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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트와 함께한 나의 20년

노소영 지음 | 북코리아


미디어 아트와 함께한 나의 20년

노소영 지음

북코리아 / 2022년 12월 / 416쪽 / 25,000원





디지털과 함께 막을 열다



‘미래 뮤지엄’을 꿈꾸다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이 막 시작될 즈음이었다. 세계 최대의 컴퓨터 그래픽스 행사인 ‘시그라프(SIGGRAPH)’에서 리치 골드를 만났는데, 유독 미래 미술관에 관한 그의 말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리치 골드에 따르면 세 가지 종류의 뮤지엄이 존재한다고 한다. 과거의 유물을 보여 주는 과거 뮤지엄, 현재의 정신적ㆍ물적 소산을 보여 주는 현재 뮤지엄, 당대에서 그리는 미래의 모습을 보여 주는 미래 뮤지엄인데, 아마도 당시 그가 말한 미래는 2030년쯤인 것 같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의 일부다.

“그럼 미래의 현재 뮤지엄에는 뭐가 있는데요?” “내 생각에는 유전자가 변형된 온갖 종류의 생물로 동물원 같을 겁니다.” “그럼 미래에서 더욱 미래를 보여 주는 미래 뮤지엄에는요?” “흠… 잘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오히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데, 물건으론 말이지요.”


그런데 미래는 리치 골드의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것 같다. 스마트폰은 카메라 인식이나 공간 좌표 인식을 통해 빈 공간에 심어 놓은 콘텐츠를 끄집어내 볼 수 있게 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관람객이 모바일폰으로 작품 설명을 보고 들을 수 있다. 물론 아직 뇌를 통한 완전한 텔레파시 통신으로 가기엔 거리가 있다. 내가 어느 장소에 가서 허공에 이야기를 심어 놓고 오면, 친구가 가서 모바일폰으로 이야기를 찾아내고, 거기에 또 자신의 이야기를 첨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바야흐로 시간과 공간이 이리저리 변형되어 우리 손안에서 노는 세상이 열렸다. 증강 현실(AR)은 미래 뮤지엄의 최신 버전이다.

리치 골드는 안타깝게도 2002년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내준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향해 던진 질문은 “우리는 이렇게 많은 물건(stuffs)을 다 갖고 살아야 하나? 이것 봐. 물건의 필요에 의해 또 물건을 만들고, 기술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또 다른 기술을 만들잖아!”라는 한탄이었다. 동시대 누구보다도 왕성한 창작과 생산을 하던 인물의 마지막 일성(一聲)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진정한 창의성은 무조건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 아닌, 인간됨의 어떤 가치와 관련이 있다며 고민하던 그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디지털의 등장과 디지털 뮤지엄


1997년 워커힐 미술관을 이어받아 새로운 미술관으로 탈바꿈할 궁리를 시작했다. 왜 새로운 미술관인가? 우선 디지털의 영향이 컸다. 기술에도 문화 예술에도 깊은 식견이 없던 나 같은 사람이 보아도 디지털은 의미심장했다. 문명사적 전환을 목전에 둔 듯한 예감이 들었다. 새로운 미술관을 구상한 데는 중소 미술관으로서의 생존 전략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뒤따랐다. 당시 기업들이 운영하는 굵직한 미술관들은 대부분 현대 미술에 투자했다. 비록 워커힐 미술관이 국내 최초의 사립 현대 미술관으로 출발해 선구적 전시와 작업을 선보였지만, 다른 기업 미술관들의 투자 규모에 비해 운영 자금이 적었다.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고 순전히 사재를 털어 운영한 고(故) 박계희 여사의 깔끔한 성품 탓이다.

