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인문학 산책
캐롤라인 타가트 지음 | 프로제
그리스 로마 인문학 산책
캐롤라인 타가트 지음
프로제 / 2020년 10월 / 264쪽 / 17,800원
서양 문화의 뿌리, 신화 이야기
신들의 가계도처음에는 카오스라고 알려진 무(無)의 상태가 있었다. 그로부터 가이아(Gaea) 또는 게(Ge, 지구)가 태어났다. 그녀는 아들 우라노스(Uranus)를 낳았으며, 그는 이후 그녀가 낳은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가이아의 아이들은 호머가 신들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오케아노스(Oceanus)와 테티스(Tethys)를 포함한 거대한 타이탄(Titan, 거인족)의 무리였다. 하지만 헤시오도스가 시사한 바에 따르면 우라노스는 또 다른 타이탄인 아들 크로노스(Cronus)에게 타도되었고, 크로노스 역시 자신의 아들 제우스(Zeus)에게 타도되었다.
일부 이야기에서는 제우스가 그의 형제인 포세이돈(Poseidon)과 하데스(Hades)와 함께 제비를 뽑았는데 결국 제우스가 신들의 왕이 되어 그의 여자 형제인 헤라(Hera)와 결혼했다고 한다. 그들은 올림포스산에서 살았고, 그곳은 제우스와 형제들의 거주지였기에 주요 신들은 그 근처에 살고 싶어 했다. 전통적으로 12명의 ‘올림피아’ 신이 항상 있었지만 늘 동일한 12명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적절한 시기에 로마인들은 그들을 받아들였고 다음과 같이 괄호 안에 표시된 새로운 라틴어 이름을 그들에게 부여했다.
하늘의 군주 제우스(유피테르(Jupiter) 또는 조(Jove))는 자신을 불쾌하게 하는 사람에게 벼락을 던지고 움직이는 어떤 것이든 성관계를 갖기 위해 자신을 각양각색의 형태로 바꾸는 성향이 있다. 그는 백조로 바뀌어 트로이의 레다를 유혹해 헬렌(Helen)을 낳았고, 황소로 변하여 카스토르(Castor)와 폴룩스(Pollux) 쌍둥이(지금은 쌍둥이자리 별자리로 더 잘 알려져 있음)를 유혹했다. 또한 크레타의 왕 미노스를 낳은 유로파(Europa)도 유혹했으며, 황금비로 변해서 다나에(Danae)에게 접근하여 페르세우스(Perseus)를 낳았다. 제우스는 세멜레(Semele)와도 관계를 가져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Dionysus, 바쿠스(Bacchus))를 낳았고, 마이아(Maia)와 더불어 많은 이들과 관계를 가졌다. 헤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합법적인 자식으로는 헤파이스토스(Hephaestus)와 아레스(Ares) 그리고 아테나(Athena)가 있다. 아테나는 무장한 모습을 하고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다. 적어도 제우스가 심한 두통의 밤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와 그다음 날 헤라에게 진통제를 찾았을 것이다.
포세이돈(넵투누스, Neptune)은 제비뽑기에서 2위에 올라 바다의 신이 되었다. 성격이 급하기로 유명한 그는 땅을 흔들 수 있는 삼지창을 사용하여 누군가가 그에게 불쾌감을 주면 혼란을 초래하곤 했다. 따라서 포세이돈을 기쁘게 하는 것은 배에 발을 딛고 사는 이들에게는 필수적인 일이었으며 이 괴팍한 신을 달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여겼다. 적도를 건너는 배에 여전히 등장하고 있는 수염을 기른 바다의 신 넵투누스의 모습은 훨씬 쾌활한 편에 속한다.
