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카밀라 팡 지음 | 푸른숲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카밀라 팡 지음
푸른숲 / 2023년 4월 / 320쪽 / 18,800원
상자 밖에서 생각하는 법 -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과 의사 결정나는 열한 살이었고, 언니와 언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사람을 코딩할 수는 없어, 밀리. 그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해.” “그러면 생각은 어떻게 하는데?” 당시 나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생각하는 방식이 컴퓨터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다. 지금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사고를 처리하는 중이다. 컴퓨터 알고리즘과 똑같이 인간은 데이터, 즉 지시, 정보, 외부 자극을 흡수하고 반응한다.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는 슈퍼컴퓨터가 들어있다. 우리는 컴퓨터 속 디렉터리처럼, 훗날 사용하기 편하도록 데이터를 분류해서 우선순위에 따라 저장하고,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이용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일 일상적인 결정을 내릴 때 실수를 저지른다. (오늘 어떤 옷을 입을지, 이메일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점심 메뉴로 무엇을 고를지 고심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혹은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정보와 선택에 압도당한다고 말한다. 뇌처럼 강력한 기계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한, 그 말은 사실일 리 없다. 의사 결정 방식을 개선하고 싶다면, 의사를 결정하는 전문 기관인 뇌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기계는 창의성이나 융통성, 감정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인간의 뇌를 대체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사고와 의사 결정을 더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에 관해서라면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다. 머신러닝을 연구하면, 정보를 처리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하고 의사 결정에 이르는 과정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다. 이 장에서 나는 컴퓨터가 우리에게 알려줄 매우 다양한 의사 결정 방식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직관과 정반대되는 교훈이 하나 존재한다. 더 나은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 정보에 접근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더 체계화하거나 구조화하거나 중점적으로 다룰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머신러닝이 우리를 그런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예상하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알고리즘은 통일성이 없고, 복잡성과 무작위성 속에서 번성하며, 환경의 변화에 효율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순응적이며 단순한 패턴을 추구하는 경향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사고방식에서 나타난다. 기계는 복잡한 현실을 전체적인 데이터 집합의 또 다른 일부로 여겨 단순하게 접근하는 데 반해, 정작 그로부터 도피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다. 결코 단순하거나 직접적일 수 없는 대상을 더 복잡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통찰력과 위대한 자발성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쉽게 틀에서 벗어나 사고한다는 사실을 이제 인정할 때다. 그러나 좋은 소식도 있다. 바로 컴퓨터가 우리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머신러닝이 인간의 뇌를 가르친다면당신은 아마 머신러닝이라는 개념을, 인공지능(AI)이라는 단어와 함께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컴퓨터, 즉 당신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컴퓨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의식적 사고, 직관력, 상상력 측면에서 뇌의 능력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그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과도 비교할 수 없다. 머신러닝은 패턴을 학습하거나 인지할 수 있는 알고리즘에 데이터를 대량으로 입력한 뒤, 그 결과를 새롭게 입력되는 정보에 적용하는데, 이론적으로 알고리즘은 데이터를 더 많이 입력할수록 앞으로 제시될 비슷한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컴퓨터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인간의 뇌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다. 이 방법을 이해하려면 머신러닝에서 가장 보편적인 기술 2가지(지도 학습과 비지도 학습)를 살펴봐야 한다.
