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당무는 이제 안녕
이정화 지음 | 크레타
홍당무는 이제 안녕
이정화 지음
크레타 / 2023년 4월 / 228쪽 / 16,800원
나를 거부하는 나우리 발표 불안인의 가장 큰 문제는 긴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고 싫어한다는 점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목소리, 시선 처리, 손동작, 자세, 기승전결 흐름과 짜임새, 발표 자료 준비 등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발표 불안인들은 스스로에 거는 기대가 너무 커서인지 아니면 잘했다고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높아서인지, 남들 눈에 멀쩡해 보이는 발표도 끝내고 자리로 돌아오면서 ‘오늘도 떨었다’, ‘역시나 망쳤다’로 혼자 결론을 내리고 자책하기 시작한다. 이게 말썽이다.
떨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내려놓아야 한다. 발표 불안으로부터의 탈출은 아주 간단한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긴장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거다. 당연한 신체 반응이다. 내가 괴로운 이유는 긴장하는 걸 거부하는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긴장을 거부하는 마음. 떨고 있는 자신이 용납되지 않는 마음. 초조하고 애가 타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건, 실은 긴장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신체 반응을 거부하고 있는 내 마음 때문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나는 실은 얼굴이 붉어지는 게 싫었던 게 아니라 별거 아닌 발표 하나에 긴장한 티를 내는 내 모습이 싫었던 거다. 나는 요즘 긴장해서 얼굴이 달아오른다 싶으면 ‘얼굴 좀 빨개지면 어때?’, ‘얼굴 홍조가 뭐 대수라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긴장감을 흘려보낸다.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한순간에 바로 불안감을 내던지듯 떨쳐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꾸준히 반복적으로 연습을 하긴 했다. 중요한 건 인식이다. ‘자연스러운 신체 반응을 용납 못 했던 내 마음이 문제다’라는.
불안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나는 발표 불안의 주요 원인을 아래와 같은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 스피치와 관련된, 정신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격렬한 감정적 충격을 경험한 경우.
?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의 큰 충격은 아니지만 발표할 때 긴장한 상태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경험한 경우.? 성장 과정에서 억압을 받아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어 있는 경우.
한정형 사회 공포증의 일환인 내 발표 불안의 원인은 완벽히 하려는 경향, 예민한 자율신경계, 격렬한 감정적인 충격, 이 세 가지에 해당한다. 완벽히 하려는 경향이나 센 자존심, 예민한 자율신경계, 이건 인정하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 발표와 관련된 격렬한 감정적인 충격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불안증의 가장 큰 원인이 트라우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발표 불안의 주요 원인을 세 가지로 분류하긴 했지만, 사람마다 원인이 참으로 다르다. 그렇기에 불안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의 원인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접한 ‘발표 불안러’ 대부분은 불안 증세가 트라우마 때문이었거나 혹은 성장 과정에서의 가정 폭력, 폭언, 억압 등의 경험 때문이었다. 원인을 날 것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썩 내키는 일도 아니고 쉬이 되는 것도 아니긴 하다. 그렇지만 마음 단단히 먹고 원인에 대해 파고 파다 보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그 당시 나의 주관적 해석으로는 충격적인 경험이었을 수 있지만, 현재의 내 눈에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일 수도 있다. 혹은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무언가가 현재의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있다. 둘째,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 불안증과 그에 수반되는 여러 이상한 증상들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이 두 가지는 발표에서 긴장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자책감을 덜어주고 내게 맞는 해결 방법을 찾아 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내 현재 상태를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당연히 ‘원인’을 알아야 한다.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이 되면 극복을 위한 다음 단계로의 진입이 훨씬 수월하다.
기질이 태도가 되지 않게심리학에서 기질은 ‘자극에 대한 민감성이나 특정한 유형의 정서적 반응을 보여주는 개인의 성격적 소질’이다. 또 기질을 ‘유전적’으로 ‘타고난’ 특성들의 결합이라 한다. 즉 기질은 선천적이다. 기질을 바꾸고 싶으면 다시 태어나는 방법밖에 없다.