플루토(Pluto) 또는 하데스(디스, Dis)는 제비뽑기로 별로 원치 않았던 저승의 신이 되었다(저승 자체도 하데스라고 불린다). 그는 옥수수와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 케레스(Ceres))의 딸인 페르세포네(Persephone, 프로세르피나(Proserpina))와 사랑에 빠졌고 함께 저승에 살기 위해 그녀를 납치했다. 데메테르는 딸을 찾느라 농사 업무를 소홀히 했으며 땅은 곧 불모지가 되었다. 결국, 플루토는 페르세포네가 1년 중 6개월은 저승에서 보내고 남은 6개월 동안은 지상에서 보내는 데 합의했다. 그 결과 딸이 지상에 없는 동안에는 데메테르가 슬픔에 잠겨서 가을과 겨울이 생겨났지만 다른 두 계절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플루토는 저승의 왕이었지만 악마는 아니었다. 고전 신화에는 타인을 막 대하는 많은 나쁜 놈들이 있지만, 그는 사탄이나 루시퍼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그렇긴 하지만 사람들은 분명 저승에서 고통을 겪었다. 예를 들어 탄탈로스(Tantalus)는 영원한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타들어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물을 마시러 몸을 굽힐 때마다 물은 멀어져 갔고, 그의 머리 위에 있는 과일은 그를 애태우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이 유한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천국이라 불리는 엘리시움 낙원(Elysian Field)은 저승에도 있었다.
찬란한 문명의 시작, 고대 그리스 역사
민주주의의 탄생시간이 흐를수록 귀족의 지배력은 줄어들었고, 그리스인들이 참주(tyrant)라고 부르는 개별적 군주 스타일의 통치자로 대체되고 있었다. 권력은 그 지위를 감당하지 못할 자격 미달의 아들에게로 계속하여 계승되었다. 동시에 무역의 증가로 소수의 부유한 상인들이 생겨났지만, 그 상인들은 상류층과의 교류 관계에 미달하여 공직에서는 실격되었다.
상황이 불안해 보이는가?: 글쎄,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아테네인들은 할 수만 있다면 혁명보다는 법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성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때 가장 먼저 등장한 유명한 인물은 드라코(Draco)였다. 드라코는 기원전 6세기경 사형 제도를 폭넓게 적용해 아주 엄격한 ‘드라콘 법(draconian Laws)’을 만든 아테네의 정치가 이름이기도 하다. 원래 드라코는 더는 사사로운 복수에 의해 범죄가 처벌되지 않도록 아테네의 법을 개정하였으며, 근대적인 치안 판사들의 재판소를 세워 주었다. 드라코는 모순이 아닌 그 이상으로 사형 제도를 자유롭게 해석했다. 이 말은 즉 여러분이 거의 웬만한 일에 대해 처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0년 뒤 또 다른 중요한 정치인인 솔론(Solon)이 나서서 드라코의 거의 모든 법을 폐지했다.
역사에서 솔론은 ‘입법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어쨌든 일반적으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의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아테네 사람들의 자유였다. 솔론이 B.C. 594년에 치안 판사가 되기 전까지 아테네 시민은 자신에게 빚진 다른 시민을 노예로 만들 수 있었다. 솔론은 이것을 불법화했고, 관련된 개인의 지위나 재산에 상관없이 모든 시민이 정의를 추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처음으로 계급보다 부가 공직의 자격 요건이 되었다. 드라코와 솔론은 흥미로운 통찰력으로 아테네 귀족의 사고방식에 대하여 내부 시스템을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법률가들이 신성한 영감(계시)을 받았다는 생각에서 확실히 탈피하였다. 참주가 원하는 대답을 주기 위해 델포이의 오라클 사제는 한때 뇌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또한 클레이스테네스(Cleisthenes)라고 불리는 한 정치가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닦았다.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당시에(B.C. 508년)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에서 높이 평가받는 원로 정치인이었으며, 그는 한동안 아테네에 머물면서 일을 했다. 그리고 그는 세계 정치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연설을 했다. 그는 공개 석상에서 ‘국민에게 권력을 부여하자.’라고 말했었다.
솔론의 헌법이 예전 같지 않았고, 아테네인들은 귀족적이고 전제적인 통치 방식을 영원히 없앨 필요가 있었다. 클레이스테네스가 도입한 것은 가족 집단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행정 교구라고 부르는 것에 기반을 둔 제도였다. 그는 교구를 가리켜 ‘대중’이라는 뜻을 가진 데모(demos)에서 파생된 단어인 ‘데메스(demes)’라고 불렀다. 30세 이상의 모든 남성 시민은 그가 속한 지역 교구에 등록할 수 있었다. 기존에 존재하고 있었던 상원을 보완하기 위해 솔론은 ‘하원’ 또는 평의회를 만들었는데, 때때로 더 큰 공공 의회였던 에클레시아(ecclesia)에서 토론을 열기도 했다.
