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국을 모른다
김동현 지음 | 부키
우리는 미국을 모른다
김동현 지음
부키 / 2023년 12월 / 376쪽 / 20,000원
미국의 잃어버린 20년과 신냉전
“더 이상 홀로 세계 경찰 노릇은 안 한다”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 기지. 갑자기 귀를 찢는 폭발음과 더불어 경고 사이렌이 기지 전체로 울려 퍼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남의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참고로 나는 17년 전 주아프가니스탄 제100건설공병대 다산부대 소속 영어통역병으로서 사건 현장에 있었고, 그날 같은 영어통역병 전우였던 고 윤장호 하사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장호 형은 2007년 2월 27일, 귀국을 불과 한 달도 채 남기지 않고 탈레반 요원의 자살 폭탄 테러로 생을 마감했다.
나는 당시 테러 현장을 둘러본 미군 관계자와 나누었던 대화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는 한국군 병사의 죽음이 안타깝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동시에 자신들(미군)은 일주일 새 여럿 죽어 나가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같이 싸운다고 외치기만 했지 정말로 동맹군이 공정한 몫을 맡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우리가 전장에서 죽어 나가는 동안 대다수 동맹은 후방에서 생색만 내고 있지 않냐?”라는 본심을 담은 직설적인 물음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공정한 ‘부담 분담’ 요구는 장호 형의 죽음에만 적용된 논리가 아니었다. 미군 중부사령부는 한국군 부대에 6개월 파병 기간 동안의 전쟁 수행 분담 비용 인상을 요구했다. 유류세 등 한국군이 주둔한 기지 사용료를 1000퍼센트 인상하겠다고 일방 통보를 한 것이다. 이는 전투부대를 파병하지 않는 동맹에 보낸 무언의 압박이었다.
한반도 천동설의 위험성: 윤장호 하사의 전사 직후 한국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철수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어떤 언론사도 미국 등 다국적군의 전사 소식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참고로 전쟁 기간 최다 전사자 배출 국가는 미국(2465명), 영국(455명), 캐나다(158명), 프랑스(86명), 독일(54명) 순이었는데, 이는 모두 전투병을 보낸 나라들이다. 한국군 전사자는 단 1명이지만, 전사자가 발생한 직후 한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든 비전투 병력을 뺐다. 미국이 지고 있는 부담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미국은 세계 최고 국방력을 가진 나라니까 우리 하나쯤 빠져도 대세에 지장 없다’는 생각이었다.
세상이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관, 이른바 ‘한반도 천동설’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 깊이 작용했다. 따지고 보면 한국전쟁 이후 한미 관계에서는 ‘한반도 천동설’이 항상 작용해왔다. 우리 외교 전략은 줄곧 세계가 북한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촉구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원하는 반대급부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민조차 없었다. 예컨대 미국, 일본 등은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초기부터 국제적 대응에 적극 나섰지만 한국은 먼발치에 떨어져 있었다. 심지어 일부 국내 정치가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희화화하거나 러시아의 침공을 정당화하는 발언까지 쏟아냈다.
부담은 최소로 지면서 혜택은 최대한 받아먹겠다는 심보가 한반도 천동설을 키운 계기다. 지금까지 미국은 한국의 이런 행동을 알면서도 눈감아주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에서 10번째로 커지고, 중국이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의 셈법이 달라지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굴지 말고 어엿한 성인으로서 행동해주기를 압박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가까운 지정학적 위치는 한국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게 만든다. 거대한 중국을 막아서는 와중에 미국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설득하거나 지시하는 것도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이 스스로 알아서 생각하고 능동적으로 처신하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막후에서 따로 조정한 한일 관계 역시 이제 두 당사국이 스스로 대화하기를 원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적성국을 상대하기 위해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반도 천동설에 입각한 전략을 세우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기 쉽다.
미국의 속내를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곳이 펜타곤이다. 미국에 대한 모든 위협에 대처하는 부처인 동시에, 최근 안보가 경제, 기술 분야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부처 간 협업의 중심축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반도체 공급망 문제나 5G 통신 장비의 정보 보안 문제에 펜타곤의 입김은 매우 강하게 작용한다. 그렇다면 펜타곤이 바라보는 위협은 어떤 모습일까?
