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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인생 수업

성지연 지음 | 인물과사상사


어른의 인생 수업

성지연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2월 / 336쪽 / 18,000원





마음의 우물을 길어 올리며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여정


풋풋한 시절 문학을 공부할 때 만난 책 가운데 하나가 김현의 『반고비 나그네 길에』(1993)다. ‘한뉘 나그네 길 반고비에 올바른 길 잃고 헤매이던 나…….’ 김현이 빌려온 단테의 『신곡』(1868) 첫 구절이다. 단테에게 반고비란 칠십 인생의 절반인 서른다섯이다. 이제 나 역시 백 세 인생의 오십을 지나고 있으니 ‘반고비 나그네 길’에 들어섰다는 느낌을 지울길 없다.

『신곡』과 『반고비 나그네 길에』를 읽었던 그 시절엔 빨리 반고비에 도달하고 싶었다. 상처투성이인 젊음이 싫었던 걸까. 뜨거웠던 시대가 무거웠던 걸까. 어서 나이가 들어 마음의 평화와 인생의 지혜를 갖고 싶었다. 그 후 삼십여 년이 빠르게 흘러갔다. 사회생활을 일찍 접고 거의 이십 년이 지났다. 딸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반고비를 맞은 지금 외려 마음은 스산해졌다. 내가 꿈꾼 지혜와 평화 대신 마음속에는 회의와 불안이 일었다. 사회로 돌아가야 할 터인데, 그 길은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았다. 회의의 시선과 불안의 마음은 그래서 수없는 질문을 던진다. 난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할까.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야 하는 걸까.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은 단테를 안내한 이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에게 끊임없이 물으며 지옥과 연옥을 여행해 천국의 입구에 도달한다. 그러면 나의 베르길리우스는 누구일까. 반고비 나그네 길에 내 곁을 지킨 베르길리우스는 책이었다. 사회생활을 접었어도 책은 계속 읽었다. 나는 책에게 묻고 또 듣는다. 그 첫 번째 안내자는 파커 J. 파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2000)다. 파머는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다. 이 책을 펼치면 “한밤중에 깨어나 ‘지금 내 삶이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일까’를 물으며 잠을 설쳐 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라는 헌사가 희망처럼 튀어나온다. 내게 거는 말 아닐까.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나에게 이보다 더 알맞은 출발은 없다.

파머는 젊은 시절 존재가 삶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한참 들어서는 삶이 존재를 이끈다는 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다. ‘당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기 전에,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귀 기울여라.’

나이 든 파머가 다시 해석한 ‘너의 삶이 말하게 하라’다. 파머의 삶은 모험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소명이 목사라고 확신해 신학대학에 들어갔지만 중퇴했다. 이어 사회학 박사 과정을 밟았지만 학계를 떠나 커뮤니티 조직가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퀘이커교 생활 및 학습 커뮤니티인 펜들힐로 옮겨 활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머는 펜들힐 근처 대학 캠퍼스로 산책을 나갔다가 대학 건물에서 예전에 만났던 전임 학장의 초상화를 보게 되었다. 그 학장은 파머를 학교 이사회에 임원으로 채용하려고 버클리로 찾아왔던 사람이었다.

파머는 그 순간 학장이 잔뜩 실망한 얼굴로 자기를 내려다보면서 “대체 당신은 뭘 하고 있는 거요? 왜 시간을 낭비합니까? 너무 늦기 전에 자기 길로 돌아가시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건물 밖으로 뛰쳐나간 파머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두려움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가 대학을 떠났던 것은 대학이 싫어서가 아니라 학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 두려움은 학계를 떠나 다른 길을 선택하게 했지만, 파머는 그 길 위에서 자신이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두려움을 만났다. 눈물 속에서 그는 자기 안에 놓인 어둠과 비로소 마주했다. 어둠으로의 추락의 다른 이름은 우울증이었다.

