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상 세계로 간다
허먼 나룰라 지음 | 흐름출판
우리는 가상 세계로 간다
허먼 나룰라 지음
흐름출판 / 2023년 9월 / 307쪽 / 19,000원
메타버스의 기원지금의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남동쪽 바위투성이 평원에는 지름 30미터 규모의 돌 유적이 우뚝 서 있다. 5.5미터에 육박하는 T자 모양 석회석 기둥이 돌담 언덕 자락을 따라 서 있고, 곳곳에 동물 그림이 공들여 새겨져 있다. 고고학자들이 240개가 넘는 구조물을 발굴했어도 이제 겨우 한 꺼풀 벗겨진 광대한 신석기 시대 유적 괴베클리 테페(Gobekli Tepe)이다. 아직은 거대한 돌무더기에서 과거의 흔적을 간신히 해독할 뿐이지만, 이 유적에는 미래를 향한 귀중한 교훈이 담겨 있다.
1만여 년 전 괴베클리 테페 건설이 한창일 때, 내가 지금 원고를 쓰고 있는 영국 남서부는 대륙을 온통 뒤덮었던 얼음판이 겨우 걷힌 상태였다. 북슬북슬한 매머드의 마지막 후손이 돌아다니고 농사가 보급되기 전이었다. 그런데도 선사시대 아나톨리아 사람들은 스톤헨지보다 적어도 6000년 앞서 거대한 구조물을 짓고 탁월한 솜씨로 조각했다. 왜 지었을까? 그 시대 기준으로는 이런 거대한 돌 구조물이 별 쓸모없어 보인다. 혹시 실용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지, 그 이유가 다른 세계에 대한 믿음은 아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한 괴베클리 테페에 담긴 영적인 세계는 (짐작대로 종교적인 이유로 세웠다면) 현실이 아니지만, 그 세계를 담은 구조물을 현실에 만드는 데는 1천 년 동안 엄청난 양의 바위를 날라야 했다. 당시 수렵·채집 사회로서는 막대한 투자였을 것이다.
이 정도 큰 규모의 건설 프로젝트를 즉흥적으로 시작했을 리 없다. 더구나 척박한 신석기 시대 아나톨리아는 심심풀이로 건축 상상력을 펼칠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러니 1만 년도 더 전에 이곳 사람들이 돌로 표현한 세계는 현실 세계 이상으로 중요했을 것이다. 괴베클리 테페를 우리와 별 상관없는 먼 과거의 산물로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유적에 나타난 가장 인간다운 본성은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 최초의 기념물을 만드는 데 필요했던 건 돌이 아닌 독창성이었다. 괴베클리 테페는 집단의 염원을 담은 창작물이자 삶과 죽음의 기운, 모두의 상상력을 모은 가상 세계였다.
인간은 끊임없이 다른 세계를 만들어왔다. 동물의 왕국이나 다름없는 현실 세계부터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고고한 가상 세계까지, 인류는 태초부터 기발한 방법으로 여러 세계에 동시에 존재해 왔다. 그리고 수천 년 동안 첨단 장비도 없이 언어와 상상력만으로 이러한 세계를 만들어왔다. 때로는 거대한 구조물을 세우기도 하지만, 구조물 없이 말만으로도 가상 세계를 만들어 집단의 믿음으로 이어간다.
괴베클리 테페가 가상 세계와 일상의 상호 작용이듯, 이 책에서 다룰 가상 세계도 일상과 무관한 박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실재라고 인식하는 세계로서 현실 세계의 부와 권력, 정체성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수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나 지금 우리나 가상 세계를 만드는 이유는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다. 다만 우리는 진입로가 거대한 돌이 아닌 디지털 게이트웨이일 뿐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도 가상 세계를 만드는 능력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 능력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고, 미래의 가상 사회가 어째서 생소한 현상이 아닌 오랜 전통의 계승인지 설명할 것이다.
