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로또
캐스린 페이지 하든 지음 | 에코리브르
유전자 로또
캐스린 페이지 하든 지음
에코리브르 / 2023년 2월 / 415쪽 / 23,000원
유전학 똑바로 이해하기
들어가며
교육받은 자가 전리품을 차지한다: 삶은 불공정하다. 수명부터가 그렇다. 설치류, 영장류 등 수많은 동물 종은 사회 계급에서 세력 순위(pecking order, 먹이를 쪼아 먹는 순서를 의미함)가 높을수록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산다. 예로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15년을 더 오래 살며, 가장 가난한 사람의 기대 수명은 수단과 파키스탄 사람의 기대 수명하고 비슷한 40살이다.
그런데 이런 소득 불평등은 교육 불평등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전에도 대학 학위가 없는 미국 백인의 수명은 실제로 짧아지고 있었다. 아편 유사제 약물의 과량 투여,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합병증, 자살 같은 “절망적 죽음”이 유행하면서 역사적으로 이례적인 수명 감소를 겪고 있으며, 이는 고소득 국가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하자 상황은 더 나빠졌다. 미국에서는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재택근무를 할 가능성이 더 높았고, 이에 따라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일시적으로 해고당할 위험이 더 적었다.
교육받은 사람은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사는 것과 더불어 돈도 더 많이 번다. 지난 40년 동안 미국인 상위 0.1%는 소득이 400% 넘게 증가했지만, 대학 학위가 없는 사람은 1960년대부터 실질 임금이 조금도 늘어나지 않았다. 참고로 경제학자는 소득과 교육 사이의 관계를 다룰 때 ‘숙련 프리미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대학 학위가 있는 ‘숙련’ 근로자의 임금에 대한, 대학 학위가 없는 ‘미숙련’ 근로자의 임금 비율을 말한다. 미국에선 1970년대부터 임금의 ‘숙련 프리미엄’ 크기가 증가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학사 학위를 받은 근로자의 임금이 고졸 근로자의 임금에 비해 1.7배 높았다.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는, 더 기본적인 ‘숙련’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상황은 훨씬 안 좋았다.
숙련 프리미엄은 근로자 개개인이 임금으로 벌어들이는 것과 관련이 있으나, 많은 사람은 일하지도 않으면서 가정을 꾸리는데, 여기서 나타나는 가족 구성원의 차이는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킨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끼리 결혼하고 짝을 이루며, 한 가정에 높은 소득 잠재력을 집중시킨다. 동시에 교육을 덜 받은 여성일수록 홀로 아이를 키우는 비율이나 합계 출산율이 높다.
이런 사회 불평등은 심리에 상처를 남긴다. 소득이 낮은 사람은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보다 걱정ㆍ스트레스ㆍ슬픔은 더 많이, 행복은 덜 느낀다. 그리고 이혼이나 두통같이 크고 작은 부정적인 사건 때문에 더욱 궁핍해진다. 심지어 주말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반면 삶의 만족도를 평가했을 때 “내 인생은 나에게 가능한 최고의 삶이다”라는 척도는 고소득자 사이에서마저 소득이 높을수록 증가했다.
두 가지 출생 로또: 사람들의 재산, 건강, 행복, 나아가 인생 그 자체는 천차만별이다. 과연 이런 불평등은 공정할까? 불평등이 공정한지 불공정한지를 논의할 때, 많은 미국인이 공유하고자 하는 (또는 최소한 립 서비스로 쓰는) 몇 안 되는 이데올로기의 사명은 ‘기회의 평등’이라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기회의 평등이란 출생 환경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만족스럽게 오랜 삶을 영위할 동등한 기회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불평등이 보여 주는 일부 통계는 처참하기 그지없다. 2018년 소득 분포 상위 25%에 속하는 가정의 청년들은 소득 분포 하위 25%에 속하는 가정의 청년들보다 대학을 졸업할 가능성이 거의 4배나 더 높았다.
