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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의 종말

조나단 말레식 지음 | 메디치미디어


번아웃의 종말

조나단 말레식 지음

메디치미디어 / 2023년 2월 / 352쪽 / 23,000원





들어가는 말




몇 년 전 대학교수이던 나는 오전마다 출근을 준비하는 대신 침대에서 몇 시간씩 미적거리며 <포기하지마> 뮤직비디오를 무한반복 시청하고 있었다. 참고로 그 당시 나는 누가 보아도 멋진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고도의 기교와 훈련을 통해 내가 잘하는 일인 종교와 윤리, 신학 강의를 펼쳤다. 그리고 동료들도 지적이고 호의적이었으며 급여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복지 혜택 역시 뛰어났다. 또 종신교수로 임용되었기에 직업 안정성도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비참한 감정을 느꼈고, 그 감정의 핵심 원인은 내 직업인 것이 분명했다. 나는 포기하고 싶었고,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절의 나는 그저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침내 나는 번아웃이란 그저 한 노동자의 절망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우선 나에게 일어난 일을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는 처음 대학에 입학해 교수들을 만난 그 순간부터 대학교수가 되기를 꿈꾸었다. 나를 가르치는 교수들처럼 니체나 애니 딜라드가 쓴 낯선 책을 읽고 강의실에서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래서 그 뒤 10년 동안은 교수의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했다. 대학원에 갔고, 박사 논문을 마쳤고, 언제나 각박한 학계의 구직 시장으로 나갔고, 그리고 나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작은 가톨릭계 대학에서 종신 교수 코스를 밟게 된 것이다. 그렇게 꿈꾸던 삶을 살게 된 나는 여자 친구와 함께 대학원 생활을 한 버지니아주를 떠나 펜실베이니아 북동부로 갔다. 그리고 그 뒤에 여자 친구는 대학교수가 된다는 자신의 꿈을 좇아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대학원으로 떠났다.

나는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일에 전념했다. 대학 시절 지도교수처럼 영감을 주는 스승이 되겠다고, 해마다 누렇게 변해버린 노트만 보며 강의하는 화석이 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내가 가르치는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무관심이 내가 마주한 가장 큰 문제였다. 다들 필수과목으로 신학 과목을 수강해야 했을 뿐, 이 수업을 듣고 싶은 학생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이 조금 더 열심히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몇 가지 기술, 정확히는 술수를 고안하게 되었고, 어느 정도는 먹혔다. 심지어 그 술수에 넘어간 몇몇 학생들이 신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6년 뒤 나는 종신교수가 되었는데, 아내가 된 여자 친구가 다시 동부로 갔을 즈음이었다. 그 뒤 아내는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매사추세츠주 서부 시골에서 교직을 얻었다. 나는 안식년을 맞아 1년간 아내와 함께 그곳에서 지냈다. 매일 아침 글을 쓰고 운동했고, 오후에는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자전거를 타고 잔디 우거진 구릉이며 버려진 물레방아를 지났다. 삶이 이토록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하지만 안식년이 끝나고 학교로 복귀하자 우리는 또다시 장거리 부부가 되었다. 한 달 중 주말 두세 번, 자동차로 네 시간 반을 달려야 만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에 전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보다 더 힘들었다. 나는 이제는 종신교수가 되려고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었고, 더 중요한 문제는 대학이 2가지 위기에 봉착했다는 점이었다. 하나는 재정 상태에 관련된 위기, 다른 하나는 대학 인가에 관련된 위기였다. 직원들이 해고되고 급여도 예산도 동결되었다. 입학생 수도 줄었다. 등록금만으로 대학의 적자를 막을 수 있을까? 또 인가 기관에서 요구하는 행정 업무도 훨씬 늘었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모두가 걱정에 시달려 어쩔 줄 모르는 것만 같았다. 나 역시 일자리가 보장되었음에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강의와 연구 외에도 위원회의 장을 맡았으며, 대학 내 강의 혁신 센터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측에서 큰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또 학생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지도 못했다.

