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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에 영화를 처방해 드립니다

전우영 지음 | 행성B


당신의 마음에 영화를 처방해 드립니다

전우영 지음

행성B / 2022년 12월 / 359쪽 / 18,000원





봄의 영화, 따뜻한 위로



왜 내 인생에만 비가 내리는 걸까? - 초점주의 오류: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0년 파리의 밤. 자정(미드나잇)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밤거리를 홀로 헤매다 지쳐 길가의 계단에 걸터앉은 미국인 여행객 길(오언 윌슨 분). 그의 앞에 푸조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선다. 1920년대식 클래식 푸조 자동차 문이 열리고 기분 좋게 술에 취한 사람들이 그를 초대한다. 푸조를 타고 길이 도착한 파티, 그곳은 놀랍게도 1920년대의 파리였다.

1920년대 파리로 가는 시간 여행:
길에게 1920년대의 파리는 카리스마 넘치는 과거다. 그가 매혹된 헤밍웨이, 피카소와 같은 작가들이 걸작을 만들고 인생과 예술에 대해 토론하던 시절. 푸조를 얻어 타고 길은 자신이 꿈꾸던 과거에 도착한 것이다. 그곳에는 길이 원하던 모든 것이 있었다. 바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예술가들과의 만남이었다. 길은 피츠제럴드 부부를 만나고, 그들은 길을 헤밍웨이에게 소개해 준다. 헤밍웨이는 길이 쓴 소설을 신뢰하는 비평가 스테인에게 봐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스테인의 집에서 피카소와 함께 온 아드리아나(마리옹 코티야르 분)를 만난다. 아드리아나(실존 인물이 아닌 감독이 만들어 낸 캐릭터)는 피카소의 연인이지만, 예전에는 모딜리아니와 사귀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피카소를 버리고 길에게 다가온다. 길은 1920년대로 가서 아드리아나와 사랑에 빠진다.

우디 앨런 감독이 연출한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것은 길이 현재의 파리뿐만 아니라 과거의 파리도 방문한다는 점이다. 그는 대낮에 환한 파리의 현재를 경험하고, 자정이 되면 어둠에 잠긴 파리의 과거를 맞이한다. 현재의 파리는 눈부시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파리에서 현재보다 더 눈부신 사람들을 만난다. 파리에서 숨 쉬며 살았던 수많은 천재와 조우하게 된다.

현재보다 르네상스 시대가 더 매력적인 이유:
파리의 밤거리. 아드리아나에게 귀걸이를 선물하던 순간, 마차 한 대가 그들 앞에서 멈추고, 타고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초대한다. 마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아름다운 시절’이라 불리던 1890년대의 파리다. 아드리아나에게 1890년대의 파리는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시대다. 마차는 그들을 아드리아나가 꿈에 그리던 ‘아름다운 시절’의 레스토랑 ‘맥심’으로 데리고 간다. 마치 푸조가 길을 그가 꿈꾸던 황금시대인 1920년대의 파리로 데려갔던 것처럼.

아드리아나와 길은 맥심에서 로트렉을 만난다. 그녀에게 로트렉은 자신의 연인이었던 까다롭기 그지없는 피카소보다도 위대한 작가다. 로트렉은 아드리아나와 길에게 자신의 친구인 고갱과 드가를 소개해 준다.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1890년대의 파리에서 자신의 마음속 영웅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살던 1920년대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름다운 시절’의 파리에 남기로 결심한다. 흥미롭게도 벨 에포크(18세기 말에서 1차 세계대전 사이의 평화로운 시절)의 예술가들 역시 자신들의 시대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고갱은 아드리아나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공허하고 상상력도 없다고 불평한다. 그러면서 르네상스 시대에 살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한다. 고갱에게는 미켈란젤로와 다빈치가 살던 르네상스 시대가 황금시대였던 것이다.

정리하면 2010년대를 사는 길에게는 1920년대가 황금시대지만, 1920년대를 사는 아드리아나에게 1920년대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현재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아드리아나에게는 1890년대의 파리가 황금시대지만, 1890년대를 사는 고갱에게 1890년대는 공허한 현재에 불과하다. 도대체 왜 현재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시절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초점주의 오류:
현재의 삶에는 수많은 사건이 발생한다. 사랑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이런 일들은 우리 인생 스토리의 축을 이루는 중심 사건이다. 하지면 현재의 삶에는 중심 사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 사건들이 더 많다. 중심 사건을 완성하기 위해서, 또는 삶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수행하고 겪어야 하는 일들이 현재에 널려 있다. 예를 들어, 결혼이라는 중심 사건은 수많은 주변 사건들을 수반한다. 예식장 잡고, 청첩장 돌리고, 신혼여행 예약하고, 이 바쁜 와중에도 연말 정산 마감일은 하루도 봐주지 않고 다가오고, 음식물 쓰레기는 악취를 내뿜기 전에 내다 버려야만 한다. 결정적으로 결혼식 날 비가 내린다.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재의 중심 사건만 고스란히 즐길 수 없다. 현재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시절이 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삶을 지켜보면 주변 사건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의 사건, 혹은 다른 사람이 경험한 사건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람들은 중심 사건에만 주목하고 주변 사건의 영향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티머시 윌슨 등의 연구자들은 이를 초점주의(focalism) 오류라고 명명했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는 예쁜 신랑, 신부와 아름다운 결혼식만 보인다. 당사자들이 결혼 과정에서 처리해야 했던 귀찮고 짜증나는 수많은 주변 사건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하객들은 당사자들이 실제로 느낀 행복감보다 더 큰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과장된 예측을 하는 경향이 있다.

