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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가족 내집마련 표류기

노영호 지음 | 예미


군인가족 내집마련 표류기

노영호 지음

예미 / 2022년 12월 / 284쪽 / 17,000원





비밀의 공간, 군인 아파트



달팽이와 군인 아파트의 추억


내가 초등학교(사실 당시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에 다닐 때 자주 전학을 오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아빠가 군인이라고 하는데 서울 말씨를 쓰는 얼굴이 허여멀건한 귀티 나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대구에서 나고 자라 당시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을 때였다. 그 전학 온 친구들은 선생님의 친절한 지도 아래 반에서 곧잘 우등생으로 생활했다. 그러던 중 이름이 민성휴인 친구와 상당히 친해지게 되었다. 성휴도 얼굴이 하얗고 잘생긴 친구였다. 그의 아버지도 직업 군인이라고 했다. 당시 계급은 대령이었고 어느 부대 참모장 직책이라고 하였다. 그때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군인 아빠가 얼마나 자식 교육을 잘 시켰는지, 아빠 계급과 직책, 군번을 줄줄 외우고 있었다.

그 친구의 초대로 군인 아파트에 놀러 가게 되었다. 그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가 얼마나 궁금했던지 전날부터 무척 설레었다. 사실 친구 집에 놀러 간다고 소풍 가는 것마냥 기쁘지는 않을 것이다. 군인 아파트라고 조금 생소하긴 해도 친구 집에 가는 것뿐인데 나는 그때 왜 그렇게 설렜을까? 여기에는 나름 가슴 아픈 스토리가 있다. 내가 살던 대구의 한 동네에는 또 다른 군인 아파트가 있었다. 4층 정도 되는 아파트였고 특이하게도 담벼락에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또 출입문 옆에는 위병소가 있어서, 거기에 사는 군인 가족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위병소에는 방위병이 2명 있었다. 평소에는 노닥대면서 시간을 때우다가 군인 가족이 아닌 현지인 동네 어린이가 접근하면 귀신같이 잡아냈다. 그 방위 형아들은 붙잡은 동네 아이들에게는 볼펜으로 머리를 때리면서 혼을 내었다.

당시에 나는 이 군인 아파트에 무척 들어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어린 초등학생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달팽이였다. 아파트 주변에 풀이 울창하게 자라서 비만 오면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달팽이들이 사방에 천지였다. 오해하지 마시라. 달팽이를 먹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나는 동물이나 곤충을 키우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지라 달팽이들을 잡아서 1.5리터 페트병에 넣어서 키우곤 했다. 그런데 여기 말고는 달팽이가 그렇게 많이 서식하는 곳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그날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군인 아파트 위병소를 흘깃 바라보았다. 매일 있던 무서운 방위병 형아들이 그날은 마침 없었다!

나는 즉시 경로를 바꾸어 집으로 가지 않고 군인 아파트 정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평소 보던 회색빛 풍경이 아니라 잘 가꿔진 나무와 숲으로 된 녹색 세상이 나의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는 앨리스가 빠진 이상한 나라인가? 이런 상상마저 들었다. 아스팔트 진입로를 지나서 화단으로 침투했다. 그리고 먹잇감을 찾는 솔개처럼 위에서 두리번거리며 달팽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풀을 헤집으니 꽤나 씨알이 굵은 달팽이들이 몇 마리 보였다. “이 녀석은 너무 커서 페트병 입구에 들어가지 않겠는데?” 나는 너무 들떠서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들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내 귀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방위 형들이었다! 이건 꿈일까? 안타깝게도 꿈이 아니었다.

