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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

양원근 지음 | 정민미디어


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

양원근 지음

정민미디어 / 2023년 6월 / 275쪽 / 16,800원





배움의 의미



여행을 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니체는 여행자를 5단계로 나눴다. 1단계, 여행은 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 자. 2단계, 세상 밖으로 나가서도 자신만 들여다보는 자. 3단계, 세상을 관찰해서 무언가를 체험하는 자. 4단계, 체험한 것을 자신의 생활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자. 5단계, 관찰한 걸 체험하고 그것에 동화한 후 반드시 행동으로 작품을 되살려야 하는 자. 이것을 보면서 나의 단계를 따져본다. 아마 3~4단계에서 왔다 갔다를 반복하고 있지 싶다. 그러면서 생각해본다. ‘나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여행을 좋아할뿐더러 여행으로 많은 걸 보고 느끼며 인생관을 새로이 정립했다. 무엇보다 여행하면서 수많은 독서를 했다. 여행은 나에게 무척 중요한 삶의 일부분이며, 낯선 곳에서 새로운 나를 마주하는 귀중한 여정이다. 특히 여행하면서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20년 동안 동고동락한 직원과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소중한 사람과 오랜만에 하는 여행 속에서 나는 나를 넘어서 상대를 바라보고 나아가 세상까지 바라보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그리고 결국 이 세계는 복잡한 실타래처럼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이 사실을 자주 잊게 된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곁에 있는 이들을 마치 또 다른 ‘나’를 대하듯 소중히 여기며 그 마음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러니 여행이란 얼마나 소중한 삶의 일부인가.

여행은 짧든 길든 내가 살아오던 기존의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의 연속이다. 그 분주함과 소란에서 잠시 떠나 멈춤과 여백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물론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로 그곳에 존재할 때 말이다. 멈춤이 없는 삶은 마치 도화지 속에 빽빽하게 들어찬 그림과 같다. 아무리 좋은 그림도 여백이 없다면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삶을 성찰하고 재검토하는 시간은 늘 멈춤 속에서 얻어지며, 그렇기에 그 시간을 제대로 가지지 못한다면 인간은 메마르고 동시에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무언가로 가득한 삶을 살게 된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지 않는가. 우리는 그 멈춤 속에서 생각의 씨앗을 새로 심으며, 그것은 언젠가 생각지도 못한 좋은 열매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아마도 니체가 말한 5단계의 ‘작품’은 그 열매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혹은 좋은 습관이나 삶의 태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도 그러한 좋은 열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할 때마다 그 씨앗을 새로 심고 열매를 틔우면서 삶의 막을 다시 펼치곤 했다. 그러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하면서, 한 5년쯤 후에는 잠시 일을 내려놓고 혼자 긴 여행을 다녀올까 생각하곤 한다. 괴테는 바이마르 궁정에서 10년 동안 자신의 소임을 충실히 하다가 안식년이 되자 로마로 여행을 떠났다. 행선지와 기간도 모른 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불쑥 말이다. 여행이란 낯선 곳에서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기를 새롭게 만드는 일이라고 하던 괴테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 여행이 자기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줄 것인지 괴테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는 그 여행에 대해 ‘로마에 도착한 첫날이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나의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중요한 여정이었다 한다. 그는 2년 동안 이탈리아를 다니며 수많은 예술과 자연을 접했고, 사람들이 사는 방식들을 새로이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나 역시 미래에 떠나게 될 그 여행이 어디로의 여행일지, 얼마만큼의 여행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것이 내 삶을 또 한 번 긍정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장을 펼치리라 믿는다. 그리고 여행과 찰떡궁합인 독서 역시 원 없이 하고 오리라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은 벌써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나와 세상, 그리고 사람과 자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철학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철학적이자 인문학적 여행자라 불렸던 괴테처럼, 일상을 떠나 여행자가 된 순간만큼은 우리 역시 철학자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여행은 행복이 목적이다”라고 했던 것은 여행을 상상하는 순간부터 우리를 웃게 만들고,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들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 목적은 여행을 떠나기 전과 여행 후 돌아와 아쉬움에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열심히 달리는 순간까지도 계속 달성하게 되는 듯하다. 그러니 여행은 곧 행복이며, 여행하는 우리는 행복한 철학자 아니겠는가.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할 것


나는 과거 건강을 잘 돌보지 않고 외모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시절에 비해 많이 변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지금은 외면적으로도 많이 변화했지만 내적으로도 큰 변화를 이뤘다. 긴 시간 동안 하루 두 시간 이상 새벽에 일어나 독서하고 철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꼭 옳다고 생각했던 가치관이나 아집들도 많이 내려놓게 되었고 새롭게 정립된 생각도 많아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만나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에서도 바뀐 부분이 많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상당히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은 절대 안 변한다”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안 변하는 사람 없다”라고 하는데, 전자의 말도 맞고 후자의 말도 맞는 듯하다. 뭐든 골똘히 보기를 좋아하고 글로 남기기를 좋아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나’라는 존재의 특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변하지 않았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면과 외면적으로 채워지고 달라졌다는 점에서는 분명 변화했기 때문이다.

