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소식의 과학
정재훈 지음 | 동아시아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소식의 과학
정재훈 지음
동아시아 / 2023년 7월 / 256쪽 / 16,000원
불멸의 선구자, 알비제 코르나로알비제 코르나로는 ‘장수’를 목표로 하고 ‘장수의 요령’을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고자 했던 사람으로, 소식에 대한, 그리고 소식의 과학에 대한 논의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혹자에 의하면 그는 과학과 의학이 채 발달하지 않은 16세기에 10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참고로 그는 의지력이 강하고 야심 찬 인물이었지만 젊어서 방탕한 생활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일찍부터 부를 축적한 지주였던 그는 퇴폐적인 파티를 즐기고 폭음과 폭식을 반복했다. 그 결과 30대 초반에 이미 그의 신체 여기저기에 해로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건강 문제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가 외동딸 키아라를 얻었을 때쯤에는 증상이 더욱 심각해졌다. 배가 아프고 통풍 발작이 시작되었으며 계속되는 미열에 늘 목이 말랐다. 항상 목이 마르다는 것은 당뇨병의 주요 증상이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그에게 남은 시간이 몇 달밖에 되지 않는다는 시한부 판정을 내렸고, 가능한 치료법이 단 하나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절제되고 질서 있는 생활방식을 따르는 것이었다. 원래 먹던 양보다 적은 양의 음식과 와인에 만족하고 배가 부르기 전에 식탁에서 자리를 뜨라는 권고였다. 그런데 의사가 아는 한 그런 극적인 생활방식 변화에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코르나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의사의 조언을 따라 식습관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고, 그는 소식하는 습관을 갖게 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모든 질환에서 회복되었다고 자랑하고 다니게 되었다.
자신감을 얻은 코르나로는 그 당시 사람들이 따르던 식사법에 반하는 자신만의 식사법을 테스트하기로 했다. 참고로 1,500년 전 그리스 의사 갈레노스가 세워둔 식사법의 틀이 코르나로가 살던 르네상스 시대까지도 유효했다. 그리고 15세기 독일의 요리책 『주방의 마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당신의 체질을 알면 무엇이 당신에게 좋은지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음식을 준비하면 된다.” 당시 의학이론상 그의 체질에 맞는 음식은 와인, 멜론, 돼지고기와 생선 등이었다. 이론에 따르면 이 음식들을 먹음으로써 몸의 균형을 맞출 수 있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코르나로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입맛에 잘 맞기는 했지만 건강에는 해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코르나로는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먹느냐’에서 답을 찾았다. 그는 음식의 양이 질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의 말마따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은 각자의 체질에 맞는 음식도 아니고, 오늘날 말하는 유기농, 자연식도 아니었다. 아직 배가 고플 때 식탁에서 일어나는 것, 식욕을 채울 때까지 먹고 마시지 않는 것, 늘 모자란 듯 먹는 것이야말로 건강을 위한 최선책이라고 믿었다.
얼마나 먹어야 소식인가소식을 시작한 코르나로는 하루 340g의 음식을 먹고 400ml의 와인을 마셨다. 그가 주로 먹었던 음식은 빵, 수프, 와인이었다. 모두 합해서 하루에 1,500~1,700kcal가량의 열량을 섭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성인 남성에게 권장하는 하루 섭취 열량이 2,500kcal, 성인 여성의 경우 2,000kcal라는 점을 감안하면, 코르나로의 경우 섭취 열량 제한의 폭이 큰 편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그가 주로 음식의 질보다 양에 주의를 기울이기는 했지만, 음식 선택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참고로 음식을 늘 많이 먹는 사람은 영양소의 균형에 대해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어떻게든 필요한 영양소를 다 채워 먹게 되어 있다. 하지만 적게 먹을 때는 영양 균형이 중요하며, 특히 단백질 섭취가 모자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무튼 코르나로는 현대인과 같은 영양학 지식을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나름의 경험칙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잘 맞는 식단을 구성했다. 적게 먹을 때는 포만감이 오래가도록 먹어야 한다. 그래야 배고픔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고 소식을 유지할 수 있다. 코르나로는 자신이 살던 파두아 지방 사람들이 즐겨 먹던 통곡물, 거친 밀가루, 라드로 만든 빵을 먹었다. 지방은 음식이 위장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 포만감을 길게 해주면서 혈당치가 서서히 올라가도록 도와준다.