파머는 어떻게 어둠으로의 추락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는 어둠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할 수 있고 없는지와 고통스럽게 대면했다. 삶이 존재에게 말을 거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본성을 파악하고, 그 본성이 능력과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그 순간, 비로소 새로운 빛이 보였다고 파머는 말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처음부터 이런 것들을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상이 내게 허용한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길을 찾을 때, 이 깨달음은 그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기란 쉽지 않다. 삶이 말을 걸어올 때 거기에 귀를 기울여 필사적으로 찾아야 한다.

파머는 본성을 존중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려 할 때 길이 닫힌다고 말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자기의 본성 가능성과 한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길이 닫힐 때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 경험이 주는 가르침을 발견해야 한다고 파머는 조언한다. 또한 길이 열리면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인정하고 응답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우리가 닫힌 문 두드리기를 그만두고 돌아서기만 하면 뒤쪽에 있는 다른 문에 다다른다. 그러면 넓은 인생이 우리 영혼 앞에 활짝 열려 있다.’

파머에겐 닫혀 버린 문들 때문에 고민하던 바로 그 자리가 자신의 세계가 활짝 열리는 자리였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는 작지 않은 위안을 준다. 하지만 위안이 곧 용기가 되는 건 아니다. 어둠이 빛이 된다는 것에 확신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둠이 빛으로 가는 여정인지는 빛으로 나와 봐야 알 수 있다. 길이 닫힐 때 나머지 세상이 열리는지는 세상이 열려야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고난이 깊을수록 자책의 어둠은 짙어지고 그 깊은 어둠 속에서 길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파머는 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통해 파머가 보여 주는 소명으로의 여정은 내게 길을 비춘다. 파머가 답이 있는 곳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답이 있는 곳은 내게 오롯이 남는 단 한 자리, 나의 삶이다. 시간이 흐르니 그 삶은 이미 켜켜이 쌓인 지층이 되어 있다. 나는 아직 나의 소명을 찾지 못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한다. 위안이 파머의 몫이라면, 용기는 나의 몫이다. 파머의 충고대로 나의 삶에 귀를 기울인다. 너무 늦은 나이일까. 아니, 이제 겨우 반고비를 지나며 할 말은 아니다. 새로운 길을 나서려는 나는 스스로에게 용기를 선물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희망이 되어준 사랑



소중한 건 기억으로, 사소한 건 망각으로


리베카 솔닛은 페미니스트 작가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2014)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을 유명하게 만든 말이 ‘맨스플레인’이다. 그렇다고 이 말을 솔닛이 만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남성들이 여성을 뭔가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맨스플레인’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혔다. 또 다른 저작 『멀고도 가까운』(2013)은 결이 좀 다른 책이다. 고통스러웠던 한 시기를 통과해낸 솔닛의 자전적 에세이다. 이 책은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물으며 시작한다. 우리는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하고, 이야기꾼이 되어 자신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솔닛은 말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솔닛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었다. 어머니는 응급 상황이 닥치면 솔닛에게 전화했다. 솔닛은 다른 형제가 아니라 왜 자기에게만 연락하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솔닛이 딸이어서, 그리고 집에만 있어서라고 답했다. 아들에겐 좋은 것만 보이고 딸에겐 궂은일만 맡기려는, 그리고 작가로서의 딸을 인정하지 않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솔닛의 금발을 질투했다. 질투심에 자기보다 키가 작은 걸 지적하며 트집을 잡았다. 솔닛은 그럴 때마다 ‘백설공주’를 떠올렸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끝없는 비교와 시기심의 이야기였다. 솔닛은 어머니에게 당신의 동화를 선택하게 했다면, 『백설공주』가 아니라 『신데렐라』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의존했던 딸이었다. 활달한 언니와 예쁜 동생 사이에서 과소평가된 아이였다.

