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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시민 불복종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 현대지성


월든·시민 불복종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현대지성 / 2021년 12월 / 536쪽 / 10,000원





내가 살았던 곳과 그렇게 살았던 이유




인생의 어떤 계절에 들어서면 우리는 모든 장소가 집을 세우기에 적절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는 곳에서 12마일(20킬로미터) 반경의 모든 지역을 측량했다. 상상 속에서 모든 농장이 매입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연이어 사들였다. 나는 농장 가격을 잘 알았다. 여러 농부의 땅을 걸어보았고, 야생 사과들을 맛보았으며, 농사에 관해 의논했고, 그가 부르는 값에 농장을 사들여서, 다시 그것을 그에게 저당 잡히는 것을 상상했다. 심지어 시가보다 더 값을 쳐주기도 했다. 그 농장의 등기권리증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그의 말을 권리증으로 삼았다. 나는 그 농장을 경작했고 어느 정도 농부를 교화하기도 했으며, 그것을 충분히 오래 즐긴 후에는 그가 계속 경작할 수 있도록 그 농장에서 물러났다. 이 체험으로 나는 친구들로부터 일종의 부동산 중개인 취급을 당했다.

내가 어디에 눌러앉든 나는 거기서 살아갈 수 있었고 그 풍경은 나로부터 환히 퍼져 나갔다. 집이 눌러앉는 곳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 집이 시골에 있다면 더 좋으리라. 많은 주택부지가 앞으로 곧 개선될 것 같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그 부지가 마을에서 너무 떨어져 있다고 생각할 것이나,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마을이 그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좋아, 여기서 살자”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한 시간쯤 머물러, 거기서 어떻게 여름이나 겨울을 보낼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또 그곳에서 여러 해를 보내면서 겨울을 돌파하여 봄이 오는 것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살폈다. 이 지역의 미래 거주자들은 집을 어디에 세우든 간에 다 예견된 일이었음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 땅을 나누어 과수원, 삼림지, 목초지 등으로 구분 설계하고, 집 앞에 참나무나 소나무를 세워둘 것인지 결정하고, 어떤 서리 맞은 나무가 가장 멋지게 보일지 등을 결정하는 데는 오후 한나절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다음 나는 그 땅을 그냥 묵정밭인 양 내버려둔다. 인간은 내버려둘 물건 가짓수가 많은 것에 비례해 부자이기 때문이다.

나의 상상은 계속 날개를 달고 날아가 심지어 어떤 농가들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나는 진심으로 거부하길 바랐다. 그러나 내가 실제 농가를 소유한다고 큰코다칠 일은 없었다. 내가 실제 소유에 가장 가까이 간 것은 할로웰 농장을 사들였을 때였다. 나는 이미 씨앗 분류를 시작했고 손수레로 실어 나를 건설 자재들을 선택했다. 하지만 소유주가 내게 등기권리증을 넘겨주기 전에 그의 아내?모든 남자에게는 이런 아내가 있다?가 마음을 바꾸어 그 농장을 계속 갖고 싶어 했고, 그는 내게 위약금으로 10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사실 나는 호주머니에 단 10센트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10센트를 가진 사람인지, 농장을 가진 사람인지, 10달러를 가진 사람인지 혹은 전부를 가진 사람인지 헷갈렸다. 결국, 나는 그에게 농장도 10달러도 다 가지라고 했다. 나는 이미 농장 사들이는 일을 충분히 진행했으니, 아니 그보다는 관대한 마음을 발휘하여 내가 사들이겠다고 한 값에 그 농장을 되판 셈 치기로 했다. 게다가 그는 부자가 아니었으므로 그에게 10달러를 선물했다. 그러고도 아직 내게는 10센트와 씨앗과 자재들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내 가난에 어떠한 불명예도 안기지 않으면서 부자가 되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주변 풍경은 그대로 간직했고 손수레 없이 해마다 그 땅이 산출하는 것을 날랐다. 풍경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의 군주이므로

누구도 그에 대한 권리에 시비 걸지 못하리.

_윌리엄 쿠퍼(1731-1800)의 시.



