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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아미타브 고시 지음 | 에코리브르


육두구의 저주

아미타브 고시 지음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 488쪽 / 27,000원





램프가 떨어지다




셀라몬은 인도양의 남동쪽 끝 작은 섬들이 운집해 있는 반다제도에 자리한 마을인데, 1621년 4월 21일 밤 셀라몬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오늘날까지도 베일에 싸여 있다. 네덜란드인 관리 마르테인 송크가 임시 거처로 삼고 있던 건물의 바닥에 램프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빼고는 말이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셀라몬 사람들과 그들의 동료 반다인은 능력이 닿는 한도 내에서 네덜란드인에게 항거해 왔고, 가끔은 유럽인들을 몰아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송크가 거느리고 온, 대규모에 무장이 잘된 세력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열세였던 그들은 이번에도 능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송크를 달래느라 애썼다. 일부 마을 주민은 숲으로 도망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아마 뭔가 착오가 있었을 거라고, 자신들이 어떻게든 저항하면 네덜란드인은 떠날 거라고 희망하면서 마을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송크에게는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었는데, 군인이 아니라 국세청 관리인 그가 떠맡기에 특별히 적절한 임무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는 열패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의 침묵 속에서 그는 소용돌이치는 분노를 감지했고, 아마도 그들이 자신에게 무슨 핑곗거리를 제공해 주길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모종의 구실을 말이다.

송크가 셀라몬의 회의장으로 자신의 고문들과 함께 돌아온 4월 21일 밤, 그의 심리 상태는 더없이 불안정했다. 분위기가 그러했던지라 아마 송크의 심리 상태를 알고 있는 이로서는 누구도 어떤 물건이 떨어지는 일을 그저 일상적인 하찮은 사고로 흘려 넘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램프가 떨어졌을 때, 송크는 그것이 자신과 그의 병사들에 대한 기습 공격을 촉발하려는 목적을 지닌 신호라는 결론으로 비약했고, 그와 그의 고문들은 각자의 무기를 집어 들고 닥치는 대로 쏘아 대기 시작했다.

활화산인 구눙아피는 반다제도 위에 우뚝 솟아 있는데, 그 화산을 둘러싼 바다에는 파도 위로 솟아오른 원뿔형 산들이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그중 어떤 것은 높이가 1000미터 넘게 치솟아 있기도 한데, 바로 그 지역의 이름은 말루쿠였다. 반다제도에서 자연이 구눙아피에 선사한 선물은 이 군도에서만 번성한 하나의 생물종이었는데, 바로 육두구(nutmeg)와 메이스(mace)를 생산하는 나무다.

말루쿠에서만 볼 수 있는 육두구나무와 달리, 육두구 열매는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였다. 중국 문헌에서 육두구에 대한 언급은 기원전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가고, 라틴 문헌에서는 육두구가 그 100년 뒤에 등장한다. 하지만 육두구는 아마도 작가들이 문헌에서 그에 대해 언급할 생각을 하기 훨씬 전에 이미 유럽과 중국에 당도했을 것이다. 분명 이는 기원전 400~300년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고학적 유적지에서 탄화한(숯이 된) 육두구가 발굴된 인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결국에 가서 유럽 항해자들을 말루쿠로 불러들인 것이 바로 그들의 여행이었다. 즉, 유럽 항해자들이 찾아온 것은 육두구 같은 식물 제품이 그들보다 훨씬 앞서 거꾸로 다른 지역들을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두구처럼 값싸고 하찮은 무언가에 관한 이야기가 과연 21세기와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까? 결국 반다제도에서 일어난 일은 식민지화 역사의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고, 그 역사는 지구 반대편인 남북 아메리카에서 훨씬 더 대규모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 역사의 장을 이루는 페이지는 진즉에 넘어갔다고, 21세기는 식물과 식물 물질이 인간 존재의 운명을 좌우하던 오래전과 전혀 닮은 구석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흔히 현대는 인류를 지구로부터 해방시키고, 인공 제품이 자연 제품보다 우위에 있는 새로운 진보의 시대로 인류를 이끌었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난감하게도 앞에서 언급한 것 가운데 사실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오늘날 300년 전보다 (아니 500년 전, 심지어 5000년 전보다) 식물 물질에 훨씬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비단 식량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현재 인류는 오랫동안 매장된 탄소로부터 나오는 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살아간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가 화석화한 식물 물질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재화의 유통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화석 연료는 인간이 만든 그 어떤 범주의 재화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크다. 에너지 무역 및 운송은 국제 거래에서 3조 달러가 넘는 방대한 규모로, 200만 킬로미터의 파이프라인과 5억 톤의 상선 운송을 통해 제품 배송을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10대 글로벌 기업 가운데 8개가 에너지 기업이다. 또 글로벌 해운 선단의 3분의 1이 석유 수송을 담당하고 있다.

