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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

오미야 오사무 지음 | 사람과나무사이


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

오미야 오사무 지음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12월 / 349쪽 / 18,500원





우주의 탄생 _ 모든 것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에너지가 고도로 응축된, 크기가 제로에 가까운 미세한 점 상태였던 것이 지름 1센티미터 정도의 ‘공간’으로 순식간에 팽창했다. 지금으로부터 138억 년 전 어느 날의 일이다. 이 사건을 우리는 ‘인플레이션(Inflation)’ 혹은 ‘급팽창’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좁은 ‘공간’이 흔히 ‘빅뱅’이라고 하는 대폭발을 일으킨 것은 그 직후의 일이다.

대폭발, 즉 빅뱅으로 인해 에너지가 변화를 일으키고 질량을 가진 소립자가 탄생했다. 에너지와 질량은 등가이므로 에너지가 물질로 변화한 것이다. 이 물질은 엄청난 고밀도 상태였으나 급속도로 팽창해 갔다. 이후 3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소립자에게 수소 원자와 헬륨 원자의 원자핵이 생겨났다. 놀랍게도,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원자의 재료가 만들어진 셈이다.

원자의 중심 부분을 원자핵이라고 하는데,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 등의 입자로 구성돼 있고, 원자핵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다. 이렇게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로 이루어져 있는 원자는 구조 면에서 태양계와 비슷하다. 즉, 지구 등의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돌 듯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도는 메커니즘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빅뱅 이후 얼마 동안은 너무 뜨거운 탓에 원자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말하자면, 원자핵과 전자가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 채 뒤죽박죽 섞여 있는 잡탕 같은 상태였다고 할까. 그러다가 우주의 온도가 섭씨 3,000도까지 내려가자 원자핵이 전자를 끌어당겨 원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는 최초의 대폭발, 즉 빅뱅이 일어난 지 37만 년 후의 일이다.

우주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원소는 무엇일까? 바로 수소(H) 원자다. 수소 원자는 우리 인간 몸속에 있는 ‘물(H20)’의 주요 구성 요소다. 그리고 항성이 탄생했는데, 항성 내부에서 원자핵과 원자핵이 충돌하는 핵융합이 일어나 다양한 원자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원자의 종류, 즉 원소는 원자핵 안에 존재하는 양성자 수에 따라 결정된다. 양성자가 1개이면 수소(H), 2개이면 헬륨(He)…… 26개이면 철(Fe)인 식이다.

이렇게 항성 내부의 핵융합을 통해 철 등의 원소가 만들어졌고 마지막으로 항성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면서 철보다 무거운 원소도 만들어졌다(최근에는 중성자성의 합체를 통해 생성되었다는 설도 유력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다양한 원소의 원자가 우주로 퍼져 나갔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도 모두 별의 조각에서 유래한 것이다.

46억 년 전, 지구의 탄생 - 생명 진화로 생물의 대량 절멸을 극복하다
고대 생물에게 산소는 독가스였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지구는 우주에서 철과 돌 등이 모여들어 생성되었다. 46억 년 전의 일이다. 그로부터 7억 년이 지난 39억 년 전, 거대 운석이 여러 개 충돌하면서 지구 표면에 금, 백금 등의 무거운 원소를 200억 톤가량 흩뿌렸다. 말하자면 사람들의 욕망을 강하게 자극하는 금과 백금은 머나먼 우주 어딘가에서 지구로 날아온 신비로운 물질인 셈이다.

이윽고 온도가 내려간 지구에 수많은 운석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운석에 들어 있는 유기화합물(생명의 근원이 되는 탄소와 수소를 중심으로 산소, 질소, 인, 황 등을 포함한 물질)이 지구에 씨앗처럼 퍼졌다. 이후 유기화합물이 반응해 아미노산을 만들어 냈고, 아미노산이 서로 연결되어 단백질 분자가 생겨났다. 그리고 단백질 분자가 모여 역동적인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마침내 생명이 탄생했다.

원시적인 세균류가 지구에 등장한 것은 35억 년 전의 일이다. 그 후 27억 년 전쯤 시아노박테리아(남세균)가 출현해 광합성을 시작하자 바닷속에 산소가 방출되었다. 철은 산소에 의해 부식되어 철 이온으로 변하고, 그것이 가라앉아 철광석의 광상(광물이 땅속에 대량으로 묻혀 있는 지대)을 형성했다. 이온은 전기를 띤 입자로, 원자나 분자에서 만들어지는데, 철 원자(Fe)가 전자를 잃으면 Fe2+나 Fe3+가 되는데, 이를 ‘철 이온’이라고 부른다.