나는 어떤 시인이 농장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감상하고 난 뒤에 물러가는 광경을 자주 보았다. 그럴 때 투박한 농부는 시인이 야생 능금 몇 개를 슬쩍했으리라 상상했다. 하지만 그 주인은 앞으로 여러 해 동안 사태의 진상을 몰랐다. 시인은 농부의 농장을 운율로 묘사하고, 보이진 않지만 가장 멋진 울타리를 설치하고, 소를 그 울타리 안으로 집어넣고, 젖을 짜고, 젖에서 크림을 걷어내 크림만 가져간다. 그러는 동안, 농부에게는 크림 뽑아간 우유만 남는 것이다. 내가 볼 때 할로웰 농장의 진짜 매력은 이런 것이다. 우선 그 온전한 고적감이 좋다. 마을로부터는 약 2마일(3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넓은 들판 곁은 큰길로부터 반 마일(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농장이 강에 접하고 있어 강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가 봄이면 서리를 막아준다고 농장주는 말했다(하지만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회색이 주조를 이루어서 폐허 같은 느낌을 주는 농가와 헛간 그리고 황폐하게 된 울타리 등은 나와 지난번 사용자 사이에 적당한 공간적 거리를 마련해준다. 이끼가 덮이고 토끼들이 갉아먹은 텅 빈 사과나무들은 내가 어떤 종류의 이웃들을 두게 될 것인지 미리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으로 여행을 다니던 초창기에 얼핏 보았던 할로웰 농장의 추억이 내게는 소중하다. 당시 농가는 붉은 단풍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그 숲을 통과해 들려오는 농가의 개 짖는 소리만 있었다.

나는 그 농가를 빨리 사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농가 주인이 밭에서 돌들을 골라내고, 텅 빈 사과나무를 잘라내고, 목초지에 생겨난 몇 그루의 어린 자작나무들을 캐내기 전에, 그러니까 그가 농가 개선 작업을 하기 전에 매입해야 했다. 이러한 풍경의 이점을 즐기기 위해 나는 그 농장을 떠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틀라스처럼 이 세상을 내 양어깨에 짊어질 각오였다(아틀라스가 지구를 어깨에 짊어지고 어떤 보상을 받았는지는 들어본 바 없지만). 나는 관련된 일을 다 할 생각이었다. 농가 대금을 지불하고 그 후에 내가 괴롭힘 당하는 일 없이 온전히 그 농가를 소유하겠다는 것 외에 다른 동기나 변명은 없었다. 내가 그 농장을 내버려둔다면 내가 원하는 종류의 곡식을 풍성하게 내주리라는 것을 명확히 알았다. 하지만 할로웰 농장 문제는 내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없던 게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내가 대규모 영농에 관해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나는 언제나 정원을 가꾸어왔다) 씨앗을 온전히 준비해놓았다는 것뿐이다. 많은 사람이 씨앗들은 오래 묵을수록 더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시간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해준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씨앗을 심는다면 실망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나는 친구들에게 단정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가능한 한 자유롭고 아무 데도 매이지 않은 상태로 살아라. 당신이 농장에 전념하든 카운티 감옥에 들어가든 매어 있기는 매한가지인 것이다.

노(老) 카토가 쓴 『농사에 대하여』(De Re Rustica)라는 책은 나로서는 『영농자』(Cultivator)라는 잡지와 마찬가지인데, 내가 참고한 유일한 번역서는 관련 문장을 아주 엉터리로 번역해놓았다. 그래서 그 부분을 옳게 번역하면 이러하다. “농장을 사들일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을 탐욕스럽게 즉각 사들이지 말고 천천히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라. 농장을 꼼꼼히 둘러보는 수고를 아끼지 말라. 그것을 딱 한 번 둘러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만약 그게 좋은 농장이라면 당신이 거기 자주 찾아갈수록 당신을 더욱 즐겁게 할 것이다.” 나는 탐욕스럽게 사들이지 않고, 내가 살아 있는 한 농장 주위를 빙빙 돌고 또 돌다가 거기에 가장 먼저 묻히는 사람이 되어, 마침내 그 농장으로부터 가장 큰 즐거움을 얻어내고 싶다.

현재의 주거지는 이러한 방식으로 내가 두 번째로 벌이는 실험인데 거기에 대해 자세히 기술해보겠다. 편의상 2년의 체험을 한 해 체험으로 압축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나는 낙담을 칭송하는 글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 이른 아침, 자신의 횃대 위에 서서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수탉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자랑스럽게 펼쳐놓을 것이다. 아직 잠들어 있는 내 이웃을 잠 깨우기 위해서.

숲속에 처음 내 주거를 잡았을 때, 다시 말해 밤낮을 계속해서 거기서 지내기로 했을 때, 전입 첫날은 공교롭게도 1845년 7월 4일, 즉 독립 기념일이었다. 내 집은 아직 겨울을 날 준비가 안 되어 있었고 미장 공사나 굴뚝 작업도 없이 비바람이나 겨우 가리는 정도였다. 사방 벽들은 갈라진 틈이 많고 비바람에 변색된 거친 판자를 두른 것이어서, 밤에도 추웠다. 반듯하게 세운 하얀 샛기둥과, 대패로 금방 민 문과 창틀은 정결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목재에 이슬이 내린 아침이면 그런 정결한 느낌이 더욱 강했다. 정오가 되면 저 목재에서 달콤한 송진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의 상상력에 들어맞게도, 내 집은 종일 이런 새벽 분위기를 간직하여, 지난해에 방문했던 산 위 어떤 집을 떠올리게 했다. 그 집은 공기가 잘 통하고 회반죽 작업을 하지 않은 오두막이었는데, 여행하는 신(神)을 맞이하기에 적합한 곳이었고, 금세라도 여신이 옷자락을 끌고 나타날 듯한 인상을 풍겼다. 내 집 위에 부는 바람은 산봉우리를 넘어가는 듯한 바람이었고, 지상 음악 중에 따로 떼어낸 한 소절 혹은 천상에 해당하는 소절처럼 들렸다. 아침 바람은 계속 불어왔고, 창조의 시는 중단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 음악을 들어줄 만한 귀는 거의 없다. 신들의 처소(處所) 올림포스산은 이 속세를 떠난 곳이라면 어디에든 있다.

