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쾌락
에피쿠로스 지음 | 현대지성
에피쿠로스 지음
현대지성 / 2022년 12월 / 208쪽 / 8,800원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서신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원자와 허공, 그리고 그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나눌 수 없는 핵심 요소로서, 모든 물체를 구성하며 끊임없이 운동한다. 또한 원자들의 무한한 다양성과 운동은 무한한 수의 세계를 가능하게 한다. 우주는 무한함으로써, 허공과 물체의 균형을 이룬다. 원자와 허공, 그리고 그들의 무한한 운동과 다양성이 이 세상을 구성하며, 그로 인해 우리가 알 수 없는 무한한 수의 다른 세계들이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인식하는 감각 대상들 주변에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얇은 형체, 즉 ‘유체’가 존재한다. 유체는 그 자체로 매우 얇아서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움직이며, 이 유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의 움직임은 일정하다. 유체는 물체의 표면에서 원자가 유출되면서 생성되며, 이 과정은 물체의 크기를 줄이지 않는다. 이러한 유체는 원자 배열을 장기간 보존하며, 또한 주변의 공기에서 빠르게 합성될 수도 있다.
유체는 감각 대상으로부터 나와 우리의 감각으로 들어오며, 그 대상의 고유한 형태와 색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이는 원자의 진동에 의해 유출되는 유체가 빠르게 운동하며 우리의 감각에 도달하고, 물체의 특질을 보존하여 연속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인식은 단단한 물체의 형태나 속성으로부터 유래한 유체나 그 잔재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며, 확증이나 반증이 이루어질 때 오류와 진실에 대한 판단이 추가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물체를 인지하는 것은 그 물체로부터 유출되는 유체가 우리 감각에 도달했을 때 가능하며, 이 유체는 물체의 형태나 특성을 지닌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오류는 특정 움직임이 발생하면서 심상에 대한 인지가 확증되거나 반증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음성이나 소리는 특정 대상으로부터 유출되어 나오는 동질적인 입자들에 의해 발생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그 대상을 인식한다.
음성이나 소리가 공기에 작용해서 그 형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충격에 의해 입자들이 배출되고, 이런 입자들이 청각을 자극해서 우리가 들을 수 있게 된다. 후각도 마찬가지로 외부 대상으로부터 유출되는 입자들에 의해 감각이 발생한다.
원자는 형태, 무게, 크기와 이와 연관된 특성 외에는 우리가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물체의 특성을 갖지 않으며, 변하지 않는다. 변화는 대부분 입자의 위치 변동이나 입자의 추가나 제거에 의해 일어나지만, 이때 입자들은 소멸되지 않으며 변하지 않는 본성과 고유한 질량과 형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그 물체의 일부 특성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지만, 그 형태는 남아있다. 이렇게 남은 입자들은 합성물의 다양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온갖 크기의 원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원자들이 다양한 크기를 가질 수 있지만 그 범위가 제한적임을 인정해야 한다. 무한한 수의 입자 또는 모든 크기의 입자가 한 물체에 존재할 수도 없다. 이러한 가정은 물체의 크기를 무한으로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 원자의 가장 작은 부분과 원자 전체의 관계는 한 원자와 물체 전체 간의 관계와 동일하다.
무한한 공간에서 “위”나 “아래”라는 개념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한 공간에서의 위치는 상대적이며, “위”나 “아래”의 개념은 우리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충돌이 없다면 원자들은 동일한 속도로 움직이며, 원자의 크기나 무게는 이런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는 원자의 움직임이 외부 충돌이나 충돌 후의 힘에 반발하는 원자 자신의 무게로 인한 방해 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충돌이 없는 허공을 통과하는 원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어디든 도달할 수 있다.
합성물을 구성하는 모든 원자의 속도는 동일하다. 특정 원자가 다른 원자보다 빠르게 보이는 이유는 연속적인 충돌과 움직임이 감각적으로 인지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가장 짧은 단위의 시간에서 원자들은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움직임은 우리의 감각이나 지성으로 인식될 수 있다.
움직이는 물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이 여러 지점으로 움직일 때, 물체 자체가 여러 지점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체의 운동이 원자들의 충돌로 지연되는 것이 아니라, 이 충돌이 물체 전체의 운동을 결정한다.
혼은 몸 전체에 퍼져있는 미세한 입자들로 구성되며, 바람이나 열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혼의 입자들은 바람이나 열기의 입자보다 더 작아 몸과 더욱 잘 어우러진다. 혼의 특성과 기능, 우리의 생각과 감각, 그리고 죽음에 따른 혼의 소실 등은 이를 증명한다.
