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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착각

베카 레비 지음 | 한빛비즈


나이가 든다는 착각

베카 레비 지음

한빛비즈 / 2023년 7월 / 380쪽 / 19,800원





우리 머릿속의 노인




나는 예일대학교의 ‘건강과 노화’ 수업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노인을 생각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단어나 표현 5가지를 적어보게 한다. 당신도 똑같이 해보고 다 적었으면 그 단어들을 살펴보라. 그 가운데 긍정적인 단어는 몇 개인가? 부정적인 단어는 몇 개인가? 참고로 보스턴 외곽에 사는 79세 바이올린 제작자 론의 목록은 이렇다. “노망, 느리다, 아프다, 괴팍하다, 완고하다.” 연금 수표를 수령하러 옛 일터인 연필 공장에 들른 82세 중국인 할머니 비위의 목록은 이렇다. “현명하다, 경극을 좋아한다, 손자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많이 걷는다, 너그럽다.” 그런데 이처럼 상충하는 2가지 시각은 각 문화를 널리 지배하는 연령 인식을 반영하며, 이런 인식은 우리가 고령의 가족을 어떻게 대할지, 생활공간을 어떻게 구성할지, 의료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지, 공동체를 어떻게 형성할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궁극적으로 노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 그들의 청력과 기억력, 수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노화에 대해 선입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만, 어디 사는 누가 됐든 그런 선입견이 없지 않다. 불행히도 오늘날 전 세계 대부분의 문화 집단은 부정적인 연령 인식의 지배를 받는다. 이런 인식을 조사하여 그 원인과 작용 방식을 밝힌다면, 우리는 노화를 바라보는 시각뿐만 아니라, 우리가 늙어가는 방식 자체를 바꿀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나이에 맞는 행동


연령 인식이란 우리가 고령자에게 나이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기를 기대하는지를 담은 심적 지도다. 우리 머릿속의 그림을 담은 이 정신 지도는 우리가 집단 속에서 그 지도에 해당하는 구성원을 발견할 때 펼쳐진다. 참고로 ‘고령자’라고 하면 나는 적어도 50대 이상인 사람을 가리키지만, 사실 정해진 나이 기준은 없다. 그런데 특정인이 언제 노령에 이르는지를 판단할 생체 지표가 사실상 하나도 없다는 것은 노령의 기준이 다소 유동적인 사회적 산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연령 인식과 연령에 걸맞은 행동에 대한 기대가 그토록 막강한 이유는 우리가 만년을 경험하는 방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기대는 꽤 유용한 경우가 많다. 닫힌 문을 마주하면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문이 잠겼거나 잠기지 않았다고 기대한다. 그런데 다행히도 우리의 뇌에는 상황을 시각적, 자동적으로 신속하게 처리하는 능력이 있다. 덕분에 우리는 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매번 다시 배울 필요가 없다. 대신에 이미 잘 아는 사실에 의지할 수 있다. 우리는 날마다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기대를 품고 그 기대에 의지하는 것이다. 물론 연령 인식은 문이 아닌 사람에게 기대하지만 작동 방식은 비슷하다.

대부분의 고정관념이나 사고의 지름길이 그렇듯 연령 인식은 세상에 존재하는 엄청난 양의 자극을 아기 때부터 분류하고 단순화하면서 시작되는 자연적이고 내면적인 과정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것은 학교 교육, 영화, 소셜미디어 등 외부 사회에 만연한 연령차별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판단을 흐리는 고정관념


고정관념은 우리가 다른 인간들을 신속히 평가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장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관념은 관찰이나 경험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에서 무비판적으로 흡수한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타인을 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사회적 존재인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얻은 사회적 인식을 지니고 있다. 워낙 마음속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우리를 속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이런 인식은 ‘암묵적 편향’이라는 무의식적인 과정을 초래해 우리가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반사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게끔 영향을 줄 수 있다.