왜 내 인생만 우중충한 걸까?:
사회적 관계망 서비스(SNS)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들은 다 저렇게 행복하게 사는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우중충하지?’ 사회적 관계망 서비스에 올라온 사진들은 모두 환하다. 해외여행에서부터 유명 음식점 사진까지 승리의 브이를 하며 활짝 웃고 있는 사람들. 자신이 바로 인생의 승자라고 외치는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시시콜콜한 일상과 씨름하고 있는 내 인생만 복잡하고 골치 아픈 듯하다. 왜 내 인생만 이렇게 복잡하고 힘들까?

타인의 삶에서 우리가 주로 보게 되는 것은 중심 사건들이다. 주변 사건들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몇 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우리는 타인의 중심 사건들만 보고 상대방이 얼마나 행복할지 추정한다. 그런데 사회적 관계망 서비스는 타인의 삶에서 중심 사건만 보는 초점주의 오류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SNS에 올라온 사진들은 인생의 중심 사건 중에서도 좋은 것들만 고르고 고른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특정 부분만을 선택하고 편집해서 올린 것이다. 심지어는 과장하기도 한다. 덕분에 우리는 타인이 공개한 중심 사건에 대한 사진 몇 장만으로도 그들의 삶이 내 삶보다 엄청나게 더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는 것이다.

현실에는 현실의 비가 내린다:
길, 아드리아나, 그리고 고갱이 열망하는 시대는 그들의 기억 속에 오직 중심 사건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들이 흠모하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이라는 중심 사건만 있기 때문에 그 시절이 황금시대로 보이는 것이다. 골치 아픈 주변 사건들로 넘쳐나는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시절이 과거에 있었다고 착각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옛날이 좋았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도 중심 사건만 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길은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그녀와 함께 길을 걸으려고 하는 순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도 없는데, 사랑이라는 중심 사건이 시작되려는 순간에 비라는 주변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사랑의 시작을 망칠지도 모르는 비. 하지만 비가 내리는 것을 걱정하는 길에게 그녀가 말한다. 젖어도 상관없다고, 파리는 비가 내릴 때 가장 아름답다고. 현실에는 현실의 비가 내린다. 그래서 현실은 늘 완벽하게 만족스러울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비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즐길 수 있다면, 가끔은 비 덕분에 우리는 인생의 더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름의 영화, 뜨거운 위로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왜 어떤 때는 진정제가, 어떤 때는 독약이 잡히는 걸까? - 접근 가능성: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Attila Marcel)
달콤하게 시작된 꿈이 늘 악몽으로 끝날 때: 폴 마르셀(귀욤 고익스 분)의 꿈은 달콤하게 시작한다. 환하고 따스한 햇살로 가득한 날, 세상은 온통 파스텔 톤이다. 아빠 아틸라 마르셀(귀욤 고익스 분, 1인 2역)의 발걸음은 경쾌하다. 청바지에 긴 파마머리, 그리고 금박으로 아틸라 마르셀이라는 이름을 또렷이 세긴 자줏빛 가죽 재킷. 아빠는 록스타 같다. 두 살배기 폴은 유모차에 앉아서 동네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앞장서 걷고 있는 아빠의 경쾌한 뒷모습을 따라간다.

“빠빠.” 아빠를 부르는 폴. 엄마는 두 살배기 아들이 드디어 아빠 소리를 내는 것이 너무 감격스럽다. 그래서 남편을 부른다. 아빠 소리 들었냐며. 하지만 극장 앞에 걸려 있는 커다란 그랜드 캐니언 사진에 푹 빠져 있는 아빠는 폴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폴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다정한 얼굴뿐. 하루 종일 등만 보여 줬던 아빠의 얼굴을 보고 싶은 폴. “빠빠, 빠빠.” 폴은 다시 아빠를 부른다. 그 순간 갑자기 돌아선 아빠. 폴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눈을 부릅뜬다. 괴성을 지르듯이 입을 찢어져라 벌린 아빠. 깜짝 놀란 폴은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폴의 달콤했던 꿈은 늘 악몽으로 끝이 난다.

