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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프론테라

김희순 지음 | 앨피


라 프론테라

김희순 지음

앨피 / 2023년 7월 / 404쪽 / 18,000원





라 프론테라(la frontera), 미-멕 국경의 형성




미국은 북쪽으로는 캐나다와 남쪽으로는 멕시코와 국경을 공유하고 있는데, 미국과 멕시코가 공유하는 이 국경을 흔히 ‘미-멕 국경’이라 하지만, 미국에서는 공식적으로 ‘남서부 국경(the Southwest border)’이라 한다. 그리고 멕시코에서는 미국과 공유하는 북쪽 국경을 “프론테라(la frontera)”라 한다. 참고로 “border”가 ‘경계’의 의미가 강하다면, “frontera”는 ‘변경’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아무튼 미국과 멕시코를 경계 짓는 이 기나긴 국경은 두 국가 간의 국경일 뿐 아니라, 북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경계이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나아가 부유한 세계와 빈곤한 세계 간의 경계이다. 앞으로 이 책에서 미-멕 국경이라 일컬을 이 국경은, 아마도 전 세계에 존재하는 국경 가운데 일반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국경 중 하나일 것이다. 왜냐하면 최근 몇 년간 밀입국자 문제, 카라반 행렬, 마약 카르텔 문제, 트럼프 대통령의 국경 장벽 건설 등으로 해외 뉴스에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국경이 형성된 지 채 2백 년이 안 되었고, 불과 1백 년 전까지만 해도 몇 안 되는 국경 마을에는 경계라는 것이 없다시피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장에서는 미-멕 국경이라 알려진 3,145킬로미터의 긴 경계가 형성된 순간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외로운 별’ 텍사스의 반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은 미-멕 전쟁(1846~1848)의 결과로 형성된 것이며, 미-멕 전쟁의 불씨는 ‘외로운 별’ 텍사스의 형성과 독립에서 촉발되었다. 현재 미국의 영토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모두 포함하고 있지만, 18세기 후반 독립 당시만 해도 미국은 북아메리카 대륙 동부 지역에 치우친 크지 않은 나라였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미국은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아갔다.

북미 대륙 북동부에 치우쳐 있던 미국의 영토는, 1803년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하면서 서쪽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고, 1848년 미-멕 전쟁의 결과 멕시코 북부 영토가 귀속되면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모두 아우르게 되었다. 여기에 1867년에는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하고, 1898년 미-서 전쟁으로 스페인으로부터 괌과 푸에르토리코에 대한 소유권과 필리핀 식민지에 대한 권리를 얻었다. 보충 설명하면, 미-멕 전쟁 이전까지 미국 중서부와 서부 지역, 즉 캘리포니아·뉴멕시코·애리조나·텍사스·캔자스 등은 스페인 식민지에 속했으나, 멕시코 독립 이후에는 멕시코에 속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지역은 스페인 식민지 시기 제국의 변경으로 주요 관심 지역이 아니었다. 은이 나지 않았고, 값비싼 열대작물이 재배될 만큼 기후가 덥지 않았으며, 제국의 중심지로부터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이후 신생 독립국가였던 멕시코 정부는 비교적 인구가 적고 발전이 늦었던 북부 지역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목 하에 「식민화법」을 발표하였고, 이를 통해 북부 변경 지역에 정착하는 외국인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토지를 불하해 주고, 일정 기간 세금을 면제해 주는 산업장려정책을 펼쳐 미국을 비롯한 유럽 출신 백인들의 정착을 유도했다. 그 결과, 당시 미국 동남부 지역, 우리가 흔히 ‘남부’ 혹은 ‘딥 사우스(deep south)’라고 부르는 지역의 목화 농장들이 텍사스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이 지역의 외국계 이주민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여, 1830년 약 7천 명이던 미국계 외국인이 1835년에는 3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텍사스 지역의 멕시코계 인구도 3,500명에서 8천 명으로 증가하였으나, 그 증가 폭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즉, 텍사스 지역의 발전은 사실상 미국인들이 주도하였다. 그런데 노예제로 인해 텍사스 주민과 멕시코 정부 간에 갈등이 촉발되었다. 신생 독립국인 멕시코는 1829년 공식적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한 반면, 당시 텍사스의 주요 산업인 목화 농업은 전적으로 흑인 노예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멕시코 정부는 텍사스 지역으로의 추가적인 노예 유입을 금지하였지만, 백인 농장주들은 계속해서 흑인 노예들을 유입시켰다. 이는 북부 지역 식민화 정책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태도 변화를 가져와, 1830년 멕시코 정부는 북부 지역에 백인계 인구의 유입을 금지하였다. 나아가, 기존에 정착한 백인계 인구에게 부여되던 특혜를 철회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에 텍사스에 정착한 미국계 백인들 사이에서 멕시코로부터 독립하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텍사스 지역에서 반(反)멕시코 감정이 높아져 1835년경 독립운동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1836년 3월 텍사스가 독립을 선언하였는데, 텍사스의 독립 선언은 멕시코 중앙정부에게는 변방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 사건이었다. 그래서 멕시코 정부는 산타안나 장군이 이끄는 멕시코 정부군을 보냈고, 알라모전투에서는 멕시코 진압군이 승리하였으나, 연이은 하신토전투에서는 텍사스 독립군이 승리하고 산타안나 장군이 포로로 붙잡혔다. 전쟁에 패한 멕시코는 「벨라스코 조약」을 통해 텍사스의 독립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멕시코를 상대로 한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텍사스 주민들은 독립된 하나의 나라를 세우는 것보다 미국에 편입되고자 했다. 그러나 독립 이후 곧바로 미국으로 편입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독립 후 10년 가까이 지난 1845년에야 미국 의회가 텍사스 합병을 승인하였다. 미국 의회가 텍사스 합병을 결의하자, 멕시코는 미국과 단교하였다. 멕시코의 단교 조치에 대하여 미국은 멕시코와 텍사스 간의 국경을 문제 삼으며 기존의 국경선에서 240킬로미터 정도 서쪽에 위치한 리오그란데강을 국경으로 주장하였다. 이후 국경의 위치를 둘러싸고 미국과 멕시코 간에 잦은 교전이 이어졌고, 급기야 1846년 5월 13일 미국이 멕시코에 선전포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미-멕 전쟁과 국경의 형성


