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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라이프

브루스 그레이슨 지음 | 현대지성


애프터 라이프

브루스 그레이슨 지음

현대지성 / 2023년 11월 / 384쪽 / 18,000원





머리말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생을 다시 보다




50년 전 자살을 시도했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성이 내게 한 말은 뇌와 정신, 인간에 대해 그때까지 갖고 있던 생각을 완전히 뒤흔들어놓았다. 50년 전 그날, 나는 포크로 말아 올린 스파게티를 입에 넣기 직전이었는데, 호출기가 요란하게 울렸고, 나는 포크를 떨어뜨렸다. 쟁반과 냅킨꽂이 사이에 펼쳐둔 『응급정신의학 편람』에 집중하다가 갑자기 울린 호출기 소리에 깜짝 놀랐던 것이었다.

포크가 접시에 툭 떨어지면서 토마토소스가 편람에 튀었고, 또 호출기를 끄려고 손을 뻗을 때 내 넥타이에 묻은 스파게티 소스 한 방울도 눈에 들어왔다. 젖은 냅킨으로 소스를 닦아내려고 했는데, 붉은색이 조금 연해졌지만, 얼룩 크기는 오히려 더 커졌다. 이후 나는 구내식당 벽 앞에 놓인 전화기로 가서 호출기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응급실에는 약물을 과다 복용해서 실려 온 환자가 있었고, 그 환자의 룸메이트가 나와 이야기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 의자 뒤에 걸어 두었던 하얀색 가운을 입었고, 넥타이 얼룩을 감추려고 맨 위까지 단추를 채우고 응급실로 내려갔다.

응급실에서 나는 간호사가 쓴 진료 기록을 먼저 읽었다. 환자는 홀리라는 대학 신입생이었다. 그리고 홀리를 병원에 데려온 룸메이트가 복도 끝 보호자 휴게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사와 인턴 기록을 보니 홀리의 상태는 안정적이었지만 깨어나지는 못하고 있었다. 홀리에게 가니 그는 환자복을 입고 이동 침대에 누워 있었다. 팔에는 튜브를 꽂고, 이동 침대 바로 옆 바퀴 달린 기계에는 가슴에 붙인 심장 감시 장치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 홀리는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홀리의 팔에 손을 얹고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간병인에게 홀리가 눈을 뜨거나 말하는 걸 보았는지 물었더니, 간병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홀리를 가까이 살펴보려고 몸을 기울였다. 호흡은 느렸지만, 규칙적이었다. 술 냄새는 나지 않았다. 어떤 약물을 과다 복용해서 잠에 빠진 것 같았다. 홀리의 팔은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내가 팔을 잡아서 움직이는데도 잠을 깨지 않았다.

나는 보호자 휴게실로 갔다. 내가 들어갔을 때 홀리의 룸메이트 수전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 소개를 한 후 앉으라고 권했다. 창문이 없는 휴게실은 냉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선풍기를 더 가까이 옮겨왔고, 입고 있던 흰 가운의 단추를 풀었다. “수전, 오늘 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늦은 오후,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니 홀리가 의식을 잃은 채 침대에 쓰러져 있었어요. 내가 아무리 부르고 흔들어도 깨울 수 없었어요. 그래서 기숙사 사감에게 전화했고, 사감은 구급대에 전화해 홀리를 이곳으로 데려오게 했어요. 저는 제 차를 타고 따라왔죠.”

“홀리가 어떤 약을 먹었는지 알아요?” 수전은 고개를 저었다. “정기적으로 먹는 약이 있었나요?” “네. 학교 보건소에서 처방받은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어요.” “홀리가 먹었을지도 모를 다른 약들이 기숙사에 있나요?” “제가 경련 때문에 욕실 수납장에 넣어두고 먹는 약이 있어요. 그런데 홀리가 먹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홀리에게 다른 건강 문제가 있었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홀리를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해요. 한 달 전, 기숙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으니까요.” “이해해요. 혹시 홀리가 최근에 특별히 어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알아요?”

수전은 머뭇거리다 말했다. “사귀던 남자와 문제가 있었어요. 그 남자가 홀리에게 뭔가를 강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요.” “홀리에게 뭔가를 하라고 강요했다고요?” “몰라요. 그저 제 느낌이에요.”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수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일이 또 있을까요?” 수전은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다시, 수전이 뭔가 다른 말을 하길 기다렸다. 그러나 수전은 하지 않았다. 이후 나는 홀리가 깨어났는지 보려고 복도를 따라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시 갔다. 홀리는 계속 잠든 상태였다. 간병인은 내가 떠난 후 홀리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확인해주었다. 이후 그날 저녁에는 내가 특별히 더 할 일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옷을 바꿔 입은 후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 간호사가 나를 보며 말했다. “홀리는 방금 깨어났어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지만, 아직 상당히 졸린 상태예요” “감사해요. 지금 환자와 간단하게 이야기 나누러 갈게요.” 나는 홀리의 병실로 가서 살며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홀리는 한쪽 눈을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홀리, 의사 그레이슨이에요. 정신과 팀에서 왔어요.” 홀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몇 초 후 그녀는 조금 웅얼거리는 말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생님이 누구인지 알아요. 지난밤에 본 기억이 나요.” 나는 잠시 전날 밤에 홀리를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전날 밤에 당신은 응급실에서 잠들어 있었잖아요. 나를 볼 수 있는 상태는 아닌 것 같은데요.”