그러나 더는 기업의 후원 없이 미술관을 운영하기가 불가능했다. 마침 정보 통신업에 진출한 남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원 의사를 밝혔다. 최 회장은 새로운 미디어가 사용자의 인지와 감성을 어떻게 바꾸어 갈지에 관심이 있었고, 예술가의 예민한 촉각으로 탐구해 가는 과정을 지원하는 것은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합리적인 투자라 여긴 듯하다. 또 디지털 아트가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던 듯하다. 디지털 아트를 후원하는 것은 선진 기업의 이미지와 부합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준비 안 된’ 관장인 나는 워커힐 호텔의 조그만 방에서 직원이라고는 비서 한 명과 함께 1997년 출범했다. 디지털이 워낙 새로운 현상이라 당시 디지털 아트를 가르쳐 줄 선생님도 없었다. 하지만 딱히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서도, 나는 새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퍼덕거렸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즐거웠다. 지금은 일상어가 된 월드 와이드 웹이나 하이퍼텍스트, 상호 작용성, 가상 현실(VR) 등의 기술이 인류를 여태껏 아무도 가 보지 못한 신세계로 데려다줄 것만 같았다.



한국에 미디어 아트의 거점을 세우다



국내 최초 미디어 아트 특화 기관의 기틀을 다지며


2000년 12월, 세 가지 종류의 전시를 개최하면서 개관했다. 첫 번째는 《스펙트럼》이라는 이름의 전시로, 서울시 곳곳에 위치한 TTL 존이라는 SK가 제공하는 문화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했다. 서린동의 아트센터 나비 전용 공간에서는 나오코 토사의 <무의식의 흐름> 등 새로운 인터랙티브 예술들을 선보였다. 또 하나의 개관 기념 프로젝트로 <그리즈(Grids)>라는 제목의 웹 아트를 김수정 작가가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개관 당일에는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참여자들이 3차원 공간에 아바타로 참여하는 <텔레마틱 이벤트>를 시행했다. ‘액티브 월드’라는 브라우저를 사용해 <니취(Niche)>라는 제목의 공간을 만들었는데, 금누리 작가와 안상수 선생이 작업한 한글을 모티브로 한 3차원 조각들이 멋지고 세련되게 공간을 구성했다. 여기에 모기, 파리, 벌 등 미물들을 아바타로 사용해 이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환경에 관한 담론을 펼친, 지금 돌아보아도 ‘커팅 에지(Cutting Edge)’ 이벤트였다.

개관 전시 및 이벤트의 특성은 ‘화이트 월을 넘어서’였다. 그런데 그 화이트 월은 단지 미술관의 물리적인 벽만이 아니었다. TTL존에서의 전시처럼 예술과 상업,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예술과 기술 등 여러 벽을 넘나드는 전시였다. 인터넷의 특성을 살린 웹 아트도 그렇고, 무엇보다 액티브 월드에 구현한 3차원 공간은 요사이 유행하는 메타버스의 20년 전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아바타로 실시간 소통하는 것이나, 작가들이 만든 공간을 유영하듯 감상하는 것이나, 전 세계에서 미디어 아티스트들을 불러 모아 환경과 관련된 담론을 펼친 것 등 어느 면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는 메타버스의 구현이었다.

강연에서는 3분의 강사를 모셨다. 첫 번째로 텔레마틱 이벤트 등에서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작가이자 미디어 아트 이론가인 로이 애스콧이 앞으로 인류가 직면하게 될 여러 형태의 ‘현실들’에 관해 또 그에 따른 미디어의 진화에 관해 강의했다. 두 번째로 동서양 문화의 융합으로 탄생하는 새로운 동아시아의 정체성에 관해 장파가 강의했다.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관이라 한 점이 인상 깊었다. 세 번째로 ‘집단 지성’이라는 개념을 창시한 피에르 레비가 우주론적 지성론을 설파했는데, 피에르 테일라르 드 샤르댕의 진화론적 우주론의 인터넷 버전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미디어 아트의 사회 문화적 맥락


상호 작용이 절반 이상의 의미를 차지하는 미디어 아트에서 관객과 코드를 맞추지 못한 경험은 내게 고민거리로 남았다. 아무리 훌륭한 미디어 아트를 갖다 놓아도 관객이 의미를 모르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2000년 서울시가 대규모 예산을 들여 야심 차게 준비해 개막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미디어_ 시티 서울》의 허무함을 이미 목격한 터였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유명 큐레이터를 동원해 예술계가 떠들썩했으나 관객의 반응은 냉담했다. 서양 미술사의 좁은 맥락으로만 해석한 미디어 아트 작품들을 관객에 대한 배려 없이 쭉 늘어놓은 전시에서는 미디어 아트를 즐길 수도 배울 수도 없었다.

