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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의 기원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세상 모든 것의 기원

강인욱 지음

흐름출판 / 2023년 10월 / 352쪽 / 20,000원





I. 잔치(Party): 요리하고 먹고 마시다



[막걸리] 막걸리와 맥주는 사실 같은 술이었다?


제사에 쓰인 막걸리:
막걸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처음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던 시기를 짐작할 수는 있다. 우리나라에서 막걸리의 주재료인 쌀이 재배되기 시작한 시점, 3,000년 전 이후부터 주조했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재료가 꼭 쌀뿐인 것은 아니므로 그전부터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중국에서는 허난성 자후 유적에서 막걸리를 담았던 흔적이 남은 토기가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제단 근처에 술독을 묻어서 관리하다가 제사 때가 되면 함께 마시면서 제사를 지낸 것으로 추정한다. 자후 유적의 토기를 통해 제사 때 음복하는 풍습의 역사가 1만 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가게 된 것이다.

빨대로 빨아 마신 맥주:
100여 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유적에서 맥주를 즐기는 모습이 묘사된 4,600년 전의 인장(seal)이 발견되었다. 빨대의 수로 보아 아마 4명까지 마셨을 것 같다. 맥주를 빨대에 꽂아 마시는 이유는 고대인들이 마시던 맥주가 막걸리처럼 탁하기 때문이었다. 빨대로 맥주를 마셨음을 보여주는 유물은 유라시아 초원 일대에서도 발견되었다. 2022년, 러시아 카프카스 초원 지역의 약 5,500년 전 무덤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빨대가 발견되었다. 마이코프 문화라 불리는 이 유적은 130년 전에 이미 발굴되었는데 최근 이 유물을 다시 분석한 결과, 구멍이 뚫린 쪽에서 보리 분말 흔적이 발견되었다. 맥주를 만드는 주재료인 보리의 기원이 근동이니 그곳의 맥주가 아마 카프카스 지역까지 전래되었던 것 같다.

[김치] 북반구를 따라 이어지는 ‘푸드 로드’


3,500년 전 빗살무늬토기로 만든 김장독:
2004년, 연해주의 ‘레티호프카’ 지역에서 3,500년 전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던 마을이 발굴되었는데, 거대한 항아리들이 잔뜩 묻혀 있었다. 고고학자 김재윤은 이 유적이 저장고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긴 겨울을 견디기 위해 큰 항아리에 음식을 보존해야 했을 것이다. 레티호프카의 저장 구덩이는 마을의 김장독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크라스키노(Kraskino) 발해 성터 발굴에 참여했을 때도 집 근처에서 늘 거대한 항아리들이 발견되었다. 러시아 학자들도 그 항아리들이 ‘고려인들의 김장독’과 똑같다며 신기해했다.

절임 배추, 유라시아인을 살리다:
동서양 곳곳에서는 김치와 유사한, 배추를 발효시킨 음식들이 유행한다. 가령, 독일의 사우어 크라우트, 오스트리아 알자스 지역의 슈쿠르트, 러시아의 절임 양배추(카푸스타)와 그것을 넣어 끓인 수프(시)가 그것들이다. 러시아인들은 고려인들의 김치인 한국식 당근 샐러드를 좋아한다. 이것은 19세기 말 러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이 만들어 먹은 음식이다. 이들은 이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 당하자 황무지에서 구할 수 있었던 채소로 김장을 하곤 했다. 이러한 고려인들의 전통은 유라시아 일대에서 겨울 내내 채소를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랑받으며 널리 퍼졌다.