말이 세계가 될 때현실을 모형화하는 능력이야말로 추상적 사고의 핵심이다. 우리가 생존하고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계획을 세우고 판단을 내릴 때마다 현실을 단순화하고 여러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모형화를 통해 현실과 분리되면서도 소통하는 생각의 세계를 만들고 발전시킬 수 있다. 모형화 과정이 우리가 하는 말과 생각의 기본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돌아보지 않는다.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다”라고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논리-철학 논고』에 썼듯, 우리가 생각의 세계를 말로 표현할 때 이 세계는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모형이 되어간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는 말로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예를 들어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의도로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다’라고 말한다면 평화라는 이상을 실현한 가상 세계를 상상한다는 뜻이다. 마음에 떠올린 가상 세계의 모습을 바탕으로 현실 세계에 같은 가치를 이룬다는 뜻이다.
이렇게 생각과 말로 세계를 만드는 개인의 능력이 모이면 대대손손 이어지는 풍성한 가상 세계를 창조할 수 있으며, 종교가 사회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고통과 상처를 남기기도 했듯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도 있고 끔찍한 만행을 저지를 수도 있다. 가상 세계를 만드는 이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거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삶에 활력을 얻거나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삶을 명료하게 정리하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가상 세계를 믿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계가 확장되고 활기를 띤다.
이런 행위를 굳이 하는 이유는 다른 세계를 만들고 믿는 과정이 즐거워서만이 아니라, 가상 세계를 만드는 일이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가상 세계를 이용해 공동의 목표를 정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복잡한 역학 관계를 풀고, 개인의 탐욕과 야망을 적절히 견제해 공동의 목표를 향할 구성원의 역량을 모은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 세상, 공동의 경험을 만들어 낼 틀이 없는 세상은 생존의 삭막한 현실만 남는다.
메타버스의 원형은 역사상 어느 대륙이든, 어느 사회든 항상 존재해 왔고 대체로 비슷한 특징을 지닌다. 우선 현실의 인간 사회가 있고, 실재한다고 믿는 사건·정체성·규칙·사물이 존재하는 가상 세계가 존재하며, 두 세계 간 지속적인 가치 전달로 개인과 사회의 부와 만족감, 의미를 증진하는 과정이 있다. 이런 가상 세계는 그저 재미난 이야기가 아니라 믿는 사람에게는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실제 사건이 벌어지는 실제 공간이며, 시간이 갈수록 만든 사람들의 마음에 단단히 자리 잡아 현실 세계만큼 생생하고 중요해진다. 또 가상 세계의 가치가 사회 구조, 구성원의 화합, 정체성 인식, 감동적인 경험, 제례 의식의 형태로 현실 세계에 전달된다. 이렇게 가상 세계는 참여자들이 지적, 감정적으로 투자해야 하고 그 결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곳이 된다.
역사에도 비슷한 사례가 수없이 등장한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든 수많은 사람이 지니, 엘프, 마녀, 유령, 도깨비 같은 신비한 존재의 세계를 믿고 생활과 사회 구조까지 이 믿음을 중심으로 꾸려 왔다. 고대 로마인은 신의 뜻을 깨닫기 위해 동물 내장으로 점을 치거나 신을 모시려 제물을 바치고 조각상을 만들었다. 로마인은 제례 의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전쟁도 거부했으며, 점괘가 좋지 않으면 바로 짐을 싸 돌아간 뒤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불길한 징후가 나타나면 무역마저 중단했다.
가상 세계는 과거에도 지금도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며, 가상 세계를 상상하고 만들어 그 안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활동도 놀이가 아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가상 세계는 가장 인간적인 성과물이자 사회에 상당한 내적, 외적 가치를 생성하는 문화 기술 단위이다. 그리고 이를 새롭게 디지털로 구현한 모습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오는 수많은 메타버스 중 가장 최신판일 뿐이다. 미래의 디지털 가상 세계는 괴베클리 테페를 직접 계승했다고 볼 수도 있다.