미국이 멕시코에 전쟁을 선포하자, 캘리포니아의 백인계 주민들도 멕시코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미국은 세 방향으로 전력을 배치하였다. 우선 전쟁의 주요 전장이었던 알라모를 비롯한 내륙 방향으로 전선을 형성하고, 곧장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 방향으로 남하 진격하였다. 서쪽으로는 캘리포니아 쪽으로 군대를 배치하여 당시 멕시코 영토의 북부 지역을 점유하였다. 남쪽으로는 멕시코만을 가로질러 베라크루스(Veracruz)항을 통해 수도인 멕시코시티로 진격하였다.

이후 1847년 3월 멕시코만의 베라크루스항을 점령한 미군 병력은 5월 멕시코시티에 입성하고, 그해 9월 멕시코시티를 점령하였다. 멕시코 정부군은 케레타로주까지 후퇴하였다. 이후 1848년 이달고주 과달루페에서 멕시코와 미국 간에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체결하고 전쟁을 종식시켰다. 이 조약으로 당시 멕시코 대통령이었던 산타안나는 멕시코 영토의 절반 이상인 200만 제곱킬로미터를 미국에게 판매하여야 했다. 미국은 멕시코의 영토를 받는 대신에 멕시코 정부가 미국의 농장주들에게 지불해야 할 전쟁배상금 1,500만 달러를 대신 지불해 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그러나 양국 간의 영토가 최종적으로 확립된 것은, 1853년 「라 메시야 조약」에 의한 ‘개즈던 매입’ 이후이다. 멕시코는 약 7만 8천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리오그란데강 유역의 영토를 940만 달러 가격에 미국에 판매하였다. 미국은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 이전부터 이 지역까지의 영토를 원하였으나, 당시 멕시코는 해당 지역에 대한 이양을 거부하였다. 참고로 「라 메시야 조약」은 멕시코 산타안나 대통령의 적극적인 의사로 체결되었고, 그 배상금은 그의 개인적 치부에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국가 간 경계의 위치가 뚜렷하지 않았기에 정확한 수치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1848년 이전 멕시코는 40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과 개즈던 매입으로 멕시코는 200만 제곱킬로미터의 영토를 상실하였다. 당시 상실한 영토는 현재 미국의 애리조나·캘리포니아·네바다·뉴멕시코·텍사스·유타주 전체와 콜로라도·오클라호마·알칸소·네브라스카·와이오밍주의 일부이다. 그 결과, 양 국가 간에는 3,140여 킬로미터의 국경선이 형성되었다.