과연 중국에서 김치가 기원했을까?:
중국에서도 김치와 비슷한 음식을 이른 시기에 만들어 먹었던 기록이 있다. 《여씨춘추》에 따르면 3,000년 전 주나라 문왕이 절임 채소를 먹었다고 한다. 사실 야채를 절여 먹는 전통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야채를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은 햇볕에 바싹 말리거나 절여서 발효시키는 것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아는 배추는 고려, 조선시대가 되어서야 한반도에 전해졌고 매운 김치의 역사는 400년, 통배추를 버무린 김장의 역사는 150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가 한국 대표 음식이 된 것은 그 안에 한반도의 지리적 환경을 활용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김치에만 들어가는 젓갈은 그 지혜의 정수다.

원조 논란보다 중요한 것:
한국 김치는 2013년과 2015년 각각 남한과 북한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선정 심사를 위해 유네스코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김치의 역사가 1,000년 정도라고 적혀 있었지만 기간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선정위원회 측은 김치의 원조를 따지지 않았다. 그보다 인류가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지혜롭게 저장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누었던 지혜를 김치에서 발견하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닭] 신라는 닭의 나라였다


닭, 신라의 역사와 함께하다:
닭은 인류 역사에서 신령한 존재로 대우받은 가축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라 신화에 닭이 등장한다. 《삼국사기》에는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 신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신화에서 닭은 상서로운 기운을 전달해주는 매개체로 서술되었다.

신라는 대외적으로 ‘계림’으로 불렸다. 《삼국유사》에는 인도(천축국)에서 신라를 ‘구구타예설라(矩矩??說羅)’라고 불렀다고 적혀 있다. ‘구구타’는 닭을 가리키고, 산스크리트어로 ‘예설’은 한자의 ‘귀(貴)’와 대응된다. 신라를 이렇게 불렀던 이유는 신라에서는 계신(?神, 닭의 신)을 공경하여 높은 이들의 관에 깃을 올려 장식했기 때문이다.

가야와 마한에서도 발굴된 닭 숭배 유적:
마한과 가야 지역에서도 닭을 신성시했던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1995년, 경남 고성군 동외동의 3~4세기 가야 고분 근처에서 특이한 청동기가 출토되었다. 청동기에는 닭처럼 벼슬이 있는 새 두 마리가 마주보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마한의 중심지였던 전남 영암군 수동마을에서도 똑같은 청동기가 출토됐다. 이는 당시에 두 나라 모두 동일한 제사 풍습과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즉, 두 나라 모두 닭처럼 생긴 신령한 새를 모시는 풍습이 있었다.

닭을 숭상한 신라인의 후예, 이제는 ‘치느님’을 받들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가축화된 다른 동물들과 달리 닭은 특정 지역에서 길들여진 후 세계로 퍼져서 다양하게 분화했다고 한다. 대체로 동남아시아, 중국 남부, 또는 인도 등 아열대 지역이 닭을 가축화한 기원지로 유력하다고 본다. 야생 닭이 이 지역에서 많이 살았기 때문에 일찍 닭을 가축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닭은 현대인들에게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자 별식이다. 특히 치킨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울 푸드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치킨 맛에 푹 빠진 나머지, 치킨을 ‘치느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장국] 숙취를 해결하며 화합을 도모하다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을 마시는 것은 한국만의 해장 문화:
한국에서 해장은 보통 개운한 뒷맛을 가진 국물을 마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처럼 ‘해장’이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선천적으로 많은 서양인들은 주로 도수가 낮은 술을 마시며 해장한다. 반면, 알코올 분해 효소가 선천적으로 적은 아시아인들의 경우에는 술로 해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중국 사람들은 연두부와 쌀죽, 일본 사람들은 된장국(미소시루)에 낫토를 먹는다. 몽골 사람들은 원래 우유를 발효시켜 약하게 알코올 성분이 함유된 쿠미스를 마시지만, 요즘에는 러시아의 영향으로 맥주를 많이 먹는다. 한국에는 아예 ‘해장국’이라는 음식이 따로 존재할 정도다. 모여서 해장하면서 서로 건강을 생각해주는 해장 문화는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라고 여겨진다.