《미디어_시티 서울》의 실패는 내게 반면교사가 됐다. 세계적 예술의 조류라고 해서 외국의 유명 작품들을 무조건 수입하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다시 깨달았다. 세상을 향한 나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없다면, 굳이 문화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회의도 들었다. 국제적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이나 전시에 가면 영국, 독일 등의 서유럽과 캐나다, 호주 출신의 작가들이 주를 이룬다. 몇몇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는, 소위 예술의 서구 편향적 글로벌화가 미디어 아트에서는 더욱 심하다. 일본 작가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서구를 향한다.

소통의 예술인 미디어 아트에서 사회 문화적 맥락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작품도 많아서, 어디에서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시연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내용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맥락 의존적인 경향은 미디어 아트를 전통 예술과 구별하는 특성이며, 작가들은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래서 관객과 눈을 맞추지 못한 초기 작업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관객과 소통에 열중하며 주 관객층인 한국의 2030 세대를 주목했다.

당시 인터넷과 친숙한 N세대의 중추를 이루는 한국의 2030 세대는 복잡하거나 난해한 사안은 기피했다. 지적인 아이러니 따위는 별 관심 없었다. 단순하면서 즉각적인 메시지, 가슴으로 통하는 공유,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 다 함께 거국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산뜻하고 강렬한 카타르시스에 열광했다. 개인성의 발현과 동시에 평등에 근거한 공동체 지향성도 강하게 드러냈다. 월드컵 응원 열기와 촛불 시위의 현장에서 나는 이점을 보았다. 역사는 TV 사극의 대본으로, 복잡한 정치 사안도 단순한 게임으로 변하는 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 예술 형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디어 아트 한마당을 펼치다



열린 극장과 P.Art.y의 신나는 한마당


“인생은 무대이고, 여러분 모두는 배우입니다.”라는 말이 미디어 아트에 오면 새롭게 빛을 발한다. 미디어 아트 작품의 참여자(관객)는 정해진 스크립트에 의해 움직이는 배우들이 아니라, 매 순간 작품과 상호 작용하며 새로운 스크립트를 만들어 가는 주인공이다. 결말은 언제나 열려 있고, 디지털 기술은 시공을 한없이 확장한다. 한편 퍼포먼스 요소가 강한 미디어 아트는 관객과 함께 만들어 가는 일종의 ‘열린 극장’이라 볼 수 있다. 오감을 통해 통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예술, 네트워크 기술로 물리적 환경과 가상의 환경 사이를 이음새 없이 오가며 새로운 현실을 구성하고 체험하는 예술, 그리고 나 혼자만 감상하는 것이 아닌 전통 극장의 집단적 카타르시스가 가능한 열린 극장이다.

2003년 11월 연세대학교 동문 회관을 빌려 시연한 공연 《리퀴드 스페이스》는 성공작으로 평할 만하다. 미디어 아트 분야에 막 입문한 허서정 큐레이터의 안목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벨기에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인 랩 오를 초청해 국내 아티스트와 열흘간 공동 워크숍을 진행하고, 결과물을 공연 형태로 선보였다. 작품의 구조와 프로그래밍은 외국 작가들이, 음향과 비주얼 콘텐츠는 국내 작가들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젊은 관객층은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아트에 단박에 매료됐다. 천장이 높은 공간에 대형 스크린 4개를 사각형 모양으로 설치해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관객은 사각 스크린의 안팎을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관객의 움직임처럼 사운드 파일이 3차원 공간을 떠다녔으며, 관객이 조이스틱으로 직접 그 사운드 공간을 네비게이트했다. 특정 파일에 가까이 접근하면 그 파일에 담긴 사운드가 공간을 채우고, 또 다른 파일을 향해 가면 이음새 없이 부드럽게 다른 음악으로 넘어갔다. 3차원 실제 공간과 3차원 가상 공간 사이로 몸과 마음이 음악과 하나가 되어 흐르는 경험은 정말이지 ‘쿨(cool)’했다.

끝도 이음새도 없는 빛과 소리의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은 미디어 아트만이 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관객은 한 손에 맥주병 하나씩 들고 저마다 자신만의 공간과 경험을 만들어 갔다. 그런데 광활한 우주에 혼자 떠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두 발은 땅에 두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지구를 이탈하는 것, ‘홀로 또 함께’를 구현했다. 자유로움과 신선함을 공연 환경에서 보여 준 《리퀴드 스페이스》는 우리를 어렵지 않게 새로운 차원의 감각으로 이동시켰다.