위병소의 방위병 형아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군인 아파트를 습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전리품(토실토실 살찐 매력적인 달팽이들)을 챙기는 데 너무 정신이 팔려 경계를 소홀히 하는 실수를 범하고야 말았다. 그 방위병들은 본진이 침투당한 것에 매우 화가 나 어린 초등학생에게 화풀이를 하였다. 잡은 달팽이들은 다시 수풀로 던져졌고, 나는 방위병 형아들로부터 얼차려를 받았다. “차렷! 열중쉬어! 야, 이것 봐라, 정신 안 차려!” 그 자체도 너무 힘들었지만 더 곤욕스러운 상황이 다가왔다. 마침 내 또래의 예쁜 여학생 한 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크게 잘못한 사람처럼 차렷 자세로 서서 혼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정말 주저앉아 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구원의 여신이 나타났다. 군인 가족으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다가온 것이다. “아니, 동네 꼬마한테 뭐 하는 거예요! 가만히 지켜보니까 정말 너무하네! 근무병들 소속과 이름이 도대체 뭐예요?” 그분은 정의감에 가득 찬 아주머니셨나 보다. 군 간부의 가족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타나자 분위기는 급반전되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너무 무섭던 방위병 형아들은 갑자기 한없이 죄송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방위병들은 급히 사과하고 나를 풀어 주었다. 사실 그때는 마냥 철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뭐가 잘못되었는지 잘 몰랐다. 그리고 방위병 형아들에 대한 악감정도 없다. 하지만 나를 구해 준 군인 가족 아주머니에 대한 감사함과 함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비밀스러운 군인 아파트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낭만과 애환의 군 관사 표류기



거기 사람 사는 곳인가요?


제 이름은 영숙입니다. 군인 가족이에요. 남편은 부사관으로 경기도에 있는 군부대에서 근무 중이지요. 군인 남편과 결혼하여 여기 산속의 군인 관사에서 산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네요. 제가 사는 군인 관사는 남편이 근무하는 부대 바로 옆에 있어요. 좀 허름하고 낡았기는 하지만 산속에 있는 산중 별장입니다. 관사에는 모두 6가구가 함께 살고 있어요. 15평짜리 단층 주택입니다. 2개 세대가 하나의 관사로 붙어 있어요. 이 관사도 좀 낡은 집이라서 비가 오면 물도 새고, 벌레도 들어와요. 남편 말로는 한 30년 넘은 오래된 관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산속이라 등산객이 많이 다녀요. 관사에서 나오다 등산객을 만나면 그 사람들이 더 깜짝 놀랍니다. “거기 사람이 사는 곳인가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수풀이 우거지고 주변에 블록 담장이 허름하게 쌓여 있으니 일반적인 사람 사는 분위기는 아니긴 해요. 또 외부인 출입 금지, 군사 시설 보호 구역 간판도 꼽혀 있으니 더욱 놀랄 수밖에요. 하지만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랍니다. 일단 주소가 있구요.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산 15-1번지입니다. 산이긴 하네요. 갑자기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이 생각나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자연인은 아니구요. 물론 자연을 사랑하긴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들의 아침 기상송을 들을 수 있어요. 새들의 소리가 아름답기는 한데 말이 너무 많아요. 너무 시끄러워요. 아침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그리고 공기가 무척 맑고 깨끗해요. 얼마 전까지 미세 먼지가 문제였잖아요. 그때에도 여기는 공기가 숨 쉴 만한 편이었답니다.

오전에는 남편을 출근시켜서 보내고 저는 집 안을 정리합니다. 그러다 한 10시쯤 되면 옆집 친한 군인 가족 후배가 집으로 놀러 와요. 제가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거든요. 집에서 잘 구운 원두를 갈아서 은은하게 원두커피 두 잔을 내립니다. 그리고 집 밖의 정원에 있는 원목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햇살을 즐기지요. 아! 이 원목 의자는 우리 남편과 옆집 삼촌이 같이 만든 거예요. 그리고 우리 둘은 오늘 점심을 뭐 먹을 건지 작전을 짭니다. 서로 냉장고에 먹을 만한 것이 뭐가 있는지…. 그리고 한바탕 수다를 떨지요. 아! 우리 집에 부침개 가루가 좀 남아 있어요. 그래서 뒷마당에서 곰취 잎을 좀 따서 그것으로 곰취 부침개를 해 먹기로 했습니다. 저는 부엌으로 가서 부침개 가루를 물에 개어 휘젓고 있습니다. 후배 가족이 곰취를 몇 장 따 오네요. 그것을 씻어서 부침개 반죽과 혼연일체를 시킵니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과감하게 던집니다. 지글지글 비 오는 소리가 나네요. 이러다 막걸리까지 가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향긋한 곰취 향이 나는 곰취 부침개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어제 남은 밥과 같이 부침개를 간장에 찍어 맛나게 먹습니다. 그리고 계속 수다는 이어지지요. 깔깔깔. 얼마나 재밌는지 후배 가족은 방바닥을 손으로 치면서 폭소를 터뜨립니다. 이거 참 위험한 행동이지요? 아파트라면 큰일 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랫집에서 시끄럽다고 올라와 항의할 수도 있죠.