혼은 감각을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몸의 구조 안에 어느 정도 존재해야 한다. 혼이 몸을 떠나면 감각 또한 사라진다. 혼이 몸에 남아있다면, 일부 몸이 상실되더라도, 감각은 유지된다. 그러나 혼을 구성하는 필수 원자들이 상실되면, 몸은 감각을 잃게 된다. 몸 전체가 해체되면 혼도 흩어져 원래의 능력을 잃게 된다.
“비물질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가리키지만, 실제로는 허공 외에는 비물질적인 것은 없다. 혼이 비물질적인 것이라는 주장은 무의미하다. 혼은 행동하고 반응할 수 있는 물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든 이론이 느낌과 감각에 의해 검증되고, 기억되면, 우리는 이를 기반으로 혼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탐구를 진행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물체의 모든 고유한 특성들이 물체의 일부이며, 자체적으로 존재하거나 물체에서 분리되거나 비물질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고유 속성은 물체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요소이며, 이 속성들은 물체의 핵심 본질을 형성한다. 반면 우연적 속성은 물체에 항상 수반되지 않는 특징이며, 우리는 이러한 속성들을 물체가 가지는 우연한 특징으로 인식한다. 우연적 속성들은 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시간을 감각을 통해 직접 인식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시간의 길이를 판단해야 한다.
모든 세계가 원자 덩어리에서 파생되었으며, 이는 해체될 수 있고, 각기 다른 원인으로 다양한 속도로 해체될 수 있다. 세계는 필연적으로 특정 형태로 생성된 것이 아니며, 모든 세계에는 동물, 식물 등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한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배워나가며, 이름은 각각의 부족에서 발생한 본성에 근거한 소리의 반영이며,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성을 통해 발전되었다. 부족들은 의사소통을 더욱 명확하고 간결하게 하기 위해 합의를 통해 사물들에 특정 이름을 붙였다.
천체의 움직임과 같은 현상을 주관하고 있는 완전하고 불멸의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노력과 두려움이 불멸의 존재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체 현상과 그 원인에 대한 이해를 통해 평정심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천체들이 불멸의 존재로 축복받아 자유롭게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의 결합으로 생성된 세계와 함께 천체 운동의 법칙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천체 현상들의 세부적인 이해만으로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며, 오히려 천체 현상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두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
이는 천체 현상의 원인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모든 것의 원인을 탐구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에도 적용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상이 발생하는 다양한 방법을 이해하고, 그중에서도 구체적인 상황에서 더 가능성이 큰 방법을 파악해야 한다.
천체들이 축복받은 불멸의 존재라는 비합리적인 믿음과 그에 따른 두려움이 인간의 혼란과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제어하지 못하면, 천체 현상에 대한 막연한 이해를 가진 사람들과 같거나 더 큰 혼란과 괴로움을 겪을 수 있다.
인류의 내적 느낌과 외적 감각, 그리고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기준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혼란과 괴로움, 두려움을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낼 수 있고, 그 결과로 천체 현상을 비롯해 인류 전체에 극심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현상의 원인을 밝혀내 사람들을 그런 혼란과 괴로움,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현자론사람들로부터 받는 해악은 미움, 시기, 경멸에 따라 생기는데, 현자는 이성적으로 극복한다. 사람이 일단 현자가 되면, 그는 더 이상 지혜와 반대되는 성향을 지니고 있지도 않고, 스스로 그런 성향을 자기 속에서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그는 느낌들에 더 민감해지지만, 그것은 그의 지혜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민족에서, 모든 사람이 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자는 고문을 받아도 행복하다. 오직 현자만이 자기 옆에 친구들이 있든 없든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말과 행위로 자신의 그런 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현자도 고문을 받으면 울부짖고 신음하기는 할 것이다.
현자는 법이 금지하는 여자들과 성적인 관계를 갖지 않는다. 또한, 현자는 자기 집안의 노예들을 징벌하지 않고 도리어 불쌍히 여기며, 좋은 자질을 지닌 노예들을 자신의 동료로 여긴다. 현자는 성애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장례에 관심이 없으며, 성애는 신이 보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현자는 사람들 앞에서 탁월한 말솜씨를 발휘하지 않는다.
현자는 결혼하지도 않고 자녀를 두지도 않는다. 하지만 삶 속에서 처한 상황 때문에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결혼할 수는 있다. 현자는 술에 취해도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는다.
현자는 공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 현자는 절대 군주로 살아가려고 하지도 않고, 견유학파에 속한 철학자처럼 살아가려고 하지도 않으며, 거지가 되어 구걸하며 살아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현자는 시력을 잃어도 삶을 버리지 않는다.
현자도 괴로워하고 화도 낸다. 현자는 법정 소송에 참여하고, 글을 써서 문서로 남기기는 하겠지만, 법정이나 공적인 장소에서 변론이나 대중연설을 하지는 않는다.