지도 학습(supervised learning): 지도 학습은 얻어야만 하는 특정 결과를 염두에 두고, 그 결과를 도출해내도록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마치 수학 문제집을 풀 때와 비슷하다. 문제의 답은 책 뒷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어려운 부분은 그 답에 이르는 과정이다. 당신이 프로그래머로서 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이는 지도 학습이다. 이때 당신에게 주어진 목표는 다양하고 폭넓은 잠재적 입력값들에서 항상 정답을 도출하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이다. 암을 진단하는 알고리즘이 종양을 정확하게 찾는다고 어떻게 보증할 수 있을까? 이처럼 대상을 정확하게 분류해야 하는 알고리즘에 지도 학습이 주로 적용된다. 지도 학습은 효율성이 매우 높고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생성하지만, 사실은 정보를 빠르게 분류하며 많이 사용할수록 더 나아지는 분류 기계 그 이상은 아니다.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 비지도 학습은 도출해야 할 결과에 관한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여기서는 알고리즘이 도출해야 할 정해진 답이 없다. 대신 데이터를 처리해 내재하는 패턴을 식별하도록 프로그램된다. 예로, 유권자나 소비자 집단에 관한 특정 데이터를 이용해서 해당 집단의 동기를 분석하고 싶다면, 비지도 학습을 통해 이들 집단의 행동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추이를 탐색하고 설명할 수 있다. 나도 비지도 학습 머신러닝을 이용하여 세포 집단에서 패턴을 찾아냈다. 나는 세포 집단에서 패턴을 찾고 있었지만 패턴이 어떤 형태일지, 또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비지도 학습으로 접근했다. 이를 군집화라고 하는데, 데이터를 A, B, C로 분류하려는 선입견 없이 공통점 혹은 공통 주제를 기준으로 분류한다. 이는 탐색해야 할 영역은 알고 있지만 그 범위가 광대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를 때, 대규모의 유용한 데이터에서 어느 것을 탐색해야 할지조차 막막할 때 적절한 방법이다. 미리 정한 결론에 꿰맞추기보다 데이터 자체가 말해주기를 바랄 때 유용하다.
의사 결정 - 상자 vs 나무인간이 의사 결정을 할 때도 머신러닝과 비슷한 선택지가 있다. 먼저 지도 학습 알고리즘과 비슷하게, 도출할 수 있는 결과의 수를 임의로 정하고 그중에서 원하는 답변을 하나 고르는 하향식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예로 기업에서 입사 지원자가 특정 자격과 최소한의 경험을 갖추었는지 판단할 때처럼 말이다. 또는 비지도 학습처럼 바닥에서 시작해 상향식으로 증거를 쌓아 올리거나, 세부 사항을 탐색해 결론이 유기적으로 드러나도록 할 수도 있다. 채용을 예로 들면, 미리 결정된 고용주의 편협한 기준에 따라 의사 결정을 하기보다는 모든 입사 지원자의 장점을 고려하고, 공개된 모든 증거, 즉 지원자의 성격, 발휘할 수 있는 기술, 일에 대한 열정 및 헌신도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향식 접근법은 자폐스펙트럼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첫 번째 기항지다. 우리는 세밀하고 전문적인 사항을 끌어 모아 결론 내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리는 결론에 이르기 전에 모든 정보와 선택 사항을 조사해야만 한다. 나는 이 접근법들이 각각 상자 만들기(지도 학습 의사 결정) 혹은 나무 키우기(비지도 학습 의사 결정)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상자 속에서 생각하기: 상자는 안심이 되는 선택이다. 상자는 유용한 증거와 대안을 모아 모든 측면을 살필 수 있도록 정돈된 형태로 만들며, 선택지가 명확하다. 상자를 만들어서 쌓고 그 위에 올라설 수도 있다. 상자 속 사고방식은 정돈되고 깔끔하기 때문에 선택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나무는 유기적으로 자라며 때로는 통제를 벗어나기도 한다. 나무에는 수많은 가지가 자라며 각 가지에는 나뭇잎이 무리 지어 돋고, 나뭇잎 자체에도 온갖 종류의 복잡성이 숨어있다. 나무는 우리를 사방으로 이끌 수 있고, 그중 상당수는 의사 결정의 막다른 길이나 완벽한 미궁으로 밝혀진다.
상자, 아니면 나무? 어느 쪽이 나을까? 둘 다 필요하다. 하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상자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의사 결정 나무의 첫 번째 가지까지도 절대 올라가지 않는다. 확실히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 나는 언제나 상자 속에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해하지도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너무나 많은 것을 마주하면서, 나는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정보의 마지막 한 조각에까지 집착했다.
