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깨는 사고력
양첸룽 지음 | 미디어숲
틀을 깨는 사고력
양첸룽 지음
미디어숲 / 2023년 10월 / 256쪽 / 17,800원
천재의 생각법 - 협력하고 혁신하고 공유한다
그는 어떻게 자신만의 지식 체계를 구축했을까?중학생이던 오드리 탕은 학교 교육에 만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교육부에서 홈스쿨링 신청을 받지 않을 때였다. 다행히 오드리 탕이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생각이 깨어 있는 교장 선생님을 만나 시험을 보는 날 외에는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후 오드리 탕은 독학으로 자신만의 지식 체계를 차근차근 구축할 수 있었다. 당시 그는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근처의 국립정치대학에 가서 철학과 관련된 수업을 청강했고, 그곳에서 훗날 그의 과학적?윤리적 사고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사람이 바로 란팅 교수다.
란팅은 당시 오드리 탕이 매우 능동적이었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먼
저 자신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눴으며, 철학이나 논리를 주제로 한 문제에 대한 가르침을 요청했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어느 날엔 비판적인 철학책을 추천해 줄 수 있는지 물어, 란팅 교수는 당대의 저명한 과학철학자인 파울 파이어아벤트의『방법에 반대한다』를 추천해 준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이 책에서 파이어아벤트는 일원적인 사고를 반대하고 다원적인 교류를 장려하는데, 훗날 이것이 오드리 탕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파이어아벤트가 책을 통해 말한 것은 단순하다. “무엇이라도 좋다.”라는 지침이다. 즉, 과학의 영역에서 그 무엇도 100% 확실한 것은 없으며, 오늘은 확실했던 것이 5년, 10년이 지나면 뒤집힐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과거의 그 누가 세운 이성적 방법이라도 규범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독학은 집에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드리 탕은 란팅이 추천한『방법에 반대한다』를 읽으면서 동시에 장딩궈 교수가 강의하는 독일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의『진리와 방법』을 포함한 다른 수업들을 듣기도 했는데, 오드리 탕은『진리와 방법』은 비교적 웅장한 사상 체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 『방법에 반대한다』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진리와 방법』에서는 저서가 없더라도 우리가 누군가의 글을 보면 서서히 당시 그의 관점에 접근할 수 있듯이 관점은 서로 융합될 수 있다는 개념을 말하고 있다. 이 유명한 서양철학 고전에서 가다머는 우리가 본 것들과 우리가 최선을 다해 입장을 바꿔 상대방이 본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결국엔 서서히 융합될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이 과정을 ‘지평의 융합(fusion of horizons)’이라고 부른다. 하지만『방법에 반대한다』에서는 우리가 어떤 관점에 접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어차피 내가 무언가가 쓸모 있다고 생각하면 쓸모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관점에 근거해서 판단할 필요가 없다.
오드리 탕은 파울의『방법에 반대한다』와 가다머의『진리와 방법』 모두,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체계를 반대하며,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각자 할 일을 하되 서로 소통하고 끊임없이 토론하며 함께 말의 앞뒤를 맞추어 일종의 집단 관계를 구축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철학적 개념에 대한 깨달음은 청소년기의 오드리 탕에게 엄청난 자양분이 되었고, 당시 하나의 모범 답안을 가르치는 교육 체계 속에서 성장하던 소년에게 이 세상에 정답은 없으며, ‘누구나 자신만의 모범 답안을 만들 수 있다’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이를 통해 그는 ‘무언가를 깨닫는 것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두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 앞으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을 때 혼자 감당하거나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이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함께 브레인스토밍하고, 함께 책임을 감당하며, 공동 창조와 공동 작업을 통해 혼자서 성공하기보다는 여럿의 힘으로 해결책을 찾는 것에 집중한다는 생각이다.
선형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 대만에서 가장 일찍 독학의 길을 개척한 오드리 탕은 독학생들이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하는 것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좌표를 탐색할 때 서로를 응원해 줄 공동체를 찾지 못하면 사고적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사고의 폭이 개인의 경험으로 국한되고, 사고의 깊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드리 탕은 14살에 일반적인 교육 체계에서 벗어난 뒤, 대학에서 청강하는 것 외에도 카페에서 정기적으로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하거나 온라인상에서 프로그래밍 언어를 연구하는 세계적인 커뮤니티 ‘펄(Perl)’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커뮤니티를 통해 그는 국경을 뛰어넘어 세계 각국의 프로그래밍 언어 고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무언가를 창작할 공동체가 생김으로써 매일 신나는 마음으로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매일 자신의 능력으로 조금씩이나마 세상에 기여할 수 있었고, 오늘 자신이 해결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고 해도, 공동체의 여러 사람이 계속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든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만약 다른 사람이 방법을 생각해 내면 그는 자신이 기여할 또 다른 부분이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렇듯 공동체를 통해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서로의 능력을 접목하여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참고로 오드리 탕은 공동 창작이 경쟁을 대신한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자신이 선형 교육의 굴레를 완벽히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독학하는 사람에게는 외로움을 극복하고, 뜻이 통하는 공동체를 찾는 것 외에 많은 정보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지식 체계를 구축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2020년 오드리 탕과 온라인에서 각자의 생각들을 나눌 때 일과 과학 기술의 미래에 대해 독특한 견해를 제시했던 신예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라는 책의 머리말 첫 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찮은 정보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는 ‘명료함’이 힘이다.” 왜 명료한 견해가 그렇게 중요할까?
