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옳을 순 없어도 항상 이길 수는 있습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 베가북스
항상 옳을 순 없어도 항상 이길 수는 있습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베가북스 / 2023년 12월 / 168쪽 / 15,000원
하나. 모든 토론술의 튼튼한 기반
논쟁의 본질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논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간파해야 한다. 즉 실제로 논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얘기다. 상대방이 나에게 하나의 논제(These)를 제시했다고 하자. 혹은 내가 상대방에게 논제를 제시해도 마찬가지다. 논제를 반박하는 데는 두 가지 화법(Modus)과 두 가지 방식이 있다.
[1] 우선 두 가지 화법이란, 첫째, 논제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화법과 둘째, 논쟁의 상대방(사람)에 초점을 맞추는 화법, 혹은 상대방이 시인(인정)한 사실에 바탕을 두는 화법을 말한다. 첫 번째 화법은 상대방이 내세우는 명제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 즉,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 번째 화법은 상대방의 명제가 앞서 그가 주장했거나 시인한 내용과 맞지 않는다는 점, 즉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진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가 보여주는 것이다. 이 화법은 상대적인 입증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진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2] 두 가지 방식이란, 직접적인 반박과 간접적인 반박을 가리킨다. 직접적인 반박은 상대방이 주장하는 근거를 공격하는 것이고, 간접적인 반박은 상대방의 주장이 가져올 결과를 공격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직접적인 반박은 상대방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간접적인 반박은 상대방의 주장이 ‘옳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직접적인 반박의 경우 두 가지를 할 수 있다. 우선 상대방이 주장하는 근거가 틀렸음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내세우는 대전제라든지 소전제를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아니면 상대방이 주장하는 근거는 인정해주되 그러한 근거의 결과로는 상대방의 주장이 도출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이 경우는 상대방의 추론 과정을 문제 삼는 것으로, 이렇게 함으로써 논리적인 귀결 혹은 결론에 이르는 방식을 공격하는 셈이다.
간접적인 반박의 경우 간접반증과 단순반증 가운데 하나를 이용한다.
1) 간접반증: 상대방의 명제를 일단 옳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다음, 무엇이든 이미 옳다고 인정된 명제와 관련해서 상대방이 내세운 명제를 전제로 삼아 결론을 이끌어내려는 시도 끝에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의 결론이 사물의 이치와 모순되거나 자신의 다른 주장들과 어긋난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잘못된 결론이 도출된다. 그러므로 논제 자체에 초점을 맞추든 논쟁의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든 그 결론은 모두 거짓이 된다. 따라서 상대방의 명제 자체도 틀렸음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전제가 옳은 경우엔 거기서 도출된 명제도 반드시 옳지만, 잘못된 전제에서는 항상 잘못된 명제만 도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 단순반증: 상대방이 주장한 개념에 포함된 여러 내용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직접 입증함으로써 상대방 주장의 보편적인 명제를 반박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개별적 입증을 통해 상대방의 명제는 타당하지 않고, 따라서 그 자체로 상대의 주장이 틀림없이 잘못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논쟁의 기본 골격이요, 뼈대다. 근본적으로 모든 논쟁이 바로 이 뼈대로 귀결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실제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냥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어서 올바른 근거를 갖고서 논쟁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옳지 못한 근거로써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어떤 것이 확실하다고 쉽사리 단정할 수 없으므로, 논쟁이란 건 그처럼 길고도 끈질기게 늘어지는 것이다.
누가 시킨다 해도 우리는 옳은 것과 옳은 것처럼 보이는 것을 또렷이 구분할 수가 없다. 논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조차 절대로 확실하게 미리 알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객관적으로 옳은가 혹은 그른가를 고려하지 않고서, 단순히 ‘논쟁의 기술’만을 제공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사실의 진위는 논쟁을 벌이는 사람 자신도 확실하게 알 수 없고, 논쟁을 통해서 비로소 가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만 덧붙이겠다. 어떤 논쟁에서건 우리는 서로가 합의한 특정한 접점이 있어야 한다. 그런 합의점에 기반을 두고서 양자가 당면한 문제를 판단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시하는 원칙을 하나하나 모조리 문제 삼는 사람과 도무지 무슨 논쟁을 벌일 수 있겠는가 말이다.