상자 속에서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나는 내 주변 세상과 사람들에 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내가 더 많은 데이터를 모을수록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모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방법이 없었기에 쓸모없는 잡동사니로 가득 찬 상자만 점점 늘어났다. 그 상자들은 호더가 차마 버리지 못하는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나는 이 과정 때문에 거의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때로는 몸을 어느 각도로 유지해야 하는지에 집중하느라 침대에서 벗어날 때조차 고군분투해야 했다. 내 마음속에 아무 상관없는 정보들을 담은 상자가 더 많이 쌓여갈수록 나는 점점 더 방향을 잃고 지쳐갔으며, 급기야 모든 상자가 전부 똑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정보나 설명을 완전히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도 했다. 한번은 부엌에서 엄마를 도와드렸는데, 엄마가 요리 재료를 몇 가지 사 오라고 했다. “사과 다섯 개를 사고, 달걀이 있으면 열두 개 사 오렴.” 내가 사과 열두 개를 사 왔을 때 엄마가 얼마나 화났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가게에서는 달걀도 팔고 있었다). 상자 속에서 틀에 갇힌 사고를 하는 내게 그런 지시 사항은 ‘문자 그대로’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고, 지금까지도 나는 거기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중이다. 틀에 갇힌 사고는 우리의 삶을 분류함으로써 너무 많은 길을 폐쇄하고 도출할 수 있는 결과의 범위를 제한한다.
상자 속 사고는 이미 아는 것과 이미 수집한 삶의 ‘데이터’로 우리의 시야를 좁힌다. 우리를 속박하는 편견에서 벗어나 대상을 다른 관점에서 보거나 새롭고 낯선 것을 시도할 여유를 남겨두지 않는다. 목표를 이루려면 스스로 계속 도전해야 하며, 오래 머물수록 더 좁아지는 상자에서 탈출해야 한다. 상자 속 사고는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를 명확하게 살펴보고 그에 따라 라벨을 붙이도록 격려하기도 한다. 뉘앙스나 회색 지대, 아직 고려하지 못했거나 알아내지 못한 것에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즐기거나 잘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상자 속 사고를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것, 삶에서 원하는 것, 잘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의 특성을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이 분류법을 더 깊이 수용할수록 그 경계선을 넘어가 탐색하고 자신을 시험해보려는 의지는 더 줄어든다.
증거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삶의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다고 진실로 믿지 않는 한, 상자 속 사고는 좋은 결정을 내리려는 당신의 능력을 억누를 것이다. 명확하게 설명된 선택 목록을 보면 기분이 좋을 수는 있겠지만 아마 그것은 거짓 위안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의사 결정을 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상자 속 사고를 벗어나 새로운 사고를 해야 하고, 비지도 학습 알고리즘에서 한두 가지 정도는 배워야 하는 이유다(혹 원한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나무를 타보는 것도 괜찮다).
