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폭식 사회
이광석 지음 | 인물과사상사
디지털 폭식 사회
이광석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1월 / 263쪽 / 17,000원
프롤로그 ? 별점, 평점, 주목 사회
피지털(phygital) 효과나는 ‘피지털’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했다. 피지털은 ‘피지컬(physical, 물질)’과 ‘디지털(digital, 비물질)’이 합성된 신조어로, 디지털과 물리적인 것의 혼합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광고와 마케팅 분야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오늘날 이 개념은 더 광의의 의미로 쓰인다. 나는 피지털을 플랫폼 앱처럼 디지털 세계의 기술 장치가 물질계의 지형과 배치를 좌우하는 신기술 과밀도 현상을 지칭하기 위해 썼다.
오늘날 피지털의 면모를 되짚어 보자. 소비자들은 개인 스마트 앱을 갖고 사람과 사물에 대한 호불호를 별점, 좋아요, 댓글 등으로 가치를 매기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매긴 별점들에 상인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평판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서비스 개선을 모색한다. 여럿이 함께 매긴 별점과 평점의 합이 타인에게 위력을 발휘하는 ‘평점 사회’의 등장을 부추긴 것인데, 이것이 피지털 효과다.
‘평점 사회’의 바탕은 플랫폼 기업들에 의해 구축된다. 플랫폼은 데이터, 영상, 배달, 돌봄, 아르바이트, 자동차, 잠자리 등 유무형 자원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온라인 정거장과 같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들이 이를 돕는 플랫폼 장치 노릇을 한다. 그런데 플랫폼은 물질 자원의 중개는 물론이고 정보와 데이터 등 비물질 자원과 지적 상품을 생산하고 매개하고 소비하도록 돕고, 플랫폼 사업자는 물질ㆍ비물질 시장 자원을 둘러싼 여럿의 공급자와 소비자를 서로 연결해 자원 탐색에 소요되는 마찰 비용과 거래 비용을 낮춰 주는 대가로 중개 수익을 취하는 일종의 ‘거간꾼’ 구실을 해 왔다.
플랫폼 업계는 효율적인 유무형 자원 중개에 대한 수수료로 막대한 수익을 취하고, 더 나아가 서비스 영역에서 신생의 불완전 노동시장을 만들어 내며 유연 근무와 고용 창출 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 여파로 불과 수년 만에 이미 우리 곁에 플랫폼 시장과 노동은 흔하게 발견되는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피지털, 플랫폼의 새로운 권력장 문제는 플랫폼이 권력이 되는 순간이다. 인간의 시장 활동, 자원 정보의 실시간 파악과 수요ㆍ공급 매칭, 데이터 알고리즘 예측을 통해 플랫폼의 중개 능력을 극대화하려고 할 때 플랫폼은 자기모순에 처한다. 예로 플랫폼에 매달린 이용자의 일상 활동은 감지되어 데이터로 치환되고 각자의 취향은 알고리즘 분류 처리를 통해 미래 구매력 예측 지표로 쓰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플랫폼은 소비자ㆍ노동자ㆍ시민 데이터의 수집과 감시 없이는 제 기능이 작동 불가한 ‘기생 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인다.
불행히도 최근까지 국내 플랫폼 기업들은 기술이나 조직 혁신보다는 시장 ‘주목’과 점유율 확보를 위해 가격 할인, 공짜 프로모션, 유명 연예인 광고 등 공격적인 자금 소진 전략을 취해 왔다. 게다가 이들은 시장 독점력을 얻는 순간, 기존의 시장 독과점 기업과 별반 다르지 않게 행동해 왔다. 가령, 고용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플랫폼 노동자를 개인 사업자로 만들어 외주화하거나, 플랫폼 기업이 골목 상권까지 접수하는 과도한 시장 욕망을 보이거나, 플랫폼 알고리즘 순위 조작을 통해 자체 브랜드 노출을 높이는 불공정 행위를 하거나,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통해 은밀한 방식으로 노동 통제를 수행하는 등 전근대적인 사업 관행을 보였다.
한편 내가 굳이 ‘메타버스’를 놔두고 ‘피지털 플랫폼’ 개념을 강조하는 것은 가상의 이들 플랫폼 자본이 우리의 현실 감각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통제 권력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플랫폼 기업들이 주도하는 ‘평점 사회’에는 나름의 이점이 있지만, 날이 갈수록 디지털 플랫폼은 현실 속에 디지털 ‘독성’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가령, 영세 상점과 식당에 오른 배달 앱 리뷰로 인해 가게 매출이 휘청거리는 일이 흔해졌다. 조회수와 인증 사진 등 주목 효과만으로 쉽게 호객이 이루어지고, 때로는 이로 인해 어떤 지역에는 젠트리피케이션 효과까지 유발한다.