《국방 전략서(NDS)》를 알아야 속내가 보인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18년 펜타곤의 중장기 계획을 명시한 《국방 전략서》에서 위협을 우선순위에 따라 나눴는데, 1순위 위협으로 중국과 러시아, 2순위 위협으로 북한과 이란, 3순위 위협으로 테러·극단주의 단체를 열거했다. 우선순위에 따라 자원과 집중력을 배분하겠다는 뜻이다. 《국방 전략서》의 전제는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 무분별하게 관여했던 미군들을 불러들여 재편과 재무장을 단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군이 물러난 자리에 생기는 병력 공백은? 동맹과 우방이 메꿔야 한다는 취지다. 앞으로 세계 분쟁 관여에서 그만큼 ‘기회비용’을 따지겠다는 의미다. 동맹이 갈취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 주장의 본질은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쟁에 전적으로 미국 홀로 대응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이 문제 역시 동맹과 우방의 참여를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권이 바뀌면 국방 기조 또한 바뀌지 않을까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주한미군사령관으로 재직한 빈센트 브룩스 대장에게 나는 바이든 정권이 들어선 뒤 이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답변은 “큰 틀에서는 바뀌지 않습니다”였다. 《국방 전략서》 자체가 작성 단계부터 ‘정부의 연속성’을 띠는 최상위 문서라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 중국과의 패권 경쟁은 초당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 전략서》 설계자의 경고 - “중립 노선, 한반도 전쟁터 만들 것”: 그렇다면 ‘기회비용’을 따지기 시작한 미국의 셈법이 한국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그들의 속내를 알기 위해서는 위협을 중요도에 따라 나눈 당사자에게 직접 물을 필요가 있다. 나는 2023년 7월 《2018 국방 전략서》의 설계자였던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군사 부차관보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북한을 2순위로 분류한다는 것은 미국이 그만큼 이전보다 한반도 문제에 덜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고. 솔직히 펜타곤 고위 관리였던 만큼 한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그건 아니지만…” 식의 본심을 숨기는 화법을 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당연히”라는 너무나 투박하고 직설적인 답변이 돌아와 적잖게 당황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북한은 당연히 [미국의] 최우선 사안이 아닙니다. 따라서 미군의 작전 계획 역시 중국에 한층 더 큰 무게를 실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재래식 전쟁에 한해서는 더 많은 책임을 이양받아야 합니다.” 그의 발언에는 주한미군 배치 태세, 한국군 전작권 전환 문제 등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콜비 전 부차관보는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확실히 뒤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보다는 중국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한반도 유사시 미국은 핵 억제력 등의 지원 역할을 맡고 대부분의 지상전은 한국이 전적으로 분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북한과 전면전에 관여할 경우 중국과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한 전력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북중러 연대가 밀착되고 있는 상황인데 북한이냐 중국이냐로 ‘양자택일’할 수 있는 사안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이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놨다. “당연히 양자택일의 문제입니다. 가령 미사일은 표적 한 곳만 때릴 수 있습니다. 전투기 또는 함정도 동시에 여러 곳에 전개할 수는 없습니다. 군사 정책에 관한 한 제로섬 셈법은 당연한 겁니다.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군사 배치 태세가 타이완 사태 등 우리의 최우선 [중국] 시나리오에 최적일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미국과 중국 간 갈등에서 벗어나 ‘중립 지대’로 한국의 위치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내 시각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해서 물었더니, 그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충돌 상황에서 개입하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입니다. 한국이 이룩한 놀라운 성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고, 북한의 경우 유사시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왜 이런 환경을 물려받았는지 원망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내 결론은 중간 지대(no man’s land)로 설정하기에 한국만큼 최악의 장소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콜비 전 부차관보는 우선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10번째 규모의 경제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중립 노선을 취한다면, 어느 당사국도 믿지 않고 보호해주지 않는 자유 지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한반도가 전쟁터로 변질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중국과 전쟁이 일어나고 한국이 참여를 거부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한반도에 올 것 같습니까? 최선의 방책은 한국이 미국에 거는 겁니다. 미국이라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다른 차선책보다 덜 나쁘고 지리상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한국은 어느 편에 설지 확실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이런 한국의 태도에 의구심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동북아 핵 2.5 시대 가중되는 미국의 부담
