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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군입니다

박미영 지음 | 행성B


대한민국 여군입니다

박미영 지음

행성B / 2023년 2월 / 328쪽 / 16,000원





여군이 되기로 결심하다



나는 왜 군인이 되었나


평범한 여중생이 군인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가족들과 매주 가던 마트 장보기 속의 책에 있었다. 중학생 때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장을 보러 갔는데, 부모님은 다른 건 몰라도 책만큼은 이유를 묻지도 않고 사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책 코너에서 책을 구경하다가, 김경진, 진병관 작가의 《동해》라는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4대 강국이 동해에 모여 힘겨루기를 하는 내용인데, 나에게 처음으로 군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준 책이었다. 이후 전쟁 소설에 홀딱 빠진 나는 비슷한 책을 찾아다녔다. 당시 군대와 무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던 터라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도 재밌게 읽었고, 다양한 소설에 등장하는 전쟁 속 군인의 삶과 생각, 행동이 인상 깊게 남았다.

나 육사에 갈 거야! / 시험 준비는 산 넘어 산 / 육사는 내 운명


처음 군인이 되고 싶다고 결정했을 때 내 꿈은 공군이었다. 이왕 군인이 될 거면 전투기를 조종하는 조종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갑자기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육군사관학교로 목표를 수정했다. 그런데 사관학교의 지원 시기는 다른 대학교보다 빠르다. 1학기에 지원서를 작성해야 한다. 수능성적으로만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총 3단계에 걸쳐 합격자를 선발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입학할 때와 전형이 달라졌다.)

참고로 1차 시험 종목은 국어, 수학, 영어이며, 이 시험에 합격해야 2차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2차 시험은 육사에 소집되어 1박 2일간 진행된다. 첫째 날엔 신체검사, 체력평가, 논술평가를 진행하고, 둘째 날에 면접 및 심리검사, 그리고 종합판정 등이 진행한다. 체력평가 종목은 팔굽혀펴기, 오래 매달리기, 멀리뛰기, 100m 달리기, 1.2km 달리기, 윗몸일으키기이며, 다른 종목은 점수로 환산하여 합산하는데 1.2km 달리기는 불합격 시 그 자리에서 바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참고로 지금은 1.2km 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단 세 종목이다.) 한편 구술면접은 준비된 여러 주제 중 하나를 뽑아서 일정 시간 동안 준비를 하고 면접위원들 앞에서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서 발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면접장에서는 제출한 생활지도기록부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마지막 종합판정에는 여러 명이 함께 들어가는데, 면접관은 한 명이었고(면접 때는 몰랐는데, 입학하고 나니 종합판정의 면접관이 생도대장님이었다), 들어온 모든 지원자에게 왜 육사에 지원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글거리긴 하지만 그때 내 대답은 이랬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한편 2차 시험은 합격자 발표가 따로 나지 않는다. 수능이 끝나고 최종합격자 발표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사관학교 합격자 발표는 모든 대학 중에 가장 빠르다. 수능 성적표가 나오면 일주일 안에 발표가 나는데, 나는 결국 합격했다.



나의 육사 생존기



오늘부터 1일!


육사에서는 입학식을 하기 전 6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는다. 남자들이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병사로 입대해서 신병 교육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이 기간에 사관생도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체력, 생활방식 등을 익히는 훈련을 무사히 받아야만 입학식을 치를 수 있다.

드디어 가입교 날인 2003년 1월 13일이 되었다. 태릉에 있는 육사에 도착하여 가족들과 이별하고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굉장히 낡은 2층 건물과 식당 앞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6주 동안 함께 지낼 동료들과 선배 생도들을 만났다. 선배 생도들은 이때만 해도 정말 친절하게 뭣 모르는 우리를 잘 지도해 주었다. 그날 입교 등록을 완료한, 기초군사훈련 6주를 함께 이겨낼 동기는 나를 포함해 250명이었고, 그중 여자 합격자들은 딱 25명이었다. 250명은 2개 중대 8개 소대로 편성되었다(1개 중대당 4개 소대씩이고 1개 소대는 약 30명 정도 되는 규모다). 나는 1중대 3소대로 편성되었다. 같은 소대에는 나를 포함하여 여자 동기가 3명이었다. 이들은 6주 동안 한 호실에서 같이 생활할 동기들이었다.