본디 내성적인 기질인 사람은? 타고나기를 내향적인 사람은 발표와 담을 쌓고 살아야 하나? 아니다. 우리는 흔히 내성적인 것과 소심한 것을 착각하곤 한다. 내성적인 건 성격의 영역이다. 여러 사람들 틈에 있으면 쉽게 방전되고,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며 새로운 관계보다는 익숙한 사람들과 지속적인 만남을 더 선호하는 ‘기질’이다. 반면 소심한 것은 상황 속에서 취하는 행동이나 모습이다. 소심함의 사전적 의미는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다’다. 즉 내성적인 사람도, 외향적인 사람도 상황에 따라서 대범해지기도 하고 소심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내성적인 사람은 발표가 불편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조용한 목소리로 차분히, 대범하게 발표를 곧잘 한다. 태생적으로 내성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발표가 불편하긴 하지만, 긴장이 되긴 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초조함을 흘려보낸다. 발표 불안은 없지만 발표가 너무 힘든 내성적인 사람? 발표가 너무 고통스러운 내향적인 사람? 발표가 힘들고 어려운 건 기질 때문이 아니다. 태도와 기질을 혼동한 상태에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라고 부러 체념하고 낙담하지 말자.
정답이 없는 일에서 자유로워지려면발표를 하다가 표정이 좋지 않은 사람과 눈이 마주치거나 발표를 하려고 단상에 섰는데 앉아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관심해 보이고 지루해 보이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긴장이 더 되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이럴 때 유용한 팁이 있다. 무조건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거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못 가서 화가 났나 봐. 기분 안 좋은 일이 있나 보다.)
뭐든 좋다. 그게 무엇이든 나와 상관없는, 내 발표와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 불안증은 부정적인 사고를 동반하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졌을 때는 주변 해석이 공연히 나와 연결되고 무엇이든 내 탓인 것만 같은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습관이 되어서 의문을 품을 여지도 없이 자연스럽게 기계적으로 계속 부정적인 사고를 한다. 그럴 때는 그냥 ‘내 마음대로 유리하게 해석하기’를 시전해 보는 거다. 해몽은 내 자유다. 그 때문에 순전히 내게 유리한 대로 해석할 수 있고 때론 아름답게 각색도 가능하다. 진실을 알 수도 없는 일을 구태여 비관적으로 생각해서 나를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다.
발표하다가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이나 부정적인 반응이 보인다 싶을 때 ‘나는 지금 무조건 내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를 떠올리며 내 마음 편한 쪽으로 해석하고 그냥 넘기자. 어차피 정답은 없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근육청중으로서도 화자로서도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할 때마다 내 빠른 눈은 큰 걸림돌이 되었다. 온갖 상황이 눈에 다 들어오는 바람에 그 모든 걸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발표자가 사랑스럽다’, ‘이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주문을 외울 때 내 눈을 심리적으로 가리는 연습을 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여러 조건이 참 다르다. 나의 경우는 눈이 예민해서 다른 사람을 좋게 보려는 게 특히나 조금 더 어려웠다. 그런데 조건은 달라도 방법은 같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해서라도, 강제적으로라도 좋게 보려고 노력하다 보면 처음에는 심적 거부감도 생기도 이게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진다. 꾸준히 반복적으로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면 타인의 시선에 대한 근육이 조금씩 생기게 된다. 이 근육이 점점 더 많이 생기고 점차 더 단단해지면 최면 필터 없이도 현실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왜냐하면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고 불안한 마음이 어느 정도 가신 상태에서 청중을 보게 되면 타인의 시선은 그리 매섭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매섭게 생각했던 건 다름 아닌 긴장감에 휩싸여 있던 나 자신이었음을.