미국 전략사령관의 경고 - “역사상 처음 직면한 현실”찰스 리처드 제독은 미국이 보유한 모든 핵무기를 관리하고 유사시 발사를 관장하는 전략사령관이다. 2021년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리처드 사령관은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복수의 핵보유국과 동시에 경쟁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지목한 두 적성국은 중국과 러시아다. 리처드 사령관은 중국을 겨냥해 “더 이상 냉전 시절처럼 간과 가능한 핵 위협으로 간주할 수 없는 현실에 이르렀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의 핵무기 역량 급증은 “[중국이] 10년 안에 미국과 전략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하는 계획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틀 뒤 리처드 사령관과 마주한 펜타곤 기자회견에서 같은 우려를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었다. 리처드 사령관은 세상이 변했다는 점을 새삼 강조했다. “적성국을 하나하나 차례로 억제하는 사치를 부릴 여유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러면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핵 운반 체계와 지휘 통제 역량, 준비 태세와 훈련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모든 적성국에 동시에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최소 억제에서 최대 억제로 전환: 현존 핵무기 보유국은 전 세계 9개 나라다. 이 중 네 자릿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러시아를 제외하고, 중국을 포함해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이른바 ‘최소 억제’ 정책을 유지해왔다. ‘최소 억제’란 상대보다 핵무기 보유량이 적더라도, 2차 핵 보복 공격 능력을 구비해 상대국이 섣불리 먼저 핵 단추를 누르기 어렵게 만드는 전략을 말한다. 한편 40개 안팎의 핵탄두를 보유한 북한은 그동안 최소 억제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2022년 9월 8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제 핵 공격을 선택지에 포함시키는 핵무력법을 채택하는 등 공세적인 핵 정책을 드러내면서, 최소 억제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로 2000년대 초반까지 최소 억제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중국은 1960년 첫 핵 실험에 이어 1967년 수소폭탄 실험까지 감행했다. 이런 움직임에 미국은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 수뇌부는 구소련이 신생 핵보유국 중국의 상전 노릇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핵 균형의 추가 기울어질 것이라고 여겼고, 소련과의 핵 경쟁에 중국까지 끼어들자 미국 핵우산 아래 있던 일본에서는 핵무장론까지 촉발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중국의 핵 개발은 오히려 구소련과의 해묵은 갈등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스탈린이 죽은 뒤 공산주의 노선을 놓고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자 중국은 구소련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핵 개발에 나선 것이다.
최소 억제력을 유지하겠다는 나라들은 핵을 먼저 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핵 전면전으로 치닫게 되면 핵 보유량이 적어 패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먼저 핵을 쏘지 않겠다고 미리 약속하는 나라들도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중국, 인도다. 이 나라들은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발표함으로써 자신들의 핵전략은 ‘최소 억제력’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세계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중국은 표면적으로 여전히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호혜성 원칙을 토대로 미국에도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공표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유사시 핵 선제공격을 못 하도록 미리 손을 묶어두기 위한 의도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핵무기 숫자를 급속도로 늘리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중국이 최소 억제에서 ‘최대 억제’로 전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최대 억제’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는 주변국을 겨냥해 핵 협박을 늘릴 개연성이 높다는 의미다. 핵탄두의 수적 우위를 활용하면 평시에도 경제적 갈취, 동맹 이간질, 외교적 압박 등의 선택지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중국이 최근 들어 전략폭격기를 타이완의 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ADIZ)에 전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것이 전시 상황까지 가지 않더라도 핵탄두의 수적 차이가 오히려 평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이 최소 억제의 상징과 같았던 ‘핵무기 선제 불사용’ 원칙을 철폐할 수 있다는 분석마저 제기되고 있다.
‘돈 먹는 하마’ 핵무기 예산북핵 위협이 고조되면서 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핵무장 찬성 여론이 60퍼센트를 꾸준히 넘기고 있다. 이 수치는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다. 보수·진보를 넘어 중도층까지 아우르는 시각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1년 안에 핵무장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핵무장론이 나올 때마다 미국의 답변은 한결같이 다음과 같다. “그쪽으로 가면 재미없을 줄 알아.” 핵무장 선택지 대신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 억제력(핵우산)을 선택하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미국 내부에서는 동맹을 지켜줄 확장 억제 공약의 실탄 관리를 놓고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는다.
핵무기도 하나의 무기 체계이기 때문에 부품을 정기적으로 교체하거나 정비하지 않으면 못쓰게 되는데, 자국의 핵무기 노후화 문제를 놓고 대통령 선거철이나 의회 국방 예산 편성 시기마다 정쟁의 불쏘시개가 된다. 미국은 핵무기를 더 이상 늘려서는 안 된다는 데는 초당적 공감대가 있다. 반면에 냉전 시절부터 쌓아둔 5000여 개의 핵무기를 놓고 어느 수준까지 현대화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립해왔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진행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미국의 핵 노후화 상태가 “끔찍한 상태에 이르렀다”라고 비판했고, 계속 이런 상태로 방치했다가 정말로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2019년 민주당 대선 후보를 확정 지은 직후 조 바이든은 트럼프 정부의 무분별한 핵무기 예산 배정을 비판하면서 핵무기 역할 축소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바이든 대통령은 30년간 예상되는 핵무기 예산 지출 비용 약 1조 2000억 달러보다 적게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미국 정치권에서는 핵을 둘러싼 이념적 간극이 생각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