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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삶

미로슬라브 볼프 외 지음 | 흐름출판


가치 있는 삶

미로슬라브 볼프 외 지음

흐름출판 / 2023년 11월 / 420쪽 / 25,000원





프롤로그 - 이 책이 당신의 삶을 바꿔놓을 것이다.



모든 변화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왕족이라는 지위를 버리고 부처가 되어 위대한 전통을 창시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하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끝내 기독교 교회 설립의 바탕이 되는 바위 역할을 했다. 아이다 B. 웰스는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진실을 알리며 흑인과 여성 해방을 이끌었다. 이렇게 전혀 다른 세 사람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형태에 의문을 품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에게는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이 질문처럼 다가왔다.

싯다르타, 베드로, 웰스는 지나치게 근본적이기에 명확하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의문을 품었다. 아마 이런 의문을 표현하는 질문의 예는 다음과 같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좋은 삶이란 어떤 삶인가? 무엇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가? 인간다운 가치를 품은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실한 삶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옳고, 진실하고, 선한가? ……’

그런데 그 어떤 질문도 세 사람이 품은 의문을 완벽히 표현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어떤 말로도 의미를 온전히 담을 수 없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덜 진실하거나 덜 중요하지는 않다.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이 ‘의문’은 우리의 삶을 관통한다. 그리고 ‘의문’은 가치, 의미, 선과 악, 목표와 목적, 아름다움, 진실, 정의에 관해 묻는다. 또한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니는지,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그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한다. 아울러 성공한 삶은 무엇인지, 실패한 삶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 찾아온 ‘의문’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출가한 싯다르타, 예수의 부름을 받은 시몬, 친구의 죽음을 경험한 웰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충격적인 사건 때문에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하겠지만, 누군가는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세 사람은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값어치를 따지면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다. 세 사람은 변혁을 거치며 세상으로 나아갈 새로운 동기와 설 자리를 찾고 인생의 원동력을 얻었다. 이는 삶 자체보다 중요한 가치였다.

이 책은 ‘의문’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의문’의 지도를 그리고, 주요 지형지물의 위치를 파악하고, 경계를 그을 예정이다. 또한 여러분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할 수 있도록 성찰을 돕는 습관 몇 가지를 소개할 것이다. 그러니 마음속에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귀를 기울이고 나름의 답을 내놓는 데 활용하기를 바란다. 이 책이 유용한 지도이자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의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


우리 인생은 포커와 워(war)라는 카드 게임 중 어디에 가까운가? 인생의 ‘규칙’은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자유를 허용하는가? 이는 쉽지 않은 질문인 만큼 논쟁의 여지도 많다. 하지만 인생이 포커와 워 사이 어디에 자리하든 다음의 두 가지는 꼭 명심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우리 인생의 형태에 어느 정도 책임을 지닌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 인생의 형태는 승패와 게임에 임하는 자세를 모두 포함한다. 둘째,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곳을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 주변 환경은 거대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며, 우리에게는 결과를 결정할 힘이 없다. 제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는 위험한 허상이다.

현재 우리의 모습조차 우리의 선택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피할 수 있었다면 피했을 만한 사건을 경험한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순간을 마주하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전지전능한 독재자가 아니다. 잘 알고 있겠지만, 모든 상황을 내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삶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삶의 고통을 둘러싼 깨달음, 예수 추종, 인종차별 해결은 고대 마야인의 삶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에 추구할 만한 가치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가 걷는 길에 책임이 있는 삶을 사는 중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평범한 길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 어떤 길을 걸을지는 우리의 책임이다. 또한, 많은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관점을 취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우리의 책임이다. 이는 우리 삶을 형성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제한적인 책임이다. 우리에게는 추구할 가치가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우리 삶에 어떤 ‘의문’이 주어졌고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최선을 다해 고민할 책임이 있다.



