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커의 방
진승태 지음 | 예미
버스커의 방
진승태 지음
예미 / 2023년 2월 / 440쪽 / 18,000원
PART 1 책꽂이
91일째의 태양도 보고 싶었어요혹시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 ? 2000)」나 「어바웃 어 보이(About A Boy ? 2002)」라는 영화를 아시는지? 그렇다면 이 영화들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닉 혼비(Nick Hornby ? 1957-)’의 이름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특히 나는 이 작가의 작품 중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A Long Way Down ? 2005)』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참고로 이 소설 속에선 더 이상 본인의 삶에서 옵션이라는 것을 취할 수가 없어 옥상에서 만난 네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실은 이 네 사람 모두에겐 마지막으로 남은 옵션이 하나씩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자살’이었다.
하지만 소설을 보다 보면 이내 이들이 지금 삶 앞에서 가장 큰 수준의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그들 각자의 이마에는 ‘사실은 나 제대로 살아 보고 싶어….’라고 쓰여 있는데 그들은 마지못해 옥상으로 올라온 것이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며 이 소설 속 인물들처럼 ‘자살’에 대해 진지하게 실행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오직 극소수의 종만이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바로 그 행위 말이다. 하지만 내가 ‘버스킹’을 일종의 옵션으로 선택했을 때 사실, 내게도 유일하게 남은 것은 이것뿐이라는 간절한 심정이었다는 것쯤은 밝혀 두고 차차 이 글을 써 나가고 싶다. 마치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홍대에서 첫 버스킹을 시작했을 당시 사실 내겐 돈 + 밥벌이 수단들에 현실적으로 큰 위기가 닥쳐온 상황이었다. 또한 모든 친구, 선후배들과의 연락 역시 거의 두절된 상태이기도 했다. 그러니 누군가 당시 이런 내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면 ‘루저(Loser)’ 엘리트 코스에 입학해 차근차근 학점을 따 나가기 시작했군, 이라고 평가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한 인간 혹은 성실한 사회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표면적인 표상들이 그렇게 하나둘 나라는 성인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던 그즈음, 무엇보다 날 힘들게 했던 것은 사실 이런 물리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다만 나 자신의 영혼이 풍전등화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날 통째로 사로잡았기 때문이지 싶다. 그러니까 평범한 사회인이라는 말의 함의에 함몰되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늘 자신해 왔던 나의 영혼이 휘청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쓰나미 앞에 버티고 선 여린 나무 한 그루처럼.
그러면서 여태껏 뉴스, 다큐멘터리에서 줄곧 보아 왔던 극빈층이나 억울한 소시민들의 사연이 재차 TV에서 흘러나오기라도 하면 난 이전과는 달리 심장이 너무나 두근거리기도 했다. 마치 내일의 내가 미리 써 내려간 일기장을 읽어 주는 듯했기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잘 알 것 같기도 하다. 우선 나 역시 여태껏, 사회 속에서 튼실한 하나의 톱니바퀴로 기능하며 사는 밥벌이의 고귀함을 충분히 이해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모습의 순조로운 연장만을 바라며 내가 생을 이어 왔다면 이런 급작스러운 불안감 역시 감내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이는 그런 식으로 발명된 불안이 아니었다. 이건 이 세상이라는 거대 장치 안의 태엽들이 내 생각과는 다르게 조금씩, 조금씩 거꾸로만 움직여 간다는 느낌의 불안이었다. 참고로 그 태엽들은 ‘자유로운 삶을 지탱함’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 불안은 어느새 곰탕처럼 변해 내 내면 안에서 같은 불안을 지속적으로 우려내고 또 우려냈다.
그리고 그런 불안이 최고조에 달하던 어느 날 밤. 나는 기타 하나만 덜렁 들고 거리로 나가 내 생에 첫 버스킹을 했다. 때는 2013년, 내가 홍대 인근에 살던 시기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당시 내 기타 하드케이스에는 4만 원에 가까운 현금이 들어 있었다(정확히는 38,500원이다). 그렇다. 나도 안다. 누구에게는 이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돈이라는 것을. 또 버스킹이 선사하는 감흥이라는 게 한때만 사람을 환히 밝혀 주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이 감흥들은 차가운 밤이 지나고 나면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져 버리는 휘발성이 무척이나 강했던 것이다. 마치 향수가 그러한 것처럼.