학생들이 나에게서 배워가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학과장을 비롯한 동료들은 여전히 내 강의를 칭찬했지만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강의실에 들어가서, 지금 내 수업만 듣지 않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표정으로 책상에 앉아 있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무표정한 얼굴만 보아도 내가 매일같이 실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으니까. 점점 참을성을 잃어갔고, 수업 준비는 갈수록 힘겨워졌다. 밤마다 내가 고안한 강의 기술을 떠올리려 해도 누가 막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하지 마〉 뮤직비디오만 끝없이 보게 되었다.

이제 더는 꿈에 그리던 삶을 사는 기분이 아니었다. 내 삶은 20년 전 상상했던 그런 삶이 아니었다. 나는 갈수록 끔찍해지는 악몽 속에서 2년을 보낸 뒤, 한 학기 무급 휴직을 하고 아내가 사는 곳으로 가서 안식년 때처럼 전원생활을 했다. 쉬면서 나아지기를 바랐지만, 봄 학기에 다시 펜실베이니아주로 돌아갔을 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시점부터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강의실 안은 조용했다. 학과장은 한쪽에 놓인 책상에 앉아서 메모를 하고 있었다. 1년에 한 번 하는 강의 시연이 있었던 그날, 사회윤리 수업을 듣는 학생 20명은 켄드릭 라마의〈올라잇〉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참혹한 장면을 보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1초, 1초 지나갈 때마다 나는 정신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첫 줄에 앉아 있던 용감하고 진지한 여학생 한 명이 손을 들었다. 학생은 뮤직비디오 속 등장하는 언어와 이미지가 무척이나 불편했다고 했다. 대화하는 동안 학생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하지만 대화는 그리 멀리까지 가지 못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 뮤직비디오에서 본 장면 중 지금까지 수업에서 이야기한 것들과 연결되는 점이 있습니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강의계획서의 다음 부분으로 넘어갔다. 산업 경제에서의 노동을 다룬 교황 레오 8세의 칙서를 다룰 차례였다. 사적 소유에 관한 레오 교황의 생각을 이야기해볼 사람? 학생들은 미동도 없었다. 질문 있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나에게는 질문이 있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머릿속에 생각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 이런 빌어먹을! 단 한 명도 없단 말이야? 뒤통수로 솟구친 아드레날린이 투쟁-도피 반응을 일으켰다.

글을 미리 읽어오지 않은 학생들을 야단칠까? 모욕을 주어야 하나? 글을 읽어오지 않은 사람들은 전부 강의실을 나가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내가 짐을 싸서 강의실을 나가야 하나? 하지만 나는 맞서 싸우지 않았다. 달아나지도 않았다. 강단에 선 뒤, 과제로 읽어오라고 한 글에 관해 거들먹거리며 강의하기 시작했다. 굳이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지도 않았다. 11년 동안의 교직 생활에서 이렇게 모욕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나는 스무 살짜리 대학생들로부터 뮤직비디오를 보고 느낀 감상을 이끌어낼 능력조차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강의 시간이 끝났고, 학생들은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떠났다. 학과장은 나가는 길에 나를 지나치면서 내 생각만큼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이 다 끝났음을 깨달았다. 일주일 뒤 나는 교수직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번아웃 문화



모든 이가 번아웃에 시달리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종신교수라는 직업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몇 주 동안, 나는 내가 커리어에 대해 느끼는 분노에 찬 두려움을 번아웃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느꼈고, 퇴임 직전 학기에 내 삶을 이해할 수 있을 이 연구 주제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이 단어를 다시 마주친 것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심리학 교수 크리스티나 마슬라흐의 글을 읽던 중이었다. 이 책은 꼭 내 커리어 일대기 같았다.