코르나로의 식단에서 또 하나의 핵심요소는 파나텔라라는 수프였다. 이는 거세한 수탉 고기로 낸 맑은 육수에 달걀과 빵을 넣어 만든 걸쭉한 국물 음식이다. 수프를 먹는 것도 포만감을 길게 유지하면서 열량 섭취를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영양학 교수 바버라 롤스에 의하면 에너지 밀도가 낮은 음식을 먹는 것은 다이어트에 확실한 효과가 있다.
에너지 밀도란 음식물의 중량에 대비한 에너지, 즉 열량의 양을 뜻한다. 가령 수프 한 그릇을 먹어도 섭취 열량은 햄버거 6분의 1 조각과 비슷한 정도에 불과하다. 개당 40g가량인 초코파이 하나의 열량은 171kcal이지만, 딸기로 동일한 열량을 섭취하려면 적어도 500g 이상을 먹어야 한다. 똑같은 열량을 섭취하더라도 수분 함량이 높고 에너지 밀도가 낮은 음식을 주로 먹으면 다이어트가 가능하다는 게 롤스의 주장이다. 한편 스스로 구성한 식단에 대한 코르나로의 자부심은 아주 컸다. 그는 자신의 식단이 기적과 같은 놀라운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자신감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한때는 자신이 불멸이라고 단언할 정도였다.
소식의 역사에 코르나로가 남긴 발자국소식의 역사에서 코르나로가 중요한 인물인 것은 그가 소식을 실천한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남긴 『절제하는 삶』이라는 책 때문이다. 1558년 초판을 발행한 뒤에 1562년에 개정판, 1565년에 또 다른 개정판을 냈다. 『절제하는 삶에 대한 논설』로도 알려진 이 책에서 코르나로는 사람들이 자신의 식습관을 따르기만 한다면 질병과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썼다.
한편 빌 기퍼드는 『스프링 치킨』에서 코르나로가 『절제하는 삶에 대한 논설』을 처음 썼을 때 그의 나이는 81세, 마지막 개정판을 냈을 때 나이가 95세였다고 썼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면 그 생각이 맞다. 앞에서 말한 초판 발행연도와 마지막 개정판 발행연도는 7년 차이인데, 그사이에 코르네로는 14살을 더 먹었다. 알고 보면 단순한 이유이다. 코르나로는 책의 개정판을 낼 때마다 자신의 출생 일자를 재설정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요즘의 베스트셀러 작가나 유튜버들과 비슷하다. 있는 그대로 말하기보다는 부풀려 말해야 대중이 주목하고 그에 따라 명성을 얻기 쉽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노화와 장수에 대한 현대 저작물에서 코르나로에 대해 소개할 때도 비슷한 패턴을 따른다.
어쨌든 코르나로의 거짓말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코르나로의 책이 진정한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것은 그의 사후였다. 그가 사망한 지 20여 년이 지나, 16세기 말에 그의 손자들이 책을 새로 펴냈다. 소식과 절제만으로 100세 가까이 살고 그것도 활력이 넘치는 생활을 했다니, 당시 이탈리아의 과학자와 의사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17세기에 들어서는 라틴어와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판까지 출간되면서, 코르나로는 비록 사후이지만 소식과 장수에 관한 가장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여기에 미국어판이 가세하면서 코르나로의 명성은 더더욱 드높아졌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과장에 관한 한 세계 제일 아닌가. 17세기 미국판이 나오면서는 책 제목부터가 바뀌었다. 『불멸의 멘토의 건강하고 부유하며 행복한 삶에 대한 확실한 안내서』라는 장황한 제목에, 번역판이 아니라 개작에 가까운 편집이었다.