하지만 나에게는 훗날 이 경험이 흡사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속 주인공들이 제목과 같은 결정을 내리게 만든 것과 유사한 역할을 한 듯하다. 그러니까 이것들이 내 삶을 조금이나마 긍정하게 만든 일종의 마법 가루가 돼 준 것이다.
그 뒤로 난 버스킹 장비를 차곡차곡 보강해 나갔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한 버스킹이 어느덧 이어지고 또 이어져 현재 난 90일을 가뿐히 넘긴 10년 차 버스커가 됐다. 다시 말해 450회에 가까운 버스킹을 이미 잘 끝내 온 길거리 공연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여태껏 내가 길거리에서 관객으로 만난 사람들의 전체 수도 이제, 어림잡아 이만 명이 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내가 충동적으로 첫 버스킹을 나갔을 당시 불렀던 곡 중, 유독 사람들의 큰 호응을 산 노래가 한 곡 있다. 바로 영화 「원스(Once ? 2007)」에 나오는 「Falling Slowly ? 2006」라는 곡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버스커로서 격하게 공감하게 되는 대사가 하나 나오는데, 주인공이자 실제 뮤지션이기도 한 ‘글렌 한사드(Glen Hansard ? 1970-)’가 내뱉었던 말이다.
그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는 노래가 아니면 쉬이 버스커의 노래를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낮에는 무조건 일을 해야만 하고, 밤에만 아버지와 꾸려 가는 그 남루한 가게에서 나와 버스킹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얻는 해방감이 꽤 컸던 걸까? 물론 이는 이것이 연기라는 것을 다 알고 하는 얘기다. 하지만 어쩐지 그가 그 사실에 딱히 불만 없다는 듯 자조적이면서도 또 실제 경험에서 우러난 듯 위 대사를 내뱉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그래서 그 모습에 더 감정 이입이 됐나 보다.
사실 나 역시도 영화 속 ‘글렌 한사드’처럼 관객을 결코 구름 떼처럼 모으지는 못한다. 매번 그럴 수는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 정도는 알 수가 있다. 때론 누군가가 내 노래 하나로부터 받은, 그 느낌이라는 것이 결국 그 사람 인생에 있어 소소하게 빛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음을. 또 보이지 않는 그런 반짝반짝한 순간이 나도 모르게 생겨나면 그 영혼의 반응이 나에게도 일정 정도 축복을 내려 준다는 사실 말이다. 그것이 투명한 공기라는 막에 반사되어 나타나는 현상이기에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이제 난 그것을 확실히 느낄 수가 있다. 적어도 매번 버스킹을 나가면 한 주에 한 번이라도 꼭 그런 순간을 맞이한다. 그것을 이제 너무도 잘 알기에 나는 여태껏 또 여전히 내 기타 가방을 꼼꼼히 싼다.
PART 2 비디오 룸
라라랜드를 나와 르윈의 내면으로
인생은 한 통의 성냥갑과 닮았다.
중대하게 취급하면 바보 같다.
중대하게 취급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 1892-1927
『난쟁이 어릿광대의 말(侏儒の言葉 ? 1927)』 중에서나에게 있어 버스킹은 직업이 아니다. 그리고 애초에 수익을 얻으려고 시작한 행위 자체가 아니었다. 물론 이제는 이 부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순 없는 입장이겠지만.
그러나 그 어느 때고, 내 인생에서 버스킹을 통해 나의 생활을 영위했다고 말하면 이는 과장의 표현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겐 버스킹을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하지 않는다는 나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러분도 대략 예상할 수 있겠듯 이 정도 횟수의 버스킹으로 거둔 수입만으로는 결코 내 전체 생활비를 댈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내겐 여태껏 유지해 오고 있는 또 다른 경력의 영역이 어느 정도 확고히 누적돼 있기도 하다.