깔끔하고 논리적으로 보이는 방법 대신 엉망이고 체계적이지 않은 방법을 추천해서 놀랐을 수도 있다. 과학적인 정신은 자연스럽게 논리 정연한 방법에 이끌리지 않을까? 글쎄, 그렇지 않다. 사실 그 반대다. 나무는 제멋대로 뻗어나가지만, 바로 그 본질 때문에 상자의 날카로운 모서리보다 우리의 삶을 더 진실하게 나타낸다. 상자 속 사고는 정보를 즉시 저장하고 처리해야 하는 내 자폐스펙트럼장애에 위로를 주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군집화 알고리즘이 내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세상을 헤쳐나가는 길을 탐색하는 데 훨씬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자와 달리 나무는 인간처럼 계속 진화한다. 또한 나무의 수많은 가지는 상자의 몇 안 되는 모서리와 비교할 때 더 많은 결과를 상상하게 하며, 이는 다양한 선택으로 이어진다. 결정적으로, 나무는 확장성을 갖추고 있어서 우리의 의사 결정을 이상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나무는 프랙털(fractal) 구조(부분과 전체가 비슷한 자기 유사성을 보여주는 기하학적 구조)로 멀리서 전체를 볼 때와 가까이서 부분을 볼 때 모습이 유사하기 때문에 문제가 아무리 크고 복잡해도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과학은 우리에게 복잡한 현실을 수용하라고 가르친다. 얽히고설킨 것들이 사라지길 바라며 현실을 매끄럽게 다듬으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조화를 이루지 않는 대상을 탐색하고 질문하고 수용한 뒤, 이해하고 결정할 뿐이다. 의사 결정을 내릴 때 더 과학적으로 하고 싶다면, 패턴을 감지하고 결론을 끌어내기를 바라기 전에 무질서를 수용해야 한다. 즉 우리가 나무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무처럼 생각하기: 나무처럼 생각하는 방식은 나를 구원했다. 여러분에게는 평범하게 보이지만 내게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되곤 하는 일상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었다. 예상치 못한 군중, 소음이나 냄새,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 등 무엇이든 나를 멜트다운으로 몰아갈 수 있다. 자폐스펙트럼장애 때문에 확실한 것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나에게 가장 단순한 의사 결정법이 유용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지만, A에서 B까지 가는 최단 직선 경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다(또한 경험과 빈번한 불안장애를 통해 그 최단 직선 경로가 절대 쉬운 길이 아니란 사실도 알고 있다). 오히려 반대다. 나는 내 주변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을 바탕으로 온갖 가능성 사이를 질주하려는 내 마음을 멈추려 애쓰기 때문이다. 지붕에 앉은 검은 새 같은 것에 시선을 뺏기면, 그 새는 어떻게 지붕에 올라갔고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따위를 생각하느라 내 세계의 약속은 지키지 않고, 메시지에는 답장하지 않으며, 시간 감각은 사라진다. 혹은 소나기가 내린 뒤 인도에서 건포도 비슷한 냄새가 나는 걸 깨닫는 순간, 가로등 기둥에 부딪힐 뻔하며 정신이 산란해진다.
여기에 더해 ADHD는 내 시간 인지능력을 찌그러뜨리고 늘어뜨리며, 때로는 시간이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정보는 빠르게 마음을 스쳐 지나가고 다리는 쉬지 않고 떨린다. 일주일 분량의 생각과 감정을 한 시간 안에 모두 겪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희열과 낙담 사이를 폭넓게 오가며 한순간은 세상이 빛난다고 생각했다가 다음 순간에는 재앙이 닥쳤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는 투두 리스트(to-do list, 해야 할 일의 목록)를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특성이다.
같은 이유로 나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오히려 혼란스러운 작업 환경에 의지한다. 여기저기에 논문이 널려있고, 손에 잡히는 아무것에나 메모하고, 주변에 물건을 쌓아놓으면서 방 안의 백색소음에 파묻힌다.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소음을 제거하는 예초기처럼, 이 ‘혼돈’은 집중할 수 있도록 나를 격려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반대로, 고요함은 내가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하던 일을 그만두게 하는 압박감을 만들어낸다. 내 뇌는 확실성을 갈망하면서 동시에 혼돈을 먹고 산다. 계속 움직이기 위해 나는 모든 것을 심사숙고하려는 욕구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게 될지 정확하게 아는 질서정연한 삶에 대한 욕망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의사결정나무(decision tree)는 때로는 혼란한 방법으로 확실한 결말에 도달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끈다. 이는 가능성 있는 여러 결과 중 하나로 최소한 내가 아는 결말이다. 의사결정나무는 어쨌든 내 사고방식이 시행할 것임을 알고 있는 결과에 구조를 제공하며, 이는 끝없는 가능성을 헤치고 나가는 경주와 같다. 그러나 결국 유용하고 확실한 결론을 내리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