하라리는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에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수많은 시련과 과도하고 잘못된 정보들이 존재해 사람들이 선택을 오도하기 쉽다고 봤다. 특히 주입식 교육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전히 현대 교육의 아주 큰 단점으로 남아 있다. 서양에서 자유주의 교육이념을 강조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장려한다고 해도, 대량의 자료를 제공하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를 소화하게 한 뒤 체계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길 바라는 것도 사실 주입식 교육이기 때문이다.
과거 산업혁명 시대에 주입식 교육은 마치 공장의 생산 라인처럼 지식을 연속적으로 전달하고 축적한 뒤 이를 사용해 어떤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는 기후 위기, 스마트 기기, 빅데이터, 유전공학, 알고리즘 등 전에 없던 과제와 직면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지식을 축적하기만 해서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반드시 끊임없이 공부하고 미래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재정립해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 순풍에 돛 단 듯 살아가려면, 활발한 태도와 극도로 균형 잡힌 감정이 필요하다.” 이는 오드리 탕이 이 세상을 이해할 때나 지식 체계를 구축할 때 유지하는 마음가짐을 적절히 설명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일하는 방식 - 영역을 뛰어넘는 협력
두드려라, 세계는 당신의 것이다창업 경력은 물론 경영인으로서 관리 실무 경력도 있는 오드리 탕은 기업 관리나 기업 내 업무에서 늘 혁신적인 사고방식과 업무 처리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오드리 탕은 10대와 20대 때 각각 두 번의 잡노마드를 경험했는데, 이는 대부분의 잡노마드와는 달랐다. 직장에 질려서 잠시 떠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며 세계 곳곳에서 경험을 쌓은 것이었다. 그는 대만에서 출발해 잠시 미국 실리콘밸리에 머물렀고, 이후 전 세계 20개 도시를 방문하면서 다양한 직업의 미래를 보았다.
인터넷 지식 사재기의 한계는 공유의 욕구를 일으킨다: 전통적인 업무 방식은 한 장소에 모여 사람들이 일을 분담하거나 협업하는 것이지만, 인터넷 시대에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오드리 탕은 잡노마드를 통해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부족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곳에 가더라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곳에서도 분명 비슷한 부족의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드리 탕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해킹’과 ‘오픈 이노베이션’의 문화를 겪은 뒤 어디에 가든, 현지의 생활 습관이 어떻게 다르든, 분명 그와 같은 족속인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더욱 확고히 했다.
두 번의 잡노마드 중 한 번은 2000년 이전인 닷컴 버블 이전이고, 나머지 한 번은 2000년 이후였는데, 이 두 경험은 그에게 각각 완전히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첫 번째 잡노마드 때는 고작 16, 17살이었고, 당시는 1990년대 말이었다. 오드리 탕이 몸담았던 실리콘밸리에서는 모두가 서로에게 자신의 기술이 어떤 특허를 출원했는지, 특허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렇게 모두가 자신의 전문 능력을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2005년에 두 번째 잡노마드를 떠났을 때는 특허의 한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의 미래를 보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공동 창조와 공유’였다.
