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 2
오미야 오사무 지음 | 사람과나무사이
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 2
오미야 오사무 지음
사람과나무사이 / 2023년 6월 / 409쪽 / 19,500원
1 자본주의에서 제국주의로
1804년 식품 보존 기술 발명 - 식품 살균과 보존을 위해 지혜를 짜내온 인류세균, 곰팡이를 공격해 파괴함으로써 생물을 보호하는 물질, 포름알데히드: 대표적인 식품 보존 방법을 몇 가지 살펴보자. 먼저 염장(鹽藏)은 어류, 육류, 채소 등에 소금을 뿌려서 저장하는 방법이다. 소금이 뿌려지면 어류나 채소 표피에서 물이 흘러나와 바깥쪽 진한 소금을 옅게 만들려고 한다. 이것이 ‘삼투 현상’이다. 물이 삼투 현상에 의해 농도가 높은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 내부의 물이 일정 비율 이하로 줄어들면 곰팡이 등이 생기지 않는다.
훈제는 나무를 태운 연기로 그슬려서 살균하는 기술이다. 이 연기가 뛰어난 살균력을 갖는 이유는 그 속에 반응성이 높은 포름알데히드나 페놀류(페놀이라는 분자 구조를 공통 부분으로 포함) 같은 살균 작용이 강한 분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포름알데히드는 포르말린 성분이다. 이는 반응성이 높은 분자로, 세균 곰팡이 등을 즉시 공격해 파괴한다. 페놀류도 살균 효과가 뛰어나다. 페놀류로는 훈제한 음식의 표면을 주로 살균한다. 동시에 독특한 냄새와 함께 페놀류 등 여러 분자가 ‘스모키한(훈제한 맛이 나는)’ 풍미를 지니게 한다.
밀폐 보존 용기를 발명하여 세계 요리사와 전쟁사를 바꾼 요리사, 니콜라 아페르: 과거 전쟁에서는 식량 보급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부대가 식량을 조달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 패배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세계사를 바꾸는 위대한 발명을 한 인물이 있다. 니콜라 아페르(1749~1841)가 바로 그다. 그는 요리사로 30대가 되었을 때 제과점을 열었다. 그는 일정 온도(대기압이 1기압인 곳에서 끓는 물이라면 섭씨 100도에서 일정해진다)에서 중탕으로 초콜릿을 녹이거나 잼시럽을 유리 용기에 밀폐해 보존하는 등의 기술을 이용해 디저트를 만들었다. 이것이 획기적인 발명으로 이어져 세계 요리사와 전쟁사를 바꿔놓았다.
식품 장기 보존이라는 수천 년의 인류 과제를 ‘통조림’이라는 혁신적인 기술로 완성한 영국 발명가 피터 듀란드: 니콜라 아페르는 실험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식품을 장기 보관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개발한 기법은 채소, 고기 같은 신선한 음식을 병에 담아 중탕으로 가열한 뒤 밀봉하는 방법이었다. 아페르는 ‘탄산을 함유한 와인인 샴페인 제조법’에도 통달했는데, 군용 식량 보존 기술을 발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아페르 자신조차 자신이 개발한 방법이 가열을 통해 살균하는 원리임을 깨닫지 못했다. 이 시대에는 세균이 부패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인류는 식품 보존 분야에 위업을 달성했다. 다만 이 방법에는 결함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깨지기 쉬운 병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병 대신 양철(주석으로 도금한 철)로 만든 통을 사용해 식품을 장기간 보존하는 ‘통조림’을 발명하고 특허를 취득하는 인물이 등장했다. 그는 바로 영국 발명가 피터 듀란드(Peter Durand, 1766~1822)다.
영국 사업가 브라이언 돈킨(Bryan Donkin)과 존 홀(John Hall)은 듀란드의 특허를 사들인 후 공장을 짓고 통조림을 생산했다. 이후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통조림 가격이 너무 비싼 탓에 일반에는 한동안 보급되지 못했다. 당시 공장에서 직공 한 명이 하루에 생산할 수 있는 통조림 개수가 60~70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맨 처음 사람들은 이런 통조림을 ‘틴 캐니스터(Tin canister, 양철 용기)’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을 ‘캔(can)’으로 줄여서 부르게 되었다.