인간이 지구에 대한 물질적 의존에서 벗어났다는 근대성의 신화 만들기를 잠시 접어 두고, 지구 산물에 대한 인간의 예속이 점차 커지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반다제도 이야기가 더는 현재 우리의 곤경과 달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둘의 연속성이 너무나 긴박하고 강력해서 반다제도의 운명은 우리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오늘을 위한 본보기로 읽힐 여지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들의 거주지를 싸그리 불살라라”




얀 피터르스존 쿤이 이끌고 온 함대는 반다제도가 그제껏 경험한 것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쿤은 유혈 사태에 철저히 대비하기는 했지만, 반다인이 평화롭게 각자의 집을 떠나도록 설득하고자 애쓰는 식으로 추방 작업에 나섰다. 그러기 위해 네덜란드 병사와 관리들을 마을마다 파견해서 거주민들에게 잠자코 무기를 내려놓고, 방어 시설을 허물고, 순순히 강제 추방에 응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거주민 상당수가 항복하는 대신 숲으로 도망친 것이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송크를 론토르섬의 관리자로 임명한 쿤은 그를 셀라몬으로 보내 원로들에게 시간이 다 되었다는 설명을 하도록 지시했다. 지금 당장 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적으로 취급할 거라고 말이다.

4월 21일 밤, 기함에 머물던 쿤은 거슬리는 총격 소리를 들었을 때, 곧바로 그 자신이 반다제도를 처음 방문했을 당시처럼 송크와 그 일행이 매복 공격을 당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체 없이 4개 중대 병사들에게 급히 달려가서 론토르섬의 송크를 도우라고 명령했다. 이튿날 아침 증강 병력이 송크가 있는 셀라몬에 당도했을 때, 그곳에서는 간밤의 긴장감이 다소 누그러든 상태였다. 하지만 머스킷 총을 든 병사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마을은 공황 상태에 빠졌고 교전이 벌어졌다.

그러는 동안 쿤은 반다제도의 원로들을 자신이 직접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 가운데 몇 명이 그의 기함에 끌려왔다. 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조약의 파기, 1609년의 매복 공격, 그리고 기타 수많은 저항 행위를 그들에게 장황하게 상기시켰다. 그가 말을 마치자 반다제도의 원로 가운데 한 사람이자 혼혈 조상을 둔 것으로 보이는 용커르 디르크 칼렌바커르는 총독에게 자신과 기타 오랑카야들은 그저 존경받는 사람일 뿐 통치자가 아니기에 모든 반다인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총독에게 네덜란드인은 육두구와 메이스에 지불해야 할 액수와 관련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기 일쑤였고, 그래서 섬 거주민들은 부득이 다른 파트너와 거래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유혈이 낭자했던 과거의 적대 행위에 대해서는, 양편이 서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운 충돌이었노라고 해명했다. 모든 말을 마친 뒤 그는 화해 의사를 밝히려 애썼고, 그들 방식의 가장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면서 쿤에게 앞으로 그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약조했다.