그래서 설사 미래에 내가 이 영역에서 내쳐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버스킹을 직업으로 삼지는 않을 생각이다. 또 다른 커리어의 문을 두드리면 두드렸지. 내가 그간 해 왔던 그 어떤 행위보다 노력, 재미, 보상의 삼박자가 이상적으로 결합된 것이 바로 이 버스킹이라고 생각함에도 그렇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난 현재까지 한국의 여느 평범한 성인들이 흔히들 성공의 바로미터라고 일컫는 여러 가치를 추구하는 삶하고는 그다지 연관성 없는 삶을 살아오기도 했다. 이런 버스킹을 떠나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런 것인데 아마 앞으로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게 분명하지 싶다.
이를 좀 더 풀어서 얘기하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난 여태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부자’가 되려고 노력해 본 적이 없었노라고. 자본의 논리로 세상이 회전하는 기본 구조가 만들어지는 이 현대 사회 속에서도 꽤 순진하게 말이다. 그런데 사실 어쩌면 난 애초에 능력 부족으로 쉽사리 이런 꿈을 꾸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그저, 가당치도 않게 느껴졌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공교롭게도 외국 영화를 보다 보면 창작을 하는 직업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지는 것이 오직 한국만의 사례는 아닌 것 같다. 음악이나 미술을 하면 밥 굶기 딱 좋다는 대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참고로 나는 현재까지 소위 말해 이렇게 큰 부가 가치를 내지 못하는 영역을 골라 달리는 듯한 인생 궤도를 그려 왔다(창작 영역 전체가 부가 가치를 내지 못한다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그러니 오해 마시길).
또 그랬기에 그간 내가 ‘인생’이라는 ‘성냥갑’ 안에 든 성냥들을 제대로 그어 이 어두운 삶의 행로를 잘 밝히며 걸어왔다고 말하기엔 많은 성냥들이 그저 사그라져 버린 느낌이 강하다. 예컨대 이 장의 서두를 장식한 문구의 비유들을 빌려 와 말하자면 그렇다는 뜻이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피어오른 불안감이 언젠가부터 나의 등 뒤에 딱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만 같다.
그런데 기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글 서두에 언급한 문장에서처럼 ‘인생 성냥갑’이라는 등식을 통해 결국, 이를 취급하는 인생의 태도를 단순 이분화하기에는 꽤 무리가 따르지 싶다. 사실상 내가 이 아포리즘을 버젓이 이 글 안에 끌어다 논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왜냐하면 그저 내 눈엔 세간의 많은 이들이 저 두 가지 태도 사이를 무리 없이 잘 오가며 사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기왕 인생을 ‘성냥갑’에 썩 훌륭하게 비유한 이 아포리즘을 글 안에 소환한 김에 이번만큼은 이를 아주 잘 써먹어 보려 한다. 일단 방금 전 발언과는 반대로 이 비유를 통해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갈라 볼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세계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가장 깊은 얘기들을 할 줄 아는 ‘코엔 형제(Joel Daniel Coen ? 1954- & Ethan Jesse Coen ? 1957-)’는 과연 어떤 부류에 넣는 게 좋을까?
아마도 이들은 ‘성냥갑’이라는 ‘인생’을 매우 진지하게 다루는 축에 넣는 게 맞지 싶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다는 것을 본인들이 너무 잘 알아서, 그런 자세와 적절하게 거리감을 둘 줄 아는 현명함도 동시에 갖춘 사람들 같다. 사정이 그러하기에 결국 이들이 평단이나 각종 시상식에서 여전히 가장 찬사받는 영화인들 중 하나로 자리매김까지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이들이 만든 영화 중에는 자신들의 이런 성향을 그대로 잘 녹여낸 것처럼 보이는 뚜렷한 사례들이 꽤 여럿 존재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영화들엔 그들의 현실과 무척 대비되는 공통점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코엔 형제’가 인생을 너무 진중하게 다룬 등장인물들을 꽤 자주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마치 자기 자신을 운명의 주인으로 굳게 믿으면 결국 그것에 대한 대가는 그것밖에 없다는 듯.