1899년 아스피린 발매 - 무엇이든 원하는 의약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의 도래완전히 인공으로 합성한 의약품을 최초로 판매하기 시작한 제약사는?: 독일의 대표적인 제약회사 바이엘사는 완전히 인공으로 합성한 의약품을 시판하기 시작했다. 1899년의 일이다. 지금도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해열진통제 아스피린이 그것이다.
고대에도 사람들은 버드나무껍질에서 분리되는 살리실산(Salicylic acid, ‘버드나무’를 의미하는 라틴어 ‘살릭스(salix)’에서 유래했다)에 진통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콜타르 성분인 페놀에서 살리실산을 인공 합성할 수 있게 된 것은 1853년의 일이다. 이것을 바이엘사가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의 해열 진통제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899년의 일이다. 살리실산은 강한 산성을 띠는 물질로 점막을 자극해 위염이나 위궤양 등의 부작용을 일으켰다. 바이엘사는 아스피린을 상품화하기 전에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했다.
합성염료로 성장하여 의약품 제조, 특히 아스피린 제조로 대성공을 거둔 바이엘사: 바이엘사의 연구원 펠릭스 호프만은 이미 알려져 있던 살리실산 구조를 약간 바꾼 분자인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 ASA)에 주목하고 합성 방법을 연구했다. 아세틸살리실산은 살리실산의 ―OH 부분(이것이 부작용의 원인이다)에서 H를 COCH3(아세틸기)로 치환해 부작용을 없앤 것이다. 이 물질이 몸속에서 흡수되면 이 개조된 구조가 절단되어 살리실산으로 돌아가서는 살리실산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약이 오늘날에도 인기리에 판매되는 ‘아스피린’이다.
아스피린은 석탄에서 추출되는 페놀을 이용해 완전히 인공 합성되며, 역사상 최초로 대규모 동물 실험을 하고 출시한 의약품이다. 아스피린은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세련된 포장을 하고 대대적인 광고를 하는 등 오늘날 약국에 진열되어 있는 의약품의 원류가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류는 마침내 분자 구조를 변환해 원하는 작용을 하는 의약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인류와 함께 달에 최초로 착륙한 의약품은?: 달을 향해 가던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은 아스피린을 휴대하고 있었다. ‘우주 멀미’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20세기에 들어서서의 일이다. 아스피린은 인류와 함께 달에 착륙한 최초의 의약품인 셈이다.
살리실산에는 왜 해열과 진통 효과가 있을까? 영국 약리학자 존 로버트 베인이 그것을 밝혀냈다. 그것은 바로 통증이나 발열의 방아쇠가 되는 전달 물질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 생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베인은 이 메커니즘을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아스피린은 오늘날에도 연간 1,000억 정이 팔리는 베스트셀러 의약품이다. 게다가 기존에 알려져 있던 약효 외에도 혈전이나 대장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밝혀져 향후 판매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 20세기의 시작
1907년 인공 합성 플라스틱 탄생 - 대량 소비 사회로 물줄기를 바꾸다컵라면부터 전투기까지 현대생활의 모든 곳에 사용되는 소재, 플라스틱: ‘플라스틱 시대’로 규정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현대인은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컵라면 용기부터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본래 플라스틱은 ‘가열하면 부드러워지는 성질’, 즉 ‘열가소성’ 물질을 의미한다. 그러다가 오늘날에는 ‘가열하면 딱딱해지는 열경화성 물질’을 모두 플라스틱으로 부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념이 변화되고 확장된 것이다.
