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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

캐시어 바디 지음 | 현대지성


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

캐시어 바디 지음

현대지성 / 2021년 4월 / 352쪽 / 16,500원









데이지


달콤한 향기를 풍기고, 수수하고, 잘난 척하지 않고, 겸손하고, 온화하고, 서민적이라는 게 데이지를 표현하는 형용사다. 유럽 서부와 중북부가 원산지이지만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해 온대 지방 전역으로 퍼진 데이지는 워낙 많은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 가장 민주적인 꽃으로 볼 수도 있고, 흔한 잡초로도 볼 수 있다. 홀로 피는 법이 없는 데이지의 습성 때문에 “당신과 같은 마음입니다”라는 꽃말이 빅토리아 시대에 생긴 것 같다.

데이지는 다른 의미에서도 일상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데이지의 영어 이름이 옛 영어 ‘dægesege’(‘낮의 눈’)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낮의 눈’은 리 헌트가 눈여겨보았듯, 데이지가 밤에는 분홍빛 눈썹을 내렸다가 아침에 다시 올린다(꽃잎을 오므렸다 펼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식물이라는 맥락에서 데이지는 거의 약탈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밤에는 제대로 된 꽃가루 매개체가 돌아다니지 않기 때문에 데이지는 소중한 꿀이 증발하는 것을 막으려고 꽃잎을 오므린다.

윤곽으로는 데이지 형태가 단순해 보이지만, 그 구조는 굉장히 복잡하다. 중앙의 밝은 노란색 화반(花盤)을 멀리서 보면 하나의 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데이지는 관 모양의 작은 꽃들이 수십 개씩 빽빽하게 모여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꽃마다 아주 작은 암술과 수술이 들어 있다. 데이지가 속한 국화과(科)의 원래 이름 ‘Compositae’은 이렇게 작은 꽃들이 모인 합성물(composite)임을 나타낸다. 데이지의 화반은 꽃잎이 아니라 ‘주변화’로 알려진 또 다른 무리의 아주 작은 꽃들에 둘러싸여 있다.

벨리스 페레니스(데이지)의 구조는 특별히 파리, 벌, 나비에 매력적이다. 주변화에 내려앉아 화반의 꿀과 꽃가루에 다가가기 좋아서다. 다른 먹이를 찾기 어려운 초봄에는 많은 곤충이 잔디밭의 데이지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한다. 하지만 잔디 볼링장이나 테니스 코트의 관리인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데이지의 뿌리줄기를 제거하려고 정말 애를 많이 쓴다.

데이지는 사람에게도 보물을 제공한다. 약제사들은 데이지의 꽃과 잎을 모두 사용해서 상처, 특히 멍을 치료할 찜질 약을 만든다(데이지는 때때로 뼈 풀이나 멍 풀로 알려지기도 했다). 데이지의 모양과 습성은 또한 눈병을 치료하는 아이브라이트(학명 Euphrasia officianalis)처럼 눈과 관련 있는 꽃 무리에 속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데이지가 어린이를 연상시킬 때가 정말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자그마한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꽃이 어디에서나 많이 피어 있어 어린 시절 쉽게 갖고 놀 수 있다는 게 조금 더 그럴듯한 설명이다.

먼저 데이지의 하얀색 주변화를 떠올리면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반했는지 아닌지 알아내려고 그 작은 꽃들을 하나하나 떼어 냈던 시절이 기억날지도 모른다. 데이지의 부드럽고 연한 줄기를 이용해 데이지 체인을 만드는 놀이도 있다. 데이지 줄기의 중간에 날카로운 손톱으로 작은 구멍을 만든다. 다른 줄기를 그 구멍으로 밀어 넣으면서 길게 이어 목걸이, 팔찌나 화관을 만든다.

오늘날에는 서로 연결된 것을 가리킬 때 ‘데이지 체인’이라는 말을 폭넓게 사용한다. 전기전자 배선과 장치, 데이터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비롯해 어떤 일이 계속될 때, 3명 이상이 성행위를 할 때, 특정 주식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 계속 거래할 때 등 온갖 상황에서 사용한다.