결국 이들은 영화 속에서 큰 곤경에 빠지거나 심지어 종말에까지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 글 서두에 내가 옮겨다 놓은 아포리즘 속 비유와도 매우 유사한 설정들이다. (만약 나의 이 선언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를 꼭 한 편만 꼽아야 한다면? 그럼 난 그 타이틀마저 완벽한 「시리어스 맨(A Serious Man ? 2009)」이라는 영화를 꼽겠다.)
그런데 ‘코엔 형제’가 이와는 달리 인생이라는 성냥갑을 진중하게 취급하지 않아 늘 삶이 외줄 타기 같은 인물의 얘기를 그리는 선택을 했다면? 과연 그 결과물은 어떨까. 그 사람의 인생만큼이나 위태위태한 몰이해를 드러내게 되진 않을까.
지금 소개하려는 영화 자체가 없었다면 나의 방금 질문은 완벽하게 ‘우문’이 되고 말았으리라. 하지만 ‘코엔 형제’는 나의 이런 의문에 완벽한 답이 돼줄 만한 「인사이드 르윈(Inside Llewyn Davis ? 2013)」이라는 영화를 이미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단지 표면적으로만 보면 그저 어떤 음악인과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작품이다.
자, 그런데 이즈음 되고 보니 여러분들에게 ‘인생=성냥갑’에 대한 비유가 좀 나른하게 느껴질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상당히 다른 결을 보여 주는 영화 몇 개를 더 이 글 안에 끌어들여 보겠다. 하지만 이 영화들 역시 인사이드 르윈 못지않게 음악과 예술을 추구하는 삶의 얘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저예산으로 제작됐지만 본국인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뒤늦게 흥행 열풍을 일으켜 화제가 된 어떤 영화가 있다. 게다가 대놓고 음악이 중심 소재이기도 한 이 영화는 바로 「위플래쉬(Whiplash ? 2014)」이다(참고로, 열풍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왜냐하면 「위플래쉬」는 북미 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한국 흥행 기록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음악이 주가 되는 이 영화를 보며 차마 선홍빛 피가 튀는 장면이 나올지 전혀 예상 못 했다는 나의 의견에, 이 영화의 감독인 ‘데이미언 셔젤(Damien Chazelle ? 1985-)’이 추후 밝히길, 그는 이 ‘음악 영화’를 마치 ‘전쟁 영화’처럼 느껴지게 찍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설명을 듣고 나니 갑자기 무릎이 탁 하고 쳐진다. 심지어 이젠 피는 물론 극 중 음대 교수 ‘플레쳐(J.K. 시몬스 ? 1955- 분)’의 과도한 구강 액션과 언어폭력 역시 감독의 이런 의도 아래 탄생했구나 싶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다.
그리고 이 장편 영화 데뷔작을 발표한 이후 이 감독은 아주 발 빠른 행보를 보인다. 대중과 평단 양쪽으로부터 전보다 훨씬 거대한 호응을 이끌어 내는 「라라랜드(La La Land ? 2016)」라는 비범한 영화를 단 2년 만에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뒤 이 ‘데이미언 셔젤’은 아카데미 감독상을 최연소 나이에 수상한 감독이 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쯤에서 앞서 언급한 성냥갑 비유를 재소환해 보련다. 그리고 그러고 나면 ‘데이미언 셔젤’ 역시나 ‘코엔 형제’ 못지않구나 싶다. 그러니까 그 역시도 ‘인생’이라는 ‘성냥갑’ 안에 든 몇 안 되는 ‘기회’라는 성냥을 무척이나 성공적으로 그어 낸 이로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단지 성냥 한두 개로 최대치의 불과 열까지 만들어 냈다. 결국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보면 그 역시도 인생을 중대하게 취급함과 동시에 현명함도 함께 보유한 이른바, 난사람 중에 하나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좀 더 깊숙이 들어가서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인생까지 찬찬히 한번 살펴보면 어떨까. 마침 방금 얘기를 꺼냈으니 「라라랜드」의 주인공들이 좋을 것 같다. 바로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 1980- 분)’과 ‘미아(엠마 스톤 ? 1988- 분)’ 말이다. 과연 이 둘은 인생이라는 성냥갑을 어떻게 다룬 인물들로 바라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