화학으로 일확천금의 꿈을 이룬 벨기에 화학자, 베이클랜드: 인류 최초의 완전 합성 플라스틱을 발명한 이는 19세기 말에 등장한 화학자 리오 헨드릭 베이클랜드다. 그는 염화은(AgCl)을 도포한 사진용 인화지 ‘벨록스(Velox)’의 특허권을 팔아 막대한 자금을 손에 거머쥐었고 화학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리고 절연체가 될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연구에 몰두했다. 당시 에디슨의 발명으로 전기를 사용하는 가전제품이 보급되면서 전기 절연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천연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완전히 합성된 수지를 손에 넣는 역사상 최초의 순간: 당시만 해도 절연체 제조를 동남아시아 원산의 랙깍지진디(나무에 집단으로 서식하는 둥근깍지진딧과 곤충, ‘랙 벌레’라고도 한다)가 분비하는 ‘셸락(shellac)’이라는 수지에 의존했다. 그런데 문제는 셸락 450그램을 만드는 데 랙깍지진디 1만 5,000마리와 반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시행착오 끝에 베이클랜드는 이들 원료를 용기에 넣고 가열하면 반응 용기를 거푸집 삼아 투명하고 딱딱한 수지상 물질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말하자면 페놀 분자를 포름알데히드가 반응해 연결함으로써 정글짐 같은 3차원의 거대한 분자가 생겨난 것이다. 그는 이 새로운 물질에 ‘베이클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효율적으로 반응시킬 수 있는 ‘베이클라이저(Bakelizer)’라는 반응 용기를 개발해 대량 생산에도 성공했다. 인류가 천연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완전히 합성된 수지를 손에 넣는 역사상 최초의 순간이었다. 베이클라이트를 소재로 전화기와 만년필, 라디오 케이스, 전구소켓 등 다양한 물건이 만들어졌다. 베이클랜드가 만든 플라스틱으로 인해 20세기의 세상은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사회로 완전히 방향을 전환했다.
1913년 석유화학 공업 시작 - 석탄 시대가 가고 석유 시대가 오다석유 산업을 독점해 세계 최대 부호가 되고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황제가 된 록펠러 가문: 1859년, 에드윈 드레이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 사업가에게 고용돼 일하고 있었다. 그는 한창 석유를 굴착 중이었다. 그러나 자금이 바닥나 결국 굴착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날 밤 그때까지 파낸 지하 21미터 깊이 바위 틈새에서 석유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후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석유를 채굴하기 위해 몰려들면서 오일 러시가 일어났다.
그 일을 계기로 석유 굴착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펜실베이니아 등의 유전에서 대량의 석유가 채취되면서 석유 산업이 활황을 맞이했다. 1862년에 석유 정제업을 시작한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1870년 스탠더드오일사를 창업했다. 이후 스탠더드오일은 게걸스럽게 흡수·합병하는 가운데 철도회사와 결탁하여 석유 정제부터 운송, 판매를 일괄 담당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해갔다.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발명은 석유 수요를 더욱 끌어올렸다. 그러나 원유에서 얻을 수 있는 휘발유는 20퍼센트 정도에 불과했기에 자동차용 휘발유 생산과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산업혁명을 뒷받침해 기계 문명을 일구어낸 ‘석탄 시대’가 가고 ‘석유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석유 산업을 독점해 부호가 된 록펠러 가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황제 자리에 올랐다.
MIT는 왜 세계 최초로 화학공학과를 만들었을까?: 스탠더드오일에서 일하던 화학 박사 윌리엄 메리엄 버튼은 원유에서 얻을 수 있는 등유나 경유 등 휘발유 분자보다 큰 탄화수소 분자를 가열해 휘발유 분자로 분해하는 장치를 발명했다. 휘발유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원리를 간략히 얘기하자면, 길쭉한 바게트를 찢어서 작은 빵 2~3개로 나누는 식이다. 버튼의 열분열(Thermal cracking)법 발명은 폭증하는 휘발유 수요를 충족시켜 미국의 자동차 사회를 지탱해주었다. 그의 휘발유 제법이야말로 진정한 석유 화학 공업의 시작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MIT에 화학 공학 장치를 설계하는 전문 기술과 학문을 전수하기 위한 화학공학과가 세계 최초로 탄생했다. 1916년의 일이다. 이로써 대규모 화학 공장의 설비나 증류 장치, 반응 장치, 파이프라인 등을 화학을 제대로 공부한 전문가가 공학적으로 설계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화학 공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전 세계에서 중화학 공업(석유화학 콤비나트) 등이 탄생했다.
