한 시간은 따로 마련해야 한다.

이미 일어나버린 불행한 사건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마라:
이미 일어나버린 불행한 사건의 경우, 그것이 달라질 수 있었다거나 피할 수 있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에는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는지를 거듭 숙고해보는 것이 우리의 교훈과 개선을 위해서도, 또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유익한 자기 체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명백한 실수를 저질렀을 땐, 우리 자신을 변명하거나 미화하면 안 되고, 경시해서도 안 된다. 자신의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실수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확실하게 인식해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 물론 그럴 경우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자기 불만이라는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징계를 받지 않고는 배움을 얻을 수 없다.” (메난더, <단행시>)

갑작스러운 기쁨이나 슬픔에도 담담하게 대하며 자신을 찾자:
사건·사고들은 우리 인생의 한 요소이기 때문에 ‘인생의 불행’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한탄하며 얼굴을 찌푸리기만 하거나, 작은 벼룩에 물렸다고 신의 도움을 청해서는 안 된다. 분별력이 있는 인간으로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재난을 사전에 예방하는 데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 마치 동화에 나오는 영리한 여우처럼 크거나 작은 불행을 말끔히 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심사숙고를 기울여야만 한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돌멩이를 내가 바꾸지 못하듯 나는 그들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간에 주어진 개성으로 인정해야 하고, 그것의 유형과 본질이 허락하는 대로 그것을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 사람의 개성이 변화하기를 바라거나,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나도 살고, 상대도 산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행동에 분개하는 것은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길 위에 굴러온 돌멩이를 보고 화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그들을 바꾸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그들을 이용할 것이다.

상대를 너무 너그럽게 대하거나 다정하게만 대해서는 안 된다:
사람 간의 교제에서 우월함은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과 그러한 사실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당신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끔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면 둘의 우정도 더욱 돈독해진다.

그의 잘못을 용서하고 잊는다면 그는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른다:
용서하고 잊는다는 것은 자신이 겪은 귀중한 경험을 창밖으로 내던져버리는 것이다. 긍정적인 경우에 대해서는 그다지 할 말이 많지 않을 것이다. 말을 하는 것이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신은 경고를 하든지, 아니면 그냥 내버려두든지 해서 그 문제를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 반면 부정적인 경우에는 즉시 그 친구와 영원히 헤어져야만 한다. 비록 지금은 그들이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지만,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똑같은 행동을 다시 할 것이기 때문이다.

행동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분노나 증오를 보이지 마라:
분노나 증오를 말이나 표정으로 표현하는 것은 쓸모없고, 위험하고, 현명하지 못하며, 우스꽝스럽고 비열하고 천박한 일이다. 그러므로 행동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분노나 증오를 보여서는 안 된다. 말이나 표정으로 분노나 증오를 드러내는 일을 완벽하게 피하면 피할수록 그 행위를 더욱 완벽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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