과거 시대의 철학자들 중 “모든 만물은 변한다”라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파르메니데스가 대립을 이루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의 시작이 ‘불’이라고 하면서 세상의 모든 만물이 일정한 질서 안에서 변한다고 주장했다. 불이 변해서 공기, 바람, 물, 흙, 영혼이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불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나 그 모양이나 성질이 달라진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는데, 이렇게 모습은 변화하지만 결국 그 본질은 하나라고 여겼다.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것을 ‘이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우리 눈에 세상이 변하는 듯 보여도 그건 결국 허상이라고 여겼다. 얼음을 온도가 높은 곳에 두면 녹는데, 이조차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는 감각에 의한 변화이지, 이성을 통해 꿰뚫어 보면 변화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레몬차가 있다고 할 때, 10분 전에는 뜨거웠는데 지금은 차갑게 식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건 변한 것일까? 따뜻한 레몬차나 차가운 레몬차나 레몬차임은 변함이 없으므로, 이 세상에 변화하는 건 없다고 본 것이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이 명언은 변화하는 세상 이치를 잘 설명한 아주 통찰력 있는 말이다. 동시에, 변화하는 세상의 많은 현상을 허상으로 보고 이성으로 모든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서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이 세상의 많은 것이 변화하지만 그 속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본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통찰을 준다. 특히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잘 변하는 것이 우리의 겉모습이다. 인간은 결국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습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인간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의 본성, 그 사람의 내면에 채워진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이성이 필요하다. 모습이 변화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특성은 그 사람의 내면에 남기 마련이다.

두 철학자의 말 중 어떤 주장이 옳거나 그르다는 생각을 해보는 대신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을 버릴까?’, 즉 ‘어떤 부분을 변화시키고 어떤 부분을 유지할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면도 외면도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해 나아가는 변화는 언제나 환영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 노력으로 얻어지는 열매에는 상당한 가치와 기쁨이 있다. 가끔 과거에 비해 성격이나 외모, 내면 등 모든 면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룬 사람을 볼 때 감탄하게 된다. 본래 가지고 태어난 성향이나 기질 혹은 자라면서 형성된 습관들을 바꾸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습관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라고 말할 정도인데, 좋지 않은 줄 뻔히 알면서도 늘 제자리로 돌아가곤 하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력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나쁜 점을 고쳐가면서 다른 사람으로 변화해 나아가는 모습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변하지 않아야 할 것도 많다. 특히 언제, 어느 자리에 있든 처음 가졌던 마음, 성실함, 겸손함 등의 미덕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흔히 “사람은 성공을 하면 바뀌더라”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힘들었던 처음 모습을 금세 잊어버리고 교만한 모습을 보이거나 도움을 준 사람을 외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그 사람은 추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인간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더 많은 것을 가질수록 겸손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무엇을 변화해야 하고 유지해야 할지, 그것은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다. 시간의 흐름과 세상의 이치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변화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렇다는 뜻이다. 적어도 나에게 주어진 것만큼은 충분히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가끔은 변화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고 자연스럽거나 혹은 더 훌륭하게 변화하는 것을 보며 아름답다고 여긴다. 정답은 없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잠들어 있는 이성을 깨워 조금 더 깊이 공부하며 조금 더 겸손해지기만 한다면, 훨씬 더 나은 선택이 가능하다. 어떤 선택이 나은 선택인지 잘 모르겠다면 철학과 인문학의 숲에서 열심히 탐구해보길 바란다. 독서는 훌륭한 지름길이 되어준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세상을 살다 간 수많은 성인의 가르침은 분명 우리에게 좋은 선택의 길을 알려줄 것이다.