그런데 성인의 불평등과 상관관계가 있는 출생의 우연이 하나 더 있다. 그건 태어날 때의 사회 환경이 아니라, 여러분이 가지고 태어난 유전자다. 사람마다 다르게 가지는 여러 DNA 변이를 기반으로 만든 교육 다유전자 지수(education polygenic index) 분포에서도 하위 끝과 상위 끝의 대학 졸업률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렇게 해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즉, ‘유전적’ 분포에서 다유전자 지수가 상위 25%에 속하는 집단은 하위 25%에 속하는 집단에 비해 대학 졸업 확률이 4배 가까이 높았다.
참고로 가족 소득 데이터는 상관관계만 보여 주는데도 불구하고 불평등 이해의 출발점으로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사람들은 사회 계급을 누가 더 많이 교육받고 누가 덜 교육받는지 구조화하는 제도의 힘으로 인식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 소득 데이터를 불공정함, 즉 끝낼 필요가 있는 불평등의 가장 확실한 증거로 여긴다. 하지만 다유전자 지수 데이터는 어떤가?
이 책에서는 유전자와 교육 결과의 관계가 사회의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실증적ㆍ도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내세울 것이다. 사람이 부유한 가족이나 가난한 가족에게서 태어나는 것처럼, 특정한 유전 변이 세트를 지니고 태어나는 것은 출생 로또의 결과다. 여러분이 부모님을 고를 수 없었던 것처럼, 부모님이 물려준 환경이나 유전자도 선택할 수 없다. 유전자 로또의 결과는 사회 계급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누가 더 많이 받고 누가 더 적게 받는지를 좌우하는 제도적 힘이다.
이 책의 목표: 사회 평등을 달성하려면 사람 능력에 대한 과학과 사람행동유전학이 무엇을 보여 주어야 할까?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 문제에 해답을 제시한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사회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유전학이 실제로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후반부에서는 사회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전학 지식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유전자 로또
생활비 로또: 유전자 로또라는 비유는 유성 생식을 할 때 유전자가 무작위로 유전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나, 사람들은 무작위적인 우연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싶어서 로또를 하지 않고, 돈을 벌고 싶어서 로또를 한다. 3명의 경제학자 대니얼 바스, 니컬러스 파파조지, 케빈 톰은 2020년 <정치 경제 저널>에 <유전적 자질과 부의 불평등>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들은 유전적 차이가 키 같은 신체적 특징에서 나타나는 개인 차이뿐만 아니라, 부에서 나타나는 개인 차이와도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부란 보유한 자산의 총가치에서 빚을 뺀 값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은퇴 시점에 부를 재는 건 꽤 흥미롭다. 그때쯤이면 한 사람의 부에는 승진, 승급, 해고, 주식 시장의 호황, 부동산 거품, 상속, 이혼 합의, 학자금 상환, 이혼 수당, 자녀 대학 등록금, 신용카드 지출, 의료비 등 수십 년의 역사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부는 모든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반영한다. 유전자 운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3명의 경제학자는 논문에서 특정 미국인 집단에 초점을 맞췄다. 그 집단은 모두 백인이고, 나이는 65살부터 75살까지이며, 성별이 다르고, 보수 받는 일을 하지 않거나 은퇴한 성인 한 명 또는 2명으로 이뤄진 가정 집단이다. 그런데 이렇게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집단 안에서도 일부 미국인은 다른 미국인보다 훨씬 부유하다. 하위 10%의 사람들은 평균 약 5만 1,000달러를 가지고 있는 데 비해, 상위 10%의 사람들은 130만 달러 넘게 보유하고 있었다.
3명의 경제학자는 한 사람의 “유전적 자질”을 측정하기 위해 다유전자 지수를 사용했다. 다유전자 지수란 어떤 인생 결과가 유전 변이와 얼마나 강하게 관련되어 있는지 추정해 놓은 선행 연구를 기반으로, 한 사람이 그런 유전 변이를 얼마큼 많이 갖는지 합산한 수치인데, 부에 관한 이 연구에서는 연구자들이 교육 정도와 관련 있다고 알려진 DNA 변이를 기반으로 만든 다유전자 지수에 초점을 맞추었고, 사람들이 이 다유전자 지수에 따라 부를 얼마큼 보유하는지 비교했다.