마슬라흐의 연구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노동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들은 상담사, 사회복지사, 경찰, 교도관, 교직 종사자들이었다. 그는 번아웃에 시달리는 이들은 이상주의적인 경향이 있다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개인이 노동을 이끌어가기 위해 고귀한 이상을 필요로 할 때, 그 이상이야말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매일같이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번아웃에서 개인을 탓해서는 안 되지만, 번아웃의 부정적 효과는 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마슬라흐는 번아웃을 3가지 차원으로 본다. 소진, 냉소(또는 비인간화), 그리고 비효능감과 부족한 성취감이다. 일터에서 번아웃을 겪는 사람은 자꾸만 에너지가 부족하고(소진), 고객이나 학생들을 도와줄 대상이 아니라 문제로 인식하고(냉소), 업무로 무엇도 성취하지 못한다고 느낀다(비효능). 나는 그 모든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한편 번아웃을 다룬 다른 논문들을 읽던 중 나는 대부분의 논문에 마슬라흐가 개발해 번아웃 연구의 표준이 된 심리 척도 검사 ‘마슬라흐 번아웃 인벤토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교육자 전용 버전을 선택해 검사를 받았고, 번아웃 테스트에 눈부신 성적으로 합격했다. 내 점수는 소진 98퍼센트, 개인적 성취감 17퍼센트를 달성했는데, 이는 내가 마슬라흐 번아웃 인벤토리 검사를 받은 사람 중 가장 심각한 소진을 겪는 사람 중 하나이며, 피험자 6명 중 5명보다 효능감을 적게 느낀다는 의미였다. 아무튼 연구 자료를 읽으면서 나는 세상에 번아웃의 3가지 차원을 측정하는 검사가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을 겪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한편 번아웃 연구가 지닌 문제점 중에서도 까다로운 것은 여러 연구에서 번아웃을 일반인들이 내리는 주관적 정의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연구 조사원에게서 “당신은 번아웃을 겪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전적인 무기력을 번아웃이라고 보는 반면, 당신은 토요일 오후에 낮잠이 필요한 상태를 번아웃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응답은 완전히 다른 의미일 테지만 데이터에는 둘 다 똑같이 포함될 것이다. 연구 응답자들 각자가 생각하는 번아웃의 의미는 물론 연구 설계자가 생각하는 번아웃의 의미도 일치하지 않는다면 이 수치들은 사실상 사과, 오렌지, 음식물 쓰레기 더미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번아웃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가 없는 다른 이유는, 널리 알려진 다른 질병들과 마찬가지로 번아웃이 지닌 상업적 잠재성이 크기 때문이다. 마케팅 업계에서는 번아웃이 세계보건기구가 인정한 업무 관련 증후군이라 떠들어대는 반면 번아웃에 대한 정의는 주관적으로 내린다. 광범위하고 중구난방인 여러 경험에 과학적 근거라는 허울을 씌움으로써, 그들은 번아웃이라는 응급 상황을, 나아가 건강 요법에서부터 잘 선별된 ‘콘텐츠’에 이르는 치료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시장 전체를 창출한다. 번아웃이 이론의 여지가 있는 용어라는 사실은 번아웃 문화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번아웃의 정의에는 여러 이해관계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고용주, 연구자, 마케팅 업계, 의료계가 번아웃이라는 용어로부터 바라는 바는 각기 다르다. 자신의 경험을 확인해주기를 바라거나, 회사에서 쓸모없어진 인력을 솎아내기를 바라거나, 상담 치료의 새 영역을 정의하는 것 등이다. 번아웃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우리는 이 용어의 정의를 여전히 확립하지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선정적인 연구 결과들은 그저 이 상태를 보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읽는 이들이 자신 역시 번아웃 상태라고 주장하게 만든다. 같은 직업과 성별, 연령대의 사람들 대다수가 번아웃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들과 섞이기 위해 당신도 마찬가지 증상을 겪는다고 말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번아웃 문화가 가진 모순이다. 번아웃은 부정적인 상태이지만, 수많은 이들이 그 상태를 자신에게 적용하고 싶어 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을 놓고 이루어지는 공공의 대화에서도 같은 모순이 드러난다.