혼자보다 든든한 발표 두레발표 울렁증을 극복하려면 원인과 관계없이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작하는 단계에서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동기 부여라는 물이 들어왔을 때 모를 마구마구 심어야 하는데, 이때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하려면 두레가 필요하다. 극복이라는 공동 목표를 가진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모여 서로서로 격려하고 배움을 나누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발표 두레를 만나면 극복 과정이 훨씬 수월해지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상당히 많은 발표 두레, 발표 모임이 있다. 발표 불안을 겪고 있거나 발표를 조금 더 잘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논하기도 하고, 순서대로 스피치하면서 불안증을 함께 이겨내고 발표 능력을 향상하자는 취지의 모임들이다. ‘발표 불안 모임’이나 ‘스피치 모임’으로 검색해 보면 제법 다양하게 있다. 이 스피치 모임은 온라인 카페, 밴드에 많이 있는데 동호회나 스터디 모임, 학원 수강생들이 모여서 만든 클럽 등 형태도 다양하다. 발표 두레에 발을 담그면 다음과 같은 어마어마한 것들을 누릴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말을 할 때발표 모임에 ‘칭찬 샤워’ 순서가 있다. 미리 정해 둔 주제에 맞추어 한 명씩 발표를 하고 끝날 때마다 발표자에게 칭찬을, 샤워가 가능할 정도로 집중적으로, 말 그대로 퍼붓는다. 발표의 어디가 어떻게 좋았는지 칭찬 세례를 퍼붓는다.
모임에서 하는 칭찬은 100퍼센트 진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참석자 모두는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하지 않다. 영혼이라고는 1그램도 담겨 있지 않은 것 같은 칭찬은 모임 자리에서는 ‘에이, 이게 뭐야’ 하다가도 혼자 있을 때 떠오르면 피식 웃음이 난다. 들을 때는 분명 억지 칭찬이라 생각했는데 문득 그 칭찬들이 떠오른다.
칭찬은 강력한 마법의 힘이 있다. 실망과 좌절로 딱지가 생겼던 내 마음에 연고가 되기도 하고 죽을 때까지 이러고 살아야겠다는 좌절감에 ‘괜찮아질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갈 틈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 칭찬 샤워는 전문가의 강의보다 스피치 학원 수업보다 한의사, 정신과 의사의 처방보다 훨씬 더 강력한 효과가 있다. 내 일상과 내 업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나도 몰랐던 내 장점들, 매력 포인트에 대해서 휘몰아치듯 쏟아내주는 시간, 살다가 한 번이라도 겪어본 적 있을까?
이 방청객 요정의 칭찬 샤워는 모임에 나가기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받을 수 있다. 필요하다, 그립다, 결핍이 느껴진다 싶을 때면 언제든 씩씩하게 발표 모임에 참석만 하면 된다. 집 근처, 회사 주위에 발표 모임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찾아보자.
비로소 컴컴한 마음이 사라질 때‘발표 불안러’들이 청중의 자리에 있을 때면 발표자에게서 자신의 가장 자신 없는 모습을 먼저 발견하게 된다는 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흥미로운 건, 방청객 요정이 되어 발표자에게 칭찬 샤워를 할 때도 무의식적으로 나의 부족한 부분 위주로 칭찬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다. 나에게 안면 홍조는 알 수 없는 패배감을 주는 열등감 덩어리였는데 타인이 내게 보이는 얼굴 붉어짐은 그렇지 않았다.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살짝 웃을 때 발표자가 매우 인간적으로 보이고 선한 분위기가 느껴지면서 왠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일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타인에게서 나와 같은 콤플렉스를 발견하고 억지로 칭찬을 만들다 보면 묘하게도 조금씩 거기에 젖어 들고 빠져들면서 조금씩 설득이 되기 시작한다. 일부러라도 그 콤플렉스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려고 시도하면서 말로 내뱉다 보면 내가 그렇게나 숨기고 싶고 감추고 싶었던 내 열등감 뭉치들이 그리 나쁘게만 보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게 핵심이다. 어떻게든 감추려고 애를 썼던 내 콤플렉스가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그렇게 엄청나게 못나 보이고 이상해 보이는 게 아니었구나’라는 걸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 콤플렉스가 실은 ‘나라는 사람의 개성과 특성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두 가지 변화가 생긴다.