Ⅱ. 놀이(Play): 놀고 즐기며 유희하다



[놀이] 인류의 진화를 이끈 즐거운 유희


놀면서 배우는 초원의 지혜:
고대 유목 민족의 아이들은 말타기, 활쏘기, 씨름과 같은 놀이를 통해 기마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쌓아나갔다. 유목 민족 아이들은 걷기도 전부터 기마 놀이를 하며 말 타는 법을 익혔는데, 어린 시절부터 체화한 능력으로 인해 유목 민족들은 가공할 능력을 지닌 기마 부대를 갖추게 된다. 흉노, 몽골, 티무르 제국에 이르기까지 2,000년간 초원의 전사들이 유라시아를 제패한 배경에는 어릴 때부터 놀이로 단련한 기마 전사로서의 실력이 숨어 있다.

<수렵도>에 나타난 고구려인의 놀이:
무용총의 <수렵도>는 고구려인들이 사냥과 활쏘기를 하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이상한 구석이 몇 군데 있다. <수렵도> 아래쪽에 위치한, 기마 전사는 호랑이를 사냥하지만 화살 끝이 뭉툭해서 죽일 수 없어 보인다. 또한 다른 수렵도와 달리 호랑이가 쫓기는 중이다. 사실 <수렵도>에 그려진 장면은 실제 수렵이 아니라 길들인 호랑이와 수렵 연습을 하는 장면이다. 사냥 놀이인 셈이다. <수렵도> 위쪽도 이상하기는 매한가지다. 도망가는 사슴을 파르티안 사법(등 뒤로 돌아 화살을 쏘는 기법)으로 겨누는 전사가 보인다. 파르티안 사법은 유목 민족의 기술로 달려드는 맹수를 피해 도망치는 시늉을 하다가 몸을 돌려서 사냥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렵도>에서는 도망가는 사슴을 향해 쓸데없이 유려한 기술을 선보인다. 이는 곧 실제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활쏘기 방법을 수행하는 중이라는 의미다.

고구려가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북방 초원의 유목 민족이 보유한 선진적 전술과 무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덕분이다. 고구려인들은 놀이를 통해서 초원의 선진적인 기마술을 수용하고 습득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축구] 데스 매치에서 세계인의 축제로


동서양에서 고루 발현한 인류 최초의 공놀이:
마야문명에서는 팀을 가르고 운동장 벽에 달린 골대에 골을 넣는 경기를 했는데, 경기에서 진 사람들은 인신 공양 제물로 바쳐졌다. 또 다른 공놀이의 발상지는 유라시아 초원이다. 처음에는 동물의 오줌보를 차고 놀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가죽으로 공을 만들어서 사용했다. 땅 위에서 하던 공놀이는 말 위에서 공을 두고 겨루는 경기로 발전했다. 마상(馬上)에서 이루어진 공놀이는 ‘격구(擊毬)’라고 불리며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 널리 유행했다. 최근 마상 경기의 기원이 실크로드임이 유물을 통해 밝혀졌다. 중국 신장성 샨샨 양하이 유적에서는 약 3,2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목민들의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다양한 마구(馬具, 말을 타는 도구)와 함께 공, 스틱까지 발견되었다. 고대에 제작된 공은 대개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탄성이 좋은 고무가 쓰이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현대 축구의 원형, 중국에서 시작되다:
현대 축구와 가장 유사한 공놀이인 축국(蹴鞠)은 기원전 3~4세기경에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중국은 북방 초원의 유목 민족으로부터 받아들인 마상 공놀이를 자신들에게 걸맞은 방식으로 진화시킨다. 심판을 엄정히 볼 것을 맹세한 ‘축국의 맹세’도 사료로 전해진다. 이후 축국은 한반도로도 전해져 발해와 신라 그리고 일본에까지 널리 퍼졌다.