원래 그는 정보과학 분야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다양한 종류의 게이트키퍼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찾아간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은 각자 서로 다른 컴퓨터 언어에 정통했고, 그들은 기꺼이 자신들이 한 연구의 일부를 기여함에 거리낌이 없었다. 오드리 탕은 세계는 이미 걸어 잠갔던 문을 활짝 열고 서로 포용하고 개방하는 단계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학술 커뮤니티에 “Publish or Perish”라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발표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즉, 공유하지 않으면 어떤 평판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학술계에는 여전히 좁은 문이 있다. 학술계에서 먼저 인정받은 사람만이 기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오드리 탕이 있었던 오픈 소스의 세계에선 그렇지 않았다. 인지도가 없는 사람도, 어떤 기관에 속하지 않은 사람도 기여만 할 수 있다면 누구든 상관없었다. 예를 들어, 오드리 탕이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도착했을 때, 현지 정보과학자들은 하스켈이라는 프로그램 언어의 다음 버전을 만들고 있었다. 오드리 탕은 이에 큰 흥미를 느꼈고, 바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런데 그저 아이디어를 조금 냈을 뿐인데, 뜻밖에도 하스켈이라는 프로그램 언어의 다음 버전에 공동 표준 제정자 중 한 사람으로 오드리 탕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그는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그는 어떤 단체에도 속하지 않았고,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도 많고 아이디어도 많이 떠올라서 개인적인 의견을 조금 기여했을 뿐이니 말이다. 이 일은 오드리 탕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공유하면 한 번에 파벌이나 학벌의 개념을 깨부수고 함께 모여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 하나, 잡노마드를 통해 오드리 탕은 인터넷 시대에는 이 세상 속 또 다른 장소에 나와 같은 문제를 직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는 공유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방법을 찾아 공유할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공유하지 않아도 알아낼 방법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taker에서 giver로두 번째 잡노마드에서 인상적인 경험을 하고서 돌아온 뒤 오드리 탕은 한편으로는 은행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펄16(Perl6)에 대한 연구 개발을 계속했다. 하지만 일에 대한 오드리 탕의 생각에는 이미 큰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 변화는 ‘기술을 보유한 사람’에서 ‘제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과거에 오드리 탕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속도가 매우 빨랐지만, 지금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사람들이 자신이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과연 어떤 식의 추론을 거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써서 블로그에 공유한다.
겉으로 보면, 프로그램 완성 속도가 떨어졌으니 그의 생산력이 떨어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생산적인 업무를 하게 된 셈이다. 자신의 생각과 이념을 충분히 명확하게 기록해 온라인상에 공개함으로써 전 세계의 더 많은 사람이 그의 글을 참고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비록 초보자들은 프로그램 만드는 속도가 오드리 탕보다 느리지만 공유와 학습을 통해 서로 다른 시간대의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들인 연구와 개발을 한데 모으면 그 힘은 무조건 한 사람의 힘보다 강력해진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다: ‘기술을 보유한 사람’에서 ‘제공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뒤 오드리 탕에게 온 두 번째 변화는 원격 근무이다. 그가 원격 근무를 하기로 결정한 것은 자신과 같은 취미를 가진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연구 주제를 위해 모여 협력하고, 평소에는 각자의 장소에서 서로에게 방해받지 않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꿈에 그리던 업무 방식이었다. 그래서 2008년, 오드리 탕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올렸다. “저는 집에서 일하겠습니다. 저를 집에서 일하게 해 주실 분 없나요?”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페이스북과 소셜텍스트(Socialtext) 두 곳에서 잇따라 영입 의사를 밝혔고, 오드리 탕은 소셜텍스트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오드리 탕은 왜 소셜텍스트를 선택했을까? 오드리 탕은 ‘페이스북은 모든 사람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고, 소셜텍스트는 돈을 내야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충 설명하면, 오드리 탕은 여기서 ‘무료’라는 것은 진정한 무료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광고주에게 대신 돈을 받는데, 광고주 중에는 정치에 영향을 주려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 것이다. 다시 말해, 페이스북도 어쨌든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은 반드시 광고주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그래서 무료라는 말은 정말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돈을 낸 사람에게 지배권을 넘겨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돈보다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하니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셜텍스트는 대기업이 내부에 페이스북, 트위터 등과 같은 소셜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업무 프로세스의 일부로 만들어 전문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데, 유료의 장점은 적어도 기업이 소프트웨어와 이를 제공한 제조사의 가치가 같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조사가 고객사의 개인 정보를 파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수익에 손실이 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가 선호하는 일에 대한 철학이었다. 오드리 탕은 2008년에 소셜텍스트에 들어가 2016년 최연소 정무위원(한국의 장관급)으로 정부에 입각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8년을 일했다. 이때 공식적으로 원격 근무 생활을 했으며, 대만에 거주하면서 온라인으로 전 세계 9개 시간대에 사는 다른 동료들과도 함께 일했다. 소셜텍스트가 직원들에게 원격 근무 환경을 제공하는 한편, 직원들 역시 회사를 위해 원격 근무에 알맞은 작업 프로그램의 연구 개발을 책임졌다. 오드리 탕은 “이는 자신이 담근 술을 자신이 마시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대만 기업들이 최근 몇 년간 팬데믹의 여파로 이제야 원격 근무라는 새로운 근무 방식을 받아들인 데 반해, 오드리 탕은 이미 10여 년 전 소셜텍스트에서 원격 근무가 가져온 새로운 직장 문화를 경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