하지만 쿤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쿤은 반다제도의 원로들과 만난 날로부터 이틀 뒤, 본인의 고문위원회에 자신은 론토르섬 사람들이 항복하기보다 죽기로 작정했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따라서 이제 “남은 장소를 파괴하고, 그 땅에서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들을 잡아서 우리가 (그들에게) 하고 싶은 건 어떤 일이든 (해낼지)” 여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발표했다. 고문위원회는 만장일치로 동의를 표시했다. 21명의 고문은 “네덜란드 군대를 파견해 그들의 마을을 싸그리 불사르고, 반다인이 우리에게 올 수밖에 없거나 그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다.”고 선언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일주일 동안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건은 쿤과 그의 고문위원회가 밝힌 지시들이 글자 그대로 이행되었음을 증명됐다. 네덜란드 군대가 마을과 정착촌을 파괴했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거주민을 포로로 삼고 나머지는 살해한 것이다. 붙잡힌 포로는 늙은 남성, 여성, 그리고 아이들 가릴 것 없이 노예가 되어 자바로 보내졌다. 오랑카야 가문의 구성원 789명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예가 된 그들 가운데 일부는 결국 스리랑카처럼 먼 곳으로 이송되었다.

만약 승자들이 한 부족을 공식적으로 말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유럽의 제국주의 교리가 실제로 그 방향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리는 철학자이자 잉글랜드 대법관을 지낸 프랜시스 베이컨 경(1561~1626)의 저작에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반다 대학살이 자행될 무렵, 그리고 피쿼트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출간한 책 『성전에 관한 광고』에서 베이컨은 기독교를 믿는 유럽인에 의한 특정 집단의 존재 말살이 왜 합법적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소상히 늘어놓았다. “일부 국가에서 민법에 의해 불법화되고 금지된 특정인이 존재하듯, 자연의 법 및 여러 국가의 법에 의해, 또는 하나님의 계명에 의해 불법화되거나 금지된 국가들도 있게 마련이다.”

베이컨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방탕한 국가는 기실 국가도 아니요, 그저 자연법칙에 비추어 볼 때 완전히 뒤떨어진 “불온한 사람들의 떼거리”일 따름이다. 그런 연유로 “시민 정신이 투철하고 치안이 잘 갖춰진 국가가 …… 그들을 이 지구상에서 제거하는 것은 합법적일뿐더러 신의 뜻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이 교리는 18세기 국제법을 성문화한 법학자 에메르 드 바텔에 의해 공식화되었다. 그는 “그와 같은 야만적인 민족을 처벌하고, 말살하는 목적을 함께하는 데에서 각국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 주장은 기독교를 믿는 유럽인에게 그들 눈에 잘못되었거나 괴물처럼 보이는 민족을 공격하고 말살할 수 있는 천부적 권리를 부여했다. 피터 라인보와 마커스 레디커는 이렇게 주장했다. “제노사이드와 신성이 교차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결정적 생각’에 힘입은 결과였다. 따라서 성전(聖戰)에 대한 베이컨의 광고는 여러 유형의 제노사이드를 촉구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성경』과 고대의 고전적 풍습에서 승인을 구하는 제노사이드 말이다.” 베이컨의 추론은 고풍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오늘날까지도 줄곧 제국의 작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근본적으로 그는 잘 통치되는 국가(즉 “시민정신이 투철하고 치안이 잘 갖춰진 국가”)는 “뒤떨어지고” “자연의 법 및 여러 국가의 법”을 위반하는 국가들을 침략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 셈이고, 이것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의 근본 교리로서, 최근 서구 열강이 일으킨 ‘선택에 의한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누차 언급되곤 했다.



테라포밍(terraforming)




이름 바꾸기(renaming)는 식민지 개척자들이 자기가 정복한 풍경의 옛 의미를 지우는 도구 가운데 하나였다. 뉴잉글랜드에서 청교도들은 피쿼트족을 말살한 직후, 존 메이슨의 말마따나 “그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을 지상에서” 차단하는 작업에 전념했다. 이를 위해 코네티컷주 총회는 생존자들이 스스로를 피쿼트라고 부르는 행위를 불허하기로, 피쿼트강을 템스강(Thames)으로 바꿔 부르기로, 피쿼트라고 알려진 마을을 뉴런던(New London)으로 개칭했다. 이 같은 이름 바꾸기 행위에서 ‘뉴(new)’는 이례적일 정도의 의미론적, 상징적 폭력과 함께 쓰이기에 이른다. 이것은 과거를 지움으로써 백지상태를 만들어 내고, 멀리 떨어진 모종의 장소(“친애하는 우리 고국”)에서 가져온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다.