그녀는 계속 눈을 감은 채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있던 병실에서 본 게 아니에요. 당신이 소파에 앉아 있던 수전과 이야기하는 걸 보았어요.” 그 말이 내 발목을 잡았다. 홀리가 복도 끝 휴게실에 있던 우리를 보거나 우리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지난밤에 수전과 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의료진이 말해주었나요?” “아니에요. 나는 당신을 보았어요.” 그녀는 이제 조금 더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혼란스러웠고,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야 할지 몰랐다.

홀리는 내가 의아해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두 눈을 뜨더니 처음으로 눈을 맞추며 말했다. “선생님은 붉은 얼룩이 묻은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계셨어요.” “뭐라고요?” 나는 겨우 이 한 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홀리는 나를 쳐다보면서 “붉은 얼룩이 묻은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계셨잖아요.”라고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다음 내가 수전과 나눈 대화, 내가 한 질문 모두와 수전의 대답을 그대로 다시 들려주었는데, 수전이 서성거리고 내가 선풍기를 옮겨놓은 일까지 하나도 틀리지 않고 말했다.

갑자기 목 뒤의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소름이 돋았다. 홀리가 그 모든 걸 알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질문을 할지는 짐작할 수 있었더라도, 어떻게 자세한 내용까지 모두 알 수 있었을까? 당시는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도 없었고, 그런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몰랐던 것이다. 당시는 영어권에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 NDE)이라는 용어가 알려지기 몇 년 전이었다.

그런데 나는 홀리가 이런 일들을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 분명 합리적이면서 현실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어딘가에는 있고,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설명할 방법 자체가 없다면, 홀리의 육체에서 생각하고 보고 듣고 기억할 수 있는 일부가 떨어져 나와 복도를 거쳐 보호자 휴게실로 가는 나를 따라오고, 눈이나 귀가 없는데도 내가 수전과 하는 대화를 알아들었다는 것이 된다(글쎄,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물론 내 생각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육체에서 분리된다는 게 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당시는 육체는 곧 나 자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난 50년 동안 나는 홀리가 그 스파게티 소스 얼룩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이해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나는 정신의학자로서 대체로 만족스러운 경력을 쌓아왔다. 내 성공의 많은 부분은 훌륭하고 헌신적인 멘토와 동료들 덕분이다. 하지만 그 모든 세월 동안 마음 한구석에는 이해하지 못할 방식으로 내 넥타이의 얼룩을 보았다는, 홀리가 불러일으킨 정신과 뇌에 대한 의문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회의론자였던 나는 기어코 증거를 찾아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탓에 그런 일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이것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나는 1,000명이 넘는 임사체험 사례를 모았다. 그들은 내 질문지에 답했고, 그중에는 40여 년 전에 체험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사례와 심장 마비, 뇌졸중, 자살 미수 등으로 입원한 환자들의 임사체험을 비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탐구 과정에서 각 사람의 태도, 믿음, 가치관과 성격에 끼치는 똑같은 유형의 영향뿐 아니라, 문화적 해석을 넘어서는 공통의 보편적인 주제들을 발견했다. 그렇게 하여 이런 체험을 단순히 꿈이나 환각으로 넘겨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아울러 40여 년을 탐구하는 동안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 당시의 임사체험 기록이 전 세계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체험의 양상이 서로 다르지 않고 비슷비슷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 거의 50년 동안 임사체험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임사체험이 체험자에게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임사체험에 대해 많이 알게 될수록 정신과 뇌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이고 제한된 이해를 뛰어넘어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의 정신과 뇌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면서 육체가 죽은 후에도 의식은 계속 남아 있는지 탐구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우주와 조화를 이루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참고로 죽음 그리고 그 후에 펼쳐질 일에 대해 많은 말과 기록이 남아 있다. 과학적인 관점, 종교적인 관점을 가진 이 말들은 대부분 서로 충돌하는데,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런 논쟁에 관한 성격을 바꾸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 과학과 영성이 양립할 수 있고, 과학을 버리지 않아도 영적일 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오랜 연구를 통해 나는 증거에 대한 믿음과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면서도 우리 삶의 영적이고 비물질적인 측면을 인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렇다고 이 책이 죽음만을 다루는 책은 아니다. 삶과 살아가는 일, 인간관계와 연민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삶을 의미 있고 충만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몸에서 분리되는 경험




의료진이 환자의 임사체험을 무시하면 체험자들은 좌절감을 느끼고, 화나고, 우울해지고, 인간적으로 무시당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나는 임사체험자들에게 이런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기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임사체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그런 체험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인정하면 환자들은 존중받고 이해받았다고 느꼈다.