닭장차를 타고 간 멕시코 농부들




아이러니하게, 미-멕 국경이 형성된 이후 국경을 넘어선 두 국가 간의 교류는 새로운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미-멕 국경은 다른 국경보다도 인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미국이 새로 획득한 땅을 개척하면서 노동력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국경이 그어진 이후, 멕시코인들은 국경 너머 미국 서부 지역에서 광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성장하며 농업지대가 형성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었다.

이후 닭장차를 타고 미국 농장에서 아몬드와 오렌지, 포도를 따던 이주민들은 점차 미국 농촌에 정착하였다. 이들의 노동력이 필요한 미국 정부는 ‘브라세로(Bracero)’라는 정식 프로그램을 통해 공식적인 노동이주를 추진하였다. 이후 멕시코의 모라토리엄 선언(1982)과 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1994)로 국경 너머 이주하는 노동력의 규모는 전례 없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맨손으로 미국의 개척과 발전을 일군 멕시코인들은 주류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만의 삶을 살았으며, 고용주들은 불법이라는 틀에 가두어 그들을 더욱 살뜰히 착취하였다. 이후 불법이주민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멕시코인들은 미국 이주 물결을 늦추고 있지만, 중앙아메리카 국가의 이주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농업노동자에서 도시 노동자로


미국과 멕시코 간의 노동이주는 초기에는 농촌에서 일하는 계절노동자가 주를 이루었다. 이후 이주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순환하는 노동이주를 멈추고 미국의 농촌 마을에 정착하거나 대도시지역의 경제에 편입되는 멕시코계 인구가 증가하였다. 그런데 두 국가가 무려 3천 킬로미터가 넘는 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국경선을 넘는 이주가 당연히 빈번할 것 같지만, 국경에서도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는 구간은 제한적이다. 현재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 지점은 총 50개로, 대부분 도시지역에 위치해 있고 적법한 서류를 갖추어야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멕시코인은 적법한 비자 없이 미국 이주노동을 도모하며, 이들은 지정된 월경 지점이 아닌 곳에서 국경을 넘으려 한다.

한편 미-멕 국경 3,145킬로미터에 모두 장벽이 설치되어 있는 것은 아니어서 국경을 넘는 일이 쉬울 것 같지만, 이는 위험하고 고된 일이다.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 북부에는 로키산맥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고, 상당 부분이 사막기후 지역이다. 게다가 국경선을 따라 입지한 마을이나 도시는 40개 정도로 대부분 국경을 따라 마주하고 있다. 따라서 국경 지역은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이나 험준한 산맥 지역이 차지하고 있어, 국경을 넘으려다 길을 잃고 헤매거나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곤 한다.

참고로 3천 킬로미터가 넘는 긴 국경이지만, 주된 이주 경로는 세 개 정도다. 멕시코의 티후아나를 넘어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로 입국하는 서부 노선, 멕시코의 시우다드 후아레스를 거쳐 텍사스주 엘패소로 입국하는 중부 노선, 그리고 몬테레이-누에보 라레도-라레도를 거쳐 텍사스주 샌안토니오로 이어지는 동부 노선이다. 그런데 이 중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모든 이주민이 가장 선호하는 경로는 멕시코의 티후아나를 경유하는 노선이다. 티후아나에서 국경을 넘으면 미국의 해군기지이자 대도시인 샌디에이고가 있고, 그로부터 불과 2시간 거리에 로스앤젤레스가 있다. 게다가 캘리포니아주는 과일 및 채소 생산이 주를 이루는 미국의 대표적인 농업지역이다. 즉, 티후아나를 거쳐 미-멕 국경을 넘는 경로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미국 내 일자리에 접근하기 좋은 경로이다.

한편 멕시코 이주노동자들은 일찍이 농업 계절노동자로 미국 농촌지역의 주요 노동자 집단을 구성하였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 미국에서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멕시코계 이주민도 도시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멕시코계 이주민이 도시 정착 과정 초기에 주로 정착한 도시는 로스앤젤레스였다. 그런데 농촌지역으로의 이주와 도시지역으로의 이주는 다른 경향을 나타냈다. 미국 이주 역사가 오래된 지역, 특히 멕시코 북부 지역 마을들에서는 농촌지역으로 이주하는 경향이 강하였고, 이주 역사가 긴 만큼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한 합법적 이주민의 비중이 높았다. 반면에 이주 역사가 짧은 지역일수록 도시 이주 경향이 강하고, 불법이주 비율이 높았다. 북부 지역에 비해 뒤늦게 이주 역사가 시작된 멕시코 남부 지역의 이주민들은 도시에 정착하는 비율이 높고, 불법이주의 경향도 높게 나타났다.