그리고 별점과 댓글은 현실 플랫폼 노동의 질까지 바꾸고 있다. 플랫폼 앱은 이미 전통적인 고용 계약 관계를 해체하고, 많은 사람을 위태로운 프리랜서 노동자의 지위로 내몰고 있다. 배달ㆍ택배 노동, 가사와 돌봄 노동 등 단기 서비스 노동자들의 생존은 주로 고객들이 매긴 별점에 따라 쉽게 좌우된다. 여기서 고객 별점과 평점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쥐락펴락하는 인사 고과 지표처럼 기능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의도하건 아니건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 수행성에 별점을 매기며 중간 인사 관리자가 되고, 노동자들은 그 ‘별점 노동’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한편 비대면 현실에서 가상 플랫폼을 매개해 다수의 이용자가 평판을 생성하는 방식은 소비자들의 미래 선택을 돕는 꽤 합리적인 전산 통계학처럼 보인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은 뒷광고, 평판 조작, 댓글 부대, 가짜 뉴스 등에 의해 실물의 평판 측정이 이미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매번 잊는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이용자 클릭으로 만들어진 순위, 점수, 별점이라는 것 또한 외부 물질세계에 대해 임의 추산되거나 조작된 근거 없는 단서일 수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기술의 독성 / 디지털 기술 폭식 현상의 가속화오늘날 플랫폼의 문제는 그것이 시장을 넘어서 사회와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는 데 있다. 이른바 ‘평점 사회’는 플랫폼 기업이 만들어 낸 우리 사회의 특징적 국면이 되었다. 지도 위 별점이 영세업자의 생존을 좌우하고, 공유 택시의 배차 알고리즘이 기사의 노동 방식을 길들이고, 플랫폼 알고리즘이 사회의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혐오와 적대의 정치문화를 배양하고, 소비자 손끝의 평점과 댓글이 플랫폼 노동 수행성의 척도로 쓰이면서 ‘산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플랫폼의 별점이 비수로 꽂히기도 한다. 플랫폼 권력은 인간 사회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이 책은 무엇보다 현재 장기화하고 있는 코로나19 충격과 ‘피지털 플랫폼’ 질서가 우리 사회의 ‘기술 폭식’ 현상을 가속화한다고 본다. 어찌 보면 ‘기술 폭식 사회’는 우리 삶을 파고드는 기술 만능주의와 그 기술 효과가 미치는 독성과 폭력성을 경계하기 위한 다소 자극적인 용어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한국 사회가 기술 폭식의 특징들을 가장 극단의 스펙터클한 방식으로 펼쳐 내고 있다고 본다.
메타버스 플랫폼 질서의 탄생
현실을 무너뜨리는 메타버스와 아바타
사이버 공간 독립선언문: 인터넷은 냉전 시대에 구소련의 가상 핵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미국에서 미사일 방어 체제의 하나인 군사 통신기술용으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한동안 지구촌 연구자들 사이에서 민간 지식을 교류하는 의식의 네트워크로 쓰였고, 누구나 익명성에 기대어 서로의 관심사와 정치적 식견을 나누게 되면서, 인터넷은 가상 공동체와 민주주의의 실험장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닷컴기업들이 주도권을 쥐면서 인터넷의 상호 호혜 관계의 특징들이 빠르게 사라졌고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 인터넷에서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가능하고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고, 국가 권력과 기업의 탐욕에서 자유로운 가상의 해방구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바로 그즈음 「사이버 공간 독립선언문」은 인터넷 이상주의자들에 의해 작성되어 배포되었는데, 그 첫대목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산업 세계의 정권들, 너 살덩이와 쇳덩이의 지겨운 괴물아. 우리는 희망의 새 고향, 사이버 공간에서 왔노라. 미래의 이름으로 너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 우리를 건드리지 마라. 너희는 환영받지 못한다. 네게는 우리의 영토를 통치할 권한이 없다.”