바닷속에서 포화 상태가 되어 방출된 산소가 대기를 가득 채우자 생물 대다수가 죽음을 맞이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고대 생물에게 산소는 독성 가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독이었던 산소를 활용해 에너지를 얻는 생물이 탄생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에서 산소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선사시대



140만 년 전 무렵, 불 이용 - 가열 조리가 인류를 인류답게 만들었다
구운 고기 섭취가 뇌를 크게 진화시켰다: 인간은 어떻게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했을까? 이 놀라운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두 가지, ‘도구’와 ‘불’의 사용이다. 그 중에서도 ‘불’의 역할은 매우 컸다. 우선,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인류는 추운 지역에서도 생활할 수 있게 되었으며 사나운 포식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가열 조리’야말로 인류가 가진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라는 주장도 있다. 불에 구운 매머드 고기부터 ‘미슐랭 별 셋’ 최고급 레스토랑의 육류 요리에 이르기까지, 인류를 인류답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가열한 요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열 조리’가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가열 조리를 함으로써 인류는 식중독 등의 질병으로부터 안전해져 음식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고기나 감자, 지방이 많은 식재료를 가열하면 칼로리가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고기를 구워서 먹으면 영양 측면에서 큰 이점이 있는데, 풍부한 영양을 바탕으로 뇌의 진화가 촉진된다는 것이다.

인류의 선조가 최초로 불을 발견했을 때 위험하게만 여겨 바로 꺼 버린 후 불을 다시 피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여전히 원숭이인 채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원전 8000년 전 무렵, 농경 시작 - 마을ㆍ도시ㆍ국가와 체계적인 권력 구조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다
씨앗 한 톨이 1년 만에 수백 배가 되는 이치를 터득한 호모사피엔스: 드디어 인류는 ‘농경’을 시작한다. 신석기 시대(기원전 9,000년~기원전 4,000년)의 일이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낀 비옥한 토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문명 발상지 중 하나다. 당대인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초승달 지대에서 바람에 날아가지 않는 알곡을 맺는 밀을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좀 더 시간이 지나 중국에서는 쌀을, 멕시코에서는 옥수수를 야생종에서 재배종으로 바꿔 나갔다.

농경의 본질은 알곡을 먹어 치우지 않고 땅에 뿌리거나 심은 다음 기다리면 수백 배 결실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지혜로운 누군가가 깨닫고 실행에 옮겼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1년을 기다리면 씨앗 한 톨이 수백 배로 늘어나는 희망적인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기적을 창출해 내는 시간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 지성이 자리한다.

마을ㆍ도시ㆍ국가 그리고 왕과 지배 체제를 탄생시킨 농경:
기후가 안정적인 단계로 접어들자 세계 각지에서 농경이 시작되었다. 농경이 자리 잡으면서 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작물을 생산한 결과 효율이 높아지고 생산량이 늘어나자 사회 전반적으로 급속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곳저곳에 마을이 들어서고 도시가 건설되었다.

사회가 발전하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역할도 점차 세분화되고 계층화되어 갔다. 즉, 달력을 관장하는 신관, 수확과 운반, 저장을 기록하는 서기관, 그리고 최고 권력을 가진 왕이 등장했다. 그와 함께 여유분 곡물을 배급해 노예를 먹여 살리면서 농경을 발전시키고 생산량 증대를 이룬 뒤 전쟁을 일으켜 노예를 늘려 나가는 일련의 메커니즘이 생겨났다. 이런 식으로 체계적인 권력 구조가 만들어졌고, 왕은 신의 이름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신권 정치를 했다.



고대 문명



기원전 2500년 무렵, 쿠푸 왕의 피라미드 - 화학 지식을 이용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물을 탄생시킨 고대 이집트인
돌 절단기 등의 도구가 없던 4,500년 전 이집트인은 피라미드 제작용 석재를 어떻게 잘랐을까?: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년 무렵 세워졌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500년도 더 전에 건설된 셈이다. 그즈음 세워진 기자의 피라미드 3기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138기의 피라미드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쿠푸(재위 2,589~2,566 B.C.) 왕의 피라미드다(높이 약 139미터, 각 밑변의 길이 약 230미터에 평균 무게 2.6톤의 돌 230만 개로 이루어진 엄청난 규모다). 이 피라미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간직하고 있다. 심지어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다소 황당무계한 설까지 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구조가 너무도 정교하고 완벽한 데다 600만 톤의 엄청난 무게를 지닌 채 무려 5,000년 가까운 시간을 버텨 낸 위대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 먼 옛날, 오늘날처럼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약도, 포클레인도, 돌 절단기도 없던 시대에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석재를 어떻게 잘랐을까? 과연 어떻게 그 거대한 석재를 원하는 크기로 자를 수 있었을까? 학자들이 오랜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밝혀낸 비밀은 다음과 같다.