하지만 산속 단독 주택에서 바닥을 쾅쾅 치면 어떻게 될까요? 아래층이 없습니다. 아하! 혹시 땅 밑의 두더지가 시끄럽다고 올라올 수는 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두더지가 찾아와서 초인종을 누른 적은 없답니다. 층간 소음 걱정 없는 천혜의 환경입니다. 어린아이들 키우기 딱 좋아요. 아직 저희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어서 이런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네요.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 가기 전까지만 딱 좋습니다. 여기 교통이 불편한 건 사실이거든요. 아래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더라도 30분은 내려가야 합니다.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가 하루에 네 번 정도 다녀요. 버스를 놓치면 2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자가용 차가 없으면 살기 힘들어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엄마가 승용차로 학교까지 데려다줘야 하는데, 매일 아이들 학교 셔틀 뺑뺑이가 쉽지는 않아요.

단독 주택 앞마당에서는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텃밭을 만들어 자그만 농장을 만들 수도 있어요. 자연 속에서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지요. 군사 보호 구역이고 민간인 출입 금지라는 팻말도 앞에 서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들어오지 못해요. 완전한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산을 하나 통째로 가지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렇다고 자연을 마구 남용하면 안 돼요. 산에서 함부로 불을 지피거나 산 채취물을 가지고 가는 것은 불법이니까요.

군인 관사의 주말은 매우 특별해집니다. 본격적인 주말 힐링 라이프가 시작된다고 할까요? 평소에 바쁜 부대 업무로 보기 힘든 남편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남편들은 아내와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차를 타고 마트에 나가서 한 주일 동안 먹을 식재료를 사 오기도 합니다. 차로 30분 나가야 마을입니다. 마을에 나가 장도 보고 오랜만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합니다. 외진 곳이라 영화관은 없어요. 그래도 요즘에는 넷플릭스가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저녁이 되면 가든파티가 열리기도 합니다. 손재주가 좋은 옆집 삼촌이 만든 바비큐통이 마당 옆에 있습니다. 이번 주는 바비큐 파티를 하기로 했어요. 남편들이 바비큐통에 숯을 넣고 불을 피웁니다. 이제 불판에 고기를 올리고 굽습니다. 저와 후배 가족은 바로 옆 텃밭에서 상추를 따서 준비를 합니다. 멀리 캠핑장 갈 필요가 없네요. 집 앞에서 친한 후배 가족들과 멋진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습니다. 남편 따라 멀리 연천까지 왔는데 생각보다 살 만합니다. 자연과 함께 그리고 좋은 이웃들과 함께하지요. 하지만 평생 이렇게 살 생각은 없습니다. 저도 사실 도시 여자랍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이렇게 산속 군인 관사에서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젊은 시절의 특권이 아닐까 합니다.

MZ세대 군인 가족은 남편을 따라가지 않아


과거에는 군인 남편이 전방에 가면 가족들도 당연히 따라가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부대 옆에 군인관사가 마련되어 있었던 거다. 교통이 불편해도, 차가 없어도 군인 가족들은 군인 남편 바로 옆에서 같이 생활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바뀌었다. 군인 가족들이 군인 남편을 잘 따라가지 않는다. 일단 결혼의 시기가 많이 늦어진 것 같다. 군인들은 일반적으로 결혼을 좀 빨리 한다고 하지만 요즘에는 30대 초중반에 결혼하는 것이 대세이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의 군인들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경우도 꽤 많다. 결혼한다 하더라도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이 과거에 비해 달라졌다. 군인의 배우자들이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결혼을 이유로 직업을 포기하려는 마음도 없다. 그렇다 보니 군인 남편이 자주 이동하더라도 배우자는 도시에 정착하여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교통의 발달도 하나의 이유이다. 교통이 워낙에 발달되어 있어서 강원도 인제나 속초도 서울까지 금방이다. 지방 곳곳으로 모세혈관처럼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격리된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드는 것도 하나의 이유인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지방에서 살기 싫어한다. 서울에서 살고 싶어 한다. 지금 청년 세대에게 직장의 심리적 저지선은 판교까지라고 한다. 서울에서 판교까지는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판교를 넘어가면 곤란하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지방으로 전근을 가라고 하면 사직서를 낸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군인들은 전국구로 이동한다. 그래서 심리적 저지선은 없다. 지방으로 가라고 하면 울면서 가고, 서울로 가라고 하면 즐겁게 간다. 가긴 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MZ세대 군인 가족들에게는 심리적 저지선이 있는 듯하다. 강원도는 춘천까지, 아래 지방으로는 대전까지이다. 젊은 군인 가족들과 대화를 해보니 그런 기류가 조금 느껴진다.