메타버스의 성립 조건괴베클리 테페 건설이 신석기 문명 발달에 끼친 영향에서 가상 세계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알 수 있다. 바로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의 가치 이동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제례 의식을 살펴보자. 제례 의식은 보통 참여자들이 함께 동물의 고기 또는 다른 희생 제물을 잡을 때 절정에 이른다. 고기를 함께 잡고 먹는 행위는 단순히 영양을 섭취하기 위한 식사와는 차원이 다른 가치를 지닌다. 가상 세계를 믿는 모든 사람이 그 고기에 부여한 의미 때문이다. 고기를 먹는 행위는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고, 다리를 건너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가치가 이동한다. 이렇게 두 세계 간의 소통이 이어질 때 가상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가치가 이동하고, 가치 이동의 범위도 제례 의식과 경험에서 시작해 점차 넓어진다.
괴베클리 테페에서는 두 세계가 소통했을 때 먼저 제의적 기능을 띠었을 거석을 세웠다. 그러나 수렵인이 거대한 구조물을 짓기 위해서는 이동 생활을 청산하고 정착해야 했다. 정착을 위해 마을을 지으니 새로운 사회 구조가 생겨났다.
가상 세계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현실 세계를 바꿔놓는다. 예상할 수 있는 건 믿음과 시간만 충분하면 가상 세계는 반드시 현실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사실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가상 세계를 창조한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는 이 과정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미래 디지털 세계에서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의미와 경험이 풍부한 가상 세계를 만들 것이다.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와 소통할 때 변화를 만들고 새 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여러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에 상호 가치 교환이 발생하는 가상 세계의 집합이 곧 메타버스가 된다.
메타버스는 대화이며, 서로 가치를 교환할 수 있는 여러 세계가 모인 구조이다. 여러 세계 간 가치 교환에는 첨단 기술도 디지털 시뮬레이션도 필요 없다. 제의로서 동물을 잡아 나눠 먹는 행위처럼 공동체 전체가 다른 세계의 가치를 인정하고 동의하면 된다. 이런 합의가 있으면 다른 세계가 우리 세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올림포스의 한계머지않아 현실과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현실감과 몰입감이 강한 디지털 가상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가상 세계의 겉모습이나 느낌 때문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주는 의미 때문이다. 미래에는 개인과 사회에 더 큰 성취감과 의미, 가치를 주는 투명하고 평등한 가상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메타버스는 고대 메타버스와 크게 다를 것이다. 컴퓨터 코드로 만드는 세계는 과거 아날로그 가상 세계보다 훨씬 정교하고 생생하며 성능도 뛰어나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누구나 진입할 수 있고 규칙이나 작용 원리도 이해할 수 있다. 사제에게 묻지 않아도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메타버스의 규칙도 이해하거나 탐색하기 쉬워서 누구든 그 안에서 저마다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정교하고 의미와 기회가 충분한 미래 메타버스는 과거 메타버스의 연장선 위에 있다. 미래 메타버스는 직접 오를 수 있는 올림포스산이 될 것이다. 올림포스에 올라 마음껏 활보하고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며, 신과 만나고, 어떤 의미에서는 직접 신이 되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처음 집단을 형성할 때부터 이러한 가상 세계를 함께 만들고 가꿔왔다. 머지않아 역사상 처음으로 누구든 주인공 역할을 맡아 자기만의 가상 세계를 일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새로운 가능성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현대 사회, 특히 서구 사회는 지난 백여 년 동안 신성보다는 세속에 가치를 두었고, 우리는 모두 자기가 자라고 속한 사회의 산물이다. 괴베클리 테페나 고대 이집트, 로마 제국 같은 역사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신이나 괴물과의 소통과 무관하게 시간과 생산성, 자기 계발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체제에서 눈에 보이는 생산성은 눈부시게 발전했어도 가상 세계가 발휘하는 힘이나 가치를 인정하고 활용하는 역량은 형편없이 퇴보했다.