우리나라에도 축국과 관계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훗날 태종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는 어느 날 김유신의 집에서 축국을 하게 된다. 김유신은 축국을 하던 도중 고의로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끊어지게 하고 자신의 누이를 불러 김춘추의 옷을 꿰매게 한다. 이 일을 계기로 김춘추와 김유신은 혼사를 통해 한 집안사람이 된다.

[여행] 인류의 DNA에 새겨진 방랑 본능


인류를 만든 세 번의 대이동:
인류의 조상은 크게 세 번에 걸쳐 전 세계로 확산됐다. 호모에렉투스가, 하이델베르크인이, 마지막으로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세계로 확산되었다. 현생인류는 1만 7,000년 전,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까지 건너갔다. 이윽고 현생인류는 ‘인류세(人類世, 인류가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킴으로 인해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라는 말이 창안될 정도로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생물 종으로 등극했다.

여행, 역사를 만들다:
인류의 역사에서 여행은 목숨을 건 도전이기도 했다. 국가가 파견하는 사신단도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가령, 발해는 8세기에 100년간 16번이나 일본으로 사신단을 파견했는데, 그중 절반은 사신단을 실은 배가 표류하거나 난파했다. 배가 전복되어 수장되거나 잘못 기착해서 아이누(일본 홋카이도와 사할린 등지에 사는 종족)인들에게 살해당하기도 했다.

인류가 오래전부터 타지로 이동하고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은 상당하다. 발굴 작업을 하다 보면 발굴지와 관계없는 지역의 물건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출토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카자흐스탄 지역의 왕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황금 보검이 출토되었다. 어떻게 신라 땅까지 전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실크로드를 통해 초원의 민족과 신라인이 활발히 이동하고 교류했다는 사실이다.

영원으로 떠나는 여행:
인간은 현실에 나 있는 길로만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영원한 삶을 꿈꿨던 인간은 내세에 대한 믿음과 상상을 토대로 더 멀고 아득한 여행길을 떠났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일컬어지는 <길가메시>는 4,800년 전 수메르 문명권 국가인 우루크를 다스렸던, 왕 길가메시가 영생을 찾아 떠난 이야기다. 영생을 얻고자 떠났지만 모험 끝에 영생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원을 향해 떠나는 여정을 묘사한 흔적은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경남 울산시에 있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다. 반구대 암각화 가장 높은 곳, 마치 태양이 떠 있을 법한 위치에는 배를 탄 사람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처럼 태양을 향해 배를 타고 떠나는 모습이 새겨진 암각화는 북유럽과 시베리아 바닷가 암각화에서 흔히 발견된다.

[개] 야생 늑대, 인간의 반려동물이 되다


인간, 야생 늑대를 개로 길들이다:
오늘날의 개는 야생 늑대를 길들인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인 정설이다. 오늘날의 개는 빙하기가 끝날 무렵인 약 1만 5,000년 전, 유럽 근방에 서식하던 회색늑대를 길들인 것을 기원으로 본다. 이때부터 인류는 개와 동고동락했다. 독일 베를린 오베르카셀의 1만 4,000년 전의 무덤에서는 남녀의 인골 가운데에서 어린 강아지의 뼈가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 뼈에 남은 흔적으로 짐작했을 때 이 강아지는 죽기 전까지 인간의 보살핌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개에 대한 애정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호모사피엔스의 전통이었다.

늑대의 치명적인 유혹: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한 역사는 6,0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개는 호모사피엔스의 등장과 더불어 우리 삶에 늘 함께했다. 분명한 건 개는 인간의 사냥감으로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늑대는 인류에게 위험 요소였지만, 많은 고기나 무언가를 지어 입을 수 있는 털을 주는 동물이 아니었다. 인간은 잡아도 쓸모가 없는 늑대를 길들이기 시작한다. 개는 후각과 민첩성이 뛰어나 사냥에 유리했고, 인간의 정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 중 감성지수가 제일 높은 동물이 개다. 개는 사람처럼 눈을 마주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사냥에도 도움을 주고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동물에게 인간은 곁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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