먼저 송곳으로 거대한 석재의 잘라 내고자 하는 곳에 일직선으로 많은 구멍을 뚫는다. 그런 다음 그 구멍에 나무 막대기를 꽂고 물을 붓는다. 그 상태로 한동안 두면 나무 막대기가 부풀어 오르고 팽창하면서 그 구멍을 따라 석재를 갈라놓는다. 이를 화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바짝 마른 나무 막대기 내부에 남아 있는 여러 가지 성분의 분자를 희석하고자 물이 표피에서 내부로 흘러 들어가는데 이러한 현상을 ‘침투’라고 한다. 이때 발생하는 물이 흘러 들어가려고 하는 압력, 즉 침투압이 매우 크기 때문에 단단한 석재도 쪼갤 수 있는 것이다. 단, 나무 막대기 수가 충분히 많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또한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데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에게는 날마다 맥주가 배급되었는데, 현대인처럼 힘든 일과가 끝난 뒤 서로 맥주잔을 부딪치며 회포를 풀었다. 과장처럼 여겨질 수 있겠지만,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 맥주는 피라미드 건설의 구심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5,000년의 세월이 지나도 인간의 본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지중해 세계의 형성



기원전 500년 무렵, 철의 주물 제작 - 철제 농기구ㆍ무기로 국력을 강화해 통일국가를 건설하다
춘추시대에 철기 기술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진시황제의 전국 통일도 없었다?: 고대 세계에서 최초로 제철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전쟁에 이용한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 바로 히타이트다. 그러나 당시의 제철 기술은 그리 뛰어난 수준이 못 되었다. 높은 온도를 만들 수 없던 탓에 저온 용광로에서 오랫동안 스펀지 상태의 철을 달구고 두들겨 탄소 등을 연소시키면서 형태를 바꿔 나가는 번거로운 작업을 해야만 했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에 탄소와 규소가 다량 함유된 주철을 용광로에서 얻은 뒤 그것을 주형에 부어서 철기를 양산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이것을 ‘주조’라고 한다. 이는 기원전 500년 즈음의 상황이다. 이 기술 덕분에 중국은 철기 양산 시대를 맞이했다. 중국은 유럽보다 1,800년가량 먼저 탄소량이 많고 불에 잘 녹는 주철을 얻게 된 셈이다.

철제 농기구가 양산된 덕분에 농업 생산성이 향상되었다. 그 영향으로 농지 확대를 위한 관개와 치수 같은 인프라 정비 사업이 전개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대규모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정교한 사회 시스템을 갖춘 권력 집중화가 절실해졌다. 한때 작고 약한 나라이던 진이 강력한 통일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던 비결도 철제 농기구와 공구를 사용해 농업을 발전시키고 치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국력을 강성하게 만든 결과였다.

기원전 400년 무렵,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 우주 만물이 원자로 구성돼 있음을 주창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원자 같은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그 존재를 부정했다고?: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초등학생도 쉽게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기초적인 지식이다. 그러나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상식으로 자리 잡은 지는 고작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실제로 20세기 초엽에는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로 학식과 권위를 가진 과학자 중에도 “원자 같은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원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만물을 만드는 입자(원자)라는 개념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때는 언제일까? 놀랍게도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의 압데라라는 도시에 데모크리토스라는 유쾌한 성격의 괴짜 철학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데모크리토스는 스승 레우키포스와 함께 바닷가에 산책을 나갔다. 그곳에서 그는 머릿속에 한 가지 매우 흥미롭고도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기원전 400년 무렵의 상황이다. ‘만물은 이 모래처럼 아주 작은 뭔가가 모여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더는 나눌 수 없는 궁극의 입자(원자)가 존재하며, 그 입자가 만물을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획기적이고도 위대한 발상이었다. 그는 그 궁극의 입자를 ‘아톰(atom, 원자)’이라고 불렀다. 이는 그리스에서 ‘~하지 않다’라는 부정적 의미의 접두어 ‘아(a)’와 ‘자르다’라는 의미의 ‘템네인(temnein)’으로 구성된 ‘아토모스(atomos, ‘더는 자를 수 없다’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어휘다.

어느 날, 데모크리토스는 우연히 진한 치즈 냄새를 맡게 되었다. 그는 이 현상을 자신이 새롭게 구상한 ‘원자론’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를 해석했다. “치즈 원자가 내 몸속으로 날아 들어왔기 때문에 치즈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 치즈를 잘라서 나누고, 다시 잘라서 나누기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더는 자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것이 바로 원자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명언도 남겼다. “이 세상에는 원자와 텅 빈 공간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것은 모두 견해에 불과하다.” 데모크리토스는 실재론(리얼리즘)의 관점에서 원자의 세계가 전부라고 주창한 위대한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다.

실재론의 본질을 파고든 에피쿠로스 철학이 당대 학자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된 까닭:
데모크리토스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이론은 어떻게 되었을까? 또 다른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에게 계승되고 발전했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흔히 ‘쾌락주의’로 번역된다. 그 탓에 그의 철학은 ‘흥청망청 돈을 쓰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겁게 살자’ 식의 철부지 어른의 생활방식으로 오해를 받곤 한다. 그러나 에피쿠로스 철학은 우리가 단순히 생각하는 ‘쾌락’이 아닌 ‘고통이나 공포가 없는 상태’를 추구한다.

에피쿠로스 철학을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 세상은 전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몸 전체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지금을 살자!’ 이렇듯 그의 철학은 실재론의 본질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에피쿠로스는 ‘사물은 원자가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모이고 흩어진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목적과 사실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했기에 실재론에 기반한 에피쿠로스 철학은 많은 사람에게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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