보트를 제외한다면 내가 전에 소유했던 유일한 집은 천막이었다. 여름에 여행을 떠날 때면 나는 가끔 그 천막을 사용했다. 이 천막은 아직도 돌돌 말린 채 다락방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보트는 이 손 저 손을 거쳐 가다가 시간의 급류를 타고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 좀 더 단단한 주거를 갖추었으므로, 나는 이 세상에 정착하는 데 진일보한 셈이다. 이 집은 치장이 다소 빈약하긴 하나, 주위에서 벌어진 일종의 결정(結晶) 작업이고, 그리하여 그 집을 지은 사람에게 반응한다. 이 집은 뭐라고 할까, 윤곽만 그려진 그림처럼 암시적이다. 나는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실내의 공기가 바깥의 신선함을 전혀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내에 있다기보다는 그저 문 뒤에 앉아 있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텐데, 심지어 비가 많이 오는 날씨에도 그러하다. 『하리반사』는 이렇게 말한다. “새들이 없는 거처는 양념이 없는 고기와 비슷하다.” 나의 집은 그런 상태는 아니었다. 내가 갑자기 새들의 이웃이 되었기 때문이다. 새를 한 마리 조롱에 넣어두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나 자신을 그 새들 주위에 가두어두었다는 뜻이다. 나는 정원과 과수원에 자주 날아오는 새들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좀 더 야성적이고 매혹적인 숲속 노래꾼들과도 벗했다. 이 새들은 마을 사람 근처에는 거의 날아가는 법이 없었는데 티티새, 개똥지빠귀, 붉은풍금조, 들판 참새, 쏙독새, 기타 많은 새가 그랬다.

나는 자그마한 호숫가에 자리 잡았는데 콩코드 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1.5마일 떨어진 지점으로 마을보다 약간 지대가 높은 곳이다. 또한, 콩코드와 링컨 사이에 있는 광활한 숲 한가운데 있으며, 독립 전쟁의 주변 전투지에서 유일하게 유명해진 콩코드 전장에서 남쪽으로 약 2마일 떨어진 지점이다. 그러나 내 집은 숲속에서도 낮은 지역에 있었고, 반 마일 정도 떨어진, 삼림 울창한 호수 반대편이 가장 멀리 떨어진 지평선이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호수를 쳐다볼 때마다 높은 산 측면에 있는 산중 호수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호수의 바닥은 다른 호수들의 수면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았다. 태양이 떠오르면 호수는 밤새 입었던 안개 옷을 내던졌다. 호면 여기저기에서 부드러운 잔물결과 모든 것을 잔잔하게 비추는 표면이 드러났다. 그러면 안개는 마치 유령처럼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숲속으로 철수했는데 그 모습이 야간 비밀 종교 모임의 산회(散會) 장면 같았다. 나무에 매달려 있던 이슬은 마치 산 측면에 있는 것처럼 평소보다 더 오래 버티면서 한낮이 될 때까지 매달려 있었다. 이 자그마한 호수는 8월 들어 비바람이 불어오는 사이사이에 정다운 이웃으로서 큰 가치가 있었다. 8월엔 공기와 물이 아주 고요했으나 하늘은 흐려 있어 오후 한나절이 되면 마치 저녁이 온 것처럼 고즈넉했고, 개똥지빠귀가 요란하게 울어대어 그 노랫가락이 호수 이쪽에서 저쪽까지 울려 퍼졌다. 이런 호수는 바로 그런 때 아주 잔잔했다. 호수 위의 맑은 공기층은 얕으면서도 구름 때문에 어두웠으므로, 빛과 반사물이 가득한 호면은 낮은 하늘 그 자체가 되어 더욱 중요했다.