첫째, 콤플렉스라고 느끼던 불편하고 컴컴한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둘째, 그 증상 자체가 조금씩 사라진다. 긴장할 때 나타나는 여러 증상은 실은 자연스러운 자율신경계 신체 반응이라, 내 의지로 조절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기에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두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도 그 증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제어하려고 노력하는데도 안 되면 좌절하기보다는 내 마음에 적응할 시간을 더 주자. 타인에게 관대한 만큼 나에게도, 내 마음에도 너그러움을 갖는 것은 불안과 긴장에 지친 마음을 보살피는 첫걸음이 아닐까.
불안의 촉을 기회로 만들다내 친구는 IT 회사에서 일한다. 한번은 급히 대표의 여권 사진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기억력과 통찰력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다. 이러한 해결력이 인상적이었던지 대표는 나에게 점심 식사를 사주며, 뜬금없는 질문들로 나의 사고력을 테스트했다. 친구는 자주 나와 업무상의 문제에 대해 논의했고, 이런 대화를 통해 나의 관점을 회사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대표는 나와의 더 많은 교류를 원했고, 이는 결국 내가 새로운 직장에 입사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후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받은 뒤, 콜롬비아에서 일하며 다양한 일거리를 해결했다. 이후 대표님의 추천으로 미국계 해외자원개발 투자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인도의 프로젝트를 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재무와 투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MBA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났다. 나는 이렇게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통해 세상의 모든 일이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모든 기회를 즐기고 순간에 몰입하는 태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내가 뜻밖의 좋은 기회를 만나고 평생 만나기 어려울 사람들과의 연결을 가능하게 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불안증을 앓는 사람은 대체로 섬세하다. 수신하는 정보가 많다 보니 과부하도 걸리고, 전달 과정에서 오류도 생기고, 과하게 해석도 하는 거라고 믿는다. 뜬금없는 도움 요청이 들어오거나 전혀 경험 없는 분야에 서성거릴 기회가 왔을 때 조금의 오지랖을 작동시켜 보자. 우리 발표 불안인들의 축과 안테나에 오지랖을 더하면 뜻밖의 장소에서 재미있는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실수는 실수일 뿐발표 도중에 실수를 하면 그저 그뿐이다. 긴장을 하면 긴장하는 것이고, 떨려서 말을 제대로 못 하거나 횡설수설하거나 긴장감에 뭐라도 실수를 했다손 치더라도, 좀 민망하고 체면 좀 깎이는 것 말고는 딱히 뭔가 없다. 그런데 왜 그리 실수하지 않으려 안달복달하며 힘들어했던 걸까? 고통받고 있는 발표 불안인에게는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실수 좀 하면 어떠니? 어떻게 매번 잘할 수 있지? 그럴 때도 있는 거야. 어쩌라고. 오늘은 잘 안되는 날인가 보다.
나를 내려놓는다는 건 말처럼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실수하는 것을 싫어하고 꼼꼼하고 예민한 사람일수록 나 자신을 내려놓고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사고의 방향을 바꾸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무언가 잘하고 싶은 마음이 그득그득한 상태에서 불안한 마음에 내가 잠식되어 있으면, 될 일도 안 되고 안 될 일은 더 안 되게 마련이다. 실수를 하는 걸 싫어하는 나에게 긴장하고 초조해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다. 그래서 잘하고 싶은 일에도 실수하고 싶지 않은 일에도 의식적으로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럼 좀 어때, 주문을 계속 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