클레이스테네스 덕분에 의회 가입은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결과 30세 이상의 모든 남성 시민은 모든 주요 에클레시아에서 발언권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산이 얼마이고 아버지가 누구인지 간에 상관없이 각 사람은 1개의 투표권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당신이 여자, 외국인, 노예라면 아무 소용이 없었겠지만,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경이적인 일이었다.
또한, 클레이스테네스는 사람들이 체제를 망치는 것을 막는 방법, 즉 도편 추방법(오스트라시즘)이라고 불리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는 도기 파편(오스트라콘)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유권자들이 국가에 해를 끼칠 위험한 인물의 이름을 기입할 수 있는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말한다. 매년 에클레시아에 참석한 사람들은 도편 추방이 필요한 사람에 관하여 투표를 하게 된다. 투표 결과 추방에 찬성한 표가 6,000표 이상이면, 그 인물은 10년 동안 추방되었다.
번영의 시대를 열었던, 고대 로마 역사
로물루스와 레무스알바롱가라고 불리는 고대 이탈리아 도시의 왕 누미토르에게는 레아 실비아라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전쟁의 신 아레스에 의해 임신을 하여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누미토르 왕의 경쟁자였던 동생 아물리우스가 이 아기들을 티베르 강에 던져 버렸다. 기적적으로 해변으로 밀려온 아기들을 양치기가 발견하여 길렀다.
이후 두 형제는 자신들이 목동에게 처음 발견되었던 장소에 도시를 건설하기로 뜻을 모았다. 하지만 누가 그 일을 지휘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그래서 두 형제는 각자가 선택한 지점에서 하늘을 나는 새들을 통해 신들의 뜻을 묻기로 하였다. 레무스는 아벤티누스 언덕의 전망 좋은 지점에서 여섯 마리의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보았고, 로물루스는 팔라티누스 언덕에서 열두 마리의 독수리를 보았다.
신들의 선택을 받은 로물루스는 즉시 도시의 경계를 정하고 흙으로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이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난 레무스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성벽을 훌쩍 뛰어넘으며 이렇게 빈약한 벽으로 어떻게 도시를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로물루스를 비웃었다. 사실 건설업자들은 이제 막 일을 시작한 데다 다른 일을 함께 떠맡은 상태여서 일이 지연되었을 뿐이었다. 로물루스는 레무스를 죽이고 건축을 계속 진행했다. 로물루스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아내를 제공하기 위해 이웃 부족으로부터 여러 여자를 데리고 왔으며 (루브르에 있는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The Rape of the Sabines)는 푸생(Poussin)의 유명한 그림이다), 로마의 초대 왕으로 자리를 잡았다. 도시 성립의 전통적인 날짜는 B.C. 753년이며, 로마의 날짜는 ‘도시의 성립으로부터’라는 의미를 지닌 auc 또는 로마 창건 기원(ab urbe condita)을 기초로 계산하였다.
휴머니즘의 근본을 담은 고전 문학
그리스의 문학인들그리스 문학에서 우리가 모두 들어 본 사람은 바로 호머이다. 호머 이후로 몇백 년 동안 공백이 있다가 아테네에서 문학은 황금시대를 맞이한다. 호머(약 B.C. 8세기)는 현존하는 발라드를 바탕으로 하여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Odyssey)>라는 두 개의 위대한 서사시를 썼다. <일리아드>의 뒷이야기에 따르면 헬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고 많은 그리스 귀족들이 그녀를 쫓아다녔다.
그녀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와 결혼했지만, 거절당했던 모든 구혼자들은 그녀가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하면 그녀를 구하러 올 것이라고 약속했다(결혼하기 전 서약서를 만든다거나, 결혼 생활에 대한 일종의 계약이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났을까? 그렇다. 그녀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도망쳤다. 그리고 아킬레우스, 아가멤논, 오디세우스(라틴어로 율리시스), 아이아스(Ajax) 등의 그리스 전사들은 모두 그녀를 되찾기 위해 10년 동안 트로이 외곽에 발 벗고 진을 쳤다.