‘뉴’라는 단어가 북ㆍ남미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도에 널리 만연한 현상은 유럽의 팽창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 가운데 하나를 암시한다. 즉, 생태적ㆍ지형적 변화가 그것이다. 생태사가 앨프리드 크로즈비가 오스트레일리아와 북ㆍ남미(그리고 뉴질랜드와 카나리아제도)의 지형, 동물군, 식물군, 인구 통계학에 가져온 변화를 기술하기 위해 ‘네오유럽(Neo-Europes)’이라는 용어를 지어냈을 때 강조하려던 것이 바로 유럽 식민주의의 이 같은 측면이었다. 크로즈비가 글을 쓰던 1980년대에는 육상 풍경의 변화가 지구 전체의 대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억지처럼 들렸을지도 모르지만, 지구 시스템 간의 복잡한 관련성이 점차 분명해지는 지금, 그럴 가능성은 더 이상 ‘있음직하지 않은’ 게 아니다.

지구가 1세기 반 동안 냉각을 겪어 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중반까지 흔히 ‘소빙기’라고 불리는데, 이 시기에 대기 중 탄소 농도가 급격하게 하락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이상 현상은 태양 활동이나 지진 활동의 변동 같은 ‘자연적’ 요인 탓으로 간주되었다. 그 이상 현상은 유럽이 북ㆍ남미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단단히 죄고 있을 때 일어났는데, 이 사실은 오랫동안 그저 우연의 결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또 다른 가능성을 암시한다.

즉 유럽의 살육으로 시작된 북ㆍ남미의 재앙에 가까운 인구 감소가 소빙기의 전 지구적 평균 기온 하락에 얼마간 기여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말이다. 16세기와 17세기에 너무나 많은 아메리카 인디언이 숨져서 한때 식량 재배 용도로 쓰이던 방대한 경작지가 숲으로 되돌아갔다. (이것이 바로 남미와 중미의 정글에서 아직까지도 도시와 사원 단지가 발굴되는 이유다.) 북ㆍ남미 대륙에서 갑작스럽게 푸른 나무가 늘어나자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격리되고, 그에 따라 전 지구 차원의 평균 기온 하락에 기여한 역온실가스 효과가 생겨났다는 가설이 있다. 이 가설은 결코 입증된 적이 없다. 하지만 만약 소빙기가 부분적으로나마 인간 활동에 의해 야기된 게 사실이라면, 이는 인류가 기후 변화를 유발한 우리 시대와 17세기 간의 또 한 가지 연관성을 규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

‘테라포밍’이라는 표현은 공상 과학 소설 작가 잭 윌리엄슨이 만들어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42년 출간한 중편 소설에서 그 표현을 사용했다. 윌리엄슨의 신조어는 ‘테라(terra)’, 즉 ‘땅’, 그리고 ‘만들기’ 또는 ‘형성하기’라는 의미의 ‘포밍(forming)’을 결합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땅 만들기’, ‘땅의 형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테라포밍 개념은 그 신조어가 탄생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외계인이 그들의 사용에 적합하도록 개조할 목적으로 지구를 공격하는 내용을 담은 웰스의 소설 『우주 전쟁』은 테라포밍에 대한 견해를 전제로 한다. 이 소설은 잘 알려진 식민지 시대의 ‘말살 전쟁’ 가운데 하나, 즉 영국인이 테드메이니아섬을 식민지로 만든 뒤 그곳의 토착 부족을 절멸시킨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우주 전쟁』에서 웰스가 한 일은 식민지적 관점을 뒤집는 것이다. 지상 제국의 대도시 심장부 자체가 선진적인 외계인 종족의 식민지화 위협에 시달린다. 그 외계인들은 영국인이 무수한 다른 민족에게 저지른 일 - 즉 그들을 말살하고, 그들의 땅을 침탈하고, 그 땅을 자기들의 용도에 맞도록 개조한 일 - 을 지구 행성의 거주민에게 되갚아 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따라서 공상 과학 소설에 녹아 있는 테라포밍 개념은 식민지 시대 역사를 기반으로 추론한 결과다. 그것이 네오유럽 창출 프로젝트를 네오지구(Neo-Earths) 창출 프로젝트로 확장한 것이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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