꽃송이를 강이나 호수에 배처럼 띄우는 일도 인기 있는 놀이 중 하나다. 1931년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보리스 칼로프 주연)이 바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마리아라는 어린 소녀가 호수에 데이지를 던지면서 같이 놀자고 하자 괴물은 즐거워한다. 하지만 괴물은 꽃송이들을 모두 던진 후 꽃과 아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마리아를 물에 던져버린다. 그다음 엄청나게 죄책감을 느끼면서 숲으로 도망친다.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린든 존슨이 배리 골드워터를 이기도록 도왔던 토니 슈와츠가 유명한 정치 광고를 만들면서 ‘데이지 소녀’를 떠올렸을 때도 아마 마리아와 괴물을 생각했을 것이다. 광고의 목적은 분명하고 단순했다. 보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면서 휘어잡으려고 한 것이다. 광고 연출자는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분명하고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를 활용해야 했다. 어린 소녀가 데이지 꽃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내는 영상이 딱 맞았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두 알기 때문이었다.

냉전 시대에 사는 데이지 소녀는 미친 듯이 날뛰는 괴물보다 더 무시무시한 위협과 마주하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소녀가 꽃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내며 숫자를 세는 장면으로 영상은 시작한다. 그다음 굉장히 정확한 로켓 발사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소녀의 눈을 클로즈업하자 핵폭탄이 터져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장면이 검은 눈동자에 나타난다. 충동적이고 호전적인 골드워터에게 표를 주면 미국인이 맞을 운명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데이지 소녀는 이렇게 괴물이나 핵폭탄 같은 위험에 직면한다. 하지만 그런 위험보다 처녀성을 빼앗길 위협을 당할 때가 더 많다. 물론 모든 소녀는 이런 위험을 느끼고, 그들의 삶은 꽃봉오리였다가 활짝 핀 다음에 시들어가는 꽃으로 비유된다.

하지만 데이지가 소녀의 순수함을 상징한다는 명성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1920년대의 냉소주의를 보여주는 1924년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특히 그랬다. 주인공인 제이 개츠비는 진짜 데이지, 맑은 눈에 흰 드레스를 입은, 흠잡을 데 없는 백인 소녀의 전형을 숭배했다. 하지만 섹스와 거짓말, 속임수로 얼룩진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데이지 뷰캐넌이라는 여주인공의 이름이 완전히 풍자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인위적이고, 풋내기가 아니라 능수능란하고,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게 아니라 안락한 자리를 지키면서 힘들게 투쟁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우월감을 느끼려고 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아이같이 순수한 이미지를 새로운 시대에 맞춰 재창조하려고 데이지를 활용하면서 새로운 성격의 데이지 소녀가 등장했다. 영화 제작자들이 새로운 시대의 성적 자유, 말하자면 천진난만한 성생활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려고 선택한 꽃이 데이지였다. 프랑스 영화감독 로제 바딤의 1956년 코미디 영화 《데이지 따기》에서 데이지 옷을 입은 ‘아이 같은 여성’ 브리지트 바르도가 연기한 아마추어 스트리퍼 그리고 체코의 뉴 웨이브 영화감독 베라 치틸로바의 영화 《데이지들(Sedmikrasky)》에서 이런 데이지 소녀를 볼 수 있다. 10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작고 귀여운 데이지는 이처럼 변신을 거듭했다. 이제 정숙하거나 겸손한 여성이 아니라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여성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여름



장미


밸런타인데이에는 여자 친구에게 장미를 주는 게 거의 의무였고, 샤넬 넘버 5 향수(30밀리리터 병 하나를 만드는 데 캐비지 장미 12송이가 필요하다)까지 선물하면 더 좋겠지만 첫 데이트에서 장미나 향수를 선물하는 것은 분명 현명한 생각은 아니었다. 장미는 구닥다리일 뿐 아니라 선물하는 사람이 사랑에 굶주려 애원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예절 안내서는 설명했다. 그러니 절대 그러지 말아야 한다.

장미가 인간의 성관계를 떠올리게 하지 않았던 때는 찾아보기 어렵다. 성적인 갈망에 관한 중세 우화인 ‘장미 소설’(퇴폐적인 색채가 강한 강렬한 연애소설)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현재를 즐겨라’ 사상까지(로버트 헤릭은 “할 수 있을 때 장미꽃 봉오리를 모으라”라고 충고했다), 오르가슴 분출에 관한 빅토리아 시대의 풍자부터(토머스 하디 소설의 등장인물 수 브라이드헤드의 뺨은 연분홍 장밋빛이었다) 꽃잎 같은 외음부 모양을 보여주는 해나 윌크스의 1970년대 조각까지 성과 관련 없는 연인과 장미 담론은 사실상 없다.

물론 장미는 사랑과 성 말고도 여러 가지와 관련이 있다. 왕실과 국가를 상징하는 꽃이 되기도 했다. 장미는 또 기독교의 자선, 삶의 덧없음, 행복에 대한 기대, 모든 일이 잘될 때를 상징하기도 한다(‘장밋빛 전망’).