미국 서부를 여행하던 솔닛은 래프팅 안내인에게 같이 가겠느냐는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았다. 솔닛은 “네”라고 답했다. 그는 그 대답이 인생의 커다란 이정표가 되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두려움과 의무감으로 솔닛에게 “안 돼”를 가르쳤다. 솔닛은 모험에 대해 “네”라고 대답함으로써 내면화된 어머니로부터, 어머니의 이야기로부터 벗어났다. 어머니가 급속도로 악화되는 중 그는 아이슬란드에 초대받아 응했다. 그런데 뜻밖에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솔닛은 새로운 인생의 시련에 마주했다.

오십 대에 이르면 노년기를 보내는 부모님은 크고 작은 건강 문제와 부딪치고, 내 몸도 예전 같지 않다. 솔닛은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어머니를 돌봐야 했고 본인은 암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제 솔닛은 병과 고통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솔닛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이야기를 듣다 나병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병 환자들의 손과 발이 상하는 것은 환자 자신들이 그 부위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솔닛은 인간이 자기 몸을 하나의 전체로 인식하는 데 고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발견했다. 자아의 경계는 자신이 느끼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

나병 환자 이야기는 솔닛으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새롭게 생각하게 했다. “무감각이 자아의 경계를 축소시키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그 경계를 확장한다.” 솔닛의 투병 생활은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미숙아를 돌보는 친구, 암 투병을 막 시작한 친구가 들고 온 이야기들로 치료를 견뎠다. 암 투병을 하던 친구는 벽에 석고로 섬을 만들고, 그 섬들을 가늘고 빨간 실로 이은 지형도를 만들었다.

거미줄이나 지푸라기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이야기의 여주인공들, 끊어지지 않는 실 같은 이야기로 목숨을 이어간 『아라비안나이트』의 셰에라자드, 밤이면 낮 동안 짰던 수의를 풀어버리던 『오디세이』의 페넬로페, 솔닛은 이들이 실을 잣고 천을 푸는 과정을 통해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대상을 묶어내는 실이었고 그 실로 세상이라는 천이 직조되었다. 강력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서로 이어져있음을, 그렇게 이어져 패턴을 이루고 있음을 본다.’

솔닛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자신의 이야기를 잃어버렸다. 솔닛은 어머니의 내리막길을 함께하며 자신이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어머니와 관계가 좋지 않은 시절엔 어머니와 닮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이제 솔닛은 어머니가 자신의 취향, 관심사, 가치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자신의 이야기 꾸러미를 정리하면서 솔닛이 찾아낸 말은 고대 그리스어 ‘시그노미(sungnome)’다. ‘이해하다, 공감하다, 용서하다, 봐주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그노미를 내 방식으로 말하자면, 이해를 위해서는 감정이입이 필요하고, 감정이입을 위해서는 공감이 요구되며, 공감을 통해 용서가 이루어진다. 솔닛이 보기에 어머니는 자신의 욕망과 그 욕망 안의 모순을 모른 채 알 수 없는 힘에 휘둘렸던 여인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라고 솔닛은 회고한다. 이를 통해 비로소 솔닛은 ‘복수와 용서’라는 계산에서 벗어나고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를 바라본다.

『멀고도 가까운』의 앞부분에는 엄청난 살구 더미가 나온다. 어머니의 살구나무에서 딴 살구였다. 이 살구를 솔닛은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그는 상한 살구는 버리고, 실한 살구는 먹고, 나머지는 잼과 절임과 술을 만든다. 삶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살구에 비유한 것이라면, 이런 살구더미는 내 앞에도 산더미처럼 놓여 있다. 어떤 건 소중한 이야기고, 어떤 건 마음 아픈 이야기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다시 생각하면 뜻깊은 이야기도 있다. 이제 살구를 골라야 할 나이에 도달한 것 같다. 소중한 것은 기억으로, 사소한 것은 망각으로, 미처 눈에 띄지 않은 것은 그냥 보내야겠다. 우선 엄마와 나의 이야기부터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되는대로 살긴 이제 시간이 아까워서



다음에 오는 이들을 위하여


연극 평론가 안치운의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2003)은 여행기이자 산행기다. 이 책은 소소한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 주고 깊게 생각할 지점들을 선사한다. 자연과 사람과 사회와 역사에 대해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때로 그와 함께 풍경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그가 따끔하게 비판하는 세속의 부박함 쪽에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몇 년 전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이유도 모르게 팔이 잘 올라가지 않아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 말로는 완치가 어렵다고 했다. 물리 치료를 받다 어지간한 것 같아 그만두면 얼마 안 있어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의사는 운동을 권했다. 무조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나이와 함께 여기저기서 밀려왔다.