이 모든 것은 <일리아드>가 시작되기 전에 일어난다. <일리아드>는 고대 트로이의 라틴어 이름인 일리움(iliam) 또는 일리온(illion)에서 유래되었다. <일리아드>에서 주로 다루는 사건은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게 자신의 노예 소녀를 내놓아야 했기 때문에 화가 난 대목이다. 8권에서 화가 난 그는 아홉 번째 책에서 전쟁에 신물이 나서 손을 떼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전해진다. 아킬레우스는 위대한 전사였지만 전쟁은 그리스인들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었다.
아킬레우스의 단짝 친구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대신 싸우러 나갔지만, 트로이 왕자 헥토르(Hector)에게 즉사 당한다. 마침내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막사에서 뛰쳐나와 헥토르를 죽이고 전투의 물살을 돌린다. <일리아드>에는 트로이 목마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 이야기는 <오디세이>에서 등장하기는 하지만, 버질의 <아이네이스>가 나온 약 천 년 후에야 그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 듣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오랜 시간이 지나서 마침내 그리스인들은 승리하였고, 본국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의 귀국은 10년이 더 걸렸는데, 그중 7년은 칼립소(Calypso) 여신과 시시덕거리는 데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 대목에서부터 <오디세이>가 시작된다. 페넬로페는 그녀의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이유로 그녀에게 재혼을 촉구하는 구혼자들에 의해 둘러싸였다. 페넬로페는 낮 동안 수의를 짜고, 밤에는 몰래 그 옷감을 풀어 나갔다. 그리고 한 조각을 다 짜면 그중에서 한 명을 남편으로 선택하겠다고 말하면서 결정을 미루고 있다.
제우스는 칼립소에게 오디세우스를 풀어 줄 것을 명령한다. 하지만 이후 여행에서 오디세우스는 난파를 당한다. 그가 포세이돈의 아들 키클롭스 폴리페무스의 눈을 멀게 하여 포세이돈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질이 포악한 외눈박이 거인족 괴물인 폴리페무스는 오디세우스의 일행을 잡아 놓고 한 명씩 잡아먹었었다. 폴리페무스는 나중에 오디세우스에 의해 한쪽 눈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오디세우스는 나우시카라는 공주에 의해 구조되었다. 그는 나우시카의 아버지 궁전에서 자신의 여행 행적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로토파고이족의 땅과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그는 한쪽 눈만 가지고 있으며, 지금의 첨단 기술인 윔블던 심판 시스템은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의 땅을 방문한 것, 오디세우스의 동료들을 돼지로 만든 마녀 키르케와의 만남, 그리고 저승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죽었던 많은 동료를 만났으며, 스칼라와 카리브디스와의 투쟁 등이 그의 이야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 구혼자들이 그의 음식을 다 먹어 치우려 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다음 날 페넬로페는 남편이 될 사람을 선택하게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가 구혼자들을 대상으로 한 활쏘기 시합에서 우승하고, 구혼자들을 모두 죽였으며,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다.
기발한 수학과 과학, 경이로운 철학
수학과 과학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6세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빗변의 제곱이 나머지 두 변의 길이의 제곱 합과 같다)로 그를 기억한다. 사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아마도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개발되었을 것인데, 내 참고서에 따르면 그는 도덕적 금욕과 정화를 강조하고, 무엇보다도 삶의 방식을 옹호하는 철학자였다.
유클리드(Euclid, B.C. 4-3세기): 그는 기하학 발명으로 인정을 받았다. 실제로 역작인 <원론(Elements)>들은 이전 시대 수학자들의 작업을 정리해 주었고, 그들이 시작한 명제의 증명을 공식화했다. 만일 여러분이 어린 시절 삼각형 속에 실제로 180도가 있다는 사실을 마지막에 ‘QED(증명 끝)’를 쓰고 증명했다면, 유클리드는 비난받아야 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