암묵적 편향에는 흔히 구조적 편향이 반영되기 때문에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구조적 편향은 근로자를 차별하는 기업이나 환자를 차별하는 병원처럼 사회 기관의 정책이나 관행에 담긴 편향으로, 암묵적 편향과 뒤얽혀 있을 때가 많다. 고령의 구직자에 대해서도 구조적, 암묵적 편향, 즉 연령차별이 존재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력서의 다른 내용이 동일할 경우 고용주들은 좀 더 젊은 지원자를 고용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구조적 편향과 암묵적 편향 사이의 경계는 흐리터분하고 엉성하다. 그리고 문화에 기반한 구조적 편견은 우리의 인식에 스며들어 무의식중에 작동할 수 있다. 그 결과, 의식적으로 어떤 인식을 가졌든 간에 우리 모두에게는 무의식적인 편견이 있다는 연구가 적지 않다.

우리의 인식이 되는 문화


문화 집단의 나이 고정관념이 어떻게 우리의 뼛속 깊이 스며드는지 이해하기 위해, 나는 고정관념 체화 이론(SET, stereotype embodiment theory)이라는 틀을 개발했다. 이 이론은 부정적인 연령 인식이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고 본다. 나이가 들면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반대로 긍정적인 연령 인식은 우리의 건강을 개선하는 효과를 낸다. 이 두 가지 가정을 뒷받침하는 내 연구는 5개 대륙에서 여러 과학자들이 실시한 400건 이상의 연구로 검증되었다. SET에 따르면, 나이 고정관념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메커니즘에 따라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① 어릴 때부터 평생에 걸쳐 사회에서 흡수되어 내재화된다. ② 무의식적으로 작용한다. ③ 자기 관련성이 생기면서 영향력이 커진다. ④ 심리, 생체, 행동 경로를 통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주체에서 대상으로


연령 인식은 비관적 사고나 낙관적 사고와는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긍정적인 연령 인식은 긍정적 사고의 한 측면이고 부정적인 연령 인식은 부정적 사고의 한 형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연구를 통해 행복이나 우울 같은 일반적인 감정과 별도로, 연령 인식 자체가 기억할 수 있는 정보의 양, 동네 한 바퀴를 도는 속도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혔다. 즉 연령 인식은 정서적 태도, 이를테면 유리잔이 반쯤 찼다고 보는 성향인지 반쯤 비었다고 보는 성향인지에 관계없이 우리의 건강을 실제로 손상할 수도 개선할 수도 있다.

지혜로운 노인이 보이는가


다행히 연령 인식은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며, 그런 인식을 흡수한다 해도 그대로 고정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문화 집단마다 연령 인식이 얼마나 철저히 다른지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예로 중국에서 노인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나 문구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지혜’라는 대답이 가장 많지만, 미국에서는 대개 ‘기억력 감퇴’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한편 연령 인식은 시대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심지어 나는 연구 도중에 참가자들의 부정적인 연령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이런 문화 차이뿐 아니라 역사에 따라, 또는 실험에 의해 연령 인식이 바뀐 예를 살펴볼 것이다. 또 이런 경향을 바탕으로 인식 개선을 위한 전략을 제시할 것이다. 참고로 연령 인식은 건강관리와 일할 기회를 비롯해 우리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고령의 환자들은 우울증 때문에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아가도 적절한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적다. 이 전문가들은 우울증이 노화의 정상적인 일부라고 널리 믿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은 정신건강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나이 든 환자들은 돌볼 가치가 없는 존재로 치부되는 경우도 많다.

노화는 생물학적 과정이지만, 늙는다는 것의 의미를 둘러싼 우리의 인식이나 관행과 무관하게 생물학적 차원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연령 인식이 과학적 사실보다는 문화적 편견의 산물임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건강에 유전자가 주는 영향은 25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종종 잊는다. 25퍼센트라는 말은 건강의 4분의 3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환경 요인으로 결정된다는 뜻이다. 내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통제 가능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연령 인식이다. 이 책의 초입에서 나는 예술가 등 다양한 사람들을 예로 들며 연령 인식에 대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이런 인식이 우리의 건강, 생물학, 기억력, 전반적인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할 생각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연령 인식이 지닌 만만찮은 힘을 이용해 구조적 연령차별에 맞서 싸우는 전략을 공유할 예정인데, 이런 투쟁을 통해 우리 자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좋아진 기억력