연구 결과, 70대 백인 가운데 다유전자 지수가 낮은 사람(하위 25%)은 높은 사람(상위 25%)보다 47만 5,000달러 더 적었다. 이 결과를 표준 편차로 표현해 보면, 다유전자 지수에서 표준 편차가 1만큼 큰 사람은 재산이 25% 정도 더 많았다. 다유전자 지수는 교육 정도와 관련된 DNA 변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데, 다유전자 지수가 높은 사람이 반드시 교육을 더 많이 받았다는 의미는 아니며,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더 돈을 많이 번다는 사실만으로 이 논문 결과를 설명하지 못한다. 똑같은 정도로 교육받은 사람들끼리 비교해도 다유전자 지수의 표준 편차가 1만큼 증가하면 재산은 8% 증가했다.
그러나 3명의 경제학자는 분석할 때 서로 다른 가족끼리 비교했을 뿐, 형제자매끼리는 비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유전자 운은 가족들 사이의 다른 차이와도 얽혀 있기 때문에 형제자매끼리의 비교는 중요하다. 그런데 유전자와 부의 관계가 과연 집단 계층화의 문제일까? 이를테면 다유전자 지수가 높은 사람들은 부모도 학력이 높을 가능성이 더 크다. 결과적으로 ‘운이 더 좋은’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은 사회 로또에도 당첨되어 어린 시절 더 유리한 환경에서 혜택을 받는다. 그러면서 더 많은 재산을 물려받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연구 하나만으로는 부의 불평등과 유전의 연관성에서 유전자가 정말로 중요한지 아닌지 확실히 알아낼 수 없다. 이 연구는 집단 계층화, 즉 서로 다른 사회 계급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생물학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차이만 파악한 것일 수 있다.
한편 컬럼비아 대학교의 댄 벨스키 교수가 진행한 또 다른 연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형제자매끼리의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벨스키와 동료들은 특히 사회 이동에 관심을 두었다. 사회 이동이란 사람들이 교육, 직업적 명성, 돈을 부모보다 더 갖거나 덜 갖는 정도로 정의된다. 이 연구에서 전 세계의 다섯 데이터 세트를 조사했는데, 그중 한 데이터 세트에는 형제자매가 무려 2,000쌍이나 있었다. 벨스키는 형제자매 중 다유전자 지수가 높은 사람, 즉 다른 형제자매보다 교육과 관련된 유전 변이를 더 많이 물려받아 유전자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은퇴할 때 더 부유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런 결과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다면, 그리고 유전자 파워볼이 서로 다른 다유전자 조합에서 시행된다면, 부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이런 결과는 수많은 과학적 궁금증을 유발한다. 어떻게 다유전자 지수를 계산할까? 왜 이런 연구는 미국 백인이나 북유럽인을 표본으로 수행했을까? 이런 결과는 인종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벌어진 부의 격차를 이해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답: 영향 없다.) 정말 유전자 때문에 사람들이 더 부유해진다고 할 수 있을까? (답: 그렇다.) 그리고 이런 결과는 수많은 도덕적ㆍ정치적 궁금증도 불러일으킨다. 부의 차이는 선천적이거나 필연적이란 의미일까? 평등을 추구하거나 부를 재분배하기 위해 고안된 사회 및 경제 정책들이 실패할 운명일까? 최초로 유전학과 소득을 연관시킨 쌍둥이 연구는 이런 식으로 해석되었다. 한스 아이센크는 <더 타임스>와 인터뷰하며 정부 기관들은 소득의 유전 가능성 연구 결과를 가지고 부의 재분배를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유전자 로또가 어떻게 인생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연구에도 허점과 빈틈이 있다. 이런 연구에서는 사실일 수 없는 가정을 단순화하고 불완전한 데이터와 씨름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유전자 로또에 관한 연구를 똑바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통계학자 조지 박스의 말마따나 “모든 모델이 틀리더라도 몇 개는 유용하다.” 우선 서로 다른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들이 인생을 서로 다르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그리고 달러와 센트로 측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신비로운 원리