뛰어들기



추구할 가치가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먼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네 가지 방식과 각 방식이 품은 질문을 알아보겠다. 정리가 끝나면 우리가 앞으로 씨름하게 될 온갖 질문 사이에서 방향을 잡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첫 번째 방식은 무의식의 영역에 속하는데, 이렇듯 즉각적이고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삶의 방식을 ‘자동 조종 모드’라고 부르겠다. 나머지 세 가지 방식은 의식의 영역으로 ‘효율’, ‘자기 인식’, ‘자기 초월’이 여기에 속한다. 각 방식마다 질문이 하나씩 주어지므로 우리는 총 네 가지 방식과 네 가지 질문을 다룰 예정이다. 잘못되거나 나쁜 방식은 없다. 또한, 모든 삶의 방식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네 가지 삶의 방식은 ‘단계’를 이룬다. 심해 다이빙을 하는 것처럼 각 단계를 경험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운데, 다이빙을 할 때 얕은 바다를 거쳐서 깊은 바다로 들어가듯, 삶의 단계를 이동할 때도 인접한 단계를 거쳐 가곤 한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의식이 깊어지고, 해수면에 가까워질수록 행동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우리는 깊은 의식과 행동을 모두 갖춰야 한다.

그리고 각 단계는 바로 아래 단계에서 주어진 질문에 대한 대답에 영향을 받는다.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우리는 심오한 삶의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할 때조차 살아감으로써 대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해에 익숙해지도록 바다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바닷속에 무엇이 있는지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을 무작정 물에 빠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이번 장에서는 네 단계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수면에 머무는 삶 - 자동 조종 모드:
이 모드로 삶을 살아갈 때는 ‘무엇’을 ‘왜’ 하는지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단계는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행동의 영역으로, 우리는 반사와 습관으로 삶을 살아간다. 이 단계에서는 개인과 집단을 막론하고 삶은 기계처럼 계속해서 굴러가고, ‘어떻게’ 또는 ‘왜’라는 물음은 떠올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삶의 많은 시간을 수면에 머무른다. 그리고 삶이 수면에 유유자적 떠 있을 때, 우리는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인간답게 행동하는데, 일이 잘 풀리면 무의식에 따른 행동이 우리가 원하던 결과, 더 나아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경우 무의식적인 삶은 가장 깊은 가치를 반영하고, 이런 가치는 우리가 세운 기준과는 별개로 진정성을 지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현자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라면 이런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목수가 지혜를 활용해 의자를 만들듯 우리는 인생을 꾸려나간다.

하지만 단순히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삶을 살다 보면 언젠가 미덕의 흐름에서 벗어나기 쉽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무의식에 따라 행동하는 삶을 ‘성찰하지 않는 삶’이라고 부르며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지금까지 늘 이렇게 해왔다’는 변명을 대며 항상 똑같은 방식을 고수하는 회사와 집단이 이 단계에 해당하며, 구성원이 자동 조종 모드로 움직여도 사는 데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삶은 그럭저럭 굴러가지만 어떤 문제가 어떤 이유로 일어나는지에 관한 고민은 없다.

수면 아래 - 효율:
자동 조종 모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탓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면 우리는 한 걸음 물러나 습관을 뒤돌아보곤 한다. 또한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지금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을까?” 또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면 왠지 모르게 안도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형태든 이런 종류의 물음을 우리는 효율성 질문이라고 한다. 효율성 질문은 집단과 조직이 일상의 중심을 되찾고 목표에 맞게 활동을 조정하는 분기점 역할을 한다. 효율 단계에서 성찰이 잘 작동하면 능률이 향상하고 에너지가 상승한다. 팀의 경우 팀원 전체가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성찰하는 시간을 한 계절쯤 보내면서 얻은 새로운 습관은 우리가 무의식의 삶으로 돌아와 원하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얕은 성찰에 해당하는 효율 단계에는 궁극적 목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우리가 지닌 목표가 옳은지, 그 목표가 누구의 것인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효율적 전략은 삶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닌 관계를 배제하고 오직 직업적 목표만을 좇는다는 점에서 비효율적 전략보다 나쁠 수 있고, 효율적 전략을 추구하다가 나쁜 결과를 맞닥뜨리는 경우, 해결책을 찾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커리어를 좇다가 인간관계를 망친다니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더 깊은 단계로 내려가지 못하고 수면 근처를 헤매는 사람이 적지 않다.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사람이 효율성 질문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늪에 빠진 사람은 효율적인 삶을 무엇보다 선망한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겠다. 이 세상에는 효율성보다 중요한 문제가 많다. 그런데도 사실상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 대부분이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효율성 질문에 머무르고 있다.