3 제1차 세계대전
1915년 독가스 탄생 - 독가스를 대량 제조하여 작전을 입안한 의외의 인물은?‘공기에서 빵을 만드는 사나이’ 프리츠 하버의 아내 클라라 임머바르는 왜 스스로 권총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을까?: 제1차 세계대전은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공업화가 오롯이 반영된 초대규모 전쟁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독가스전은 벨기에 이프르 근처에서 벌어졌다. 이 작전을 진두지휘한 인물은 하버-보슈 공정으로 ‘공기에서 빵을 만드는 사나이’라고 불린 프리츠 하버였다. 하버는 독가스 같은 궁극의 병기가 등장한다면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게 되리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액화한 염소를 가득 채운 5,730개 봄베에서 염소가스 150톤이 폭 6킬로미터에 걸쳐 바람을 타고 구름처럼 흘러갔다. 공기보다 무거운 염소가스는 지면을 타고 맹수처럼 이동하다가 참호로 흘러들어 참호 안에 있던 병사들을 저승사자처럼 덮쳤다. 최초의 대규모 독가스 공격으로 프랑스군, 캐나다군 5,000여 명이 사망했고 1만여 명이 중독되었다. 고농도 염소가스를 흡입했을 경우, 운 좋게 사망하지는 않더라도 호흡기가 파괴되기 때문에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화학자이던 하버의 아내 클라라 임머바르는 하버의 독가스 작전에 강력히 반대했다. 독가스 전투가 끝난 뒤 그녀는 남편 하버의 권총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
마침내 영국군도 염소가스를 이용한 독가스 공격을 감행했다. 이후 양 진영은 서로 물고 물리는 보복의 연쇄 작용 속에서 새롭게 개발된 여러 종류의 독가스를 전투에 사용했다. 그중에는 황록색으로 눈에 잘 띄는 염소가스와 달리 무색이면서 호흡기를 망가뜨리는 질식성 맹독 가스 포스젠(Phosgene, COCl2)도 있었다.
‘독가스 중의 독가스’, ‘궁극의 독가스’ 이페리트가 등장하다: 전쟁에 독가스가 투입됨에 따라 방독면이 보급되었다. 그러자 그에 맞서는 대항책으로 방독면의 활성탄 필터에 흡착되지 않는 액체 미립자(안개 같은 상태의 에어로졸)로 만든 독가스인 구토제 아담사이트(Adamsite)와 디페닐시아노아르신(Diphenylcyanoarsine)이 서둘러 개발되었다. 에어로졸 입자는 방독면 필터인 활성탄에 흡착되지 않고 통과한다. 그러므로 먼저 구토제를 뿌려 적군 병사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방독면을 벗게 만든 다음 포스젠 등의 질식성 가스를 뿌리는 식으로 사용했다.
‘겨자가스’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물질 이페리트(yperite)가 제1차 세계대전 무대에 등장했다. 1917년의 일이다. 이페리트는 상온에서 액체 상태인데, 그 증기가 피부나 호흡기에 닿으면 수분과 반응하여 염산이 된다. 이 물질이 살갗에 닿으면 극심한 염증과 화상을 입은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 이것을 들이마시면 호흡 곤란을 일으켜 즉사할 확률이 높으며, 살아남더라도 피부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손상된다. 이페리트 공격을 받았다면 즉시 모든 곳을 소독하고 오염 물질을 제거해야 한다. 에어로졸 형태로 공중에 떠다니던 액체의 미립자가 의복이나 차량에 부착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증발해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1916년 밸푸어 선언 - 영국의 무책임한 외교가 고질적인 국제분쟁을 야기하다영국의 아세톤 대량 제조 프로젝트를 완수해 ‘영국군 폭약 제조의 구세주’가 된 유대인 화학자 하임 바이츠만: 생화학자 하임 바이츠만(초대 이스라엘 대통령)은 유대인으로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시오니즘 운동에 열렬히 참여하고 있었다. 바이츠만은 영국 맨체스터대학 화학과에서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합성고무의 원료로 변환할 수 있는 알코올을 세균 발효로 만들기 위해 실험하던 중 실험에 사용한 균이 발효하며 무색의 물 같은 아세톤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