둘. ‘내가 항상 옳을’ 수 있는 38가지 논쟁의 법칙 ▶공격하라
질문을 퍼부어 상대의 양보를 얻어내라논쟁이 다소 엄격하고 딱딱하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나의 의견을 정확하고 또렷하게 이해시키고자 한다면, 주장을 내세우고 입증해야 하는 나는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상대방이 스스로 양보하는 것이나 인정하는 내용을 근거로 하여 내 주장이 옳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이다. 이처럼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논점을 주장하기 위해 묻는 질문을 수사의문이라고 한다. 수사의문을 던지는 것은 고대의 철학자들이 애용하던 방법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식 방법’이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얻어내려고 하는 양보(인정)가 무엇인지를 숨기기 위해서는 느닷없이 마구잡이로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방이 양보(인정)한 것을 바탕으로 논증을 재빨리 이어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해가 느린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따라올 수가 없고, 내 주장을 펴나가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잘못이나 허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상대가 화를 내도록 유도하라인간은 화가 나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도 없고, 자기가 선점한 유리한 고지조차도 깨닫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화를 돋울 수 있을까? 상대방에 대해 드러내놓고 부당한 평가를 한다든지, 말로 괴롭힌다든지, 아무튼 그냥 뻔뻔스럽게 대하면 된다.
“기본적인 개념도 공부하지 않고 말하니 이해가 잘 안 되는군요. 게다가 단어조차 틀렸어요. 그 정도는 미리 알고 얘기해야지요. 좋은 책이 있으니 한 권 보내드리지요.”
상대가 발끈하면 바로 거기가 약점!상대방이 어떤 논리를 펼쳐나가다가 느닷없이 성질을 부리거나 화를 내면, 나는 바로 그 논거를 물고 늘어져 끈질기게 파고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화를 돋우는 것이 나한테 유리할 뿐만 아니라, 내가 상대방 생각의 흐름 가운데 약점을 건드렸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도대체 당신 말의 근거가 뭐예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걸려들었어!’
유식하게 들리는 허튼소리를 쏟아내라아무 의미 없는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부음으로써 상대방을 아연실색하게 하고, 얼을 빼놓는 기술이다. 이 기술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보통 인간들은 무슨 말을 듣기만 해도 그 속에 무언가 생각할 것이 있다고 믿지요.” 《파우스트》
상대방이 은연중에 자신의 약점을 의식하고 있거나, 이해하지도 못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도 마치 잘 알아들은 척하는 데 익숙한 사람일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유식하게 들리거나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허튼소리 즉, 상대방이 생각할 시도조차 못 할 허튼소리를 아주 진지한 태도로 떠벌리고, 또 그것이 마치 내 견해의 명백한 증거라고 내세움으로써, 그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최근 몇몇 철학자들이 독일 전역의 청중을 대상으로 바로 이 기술을 매우 성공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엥겔지수 25% 이하의 일부 상류층이 조세법률주의에도 불구하고 탈세로 부를 축적하는 작금의 현상은 건전한 일반인의 통념에 비추어볼 때 수용 한도를 넘어섰고, 결과적으로 사회공동체가 지향하는 사회 모습과 정서적으로 큰 간극을 초래하고 있습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멋있어!’
상대의 논거를 뒤집어버려라‘상대방의 논거를 뒤집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아주 멋진 트릭이다. 말하자면 상대방이 자신을 위해 이용하고자 하는 논거를 역으로 이용해 도리어 그를 공격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서 상대방이 “그는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그 점을 참작해주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면, 나는 이걸 뒤집어서 이렇게 공격하는 것이다. “아니죠,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한층 더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의 나쁜 버릇이 더욱 심해지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약점을 잡았다 싶으면 끈질기게 몰아붙이라나의 질문이나 주장에 대해서 상대방이 직접적인 대답도, 별다른 정보도 주지 않고 거꾸로 나한테 질문을 던지거나, 간접적으로 마지못해 어물쩍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논쟁 중인 사안과 아무 상관도 없는 말로 슬쩍 다른 쪽으로 빠져나가려고 한다. 이것은 내가 상대방의 미심쩍은 부분을 제대로 건드렸다는 확실한 신호다! 그럴 경우 내가 건드린 그 부위를 계속 물어뜯어야 하며, 상대방이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상대방의 약점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상반되는 두 명제로 상대를 조종하라내가 제시하는 명제를 상대방이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그것과 정반대되는 명제를 함께 내놓고 그에게 선택하도록 맡긴다. 특히, 나는 이때 이 반대되는 명제를 아주 날카롭고 큰 소리로 강조해야 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그보다는 더 타당성이 있어 보이는 나의 명제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무릇 인간은 아버지가 말하는 것이라면 모두 다 복종해야 한다’는 명제를 상대방이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려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안이든 간에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에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까, 아니면 순종하지 말아야 합니까?” 이것은 마치 회색을 검은색 옆에다 갖다 놓으면 ‘희다’라고 말하는 반면, 흰색 옆에다 갖다 놓으면 ‘검다’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가지를 시인하면 전체를 시인한 걸로 밀어붙여라내가 귀납적인 논리를 펼쳐나가면서, 거기에 필요한 개별적인 사항을 하나하나 상대에게 물었는데, 상대가 그것을 모두 인정(시인)한다면 인정받은 개별적인 사실로부터 도출되는 보편적 진리도 인정할 거냐고 따로 상대방에게 질문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나중에 그와 같은 보편적 진리의 문제는 이미 마무리되었으며, 상대방도 이미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해주면 된다.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면, 종종 상대방이 자신도 이미 그것을 인정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청중들 역시 상대방이 인정했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던진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질문들을 기억하고, 그 질문들이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셋. ‘내가 항상 옳을’ 수 있는 38가지 논쟁의 법칙 ▶방어하라