삶의 지혜



지금 이 순간의 나와 바꿀 수 있는 게 있을까?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가 있다. 이 작품은 치매에 걸린 김혜자라는 배우가 25년 전의 기억으로 돌아가 과거에 보냈던 시간을 되짚으며 보여주는 휴먼 드라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김혜자 배우의 낭랑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던 ‘등가교환의 법칙’에 대한 말이다. 등가교환의 법칙이란 말 그대로 같은 가치를 지닌 화폐나 상품을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 김혜자 배우가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서 돌아가. 등가교환의 법칙이 무슨 말이냐 하면 물건의 가치만큼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것처럼 우리가 뭔가 갖고 싶으면 그 가치만큼의 뭔가를 희생해야 된다는 거야. 당장 내일부터 나랑 삶을 바꾸어 살 사람? 내가 너희들처럼 취직도 안 되고 인생에 답도 없는 너희들 인생을 살 테니까 너네는 나처럼 지하철역에서 자리 양보받고 하루 종일 자도 누가 뭐라고 안 하는 내 삶을 살아, 어때?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지 않아? …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기본 옵션으로 주어지는 젊음이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를 보면 알잖아.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엄청난 건지 … 이것만 기억해놔 등가교환!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어.”

다시 보아도 참 감동적인 말이다. 과연 지금 이 순간의 나와 바꿀 수 있는 게 있을까. 대개 우리가 ‘불행하다’라고 느끼는 것은 지금의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저 사람은 돈 걱정하지 않고 살겠지.’ ‘저 사람은 나보다 외모가 뛰어나네. 난 자신이 없는데.’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의 삶과 내 삶을 등가교환의 법칙처럼 맞바꾼다면 과연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전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글쎄, 나 역시 때때로 힘든 일이 닥칠 때는 주변의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며 그 삶이 더 나아 보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정말 누군가 내게 “너와 나의 삶을 지금 당장 바꾸자”라고 한다면, 나는 순간 망설였을 것이다. 그러다 이내 “아니요. 괜찮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과거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다고 여겨졌던 ‘부탄’이라는 나라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 ‘부탄’이라는 나라의 행복지수가 95위로 떨어졌다는 보도를 보았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외부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살던 부탄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외부 문명을 받아들이고 수많은 정보를 공유하게 되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왜 이렇게 살지?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못 살지?’ 하며 자신과 남을 비교하게 된 것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 행복지수가 급격히 낮아지고 가장 행복하던 국민이 가장 불행한 국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확실한 것은 행복이 무엇이라 완벽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어도 불행이 무엇인지는 정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현재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그런 사람치고 불행하지 않은 이는 없다.

나는 자주 거울을 본다. 화장실에서도 손을 씻고 나면 꼭 거울을 쳐다보며 ‘음, 이 정도면 멋진데?’ 하고 싱긋이 웃어본다. 강의하고 나올 때면 ‘오! 오늘도 참 잘했어. 멋졌어. 너 정말 최고야’ 하고 나를 칭찬한다. 이런 나를 보며 “저 사람 자뻑 참 심하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어느 정도의 지성과 또 어느 정도의 무지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여기서의 지성은 끝없이 배움을 추구하는 마음일 것이며, 무지는 내가 가진 상황과 배경 속에서 끝없이 문제와 불만족의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수한 마음을 의미할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셀리 테일러와 조너선 브라운은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항상 자신의 능력을 높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반면, 스스로 우울감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냉철하고 엄격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물론 과대평가로 말미암은 자만심은 금물이지만,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충분히 스스로를 칭찬해줄 여유로운 마음은 행복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또한 에피쿠로스가 말했듯 현실적인 기대 역시 필수다. 넘을 수 없는 꿈을 설정하고 거기에 다다를 수 없는 나를 날마다 채찍질하는 것은 나를 향한 폭력과 같다. 그것은 어쩌면 영원히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길인지도 모른다. 그 대신 높은 꿈과 이상을 갖되 그것이 늘 땅을 밟고 서서 현실 속에서 조금씩 추구하고 채워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나의 삶은 날마다 성장하고 채워지는 풍성하고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 지금 조금 힘들더라도, 지금 어떤 문제 앞에 놓여 있더라도 그 모든 건 지나가고 다시 눈부시게 빛날 날은 올 것이다. 아무리 나 자신이 마음에 안 드는 때가 있더라도 꼭 기억하길 이 세상에 ‘나’ 그리고 ‘나의 삶’과 등가교환할 수 있는 건 어떤 것도 없다는 걸 말이다.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을 낳는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너무 심해서 해외에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티켓을 끊기 최소 한 달 전부터 고민에 빠지곤 했다. 그러다가 비행기를 타면 곧바로 눈을 감고 비행기가 뜰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비행기 창밖을 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비행기 안에 있는 내내 걱정한다. ‘이 비행기에 결함이 있어서 갑자기 추락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나는 일의 특성상 해외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 출판사들과 만나고 새로운 책을 발굴하기 위해 외국 서점에 가거나 국제도서전에 참여하는 일은 회사 대표로서 필수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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