군인 남편이 최전방 GOP에 들어간다면? 옛날에는 군인 가족은 GOP에서 조금 떨어진 민통선 이북 군인아파트에서 살면서 기다리면서 지냈다. 그런데 요즘 군인 가족들은 서울에서 직장 다니면서 따로 산다.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군인 남편을 굳이 힘들게 기다리지 않는다. 요즘 군인 가족들은 능력도 좋은 것 같고 생각도 쿨한 것 같다.

그래도 결혼 초기에는 대부분 군인 가족이 근무지로 같이 다닌다. 같이 살기 위해 결혼한 것이니까. 결혼을 위해 직장을 포기하는 열혈 배우자도 많은 편이다. 그런데도 관사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별거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군인관사가 부족하다 보니 타 부대에 전근을 가더라도 즉각적으로 군인관사가 나오지 않는다. 그럼 군인 본인만 다른 부대로 가고 가족은 새로운 관사가 나올 때까지 전에 살던 군인관사에서 살아야 한다. 일시적으로 별거하는 상황이 종종 생기는 것이다. 특히 좋은 품질의 고급 관사는 젊고 계급이 낮은 군인 입장에서는 경쟁률이 치열하기 때문에 젊은 군인 가족들은 이런 의도치 않은 별거 생활을 자주 경험한다.

그러다 자녀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대부분 군인 가족들은 정착하는 것 같다. 요즘처럼 높은 학구열의 시대에 자꾸 자녀를 전학시킬 부모가 누가 있겠는가? 잦은 전학은 아이들의 학업 능률을 떨어뜨리고 학교생활도 힘들게 한다. 그래서 군인 아빠는 자주 부대를 옮기지만 자녀들이 중학생 정도가 되면 가급적 전학을 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 그래서 정착하여 집을 마련한다거나, 아니면 군인관사에서 조금 더 생활하도록 한다. 현재 규정에는 자녀가 중학교 2~3학년, 고등학교 2~3학년이 되면 그 지역에서 학업을 마치기 위해 군인관사에서 이사를 면제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래서 대대장이 되는 40대 초중반 정도의 나이부터는 거의 독신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본인은 전방에서 근무를 하고 가족들은 후방에 있는 경우가 심심찮다. 또는 배우자가 직장이 있어도 군인 남편들이 혼자 생활한다.

군인 남편 입장에서는 혼자 생활하는 것이 많이 힘들다. 부대에서 독신자 숙소를 제공하고 식사는 부대에서 해결하지만, 40이 넘은 나이에 가족 없이 혼자 있으면 많이 외롭다. 요즘 주말부부를 하는 것은 전생에 나라를 몇 번 구해야 가능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긴 하지만, 군인들은 정말 주말부부가 많다. 아내 직장 때문에 혹은 자녀 학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로 떨어져 사는 것이다. 본인이 원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안 하는 것이 맞다.



딩동댕! 전국 군 관사 자랑



퇴직해도 진해에 살어리랏다


경남 창원에는 진해라는 곳이 있다. 얼마 전까지 창원시 진해구였다가 2010년 진해시로 행정 구역이 바뀌었다. 일반인에게 진해는 군항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진해가 대한민국 해군의 모항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진해라는 이름부터 남다르다. 진해(鎭海), ‘진압할 진’, ‘바다 해’. 바다를 진압한다는 뜻이다. 진해는 조선 시대부터 해군의 요충지였다. 지형 자체가 군항으로 적합하고 수심도 깊어 큰 배가 정박하기에도 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1910년도 일제에 의해 군사 도시로 개발되었다. 진해는 해군과 뗄 수 없는 도시이다.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에 의해 진해에서 해군이 창설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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