한편 내 연구 보고서에 참여한 임사체험자들의 80퍼센트 이상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느낌을 가졌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 중 절반만 실제로 자기 몸을 보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위에서 관찰했다고 이야기했다. 참고로 많은 임사체험자가 멀리서 자기 몸을 내려다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자기 몸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체험자들도 많았고, 어떤 체험자들은 자기 몸을 알아보지만 그 몸에서 분리되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 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면담한 임사체험자들은 육체에서 분리되었다가 나중에 돌아가는 느낌을 고통스럽지 않고, 편안하고, 순간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임사체험 중 육체에서 분리되어 세상을 보았다는 기록은 이전에도 있었다. 포도상구균 발견으로 유명한 외과 의사 알렉산더 오그스톤 경은 1900년, 보어 전쟁 중 장티푸스로 입원했던 56세에 임사체험을 했는데, 그는 임사체험 중 반복해서 몸에서 분리되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신과 몸이 두 겹이고, 어느 정도 분리된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문 가까이에 있는 무기력한 덩어리로 의식했다. 나에게 속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문 옆에 놓인 차가운 덩어리(그때 떠올린 건 내 몸이었다)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까지 나의 정신이 자주 내 몸을 떠났다. 그다음 급히 몸으로 빨려 들어가 넌더리를 내며 합쳐지고, 내가 되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음식을 주고, 말하고, 돌보아주었다. 정신이 다시 몸에서 분리될 때 이전처럼 방황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죽음이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종교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고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뭔가가 다시 누워 있는 몸을 건드릴 때까지, 내가 점점 더 거부감을 느끼며 몸으로 다시 빨려 들어갈 때까지,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에서 무심하게 돌아다니면서 만족해했다.

배회하는 동안 이상하게도 내가 건물의 벽들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느꼈다. 벽들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내 눈에는 모든 게 투명하게 보였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영국 의무대의 불쌍한 외과 의사를 똑똑히 보았다. 같은 병원이지만 완전히 다른 공간에 있었던 그는 심하게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그의 시체를 천으로 덮고, 신발을 벗은 채 조심스레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 그가 죽었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몰래 조용히 움직였다. … 그 뒤, 여자 형제들에게 이런 일들을 이야기했더니, 그들은 모든 일이 내가 말한 그대로였다고 확인해주었다.’


참고로 오그스톤이 육체에서 벗어날 때 자유로움을 느꼈다는 말은 심각한 질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길 때 몸에서 분리되는 것 같았다는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몸에서 분리된 후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았다는 임사체험자들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그것이 그저 임사체험자들의 상상이거나, 일어났으리라 짐작되는 일들을 요행히 알아맞힌 것은 아닐까? 언뜻 생각하기에는 많은 체험자의 이야기가 둘 중 하나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심장 박동이 정지되었다가 되살아난 환자가 소생 과정을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하는지, 임사체험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의 이야기를 비교 조사한 연구가 둘 있다.

심장병 전문의 마이클 새봄은 임사체험자가 예상 밖의 일들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그들의 되살아난 과정을 정확하게 묘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심장 박동이 멈췄다 되살아났지만 임사체험을 하지 않은 환자는 모호하고 어긋난 부분이 많은 설명을 했다. 중환자실 간호사 페니 사토리는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을 5년 동안 연구해 새봄이 찾아낸 사실을 똑같이 확인했고, 사토리의 연구에서도 심장 박동이 멈췄을 때 몸에서 분리되는 체험을 한 환자들은 소생 과정을 정확하게 설명했지만, 그런 체험을 하지 않았던 환자는 소생 과정에서 사용한 장비와 과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튼 무의식 상태일 때 보고 들었다는 임사체험자들의 이야기 때문에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나의 어린 시절의 믿음이 흔들렸다. 그런데 내 넥타이의 얼룩을 보았다는 홀리의 말은 분명 나의 평소 인식 체계와는 어긋났지만, 한 가지 일만으로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알아차릴 수 없었던 뭔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홀리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게 아닌지 내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 많은 과학자는 이렇게 어느 정도 설명되지 않는 일들을 못 본 척하려고 한다. 그리고 골치 아파지면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부인하려고 한다. 그러나 신경 과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찰스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사람들은 “이상한 것들은 보통 카펫 밑으로 쓸어 넣으려고 한다. 너무 많아져서 가구가 쓰러지기 시작할 때까지는.” 보거나 들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 보고 들었다는 임사체험자들의 말(내 넥타이의 얼룩을 보았다는 홀리의 말처럼)에 이성적인 과학자라면 당황할 만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지면서 내 세계관 안의 가구는 넘어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이렇게 더욱더 이상한 임사체험의 특징을 접하며 주춤한다. 실제 이야기라기에는 너무 기이해져 믿을 수 있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그들이 보고 들었다는 일들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증언해줄 사람이 없더라도 내가 면담한 체험자들은 하나같이 진지한 데다 임사체험으로 받은 영향이 너무 커서 그들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임사체험을 존중하면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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