이는 자본 욕망과 국가 통제의 “지겨운 괴물”에 맞서 인터넷을 해방구로 믿고 지키려 했던 기술 이상주의자들의 마지막 경고이자 절규였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저항은 미력했고 외면당했다. 대부분 투항했고, 일부는 후일 정보 운동에 투신했다. 그들의 절규에 아랑곳없이, 곧장 닷컴 시대가 활짝 열렸다. ‘사이버 공간’은 차츰 인터넷의 옛말이 되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은 이제 ‘메타버스’라는 새 입간판을 달았다. 그간 ‘거울 세계’, ‘혼합 현실’, ‘세컨드 라이프’ 등 유사 개념들도 있었지만 별 흥행을 거두지 못했다. 바야흐로 ‘메타버스’가 이들을 흡수하는 가장 강력한 업계 용어가 되고 있다.
사이버 공간과 메타버스: 사이버 공간과 메타버스는 실제 무엇이 다른 것일까? 우선 인터넷 기술에 대한 강조의 차이가 보인다. 사이버 공간은 가상 인공물 재현의 실감 효과보다는 인터넷 초기 특성인 상호 연결된 컴퓨터 네트워크처럼 인간들의 자유로운 소통과 평평한 관계를 강조한다. 달리 말해 자유로운 의식들의 범지구적 소통 공간으로서 관계성이 우선한다. 반면 메타버스에서는 흔히 강조되듯 물리적으로 방대한 데이터 저장, 실시간 처리 기술, 3차원 그래픽 기술과 혼합 현실 기술이 언급된다. 전통적인 익명의 평등한 연결과 관계보다는 현실 같은 가상의 실재감에 더 무게가 쏠린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아 보이는 ‘디지털 휴먼’ 아바타(가상 캐릭터)를 개발하려고 하는 것처럼, 실재하는 현실과 인공 축조된 가상의 감각 차이를 무너뜨리는 기술 특성을 강조한다.
메타버스 비즈니스의 탄생: 운영 주체도 다르다. 메타버스를 주도하는 이들은 주로 빅테크와 문화산업이다. 역사적으로 이들은 개방된 사이버 공간을 무단 점유해 사유화했던, 이른바 ‘인클로저’의 장본인이자 후예인데, 우리는 13세기 유럽에서 가진 것 없던 영국 농민들이 나눠 경작하던 농경지(공유지)를 그 땅의 재산권 소유자인 지주들이 대규모 목축업을 위해 몰수했던 역사적 사건을 ‘인클로저’라고 칭한다. 메타버스는 닷컴기업이 또다시 창작과 문화의 공유 공간을 사적인 이윤의 전쟁터로 만들려는 또 다른 ‘인클로저’ 현실로 볼 수 있다. 빅테크와 문화산업은 메타버스를 가상의 증강된 현실 속에서 오락ㆍ쇼핑ㆍ사회ㆍ경제 활동을 밀접하게 연결하고 묶는 또 하나의 생활 공간으로 구상하고 있다.
메타버스의 자산 증식 욕망: 사이버 공간은 ‘독립선언’의 움직임을 일으켰지만, 이제 메타버스는 닷컴기업에 의한 ‘인클로저’의 완성을 이루고자 한다. 메타버스의 전망은 현실처럼 가상의 인공물을 모두 실물 자산처럼 사고팔 수 있는 극단의 자본주의 경제시장을 구상하는 데 있다. 이미 자본주의의 지식재산권은 지식과 데이터를 사유화하는 법체계를 강제 운영해 왔다. 그런데 이도 부족해 메타버스의 추종자들은 무형의 디지털 사물에 직접 화폐 가치를 매겨 분양하거나, 특정의 암호화폐 기술을 가미해 가상 아이템의 복제를 막고 현물 자산의 지위까지 부여하고자 한다.