심해 - 자기 인식:
그저 바쁘게 움직이던 자동 조종 모드와 전략만을 생각하던 얕은 성찰 단계를 지나면 보다 사적인 영역에 도달하는데, 이 단계에서 우리는 내면을 들여다본다. 가장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에 정신을 빼앗기는 대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큰 가치를 두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런데 이런 자기 인식 질문은 자아 성찰을 유도한다. 아울러 자기 인식 질문은 다음과 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직장에서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싶다. 왜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싶은가? 권한을 가짐으로써 나는 무엇을 얻고 싶은가? 직장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동료에게 존중받고 싶은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왜 영향력과 존중을 바라는가?” 질문은 계속 이어지고, 사고가 깊어질수록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독립적인 결과나 감정, 성정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우리는 그보다 포괄적인 목표를 추구하기에 좋은 삶을 보는 전체적인 비전, 즉 ‘의문’에 대한 궁극적 대답을 찾는다. 마음속에 우리는 이상적인 개인과 공동체의 모습을 품고 있다.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지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한편 ‘좋은 삶’이라는 비전은 방대한 의미를 포함한다. 이런 관점에서 좋은 삶이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올바르고 원활하게 나아가는 삶을 뜻한다.

하지만 넓은 범위에서 삶의 비전을 논할 때도 구체적인 바람을 가질 수는 있다. 누군가는 용기 있는 삶을 원할 것이고, 누군가는 타인에게 베푸는 삶을 원할 것이다. 풍족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계를 꾸리는 데 필요한 재산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짜릿한 즐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고요한 평화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고, 상호 의존적인 삶을 좇는 사람도 있다. 삶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리고 선택은 우리 손에 달렸다.

자기 인식 질문에 대답을 고민하는 심해는 외로운 곳이다. 스스로의 직관과 선호를 깊이 성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좋은 삶에 대한 비전과 그런 삶을 원하는 이유를 찾는 여정은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다. 진정성 있는 삶을 살길 원한다면 넓고 깊은 성찰을 통해 얻은 삶의 비전을 기준으로 삼아 효율적 전략을 세우고 무의식적 습관을 들이며 남은 인생을 꾸려나가야 한다.

해저면 - 자기 초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가치를 의식하고 따르는 삶은 썩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자기 인식을 실현한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무엇을 원하는지 인식하고도 불안을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성공’을 경험한 유형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삶의 방향을 잡아 추구하던 목표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이 유형에 해당한다. 평생 동안 사다리를 타고 올라 마침내 꼭대기에 올랐지만 막상 정상에 올라가보니 엉뚱한 벽에 기댄 사다리를 골랐음을 깨닫는 순간 위기가 찾아온다.

그런데 성공의 사다리가 깨달음을 얻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다들 ‘좋은 삶’이라고 이야기하는 삶에서 내쳐진 듯한 좌절을 느낄 때도 비슷한 고민에 빠진다. 우리는 이따금 쇼윈도에 코를 박고 서서 과연 저 안에 전시된 반짝이는 삶이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만한 것이 맞는지 고민한다.

계기가 ‘성공’이든 좌절이든, 우리는 간절하게 바라고 추구하던 삶의 비전이 사실 공허한 껍데기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위기를 맞닥뜨린다. 이런 상황에서 효율성 질문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우리가 좋은 삶이라 생각하고 목표를 향해 망설임 없이 옮기던 발걸음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기 인식 질문 또한 썩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자기 인식 단계에서 얻은 교훈을 재차 곱씹으면서 위기에 대처하려고 노력하지만, 어떤 질문도 중심에 도달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며 끊임없이 반복될 뿐이다. 그러므로 안타깝지만 자기 인식 단계 내부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진심으로 원하기에 이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다른 무언가를 원했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에 처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가 아닌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자아실현이라는 성공의 암초에 갇혀서 삶을 방치하거나 인간으로서 추구할 가치가 없는 비전을 좇는 데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런 의문을 품기를 바란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독립적인 결과나 감정, 성정이 아닌 전반적인 삶에 대한 비전이다. 그리고 이는 해저면 단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물론 우리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는 있다. 몇 가지 물음을 예시로 들어보겠다.

어떤 사람과 어떤 장소에서 사는 삶이 가치 있는가? 직업적인 분야에서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경제, 생태, 정부 차원에서 가치 있는 목표란 무엇인가?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에서 가치란 삶의 일부를 구성하는 어떤 요소가 아닌 풍요로운 삶 전체에서 일관적으로 관찰되는 근본적인 무언가를 의미한다. 따라서 특정한 삶의 측면에서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고민할 때도 사실 우리는 보다 광범위하고 궁극적인 질문, 즉 “무엇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질문을 ‘의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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