현자는 재산과 미래를 계획하고, 조국을 사랑하며, 재산상의 이득 앞에서 결코 친구를 버리지 않는다. 현자는 자기가 멸시당하지 않기 위해 평판에 신경 쓰지만, 딱 그 정도로만 그렇게 한다. 현자는 공적인 행사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기뻐한다. 현자는 남의 동상을 세우지만, 자신의 동상이 세워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현자만이 음악과 시에 대해 바르게 논할 수 있지만, 시를 창작하는 활동은 하지 않는다. 어떤 현자가 다른 현자보다 더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현자는 궁핍할 때 오직 자신의 지혜를 사용해 돈을 벌고, 필요한 경우에는 왕을 섬긴다. 현자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는 것을 아주 기뻐한다.
현자는 학교를 세우지만, 그것은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를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강의를 하지만, 오직 요청이 있을 때만 그렇게 한다. 현자는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가르친다. 현자는 잘 때도 깨어 있을 때와 같고, 친구를 위해 얼마든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다.
모든 죄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건강은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용기는 본성적으로 생기지 않고, 이득에 대한 계산에서 생겨나며, 사랑과 우정도 필요에 따라 생긴다. 하지만 열매를 거두려면 땅에 씨앗을 뿌려야 하듯이, 사랑과 우정도 먼저 기초가 놓여야 한다.
완전한 쾌락을 이룬 사람들 사이에서는 삶의 공유를 통해 사랑과 우정을 얻는다. 두 종류의 행복이 있는데, 하나는 늘거나 줄어들 수 없는 최고의 행복으로서 신이 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쾌락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행복이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서신누구든지 젊음과 노년을 떠나 철학에 몰두해야 한다. 철학에 적절한 시기가 있다고 믿는 것은 행복할 적당한 나이가 있다는 생각과 같다. 젊은 사람은 미래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노인은 과거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며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철학에 몰두해야 한다. 행복은 모든 것을 가진 것이며, 우리는 그 행복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시도해야 한다. 따라서,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철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너에게 계속적으로 이야기한 내용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첫 번째는, 모든 사람이 인지하는 신이 살아 있으며, 불멸하고, 행복하게 축복 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불멸하며, 행복한 신의 존재를 해치지 않는 것만이 신에게 속한다고 여겨야 한다. 신의 불멸성이나 축복받은 행복한 존재를 해치는 것은 신에게 돌리지 않아야 한다.
신들은 존재하고, 신들에 대한 지식은 분명하다. 하지만 신들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사람들은 신들이 불멸하고 축복받은 행복한 존재라는 생각을 고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그런 신들을 거부하는 사람이 불경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신들에 관해 생각하는 것을 신들에게 돌리는 사람들이 불경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신들에 관해 말하는 일련의 것은 선개념이 아니라 거짓된 추측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거짓된 추측에 근거해, 신들은 악한 자들에게는 아주 큰 해를 끼치고 선한 자들에게는 아주 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그런 거짓된 추측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좋게 여기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체질화되어 있어서 그런 것은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 거부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감각의 상실이며, 따라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런 이해는 삶에 무한한 시간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불멸에 대한 욕망을 없애줌으로써 삶의 유한성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죽음을 깊게 이해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삶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생각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실제로 죽음이 닥쳤을 때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데, 죽음을 두려워하며 고통받는 것은 허무한 일이다.
죽음은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재앙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는 죽음이 우리에게 올 때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살아있는 동안에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 자신이 없기 때문에 죽음은 사실상 비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때때로 죽음을 최악의 재앙으로 두려워하거나, 반대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반면에 현자는 삶에서 도피하려고 하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현자는 삶을 걸림돌로 여기지 않고, 죽음을 재앙으로 여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음식을 고를 때 오로지 양이 많은 것이 아니라, 더 맛있고 즐거움을 주는 것을 고르듯, 현자는 가장 긴 시간을 누리려는 게 아니라, 가장 즐거운 삶을 누리려고 한다.
젊은이에게 잘 살라고, 노인에게 잘 죽으라고 충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죽음은 우리에게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살아있는 동안 죽음은 우리에게 닿지 않고, 죽음이 찾아왔을 때는 우리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에게 죽음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때때로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하거나, 반대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구원의 수단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반면에 현자는 삶에서 도피하려고 하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현자는 삶을 걸림돌로 여기지 않고, 죽음을 재앙으로 여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음식을 고를 때 오로지 양이 많은 것이 아니라, 더 맛있고 즐거움을 주는 것을 고르듯, 현자는 가장 긴 시간을 누리려는 게 아니라, 가장 즐거운 삶을 누리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