오늘날 서구 사회에 프로 스포츠, 주식 시장 같은 유의미한 사회적 허구나 종교 외에 대표적인 반 구조를 꼽자면 디지털 게임일 것이다. 디지털 게임에서는 참여자들이 일상을 지배하는 위계를 뒤집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 오늘날의 몰입형 디지털 게임은 우리가 성취감과 가치를 경험할 미래 디지털 세계의 주춧돌이므로 우리는 먼저 디지털 게임이 과거부터 이어진 가상 세계의 연장선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또 가상 세계와 놀이, 자유 시간을 싸잡아 깎아내리는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게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가상 사회 등장이 왜 유익한지 이해하려면 먼저 생산성만 앞세우는 현대 사회의 정신이 디지털 게임에 왜, 그리고 어떻게 훼방을 놓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과 놀이, 여가의 의미
관리와 동기 부여오랫동안 대기업은 철저히 세분화한 직무와 엄격하게 수치화한 생산성 지표를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해 왔고, 직원의 만족감을 높여주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기업은 직원이 생산한 결과물에 상이나 벌을 부과해야 동기 부여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었고, 우수한 성과에는 성과급과 승진이, 부진한 성과에는 직위 해제나 해고가 따랐다. 이런 일터의 동기 부여 구조는 행동 심리학 또는 행동주의라는 학문 분야의 영향을 받았다. 행동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상과 벌이라는 외적 보상에 반응하므로 사람들을 움직이려면 행동에 보상이나 처벌로 훈련해야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행동주의자들은 우리 내적 욕구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으며, 인간이 자율적 의사 결정을 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인간이 파블로프의 개와 별반 다르지 않고 인간 행동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을 반복 학습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자기가 속한 환경의 산물이니 환경을 철저하게 통제하면 인간도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철학은 인간이 만든 가상 세계가 개인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과 어울리지 않는다. 행동주의는 인간이 오랜 세월 가상 세계에서 경험한 반 구조의 필요성을 부정했고, 행동주의 이론이 점차 힘을 얻으면서 과거의 가상 세계는 산업화로 지어진 자극과 반응 중심 사회에 필요 없어 보였다.
행동주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기업은 개인의 내적 생활은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가상 세계에 수천 년 동안이나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내적 생활은 중요하다. 이 중요성은 프로이트나 융식으로 우리 의식이 무의식이나 꿈과 같은 선상에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만은 아니고, 인간의 본성이 복잡성과 만족감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는 일에 만족감을 느끼고 어려운 문제와 씨름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고자 한다. 독창성을 이용해 자신과 속한 세계에 가치를 창출하려 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은 금전적 보상만이 아니다. 이렇듯 내적 만족을 원하는 강렬한 욕구가 있기에 사람들은 디지털 게임과 가상 세계로 발길을 돌린다.
오늘날 게임의 의미는 재미 그 이상이다. 게임은 끊임없이 복잡한 문제를 제공해 다른 사회 기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내적 충족감을 만족시키는 복잡성 기관이다. 한편 게임과 놀이에서는 독창성을 발휘할수록 보상이 생긴다. 수천 년 동안 발휘한 독창성은 인간의 정신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직원을 생산 프로세스 안에서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부품처럼 취급하는 일터와 달리, 게임은 결과뿐 아니라 과정까지 인정해 준다.
좋은 게임은 사용자가 성장하고 호기심을 느끼고 문제를 해결하고 팀워크를 경험하고 창의력을 발휘하게 돕는다. 직업과 게임이 모두 좋으면 이상적이겠지만 만족스러운 직업보다는 좋은 게임이 만들기 쉽다. 산업 경제에서 일은 항상 생산성의 원리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게임은 더 쉽게 만족감을 중심으로 설계하고 최적화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개인이 만족감을 느끼면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여유가 있다. 그래서 현실 세계를 당장 바꾸기는 어렵지만, 각 개인의 여가 활용이 삶의 균형을 잡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는 있다. 거기서부터 인류가 1만 년 동안 쭉 해왔듯 지금의 현실보다 더 인간적인 가상 세계를 만들기 시작할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바람직한 디지털 가상 세계를 구현하는 원리를 설명하고자 한다. 바람직한 가상 세계는 만족스럽고 유용한 경험을 제공해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곳이며 게임과 놀이는 일터에서 얻기 어려운 심리적 만족감을 제공한다. 미래의 가상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