불리하면 삼천포로 빠져라논쟁을 벌이다가 아무래도 내가 상대방에게 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재빨리 주의를 다른 데로 돌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느닷없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 마치 논쟁의 대상이 되는 사안에 속하는 것처럼, 마치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반증이라도 되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이렇게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을 때, 그 내용이 진행 중인 논쟁의 사안에 대체로 연관된 경우라면 무리 없이 점잖게 이루어지겠지만, 그런 사안과는 조금도 관계없이 대놓고 상대방 개인에 관한 이야기로 전환하는 경우는 뻔뻔스럽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신공격을 받았을 때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향해 똑같이 인신공격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신을 향한 상대방의 인신공격을 그냥 넘어가 버림으로써 마치 그것을 시인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게 된다. 따라서 이 방법은 그다지 좋지 않다.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비난을 그냥 내버려둠으로써, 논쟁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에 관한 나쁜 점들을 청중이 전부 알아버리게 되니까 말이다. 따라서 삼천포로 빠지는 기술은 꼭 부득이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상대를 은근히 ‘비호감’으로 만들어라상대방이 나에게 방해되는 주장을 펼치는 경우, 그 주장을 사람들이 싫어하는 증오나 혐오의 대상, 즉 이른바 ‘비호감’의 범주에 넣음으로써 아주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다. 또는 최소한 그 주장을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것도 좋다. 물론 이것은 상대방의 주장과 증오의 대상이 되는 범주 사이에 조금이라도 비슷한 점이 있거나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때 가능하다. 예를 들면 상대방의 주장을 이렇게 받아치는 것이다. “아, 그건 마니교 사상 아닙니까?”, “그것은 ‘아리우스주의적’ 생각인데요.”, “그건 관념론이잖아요.”, “그건 무신론에 지나지 않아요.”, “신비주의에 속하잖아요.” 등등이다.
▲ 브리지트 바르도의 비호감도
브리지트 바르도가 전화로 연결한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오직 한국에서만 인간의 친구인 개를 먹는다며 야만적이라 외쳤다. 진행자가 그것은 민족의 오래된 음식 문화이며,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브리지트 바르도는 야만스러운 사람들과 말하기 싫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결국, 라디오 진행자는 그녀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동물 보호가라기보다 차라리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인상을 더 깊이 주었다.” 동물을 사랑했던 쇼펜하우어가 브리지트 바르도를 만났다면 과연 어떤 말을 했을까?
“형편없는 제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상대방이 설명하는 근거에 대해서 내가 아무런 반론도 제시할 수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땐 묘하게 세련된 반어법을 이용해, 내 능력이 모자라서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도 방법이다. “당신이 말한 내용은 빈약한 저의 이해력을 훌쩍 넘어서는군요. 당신의 말이 정말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그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네요.” 이런 식으로 말함으로써 상대방이 한 말이 허튼소리라는 인상을 청중에게 은근히 심어줄 수 있다. 다만 이 방법은 상대방보다는 내가 청중에게 더 많은 존경을 받는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교수 대 학생’처럼 말이다. 사실 이 방법은 합리적인 근거가 아니라 내가 가진 권위를 대단히 악의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출간되고, 항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할 무렵, 케케묵은 절충주의 학파의 많은 교수들이 바로 이런 식으로 대응했다. “우린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걸로 칸트의 이론을 물리쳤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칸트를 따르는 새로운 학파의 추종자들이 그 케케묵은 교수들은 정말로 칸트를 이해하지 못했을 따름이므로 그 핑계가 틀린 말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자, 교수들은 참담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기술에 대한 반격은 다음과 같다. “천만의 말씀을 다 하십니다. 당신의 탁월한 통찰력이라면 제 말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일 텐데요. 틀림없습니다. 혹시 당신이 제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제 설명이 형편없어서 그랬을 것 같군요.” 그렇게 말하면 이제 상대방은 그 사안에서 꽁무니를 빼고 싶어도 뺄 수 없게 되고, 좋든 싫든 간에 이제 그 사안을 이해해야 하는 처지가 되며, 그가 애당초 내 말을 정말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분명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상황은 멋지게 역전된다. 상대방은 내 말이 ‘허튼소리’라는 인상을 은근히 심어주려 했지만, 도리어 내가 그의 ‘무지’를 증명해 보였으니 말이다. 그것도 아주 정중하게 예의까지 갖추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