가령, ‘어스2(Earth2)’라는 가상 부동산 플랫폼은 현실을 모사한 위성 지도 위에 이용자들이 가상 토지를 현금 결제해 구매하거나 디지털 땅의 시세가 오르면 팔기도 하는 곳이다. 어스2는 일종의 가상 세계의 토지 거래소 역할을 하면서, 현실 지구에서처럼 이 가상 부동산을 매개해 실거래 투기를 조장한다. 매매되는 가상의 거래 단위는 100제곱미터 넓이의 ‘타일’ 크기의 땅인데, 위성 지구 이미지 전체를 무수한 픽셀 모양의 타일로 쪼개어 팔면서 이곳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가상 투자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NFT라는 가상 자산화 기술 또한 메타버스와 함께 크게 활성화될 조짐이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이 일반 돈처럼 교환 가능한 화폐 역할을 한다면, NFT는 가치 측정이 어려운 무형물의 아이템에 고윳값을 붙여 집문서나 기념주화처럼 서로 다른 시장 가치와 효력을 부여하는 가상 자산화 기술에 해당한다. 이는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해 실소유자와 거래 이력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명시하면서 배타적 소유가 분명한 가상 자산임을 보증한다. 이런 연유로 NFT는 메타버스에서 만들어진 게임 아이템, 가상 건물, 부동산, 패션, 음원, 게임, 작품 등 거의 모든 무형의 것에 자산 가치를 부여해 거래 가능한 현물시장을 형성하는 데 최적의 암호화폐 기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게임과 오락을 넘어: 과거 사이버 공간의 낭만적 이상주의자들은 현실 감각이 현격히 떨어졌다. 하지만 나름 인터넷에서 온라인 공동체주의의 소박한 꿈을 지녔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자본과 권력에서 자유로운 시민 호혜의 가상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했던 그들의 도전과 꿈이 이제는 영 낯설다. 메타버스는 어떠한가? 물질세계와 연동된 수많은 아바타가 함께 실감 나는 가상 사회를 구축하자는 또 다른 원대한 목표를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들의 전망에는 그 어떤 시민 대안의 기술에 대한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메타버스 투자자들, 빅테크들, 아이돌 연예기획사들, 기술 전도사들이 주도하는 장밋빛 청사진만 요란하다. 그래서일까? 왕년의 인터넷 이상주의자들의 독립선언이, 인터넷의 운명이 어찌 될지 예상했던 전주곡처럼 오늘 이 순간 내게 너무 처연하게 다가온다.
인공지능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
노동의 소멸과 ‘하류 노동’의 무한 증식
질 나쁜 ‘위태로운’ 노동: 코로나19 사태에도 빅테크와 플랫폼 업계는 전에 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그에 비해 노동 현실은 그리 나아지지 않고 있다. 아니 더 나빠지고 있다. 코로나19 충격과 경기 침체로 수십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자영업자 파산, 실직, 휴직 등과 함께 지능 로봇과 무인 자동화 매장 도입으로 돌연 일자리가 사라지는 ‘기술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까지 겹쳐 고용 불안이 더 가중되고 있다. 주위에도 생활고로 인해 자신의 생업 혹은 부업으로 플랫폼 배달이나 물류창고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른바 ‘플랫폼 노동’이 우리 일상이 되었다. 요새 정규직 일자리도 평균 10년을 버티기 힘들다고 하니 이도 안정적이라고 보기 어려워졌다. 정년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고, 몸뚱이를 고되게 굴려야만 근근이 먹고사는 임시 일감만 크게 늘고 있다.
플랫폼 공장의 탄생: 오늘날 신기술 혁신 트렌드나 주류 경제 흐름만 좇으면 사태의 본질을 잃기 쉽다. 삶의 풍요 이면에 가려진 노동 변화를 놓칠 수 있다. 과거 자동화 기술 장치들은 주로 노동이 수행되는 공장과 사무실 공간에 머물렀다. 그런데 이제 자동화는 공장 담벼락을 넘어 우리 사회의 기본 인프라가 되어 간다. 자본주의의 최근 목표가 ‘공장의 자동화’에서 ‘자동화 사회(automatic society)’로 옮겨 가고 있다. 경제 논리가 사회를 뒤덮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실체라고 한다면, 자동화 기술의 사회적 확장은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변수는 이를 가속화했다.
그런데 오늘날 자동화 기술의 사회적 확장은 ‘플랫폼’ 장치로 촉진된다. 플랫폼은 일종의 현대판 ‘사회적 공장’ 노릇을 한다. 이를 오래전 주형 공장에 비유해 보자. 플랫폼 공장에는 쇳물과 같은 역할의 빅데이터, 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용광로 같은 데이터센터, 데이터 쇳물을 굳혀 특정 주물을 생산하는 거푸집 역할을 하는 알고리즘 명령어 기계, 서로 다른 주물을 얻기 위해 거푸집들의 교체 공정을 자동화하려는 인공지능 등 핵심 기술들이 포진해 있다. 각자의 스마트폰 속 모바일 앱들은 플랫폼의 시민 데이터 수집과 처리를 돕는 맞춤형 창구가 된다. 플랫폼은 현실 경제와 사회의 모든 유무형 자원과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중개한다. 플랫폼은 바이러스와의 접촉 없는 쾌적한 온라인 소비를 돕고, 우리의 기술 감각과 문화 소비 양상을 크게 바꾸기도 한다. 플랫폼이 점점 자원, 데이터, 서비스의 경제ㆍ사회적 순환을 통제하고 우리의 사회적 관계를 변조하는 일종의 온라인 관제 센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