빨간 머리 어린이와 가능한 대안 세계: 1972년 사회학자 샌디 젠크스는 유전적 효과가 나타내는 사회적 메커니즘에 관해 가장 오래 지속되는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예컨대 만약 국가가 빨간 머리 아이들을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한다면, 빨간 머리의 원인 유전자는 독해 점수를 낮춘다고 할 수 있다. ……빨간 머리 아이들의 무지함이 유전자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아마 대부분의 독자는 터무니없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유전 가능성을 추정하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젠크스가 옳았다. 유전 가능성 추정은 유전자가 표현형의 원인인지에 관한 정보를 준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유전자형과 표현형을 연결하는 메커니즘에 관한 정보를 주지 않으며, 알맞은 메커니즘은 직관적으로, ‘생물학적’ 과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젠크스의 실험은 유전학 논의에서 하나의 밈(meme)이 되었고, 그러면서 더 자세히 파헤쳐 볼 만한 3가지 개념, 즉 인과 사슬, 분석 수준, 가능한 대안 세계를 직관적으로 포착해 왔다. 나는 이런 점 때문에 이 사고 실험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빨간 머리 어린이 예시에서 유전자가 기다란 인과 사슬을 통해 표현형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이 예시에서 MCIR 유전자의 한 변이는 사람 머리카락을 빨갛게 만드는 페오멜라닌 합성에 관여한다. 그다음, 이런 표현형 형질은 다른 사람들에게 문화적ㆍ역사적으로 특이적인 사회적 편견으로 인식되고, 이런 편견은 특정 아이들이 학교 다니는 것을 금지하는 사회 정책으로 뿌리박힌다.
둘째, 이러한 인과 사슬은 여러 분석 수준에 걸쳐 존재할 수 있다. 과학 탐구를 조직하는 방법에는 과학자가 연구하는 현상을 레이어 케이크(layer cake)처럼 층층이 배열하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 각 층의 개체는 위에 있는 다음 층 개체의 일부분이다. 쿼크(quart) 같은 아원자(subatom, 亞原子) 입자는 원자의 일부이고, 각 개개인은 사회의 일부다. 젠크스의 빨간 머리 어린이 사고 실험에서 인과 사슬이 여러 분석 수준으로 위로 뻗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MCIR 유전자는 DNA 분자의 일부분이다. 이 유전자는 세포 안에서 페오멜라닌을 합성하는 단백질을 부호화한다. ‘빨간 머리 사람’은 개개인을 의미하고, 빨간 머리 사람이 학교 다니는 것을 금지하는 결정은 사회 현상이다.
젠크스가 “빨간 머리 아이들의 무지함이 유전자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독자는 터무니없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라고 주장했을 때, 그는 어떤 분석 수준으로 그 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해야 가장 좋은지 어느 정도 의견을 내비치고 있는 셈이다. 그의 견해로 봤을 때, 학교에 다니는 현상을 분자 수준으로 다루는 것은 비록 인과 사슬이 DNA 분자를 포함할지라도 터무니없는 것이다.
셋째, 젠크스의 예시에서는 유전자에서 무지함으로 이어지는 인과 사슬이 끊겨 있는 가능한 대안 세계가 존재한다. 빨간 머리 어린이 예시를 접하고 나면 머리카락 색깔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가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대안 사회를 떠올릴 수 있다. 이렇게 사회 정책이 변하면, 직접 아이들의 유전자나 유전자 생성물을 조작하지 않고도 유전자형과 표현형 사이의 인과 사슬이 끊긴다. 즉, 교육에서 유전적 효과를 개선하려고 DNA를 편집하거나, 생물학적 성질을 바꾸려고 아이들에게 약을 줄 필요가 없다.
빨간 머리 어린이 예시를 HTT(헌팅턴병 유전자)와 헌팅턴병 사이의 관계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첫째, HTT와 헌팅턴병 사이의 인과 사슬은 비교적 짧다. 즉,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어나는 사건을 설명하는 데 많은 단계가 필요하지 않다. 둘째, HTT와 헌팅턴병 사이의 인과 사슬은 모두 명백히 ‘생물학적’ 분석 수준에서 일어난다. 즉, 인과 사슬을 설명하려면 세포 안 분자의 작용을 설명하면 된다. 그리고 셋째, HTT가 헌팅턴병의 원인이 아닌 가능한 대안 세계를 떠올리기 어렵고, HTT에서 헌팅턴병까지의 사슬을 끊으려면 유전자 편집이나 약물 등으로 개인의 생물학적 성질을 직접 조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