최근에 나무를 베어낸 근처 산꼭대기에서 보면, 호수 가장자리를 이루는 산들 사이의 넓은 계곡을 통해 호수 건너 남쪽으로 펼쳐진 멋진 경관이 보인다. 산들의 반대쪽 사면은 서로 향하여 비스듬히 기울어지고 있으므로 그 방향으로 시냇물이 삼림 울창한 계곡을 관통하여 흐를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거기에는 시냇물이 없었다. 나는 근처의 푸른 산들 사이 혹은 그 너머로, 멀리 떨어진 지평선상의 더 높은 산들을 쳐다본다. 그 산들은 아득하여 푸른색이 감돈다. 실제로 나는 발끝으로 서서 좀 더 푸르고 좀 더 멀리 떨어진 북서쪽 산봉우리를 흘깃 엿볼 수 있다. 그 산봉우리는 하늘의 주조소(鑄造所)에서 떨어진, 진짜로 푸른 색깔을 가진 동전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지점에선 마을 일부분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다른 방향으로는, 산꼭대기의 이 지점에서도 나를 둘러싼 숲 너머 지역은 바라볼 수 없었다.

집 인근에 물이 있어 대지가 붕 떠 있는 느낌을 주고 또 땅이 물 위에 떠도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무리 소규모 우물이라고 해도 가치가 있는데, 그것은 우물 아래를 내려다보면 땅이 대륙이 아니라 섬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우물이 버터를 시원하게 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비가 많이 오는 때 나는 이 산꼭대기에서 호수를 가로질러 서드버리 초원을 내려다보았다. 그 초원은 홍수로 인해 물이 넘치는 계곡의 신기루 효과 때문에 마치 대야 속 동전처럼 다소 솟아올라 보였다. 그리고 호수 너머 모든 땅은 좁은 강물의 물살로 고립되고 표류하는 얇은 빵조각처럼 보였다. 나는 그제야 내가 살던 땅이 아직 비에 젖지 않은 마른 땅임을 퍼뜩 깨닫게 되었다. 집의 문에서 내다보는 경관은 한결 축소된 것이지만, 비좁거나 갑갑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목초지는 얼마든지 있었다. 맞은편 호숫가는 키 작은 참나무 고원으로 솟아오르는데, 그 땅은 서부 평원들과 타타르족대초원 지역으로 광활하게 내뻗어 있어, 모든 방랑하는 인간 가족에게 충분한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그의 목자들이 새롭고 더 큰 목초지를 요구했을 때, “광대한 지평선을 자유롭게 누리는 자들을 제외하고 이 세상에는 행복한 자가 없다”라고 다모다라는 말했다.

장소와 시간이 바뀌었고, 그래서 나는 나를 가장 매혹하게 하는 우주의 어떤 지역과 역사의 특정 시기에 더 가까이 살게 되었다. 천문학자들이 밤마다 관찰하는 여러 지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나는 살았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천상의 구석, 가령 카시오페아 성좌 뒤쪽에 있는, 모든 소음과 소란으로부터 격리된 곳에 있는 진귀하고 즐거운 장소를 자주 상상한다. 나는 숲속 내 집이 실제로 이런 아주 멀리 떨어진 곳, 영원히 새롭고 오염되지 않는 그런 우주의 한 장소에 있다고 여긴다. 플레이아데스 성좌, 히아데스 성좌, 알데바란 성좌, 견우성 가까운 곳에 머무르는 게 가치 있다고 여기는가? 나는 실제로 그런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혹은 뒤에 남겨두고 온 생활로부터 그처럼 멀리 떨어져 있다. 나의 존재는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도 달 없는 밤에만 보일 만큼 희미한 빚에 불과했다. 이것이 내가 차지한 우주의 한 부분이고, 나는 그곳에 눌러앉았다.

자기 양 떼가 평소 그의 생각보다 더 높은 목초지로 가서 헤맨다면 그 목동의 생활은 어떠해야 할까? 매일 아침은 내 생활을 단순 소박한 것으로 만들라는 유쾌한 초대이다. 그 단순 소박함은 곧 자연과의 순수한 관계를 의미한다. 나는 그리스인처럼 아침의 신 오로라를 성실하게 숭배해왔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호수에서 목욕재계를 했다. 그것은 종교적 실천이었고 내가 했던 가장 좋은 일 중 하나였다. 중국 탕왕(湯王)의 목욕 욕조에는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날마다 새로워지라. 날마다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지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나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아침은 영웅의 시대를 다시 가져온다. 나는 명예를 칭송하는 트럼펫 소리 못지않게 모기의 희미한 웅웅거리는 소리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른 아침, 문과 창문을 열어놓고 앉아 있을 때 집 공간을 멋대로 날아다니는 모기. 그것은 호메로스의 진혼곡이다. 그 자체로 공중에 떠다니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 그의 분노와 방랑을 노래한다. 거기에는 우주적인 뭔가가 깃들어 있다. 그것은 세상이 영원한 활력과 다산성을 금지당할 때까지 계속 나가는 광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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