한편 문화적으로 보면 번아웃 증후군은 우리가 이 용어를 느슨하게 정의함에 따라 점점 더 확장되었는데, 린다 V. 하이네만과 토르스텐 하이네만은 부정확한 정의 때문에 번아웃이 “정신 질환이라는 낙인 없이 병가를 내고, 일터로 성공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눈가림 진단”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특히 번아웃이 2010년대 대중 매체에서 포크스크란크하이트, 즉 전 사회적 질병으로 널리 논의되었던 독일에서 그러했다. 참고로 2010년대 초반 독일의 신문과 잡지에는 번아웃을 다루는 기사가 수백 편씩 실렸으며 주로 유명인과 직업 운동선수들의 번아웃 고백에 초점을 맞추었다.

두 연구자는 번아웃이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뒤로 언론에서 점점 늘어나는 사회적 문제이자 야심 찬 노동자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증상으로 이를 묘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더 구체적인 정의가 생기면 서사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번아웃은 일과 관련된 다양한 질병을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가 되었다. 그리고 2011년 독일의 한 과학 논문에서는 번아웃을 더 예리한 정의가 시급히 필요한 ‘유행하는 진단’이라고도 했다. 또 다른 논문에서는 독일인들이 우울 삽화에 ‘번아웃’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향이 2001년에서 2011년 사이에 극적으로 증가했다고 보았다. 나아가 독일의 정신과 의사 울리히 헤게를은 번아웃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번아웃을 주관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임상적으로는 의미가 없으므로, 회의주의자라면 설문 조사원이나 기자들에게 자신이 번아웃이라고 말하는 사람 중 대다수가 마슬라흐 번아웃 인벤토리 테스트의 소진, 냉소주의, 비효능감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것으로 예측할지도 모르겠다. 일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일에 지치지 않고 헌신한다는 의미인 번아웃을 겪는다는 말로 어떤 지위를 부여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번아웃을 주장하는 사람 중 대다수가 이 증후군으로 인해 실제로 고통 받지 않는다면 애초부터 번아웃이라는 유행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리라.

번아웃이라는 용어를 바라보는 내 입장 또한 우리 문화의 입장만큼이나 모호하다. 나는 번아웃이 실존한다고 확신한다. 내가 겪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겪은 경험은 바쁜 한 주를 마무리하며 느끼는 평범한 피로감, 또는 학기 말에 쉬지 않고 시험 채점에 매달릴 때 느끼는 소진감을 훨씬 뛰어넘는 그 무엇이었다. 나를 통해 배움을 얻을 능력이 없는 학생들을 보며 내가 느낀 깊은 절망감은 휴식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편 번아웃이 실재한다고 믿는 한편으로 나 역시 우리가 이 용어를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스스로에게 이 진단을 지나치게 선뜻 내린다는 회의주의자들의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 신부 들러리 번아웃이라거나 버닝맨 축제 번아웃 따위의 신종 재앙들에 관한 글을 읽고 있자면 번아웃이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확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번아웃이라면 그 무엇도 번아웃이 아니다. 모순적이게도, 번아웃이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의 중요성을 입증하려 들수록 궁극적으로 그것은 일상의 좌절감이라는 아지랑이 속에 녹아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된다. 아무튼 번아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 자체로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은 번아웃이 단순히 심리학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문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역사를, 번아웃이 우려의 주제로 등장했다는 사실이 경제, 그리고 좋은 삶에 대한 시각 변화를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번아웃 스펙트럼


번아웃 경험의 다양성은 바다처럼 넓고 그 깊이 역시 모두 다르다. 넓이(모든 사람이 약간은 번아웃을 겪는다고 느낀다)와 깊이(어떤 사람들은 심각한 번아웃 때문에 더는 일을 할 수 없다)의 필요성 사이 균형을 잡으려면, 번아웃이 상태가 아니라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번아웃을 논할 때 우리는 번아웃이라는 것이 흑백으로 나뉠 수 있는 상태인 것처럼 말하지만 이런 흑백논리로는 번아웃 경험의 다양성을 설명할 수가 없다. 심리학자들은 이미 자폐 같은 다른 질병들을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면서 서로 관련된 다양한 강도의 장애들을 한 가지로 묶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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