우리의 기억에는 이따금 누전이 생긴다. 얼마 전에 본 영화 주인공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거나 방에 들어왔지만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 생각나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 우리는 이렇게 기억력이 흐릿해지는 상황을 가리켜 ‘노인 건망증’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나이대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을 굳이 ‘노인 건망증’이라 부르는 이유는 뭘까? 분명 건망증은 고령자에게만 간간이 찾아오는 현상이 아니다. 그 때문에 ‘노인 건망증’이라는 악의 없는 표현이 연령차별주의의 은밀한 작동 기제와 효과를 완벽하게 집약하여 보여주는 예가 된 것이다. 이 용어는 기억이라는 복잡하고 유연한 과정에 사이비 과학 이론을 덮어씌워, 보편적인 불안을 특정 연령대 이상의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개념으로 포장한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의 뇌 기능에는 엄청난 변화가 생긴다. 뇌의 유연성을 유지하고 새로운 신경 연결을 형성하는 능력인 신경가소성은 오랫동안 젊은 뇌의 특징처럼 여겨졌지만, 사실은 노화가 진행되는 내내 유지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늘고 있는데, 이는 나이가 들수록 뇌는 퇴화할 수밖에 없다는 흔한 고정관념이 알고 보면 거짓이라는 뜻이다. 어떤 종류의 기억력은 노년기에 더 좋아진다. 그중 한 가지는 사과의 다양한 색깔 같은 일반 지식에 대한 기억인 의미기억이다.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기억도 있다. 자전거 타는 법처럼 일상 행동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절차기억이 그 예다.

한편 일화기억은 나이가 들수록 쇠퇴하는 경향이 있다. 일화기억이란 어젯밤에 집 위에서 번쩍이는 번개를 본 경험처럼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 개인의 일화에 대한 기억을 가리킨다. 모든 노인은 이 기억 유형의 쇠퇴를 겪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런 기억도 개입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 특정 순간에 특정 사람들에게 특정 형태의 기억력이 실제로 저하된다면 ‘노인 건망증’이라는 표현이 옳지 않겠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기억력은 감퇴할 수 있으며, 뇌는 노년기에도 가끔의 실수를 보상하고도 남을 새 연결을 형성한다. 한마디로 특정 유형의 기억력이 떨어지는 원인은 노화 그 자체보다 우리가 노화를 대하고 바라보는 태도와 관계가 있다. 즉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속한 문화가 가르쳐주는 방식, 우리 자신이 가진 믿음에 영향을 받는다.

청각장애 노인의 뛰어난 기억력


이 분야의 연구를 시작한 초창기에, 나는 나이를 바라보는 문화 집단 간의 인식 차이가 노년기의 기억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의문이 생겼다. ‘노인 건망증’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북미와 유럽에서 기억력 감퇴는 고령자에 대한 가장 흔한 고정관념이다. 대학원 시절 실시한 연구에서 나는 이런 고정관념이 기억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조사 대상은 연령에 대한 인식이 다른 세 문화 집단, 농인(청각장애인 가운데 수화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수화언어에 기초한 문화적, 언어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 미국인, 청인(청각장애인과 대비되는 비장애인을 가리키는 말) 미국인, 중국 본토인이었다. 중국 문화를 선택한 이유는 2,000년 전부터 효도와 노인 공경을 강조해온 유교 가치관 때문이고, 이는 현재까지도 중국인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나는 인지 전문가들이 나이가 들면서 쇠퇴한다고 주장하는 기억의 유형인 일화기억을 시험하기 위해 이 연구를 설계했고, 보스턴 노인 복지관과 청소년 단체에서도 노년층과 젊은 층의 농인 미국인 참가자를 모집했다. 베이징에 있는 연필 공장에서는 노년층과 젊은 층의 청인 중국인 참가자를 모집했다. 이렇게 세 문화 집단에 속한 참가자들을 비교했기에 내가 찾아낼 의미 있는 기억력의 차이가 언어 등의 다른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없앨 수 있었다. 만약 미국 청인과 미국 농인끼리만 비교한다면, 오랜 세월 수화를 쓰면서 농인들의 기억력이 단련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중국 청인과 미국 청인끼리만 비교한다면, 알파벳이 아니라 상형문자를 쓰는 언어에 노출된 중국인의 기억력이 원래 우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농인과 중국 청인을 동시에 포함했기에, 두 집단의 공통 요인인 긍정적 연령 인식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아무튼 연구 결과, 노인 참가자 가운데 청인 미국인 집단은 가장 부정적인 연령 인식을 드러냈고 4 가지 기억력 과제에서 하나같이 성적이 좋지 않았다. 연령 인식이 가장 긍정적인 중국 노인들은 전반적으로 성적이 가장 좋았는데, 중국에서는 고령자들이 젊은이들만큼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보고 나는 크게 놀랐다. 다시 말해 중국 노인은 기억력이 손자 손녀에 못지않다고 볼 수 있다. 긍정적인 연령 인식을 지닌 농인 미국인 노인들은 청인 미국인 노인들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얻었다. 고령의 참가자들과 대조적으로, 세 문화 집단의 젊은 참가자들은 다들 고르게 좋은 성적을 냈다. 아직 자기 관련성이 없어 연령 인식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거라는 점을 고려하면 납득 가능한 결과다.