미국인의 코르나로에 대한 사랑은 20세기까지도 계속됐다. 1920년대에는 『100세까지 사는 법』이라는 또 다른 판본이 포켓북 형태로 출간되고, 이 판본을 통해 코르나로는 소식의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와 연결된다. 현대 노화와 장수의 과학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미국의 영양학자이며 생화학자인 클라이브 매케이가 코르나로의 주장이 담긴 소책자를 읽게 되었던 것이다.
본격적인 소식 연구가 시작되다매케이는 코르나로가 강조한 소식과 절제하는 삶의 방식에 과학적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사실 당시 매케이가 몸담은 영양학 분야는 과학자들이나 대중에게 그다지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하지만 매케이 또한 코르나로와 마찬가지로 적당히 과장된 언어로 대중의 관심을 끌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실험으로 쥐의 수명을 사람으로 치면 무려 120세까지 연장했다고 선언했다.
매케이가 선도적 연구를 통해 동물의 수명이 소식으로 연장된다는 점을 밝힌 뒤 여러 과학자들의 연구가 뒤따랐다. 2023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연구팀은 《네이처 에이징》에 실린 연구에서 열량 섭취를 25% 줄인 사람들의 노화 진행이 2~3% 느려졌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사망 위험으로 치면 10~15%가 감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금연과 비슷한 정도의 효과이다.
인간의 수명은 너무 길기 때문에 실제로 죽음을 기다려 생존율 차이를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신 연구팀은 노화와 관련된 DNA 메틸화와 같은 생물학적 지표를 관찰하는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DNA 메틸화는 DNA 분자에 메틸기가 화학적으로 추가되는 것이다. 노화가 진행되면 DNA의 메틸화 수준이 달라지므로, 이를 관찰함으로써 노화의 진행 정도를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연구로는 소식이 수명 연장 또는 노화 방지에 어느 정도로 효과를 나타내는지 온전히 파악하기 힘들다. 간접 추정 방식인 데다가 참가자들이 실제로 섭취 열량을 25% 줄인 게 맞는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식이 인간의 건강에 어떤 효과를 주는지 더 명확히 알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고 있다. 열량 제한의 효과를 부분적으로 흉내 내는 새로운 당뇨병 치료제들이 여럿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약물을 투약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면 소식이 노화를 늦추는 효과가 있는지 더 분명히 알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과연 그럴까?
역발상의 당뇨약, 소식을 흉내 내다백세인의 숫자는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국제연합 추산에 따르면, 1990년 전 세계 백세인의 수는 9만 5,000명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무려 45만여 명이 되었다. 그리고 2100년이 되면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의 수가 2,500만 명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110세를 넘겨 생존하는 초백세인의 수도 1960년대 이후 10배 이상 늘었다. 예를 들면, 이웃 일본에서만도 초백세인의 수가 2005년 22명에서 2015년 146명으로, 10년 사이에 거의 7배로 증가했다.
왜 나이 들면 모두가 당뇨 위험에 직면하는가백세인과 그 자녀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특히 백세인과 일반인이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성장호르몬, 인슐린, 그리고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IGF-1) 신호전달과 관련한 부분들이다. 그런데 모두가 당뇨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나이 들수록 당뇨 위험이 높아진다. 노화는 인슐린 저항이 증가하고 인체가 당을 처리하는 기능이 감소하는 현상과 관련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백세인과 그들의 자녀는 이런 위험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포도당 용액을 마시고 난 후의 혈당치를 측정해 보면, 백세인의 식후 2시간 혈당치는 70대 노인보다 낮고 50대 미만 성인과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백세인과 그들의 자녀는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의 생물학적 활성 또한 낮은 편이었다. 아직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가 어느 정도 수준일 때 건강하게 오래 사는 데 최적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의 혈중 농도가 낮으면 사망률과 질병 위험이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세인과 그 자녀에게서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의 활성이 낮게 나타난다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오랫동안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백세인과 섭취 열량을 제한한 사람 사이에 유사점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소식으로 섭취 열량을 제한하면 인슐린 농도가 낮아지고 인슐린 민감도는 향상된다. 인슐린 민감도를 높여주는 아디포넥틴 호르몬도 더 많이 만들어진다. 참고로 2016년 이탈리아 메타분석 연구에서는 섭취 열량 제한이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 농도를 낮춰준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유추하면 100세 이상 장수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은 따로 소식이나 단식을 하지 않아도 마치 평생 소식을 하는 것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뒤집어 말하면, 장수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소식이나 단식으로 섭취 열량을 제한해야 장수 유전자를 지닌 사람의 삶을 따라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참고로 동물실험 결과만 본다면 섭취 열량을 제한하는 것에는 확실히 수명 연장 효과가 있다. 그런데 섭취 열량 제한의 효과를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사람을 실험동물마냥 가둬놓고 자유를 완전히 제한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연구는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이렇게 실제 소식을 통해서 소식의 효과를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약을 이용해 알아보면 어떨까?