기억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
실뱅 쇼메 감독이 연출한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꿈속 아빠에 대한 폴의 기억도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우연히 잡힌 독약과 같은 것일까?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나를 구원할 진정제는 잡히지 않고, 왜 하필이면 나를 망가뜨릴 독약만 계속 잡히는 걸까?

우리의 기억창고에는 수많은 진정제와 독약이 저장되어 있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넓은 기억창고에 저장된 수만 가지 약들은, 이론적으로는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창고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창고에 있다고 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약은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억 현상을 설명하는 많은 이론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억창고의 크기는 무한하고, 창고에 저장된 정보 역시 무한대에 가깝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기억창고에 한번 저장된 정보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예전에 겪었던 일이 시간이 지난 후에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 경험을 하곤 한다. 만약 기억창고에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 제한이 없고, 한번 저장된 정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면, 일단 저장된 정보는 모두 기억해 낼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예전에 기억했던 것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기억창고에서 그 정보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해당 정보는 여전히 우리의 기억창고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정보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인출 실패라고 한다. 무한대에 가까운 크기의 기억창고의 한구석에서 다른 약들에 파묻혀 있는 작은 알약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찾을 수 없으면, 사용할 수도 없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는 아무거나 잡히지 않는다:
어떤 기억은 바로 찾을 수 있고, 그래서 쉽게 꺼낼 수 있다. 반면, 어떤 기억은 찾기 어렵다. 심지어는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고, 그래서 꺼내지도 못한다. 기억창고에 있는 정보들이 얼마나 찾기 쉬운지, 그러니까 기억창고에 있는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접근 가능성(accessibility)이라고 하는데, 접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쉽게 찾을 수 있는 상태라는 뜻이고, 접근 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찾기 어려운 상태라는 뜻이다.

따라서 기억을 향해 우리가 내민 손에 아무거나 잡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잡힐지는 우연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우연히, 또는 무의식적으로 내민 손에는 접근 가능성이 높은 기억이 잡힐 확률이 매우 높다. 폴이 매일 같은 악몽을 꾸는 것은, 폴이 자신의 기억을 향해 손을 내밀 때 악몽이 다른 기억보다 훨씬 더 접근 가능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의 접근 가능성은 기억창고에서 정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창고를 열자마자 바로 눈앞에 보이는 기억이 접근 가능성이 높다. 반면, 기억창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기억은 접근 가능성이 떨어진다.

오래전에 도착한 기억일수록 기억창고의 깊숙한 곳에 보관되기 때문에 접근 가능성이 떨어진다. 반면, 최근에 배달된 기억은 바로 문 앞에 놓여 있기 때문에 접근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오늘 있었던 사건이 30년 전에 경험한 사건보다 접근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쉽게 기억해 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은 2살 때의 기억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 사건이 폴에게 심리적으로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경험하게 되는 강렬한 사건에 대한 기억은 접근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쉽게 꺼낼 수 있는 위치에 놓인다. 만약, 그 강렬한 사건에 독약이 들어 있으면 그 기억은 트라우마가 된다.

운명적인 사랑의 유통 기한 -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무미건조한 일상이 반복될 때마다 한번(어떤 이들은 다시 한번) 강렬한 사랑에 푹 빠져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할 것이다.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 중의 하나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열정적인 사랑의 대명사격인 올리비아 허시와 레너드 위팅이 주연을 맡은 프란코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강렬한 만큼 아름답고, 동시에 극단적일 만큼 비극적이다.

로미오의 몬터규 가문과 줄리엣의 캐퓰렛 가문은 서로 철천지원수인데, 둘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만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몰래 결혼식을 올리지만 가문 간의 반목, 불행한 사건의 발생, 그리고 오해가 겹치면서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줄리엣이 죽었다고 생각한 로미오는 줄리엣의 입술에 마지막 키스를 남기고 독약을 삼킨다. 잠시 후에 깨어난 줄리엣은 자신의 곁에 죽은 채로 누워 있는 로미오를 발견한다. 그리고 로미오의 단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로미오와 줄리엣은 왜 그토록 강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서로를 사랑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집안의 반대로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이었기 때문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경험했던 사랑의 감정이 극대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반대가 심할수록 사랑에 더 빠져들게 되는 현상을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라고 한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면 사람들은 그 이유가 그만큼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이 크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동시에 부모의 반대는 우리를 각성시키는데, 증가한 신체적 각성은 우리가 경험하는 현재의 감정이나 정서의 강도를 강화시킨다. 즉, 부모의 반대가 사랑에 빠진 사람을 흥분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신체적 각성이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신체적 각성이 증가한 상태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이 더 사랑스러워 보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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