그 후로도 미디어 아트의 공연을 접목하는 방안을 다양하게 모색했다. 디지털 미디어와 무용, 영화, 고전 음악, 게임 등 여러 장르와 융합을 시도했고, 《언집핑 코드》같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디제잉/브이제잉(DJing/VJing)을 하는 작업도 선보였다. 후자는 클럽에서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문화의 자연스러운 양상이지만, 전자는 의도적인 노력과 새로운 공연 형태를 만들어 갈 혜안이 필요했다. 단지 기존 공연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풍성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공연 형태를 기대했다.

전통적인 공연장은 갇힌 공간이다. 물론 상상의 날개를 끝없이 펼 수 있겠지만, 물리적인 환경은 벽으로 닫혀 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극장에서는 벽이 스크린이 되어 세상 어디든 연결할 수 있다. 네트워크를 통해 남극 기지의 대원, 히말라야의 선사, 심지어 우주인도 실시간으로 불러내 극중 인물로 등장시킬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을 공연의 형태로 발전시켜도 좋겠다. 게임만큼이나 인간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장르가 또 있을까? 스포츠 경기장에 가면 금방 알 수 있다. 축구나 야구, 농구 등 스포츠 경기야말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고농도로 농축한 산물이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만들고 싶었으나 그때까지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함께 만들 사람을 찾지 못한 탓이다. 대신 그간의 아이디어를 모아 2007년 《P.Art.y》라는 이름으로, 사람과 예술과 기술(People, Art and Technology)의 축제인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구 서울역사에서 프리 이벤트를 진행하고, 남산 드라마 센터에서 2박 3일간 페스티벌을 열어 20여 개의 크고 작은 공연을 선보였다. 코비 반 톤더와 요르그 코흐는 스케이트보드에 속도와 방향을 재는 센서를 달아 음악을 연주하는 <스케이트 소닉 Ⅱ(Skate Sonic Ⅱ)>를 선보였다. 이 외에도 재즈 음악 연주와 인터랙티브 영상을 접목한 계수정의 <트랜스포메이션 301>, 레이저와 사운드를 결합한 에드윈 반 델 하이드의 , 1950년대 영화 <자유부인>에 DJ 스푸키의 디제잉을 결합한 <디제이 감독(Director as DJ)>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미디어 공연을 소개했다.

《P.Art.y》는 창작자들의 신나는 놀이터였다. 당시 관람객 집계 결과 약 3,500명이 참가했는데, 작가나 디자이너, 혹은 마케터나 기획자 등 창의 산업 종사자가 대부분이었다. 돌아보니 해마다 시행해도 좋았을 행사였다. 다만 외부의 지원 없이 아트센터 나비가 자체적으로 운영하기에는 부담이 없지 않았고,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기에는 미디어 아트에 관한 인식이 아직 없던 때였다. 대신 광고나 이벤트 업계 종사자들은 행사 이후 꾸준히 작가의 문의와 섭외를 요청해 왔다.

《P.Art.y》의 후속편이자 새로운 파티의 출발점이 된 미디어 퍼포먼스 《우리 함께 즐겨요, 오웰씨!》는 2009년 인천 송도 투모로우시티에서 유비쿼터스 기술에 기반한 신도시의 탄생을 축하하며 열렸다. 백남준의 1984년 작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기술 사회에 대한 조지 오웰의 비판적 소설 『1984』에 대한 화답이었듯이, 《우리 함께 즐겨요, 오웰씨!》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기술 사회에서 인간적인 접촉성을 놓지 말자는 우리의 성명이었다. 예술을 통해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 간의 다리가 놓일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여기에 네트워크 기술이 일조한다. 주 공연으로 초대된 안티브이제이의 <송도>는 국내 최초의 대규모 3D 매핑 작품으로, 기술이 예술과 만나 펼치는 향연의 클라이맥스였다. 특히 송도 건설 현장에서 채집한 소음을 전통 장단과 가락에 절묘하게 혼합해 만든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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