멕시코인들의 국제 노동이주에 대해 연구한 뒤랑과 매시는 멕시코인들의 이주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양국 간의 경제구조의 차이이지만, 이주의 제반 사항을 결정하는 것은 이주자가 속한 지역사회의 이주 역사라고 하였다. 특히 마을의 이주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경우, 지역사회에서 최초로 이주를 시작한 사람(프런티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프런티어는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정도의 학력을 갖추고, 농토를 소유한 중간계층에 속하며, 가족을 동반하지 않은 노동연령의 젊은 남성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마을의 이주 역사가 짧은 시기에는, 미국으로의 이주가 더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기에 일자리를 얻고 정착할 수 있는 언어능력과 노동능력, 재정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마을의 프런티어가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미국에 정착하게 되면, 그의 형제나 가족, 지인이 개척자의 도움을 얻어 이주하게 된다. 이후에는 프런티어보다 경제적 지위가 낮은 이들도 이주가 가능해지고, 이주 네트워크를 이용해 이주하는 마을 사람들의 범위가 확대된다. 이후 이주가 거듭되면서 이주민 대부분이 농토를 소유하지 못한 하층민으로 구성되게 된다. 이주민의 인구학적 특성도 변화하게 되는데, 프런티어는 젊은 연령의 남성 이주자이다. 프런티어를 비롯해 초기에 홀로 이주한 이주노동자들은 경제적으로 정착한 후에 배우자를 이주시키고, 배우자와 함께 경제적 기반을 더 확보하게 되면 자녀를 이주시키게 된다. 이주자의 구성에서 여성 및 아동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주 역사가 긴 마을일수록 가장의 이주와 배우자 및 자녀의 이주 간격이 짧은 경향이 있다. 즉, 이주 역사가 긴 마을의 주민들은 미국으로의 이주와 정착이 상대적으로 쉽다.

이주 과정에서 프런티어가 처음 정착한 지역과 업종 역시 이후 그를 따라 도래할 이주노동자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처음 고향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미국에 도착한 프런티어는 아는 이 없는 낯선 도시에서 고생스러운 과정을 거치며 일자리와 숙소를 마련한다. 그러나 프런티어가 정착한 이후에 도착한 지인이나 가족들은 따로 숙소를 마련할 돈을 모을 때까지 프런티어의 숙소에 함께 기거한다. 그들은 숙소 외에 구직 활동에서도 프런티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프런티어에 비해 수고를 덜 들이고 일자리를 얻게 된다. 이 후발 주자들이 숙소를 얻어 독립해 나가면, 후발 주자의 형제와 친구, 친척들이 다시 고향을 떠나 이주해 오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후발 주자는 자신을 찾아 이주해 온 지인과 친지들에게 프런티어가 그랬던 것처럼 임시로 거주지를 공유하고, 일자리를 소개해 준다. 결국 프런티어를 좇아 이주해 온 이들은 프런티어와 동일한 지역에 거주하며 동종의 직업을 얻게 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연쇄적인 이주 과정을 통해 일정 지역의 특정 직업은 같은 고향 출신 이주자들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 도시 내에 멕시코인 집단 거주지가 형성되는데, 로스앤젤레스 동부 지역인 이스트 바리오가 대표적이다.

한편 장단기적인 노동이주 외에도 미-멕 국경 지역에서는 날마다 혹은 며칠 단위로 국경을 넘어 경제활동을 하는 주민들의 규모도 크다. ‘월경통근자’라 불리는 이들은 아침마다 혹은 며칠 간격으로 국경을 넘어 출퇴근한다. 국경지대에 거주하는 멕시코인은 미국에서 72시간 동안 머물 수 있는 허가증이 발급되기 때문에, 아침에 국경을 넘어 미국에서 일하고 저녁에 다시 멕시코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들이 종사하는 직종은 가사도우미나 택시 운전사, 식당 근무자 등 서비스 분야가 주를 이룬다. 따라서 미국 측 국경도시 샌디에이고와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 사이에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월경통근자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국경을 넘어 출퇴근하는 월경통근 현상은 기본적으로 양 국가, 양 도시 간의 임금격차에서 발생하지만, 1994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마킬라도라(접경지대에 있는 조립 가공 수출업체) 지구에 입주한 제조업체가 증가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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