무엇이 좋을까. 달리기는 저질 체력 때문에 어렵고, 수영은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성가시고…. 그렇게 하나씩 지우다가 산행을 생각해 냈다. 내 마음속 한구석에 가족들과 함께 등반하던 어릴 적 즐거운 기억과 지리산을 종주했던 대학 시절 뿌듯한 기억이 있었다. 운동도 하고 자연을 즐길 수 있으니 지속 가능한 일거양득의 답이었다.

등산화부터 사 놓고 몇 주간 인터넷으로 산 구경만 하다가 어느 날 집을 나섰다. 청계산 입구에 도착해 놀란 건 엄청난 활기였다. 곳곳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모인 사람들은 소란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벌써 산행을 마친 이들은 굉음을 내는 기계로 흙을 털고 있었다. 무성한 활엽수와 어두운 침엽수 터널을 지나 진달래 능선에 올랐다. 젖은 옷이 금세 마를 만큼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능선이 높이를 더하니 오가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비로소 산에 들어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내 쪽으로 오던 사람이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 말 한마디에 오래전 읽은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이 떠올랐다. 길에서 만난 사람의 안부를 묻고 처음 보는 사람 집에서 잠을 청하던 안치운이 내겐 무척 낯설었다. 아파트 앞길에서, 지하철에서 처음 본 사람에게 인사를 하지는 않는다. 산에 들었다는 한 가지 이유로 낯선 사람이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느낌이 따뜻했다.

안치운은 번잡한 도시를 떠나 지도에 잘 나오지 않는 오지를 헤매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전했다. 어느 날 그는 길을 잃고 화전민의 집 아들 방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눈 그 집 아들은 아침에 이미 밭에 나가고 없었다. 안치운은 김수영 시집을 방에 두고 나왔다. 오죽 아끼는 책이면 먼 길을 떠나는 배낭에 꾸려 넣었을까. 나는 안치운의 따뜻한 마음을 떠올리며 낯선 사람에게 ‘수고하십니다’라고 화답했다.

책을 펼쳐 그 부분을 찾는다. 저자가 화전민 집에서 잔 것은 1981년 초였다. 글은 그로부터 이십 년 후에 쓰였다. 오랜만에 다시 찾았을 때 집도, 사람도 모두 사라졌다. 안치운은 “집의 흔적조차 없는 산속에서 기억마저 추상화처럼 그 실체를 줄일 대로 줄이는 것이 두려워… 주먹으로 눈시울을 가려야 했다.”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이라는 제목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1970년대 중반에 대학에 들어간 안치운은 “더러운 세상이 극복될 수 없다고 여겨질 때마다 우리는 배낭을 메고 산으로 들어갔다.”고 말한다. 시대와의 불화가 그를 산으로 이끌었다. 이십여 년이 흐른 1990년대 후반에도 그는 여전히 “병든 서울”을 떠난다고 말한다. 시대와의 불화는 여전해 보이고 옛길에 대한 그의 사랑도 여전하다.

안치운은 그리운 옛길을 걸으며 옛길을 살려 낸다. 강원도 인제에 이르렀을 때는 이곳이 옛 춘천도호부의 속현으로, 기린현에 속해 있었다는 걸 밝힌다. 발길은 갈터, 연가리골, 쇠나드리, 진동리로 이어진다. ‘신갈나무, 피나무, 물푸레나무, 함박꽃나무, 엘레지, 주목, 등대시호, 한계령풀, 점봉산 엉겅퀴, 조록싸리’ 같은 알아서 반갑고 몰라서 궁금한 이름들이 길을 따라 끝없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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