그리스 신화에서는 장미가 에로스와 아프로디테(비너스)뿐 아니라 디오니소스와도 관련되기 때문에 연애와 포도주, 장미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프로디테는 유혹의 여신이자 매춘부를 보호하는 신이었고, 어떤 매춘부는 꽃도 팔았다. 한편 오비디우스는 ‘거리의 여성들’에게 주피터와 비너스를 위한 4월 축제에 장미를 가져오라고 가르쳤다. 자신을 보호하는 비너스를 위해 그들이 돈을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러 문화권에서 장미는 매춘부와 관련이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때 영국에서는 매춘부 찾아가기를 보통 ‘장미꽃 꺾기’로 묘사했다.

음란물과 외설적인 농담, 의학 참고서의 은유 중에는 비슷한 표현이 상당히 많다. 1671년, 산파에 관해 설명하는 책을 처음 펴낸 영국인 여성 제인 샤프는 꽃, 특히 장미를 이용해서 여성의 출산을 설명했다. 예를 들어, 열매를 맺기 때문에 월경을 꽃이라고 부르고, 처녀막 파열을 꽃잎이 반쯤 떨어진 장미로 비유해서 설명했다.

연애소설과 에로소설의 주인공을 설명할 때도 장미의 일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드먼드 스펜서(그리고 다른 많은 작가)의 상상 속에서는 꼭 다문 장미 꽃봉오리 같은 처녀의 약속으로 극적인 장면이 시작된다. 그다음 활짝 핀 향기로운 꽃 같은 열정으로 발전하고(보라, 잠시 후면 얼마나 더 대담하고 자유로워지는지/그녀는 벗은 가슴을 활짝 벌려 보여준다), 결국 꽃잎이 떨어지면서 사랑이나 사랑하던 사람이 사라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바타유의 ‘역겨움과 따분함’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식물의 가시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가시 없는 장미인 성모마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기독교 문화 맥락에서는 가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통을 주는 가시 때문에 피 흘리는 상처가 생기지만, 그 상처는 신의 은총을 받아 아름다운 꽃으로 바뀐다. 그러면서 물질적인 면보다 믿음이 우리를 비참한 상태에서 구원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래서 장미는 순교자와 기적의 꽃이 되었다. 이는 이슬람과 기독교 문헌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현대에 와서 장미가 사회주의 상징으로 채택된 이유이기도 하다.

성관계로 전염되는 질병과 장미는 끈질기게 연관되었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임질을 ‘성병에 걸린 장미’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편 1960년대 말에는 베트남과 대만 여성이 미국 병사들로부터 ‘사이공 장미’(가장 가시가 많은 장미, ‘임질’이란 의미)가 전염될까 봐 걱정했다.

때때로 이 모든 상징이 좀 지나칠 수도 있었다. 미국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1922년에 “장미는 이제 진부하다”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장미는 사랑이라는 짐을 졌다. 그런데 드디어 이제, 장미에서 사랑이 떨어져 나갔다”라고 여러 해 이야기했다. 케케묵은 말과 생각을 물리치고 꽃 자체에 관심을 기울일 때였다.

여성이든 장미든 여러 방식으로 현대화된다. 역설적이지만 가장 현대적인 장미인 하이브리드 타이(Hybrid tea)가 가장 무시당했다. 마이클 폴런은 우연의 일치지만 영국의 2차 선거법 개정으로 중산층 남자가 선거법을 가지게 된 1867년에 하이브리드 타이가 처음 생산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블룸즈버리 그룹의 눈에는 잎사귀에 윤기가 흐르고 병에 잘 걸리지 않는 하이브리드 타이가 “잘 배우고, 잘 차려입고, 고분고분한 멋쟁이 여성처럼 깔끔해” 보였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부르주아처럼 지루해 보이기도 했다.

반면 말메종에 있는 조제핀 왕비 정원의 주인공이었던 센티폴리아, 부르봉, 이끼 장미처럼 18세기와 19세기 초에 재배된 크고 이리저리 뻗어 나가고 향이 짙은 품종뿐 아니라, 최초의 정원용 장미인 갈리카, 다마스크 장미까지 옛 장미가 더 멋지고 현대적으로 보였다.