모든 것은 저녁을 먹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저녁 식사 때까지는 입교 등록할 때 입고 온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6주간 생활할 건물 안 복도에 영문도 모른 채 서 있었다. 바로 그때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에게 존댓말을 쓰며 안내해 주던 선배 생도들은 애국가가 끝나자마자 “교육 목적상 경어를 생략한다”는 말과 함께 야수처럼 변했다. 선배들은 우리를 향해 큰 소리로 계속 뭔가를 지시했다. 우리는 이것을 사자후라 불렀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사자후에 정신이 없었다. “지금부터 입고 있는 옷을 벗고 전투복으로 갈아입는다. 시간은 1분!” 혼을 빼놓는 전투복 갈아입기가 끝나고, 입고 온 옷과 신발은 각자에게 지급된 상자에 잘 넣어서 보관했고, 이 상자는 나중에 집으로 보내졌다.

단체로 옷 갈아입기 다음의 충격적인 단계는 단체 샤워다. 여자는 1중대 13명, 2중대 12명이었다. 중대별로 순환해서 씻어야 하고 개인 샤워실은 없다. 샤워기는 4개뿐, 이것도 시간제한이 있다. 다 같이 들어가서 알몸인 것을 부끄러워하기도 전에 머리에 비누칠하고 씻어내고, 그 틈에 다른 인원이 또 물을 끼얹고 비누칠을 하고, 그걸 또 선배 생도들이 지켜보고 있다. 동작이 느려지면 곧바로 사자후가 날아왔다. 저녁을 먹고 밤 9시 30분까지 정신이 쏙 빠진 채로 선배들의 지시대로 움직이다가 겨우 책상 앞에 앉았다. 6주 동안 매일 잠자기 전 수양록을 쓰는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만큼은 평온했다. 수양록까지 다 쓰고 나니 밤 10시에 취침 방송이 나오고 모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자라고 했다.

절벽에서 살아남는 법


기초군사훈련 기간(가입교 기간)에는 사관생도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체력과 생활요령, 군사지식을 쌓는다. 체력과 단체생활 요령은 선배들인 기파생도(기초군사훈련을 시키기 위해 파견된 생도)들의 책임이고, 군사지식 함양은 교관들의 책임이었다. 기파생도들은 어미 사자처럼 살아남는 새끼만 후배로 데려가겠다고 했고, 그 말을 증명하려는 듯 기파생도들은 혹독한 담금질을 했다.

가입교 기간에는 모든 게 새롭고 낯설어서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지만 그중에 압권은 기초체력을 쌓는 일이다. 기초체력을 키우는 방법은 단순하다. 뜀걸음과 얼차려를 반복하면 된다. 눈을 뜨고 수업을 받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기파생도들에 의한 얼차려가 계속됐다. 순탄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동작은 신속히 하고,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김없이 새로운 지적과 얼차려로 하루를 시작했다. 내가 잘못했을 때 나만 혼나면 그래도 괜찮을 텐데 옆에 있는 동기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기초군사훈련 기간 우리가 지냈던 기숙사는 생도들이 생활하는 기숙사인 생도대와는 분리된 건물이다. 그런데 오전·오후 수업을 받기 위해 학과출장을 가면 생도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수업 받는 장소는 생도들도 수업을 받는 장소여서 가끔 선배 생도들(기파생도들 말고 그냥 일반 생도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반드시 생도대로 가서 저 선배들과 함께하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내가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입학은 하겠다’는 악이 남았다. 6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나는 어떤 기간보다 치열하게 버텼다. 가장 추운 겨울이었고, 나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상황에서 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절실했다. ‘난 반드시 생도가 되겠다.’ 그렇게 하여 2003년 1월 13일 입교 등록을 했던 250명 중 243명이 가입교 기간을 버텨내고 2003년 2월 함께 입학식을 치렀다.

하계 군사훈련


육사의 학사일정은 3월~6월 1학기, 7월~8월 하계 군사훈련, 9월~12월 2학기, 1월~2월 계절학기 및 졸업식 연습으로 이루어진다. 1학기와 하계 군사훈련 사이, 2학기와 계절학기 사이에 4주간의 하계 및 동계 휴가가 있다(방학이라고 하지 않고 휴가라고 한다). 참고로 입학 전에는 당연히 훈련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반학기가 더 길다. 다만 일반 대학교랑 다른 점은 일반학 수업 중에 군사학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전공 수업은 3·4학년에만 있다는 것, 매일 체육수업(태권도+일반체육)을 한다는 것이고, 교양 필수과목과 전공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것은 비슷했다.