우리가 문화적 인식과 노인 참가자들의 기억력 점수 사이에서 그토록 강한 상관관계를 발견한 이유는 중국에 사는 고령자와 미국 농인 집단의 고령자들은 성장기에 부정적인 연령 인식이 지배적인 미국의 주류 미디어를 거의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농인들은 그 시절에 폐쇄 자막이 나오는 TV를 이용할 수 없었고, 중국 본토는 미국과 지리적, 정치적으로 동떨어져 있고 그 시절에는 연령차별을 국경 너머로 퍼뜨릴 수 있는 소셜미디어도 없었다. 하지만 청인 미국인을 포함한 세 집단 모두, 긍정적인 연령 인식을 지닌 구성원일수록 기억력 점수가 더 높았다. 우리의 연구를 통해 나는 노화에 대한 문화적 인식은 노년기의 기억력을 떨어뜨릴 만큼 강한 힘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생에 걸친 변화의 추적


확실히 기억력은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우리 연구는 하루 동안 진행되었을 뿐이다. 나는 연령 인식이 평생 동안 기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이 의문을 해결하려면, 수십 년 전 사람들의 연령 인식을 측정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기억력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추적할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국립노화연구소의 설립자인 로버트 버틀러가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놨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노화 연구인 볼티모어 노화 종단 연구(BLSA)의 출범에 기여했는데, 이 연구는 1958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아무튼 로버트가 BLSA의 최초 연구자 한 명이 노년에 대한 참가자들의 인식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로버트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노화연구소의 과학 책임자 루이지 페루치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에게 세월이 흐르면 연령 인식에 따라 기억력이 어떻게 바뀌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지금까지 BLSA 참가자들의 연령 인식을 측정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초기 연구자 한 명이 연령 인식을 평가했을 가능성은 있다면서, 내게 직접 확인해보라며 대도시 전화번호부 두께의 자료를 보냈다.

그 자료에는 반갑게도 연구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첫 설문조사에 연령 인식 측정 결과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노인을 대하는 태도’ 척도라는 자료였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 BLSA 연구의 시작 무렵에 참가자들이 노화에 대해 어떤 인식을 드러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노인이 되려면 수십 년은 남은 젊은이였고, 이제는 환갑을 넘겼을 터였다. 나는 연구 시작 무렵의 연령 인식을 그들이 38년간 치른 기억력 시험 점수와 비교했는데, 처음에 긍정적인 연령 인식을 지녔던 사람들이 부정적인 연령 인식을 지녔던 또래들보다 노년이 된 후의 기억력 점수가 30퍼센트 높았다. 또 참가자들의 긍정적인 연령 인식이 기억력에 미치는 유익한 영향은 나이, 신체건강, 교육 같은 요인들이 기억력에 미치는 영향보다 컸다. 이렇게 세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의 노화와 기억력을 연구하고, 실험실에서 시간에 따라 연령 인식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한 끝에, 나는 노화가 기억력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요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연령 인식 역시 우리의 기억력에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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