적어도 D. H. 로렌스가 진단하듯 지나치게 문명화된 삶에 대한 불만을 어떻게 떨쳐버리느냐가 현대의 문제다.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꽃을 잘 피우지 못한 나머지 긴장에서 벗어날 수 없어 전전긍긍하는” 장미에서 벗어나 원초적인 황홀경을 맛보는 정원으로 돌아가느냐의 문제다.



가을



양귀비


가을은 봄처럼 한해의 환절기다. 봄이 여름이 오기 전이라면, 가을은 겨울이 오기 전이다. 봄에는 다가올 날들을 희망하고, 가을에는 이미 지나간 날들을 기념하면서 아쉬워하기 시작한다.

가을 꽃들을 볼 때 6개월 전의 봄꽃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10월에 피는 노란색 풍년화는 5월에 피는 버드나무꽃을 닮았다. 9월에 피는 사프란의 보라색 꽃을 보면 2월에 피는 크로커스꽃이 생각난다. 하지만 늦은 계절에 피는 느낌은 봄과 같지 않다. 봄과 가을에 피는 꽃의 차이는 중년의 외모에 관한 신랄한 비유로 쓰일 때가 많다. 존 던은 시 <가을의 Autumnal>에서 나이 들어가는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기 위해 (아마도 백덜린 허버트라는 과부를 생각하며) 나이 든 여성을 가을의 얼굴이라고 비유한다. 그가 여성의 주름을 거론하기 어려웠으리라고 짐작하는 독자도 있지만, “봄이나 여름은 내가 가을의 얼굴에서 본 것 같은 우아함이 없다”라는 표현에 누가 반대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가을에서 그런 매력을 찾아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름의 마지막 장미’ 혹은 식물뿐 아니라 사람도 쓰러뜨리는 해충에 관한 우울한 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가을이 마치 ‘폐결핵에 걸린 소녀’(오래지 않아 죽을 테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진홍색 뺨을 가진)와 비슷하다면서 화려하게 퇴장하는 가을을 즐겼다. 에밀리 디킨슨은 더 나아가서 천국은 가을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디킨슨은 가을 중에서 특정 기간인 인디언 서머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미국 기상학회는 한가을과 늦가을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날이 이어지는 기간을 인디언 서머로 정의한다. 낮에는 보통 맑고 화창하면서도 실안개가 낀 듯하고 밤이면 서늘해진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기후가 나타난다. 유럽의 여러 나라는 그런 기후를 ‘노파의 여름’ 혹은 ‘성 마틴의 여름’이라고 부른다(성 마틴의 날은 11월 11일이다).

하지만 흔하지 않은 이 현상은 19세기 뉴잉글랜드에서 신화와 같은 위치에 올랐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사냥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따뜻한 날씨여서 그런 용어가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어디에서 시작되었든 인디언 서머라는 용어와 개념은 19세기 말, 특히 급성장하던 관광산업이 단풍 관광 홍보에 열을 올리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매사추세츠주에 살았던 디킨슨은 여러 시에서 자신이 ‘금발 암살범’이라는 별명을 붙였던 서리의 파괴적인 힘 그리고 때때로 서리 뒤에 다시 나오는 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여주었다. 서리의 암살은 정말 인정사정없다. 행복한 꽃들은 하나도 놀라지 않는 것 같다. 서리가 갑자기 힘을 발휘하며 꽃의 목을 베는데도.

해가 다시 나오고 용담이 천상의 보라색 꽃을 피우는 10월 매사추세츠에서는 마치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좀 더 세속적인 설명을 좋아한다. 그는 그 계절을 ‘유쾌한 가을’이라고 의인화하면서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옛 애인이라기보다 “과일과 꽃에 관한 활기찬 노래”를 부르는, 원기 왕성하고 흥청망청하는 디오니소스와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꽃은 다른 가을 축제에서도 주로 기억의 상징으로 등장하면서 중심 역할을 한다. 가을 편에서 소개하는 꽃 중 세 가지는 그런 의식에 쓰이는 꽃들이다. 국화는 중국과 일본의 오래된 절기인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쓰이는 꽃이다. 이날에는 노인을 공경하면서 장수를 기원한다. 국화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다.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꽃봉오리가 보인다. 전 세계 정원에서 기르기 시작한 후 국화는 특별히 밝은 노란색이나 주황색 꽃을 환영하는 시기에 피어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국화의 강렬한 색깔과 강렬한 냄새가 시각과 후각을 사로잡으면서 썩어가는 잎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계절과 관계없는 꽃이 되었다. 낮과 밤이 조절되는 온실에서 재배된 갖가지 색깔의 국화가 1년 내내 꽃시장에서 팔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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