역발상의 당뇨약이 알려주는 소식의 효과당뇨병은 소변으로 당이 빠져나간다고 하여 붙여진 질환명이지만 그런 일은 웬만해서는 생기지 않는다. 인체는 당을 아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신장에서 걸러서 소변에 버려지는 포도당을 거의 100% 재흡수한다. 이렇게 하여 버리지 않고 다시 거둬들이는 포도당이 하루에 180g이다. 포도당의 열량은 100g당 400kcal로, 밥 한 공기의 열량이 300kcal이니 하루에 신장이 회수하는 탄수화물은 밥 두 공기 반에 맞먹는 양이다. 이 정도면 과식을 걱정하는 현대인에게는 버리고 싶은 유혹이 충분히 생길 만한 양이다. 하지만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체가 매일 이만큼의 포도당을 소변으로 버리고 다녔다면 아마도 생존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신장에서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에서는 포도당도 일단 함께 내보낼 수밖에 없다. 포도당의 분자량이 180으로 크기가 작은 편이기 때문이다. 대신 신장 사구체에서 걸러진 포도당은 근위 세뇨관에서 다시 재흡수된다. 이때 내보냈던 포도당의 80~90%는 SGLT2라는 수송체를 통해, 나머지 10~20%는 SGLT1이라는 수송체를 통해 재흡수된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의 경우처럼 핏속을 돌아다니는 포도당의 양이 지나치게 증가하면 신장이 재흡수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그러면 이내 재흡수되지 못한 포도당이 소변으로 흘러나간다. 보통 혈당이 180~200mg/dL에 이르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당뇨병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때 이렇게 혈당치가 높게 유지된다. 이 경우 핏속에 돌아다니는 당이 워낙 많으니까 소변으로 걸러져 나가는 포도당의 양도 늘어나는데, 인체는 포도당이 빠져나가는 걸 원치 않는다. 더 많이 버려지는 포도당을 어떻게든 다시 들고 오려고 재흡수 수송체 SGLT2를 더 많이 만들어 낸다. 높은 혈당치를 낮추기 위해 어떻게든 핏속의 포도당을 덜어내면 좋으련만, 우리 몸은 필요 없는 물건을 도무지 버리질 못하는 사람처럼 아끼는 데에만 익숙하다. 어떻게든 포도당을 다시 들고 오려고 애쓰니 혈당치가 낮아질 리 없다.
SGLT2 억제제는 이렇게 인체가 소변으로 버린 당을 다시 가지고 들어오는 걸 막아서, 혈당치를 떨어뜨리는 약이다. 소변 속 당의 양은 도리어 많아지니까 당뇨 자체는 오히려 더 심해진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이 약의 기전이 역발상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하지만 소변으로 여분의 당이 제거되는 만큼 당뇨병 증상은 개선된다. 췌장에서 분비하는 인슐린의 작용과 관계없이 혈당을 낮춘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더해 혈압이 약간 떨어지고 체중 또한 감소하게 된다. 혈압이 낮아지는 것은 소변 속 포도당 농도가 상승하면서 삼투성 이뇨제와 같은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체중이 감소되는 이유는 이 약을 복용하면 평소보다 소변으로 버리는 당의 양이 늘어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빠져나가는 포도당의 양은 하루 70~90g, 열량으로 환산하면 280~360kcal 정도가 된다. 체중 감량을 위해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하루 밥 한 공기만큼을 줄이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체중이 2~3kg 감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