일반학 기간(1학기, 2학기)엔 몸보다는 머리가 힘들다. 한정된 시간 안에 수업 준비에 매진해야 하고 기말고사가 끝나면 학기의 최종 성적이 나온다. 이때 한 과목이라도 F학점을 맞으면 휴가 일주일을 반납하고 재시험을 봐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휴가를 반납하고 공부했는데 시험 성적이 수준 미달이면 강제 퇴교 조치된다. 이렇게 휴가 반납 및 퇴교에 대한 압박이 있어서 일반학 기간에는 과제, 쪽지시험, 중간·기말고사, 발표 등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때 생도들 대부분은 하계 군사훈련(줄여서 ‘하훈’이라고 부른다)을 그리워한다. 차라리 몸이 힘든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나 인간은 간사하다. 막상 그리워하던 하훈 기간이 되어 한여름 땡볕 아래 땀을 흠뻑 흘리며 훈련을 받으면 하루만 지나도 일반학 기간이 그리워진다. 이걸 4년간 매년 반복한다.

한편 생도들의 하훈은 8주간 실시가 된다. 학년별로 훈련하는 내용이 다르다. 1학년은 병 기본 훈련, 2학년은 유격훈련, 3학년은 공수훈련, 4학년은 교관화실습이 주요 내용이다(우리 기수 이후부터는 2학년 공수훈련, 3학년 유격훈련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사격훈련은 기본으로 당연히 포함된다. 1학년 하훈의 하이라이트는 실제 전방부대에서 숙식을 하면서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는 병 체험과 평화의 댐까지의 왕복 40km 행군이다. 행군이 끝나고 여자 동기들과 다 같이 씻는데 허벅지가 안 쓸린 동기가 없었다. 그럼에도 모두 완주했단 사실에 서로를 쳐다보면서 밝게 웃었다. 전방부대 체험에는 GOP 소초 근무도 함께 했다. 소초에서 철조망 너머 북한 쪽을 바라보니 분단국가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2학년 하훈은 유격훈련이며, 대구 옆의 영천에서 훈련을 받았다. 유격훈련 2주간 우리는 장애물 극복 훈련과 도피 및 탈출이라는 훈련을 받았다. 3학년 하훈은 공수훈련이다. 공수훈련은 낙하산을 메고 비행기나 헬기에서 뛰어내려 지상에 무사히 착지할 방법을 숙달하는 훈련인데, 4년간의 훈련 중에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4학년 하훈의 중점은 교관화 실습이다. 병 기본 과목(사격, 독도법 등)과 관련하여 실제 교관으로서 교육을 준비하고, 강의하는 법을 숙달한다.

어떤 병과에 갈래?


육사는 입시를 치를 때 문·이과만 선택하면 되는데, 나는 이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육사의 전공은 2학년 말에 결정한다. 문과 전공에는 외국어학과(영어, 러시아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와 한국학, 경제·경영 등이 있고, 이공계 전공에는 화학, 응용수학, 건축, 토목, 기계, 무기, 환경 등이 있다. 그런데 나는 무기공학과를 선택했다. 일반 대학에는 없고 육사에만 있는 유일한 전공이기도 하고, 당시 나는 군에 무기체계가 가장 중요하며, 이런 쪽으로 연구를 계속하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때 선택한 전공은 졸업하고 나서 장교 생활에 딱히 영향이 없다. 전공을 살려서 병과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절대적이진 않으며 성적이 가장 중요하다.

한편 장교로 임관하는 방법은 다양하며, 어떤 방법으로 장교가 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병과이다. 육군의 병과는 크게 4개 분야로 나뉘는데, 전투병과, 기술병과, 행정병과, 특수병과이다. 전투병과에는 보병, 포병, 기갑, 공병, 정보통신, 정보, 항공, 방공이 해당되고, 기술병과에는 병기, 병참, 수송, 화생방이 해당되며, 행정병과에는 인사(舊 부관), 군사경찰(舊 헌병), 재정, 공보정훈(군악 포함)이 해당된다. 특수병과에는 의정, 군의, 치의, 수의, 법무, 감찰, 군종이 다 포함된다.

육사에서 병과 선택은 4학년 2학기가 종료된 이후에 하는데, 내가 졸업할 당시에는 포병, 기갑, 방공은 여군이 임관할 수 없는 병과였다. 여군이 갈 수 없는 병과를 제외하고는 전 병과 티오가 할당됐고, 내가 최종 선택한 것은 부관병과였다(지금은 인사병과로 바뀌었다). 인사병과는 사람과 관련된 일을 한다. 신분별 인사관리를 하고, 부대에서 하는 행사를 계획하고 준비하고 시행하며, 복지업무 및 기록물 관리까지 맡고 있다. ‘부관’이라는 병과 명칭이 생소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동기 중에서 희망하는 사람도 없었다(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장군들 옆에서 보좌하는 일을 하던 전속부관이라고 착각하는데 전속부관과 부관병과는 하는 일이 전혀 다르다). 나는 사람과 관련된 일에 흥미가 생겼다. 그렇게 해서 난 남군 동기 2명과 인사병과로 임관했다. 나머지 여군 동기 21명은 각각 보병 3명, 정보 3명, 공병 1명, 정보통신 1명, 전산(지금은 정보통신과 통합되었다) 2명, 병기 1명, 병참 1명, 수송 1명, 화생방 1명, 인사 1명, 재정 1명, 공보정훈 2명, 군사경찰 1명, 의정 2명으로 임관했다.



국방부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오만 촉광의 다이아몬드, 그대 이름은 소위


내가 육사 졸업 및 임관식을 한 것은 2007년 3월이었다. 흔히 소위 계급장을 오만 촉광의 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 그런데 임관한 이후 곧바로 각 부대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각 병과별로 임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나는 인사병과 소위로 일을 하기 때문에 육군종합행정학교로 갔다. 4개월의 교육기간 동안 병 인사관리, 상훈, 의식행사, 사무기록관리, 전술 등의 과목을 배웠다.

화랑! 신고합니다!


내가 처음 배치를 받은 부대는 11사단이었다. 각 병과학교 교육을 수료하고 약 70명 정도가 함께 전입을 하러 갔다. 신고를 준비하던 대위(장교 인사관리 업무를 하던 장교였다)는 제일 선임자가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육사 동기들을 포함하여 사단 전입자들은 모두 같은 계급이고 임관한 날짜가 같았기 때문에 군번이 가장 빨랐던 내가 제일 선임자였다. 그래서 내가 대표로 신고를 하려고 나서니, 나 말고 남자 동기를 가리키며 앞으로 나와서 신고를 하라고 하셨다. ‘어? 왜 내가 아니지?’라는 의문이 떠올랐지만, 긴장도 되고 나보다도 한참 선배 장교가 지시하니 그대로 따랐다. 나중에 선배 대위에게 전입신고 당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물어봤다. “별 이유는 없는데? 여군이 대표로 신고한 적은 없어서. 통상 신고할 때는 남군들이 대표로 신고하니까 그냥 남군 시킨 거야.” 앞으로 ‘여군이라서’, ‘여군이니까’라는 말을 들으면서 불편한 마음을 웃으며 넘겨야 하는 상황을 또 겪게 될지도 모르겠다.

장교와 부사관


내가 배치 받은 부서는 부서원이 소령 참모 1명(부서장이다), 대위 1명, 소위 1명(나), 준사관 1명, 부사관 3명, 병 10명이었다. 업무의 지시는 부서장인 소령 참모가 했고, 그 외 간부들은 세부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내가 비록 계급으로는 부서에서 세 번째였지만 업무 숙달도는 병 10명보다도 부족한 상태였고, 준사관과 부사관 4명은 참모의 별도 지시가 없어도 실수 없이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분들이었다. 심지어 이때 부서에 있던 부사관 중 1명은 차가 없던 내가 야근을 하기라도 하면 30분 정도를 걸어야 숙소로 갈 수 있었던 걸 알고 남아서 함께 야근을 해주셨다. 내 마음이 불편할까 봐 본인도 할 일이 남아있어서라고 말을 했지만 내가 업무를 마무리하면 항상 같이 퇴근했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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