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주4일 노동이 답이다

안나 쿠트 외 지음 | 호밀밭


주4일 노동이 답이다

안나 쿠트 외 지음

호밀밭 / 2022년 5월 / 133쪽 / 15,000원





들어가며




세계 인권 선언 제24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사람은 합리적으로 노동 시간을 제한하고, 유급 정기 휴가를 포함한 휴식과 여가의 권리를 갖는다.” 그런데, 무엇이 ‘합리적’이고 어느 정도의 ‘휴식과 여가’여야 충분한 걸까? 이 책에서 우리는 그 답이 ‘주 4일 노동’이라고 주장하려 한다. 우리가 돈을 위해 일하는 데는 지금보다 시간을 덜 쓰고, 대신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을 때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될 테고 우리의 삶도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표는 누구나 적절한 삶을 위해 일해야 할 시간을 주당 4일 혹은 30시간 정도로, 혹은 1년에 걸쳐 그 비슷한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에게 주 4일 노동이 기계적으로 적용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삶의 질을 개선함으로써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방식으로 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한 여러 조치가 점진적으로 도입되리라 예상한다. 이어질 내용 속에서 우리는 ‘주당 근무 단축’ 혹은 ‘노동 시간 단축’과 같은 용어들을 이런 아이디어를 전하기 위해 번갈아 사용할 것이다.

이는 1년 동안 주말을 3일씩 갖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매주 5번의 여유 있는 오후가 생긴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며, 나아가 남는 시간을 모아 뒀다가 한 번에 일주일 혹은 그 이상으로 사용함으로써 더 긴 휴식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여러분은 이 시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 시간에 아이를 돌볼 수도 있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있으며, 무언가를 공부하거나 공원을 달리거나 선반을 설치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또는 춤을 배우거나 아무튼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대부분이 돈을 위해 일하는 시간은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장시간 중노동’에 대한 일종의 집단적 중독 현상이 존재한다. 그 길만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고 지금의 삶을 버티게 해 줄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이다. 참고로 2019년 한 은퇴한 방사선 전문의가 타임스에 주 4일 노동을 도입하겠다는 영국 노동당의 공약을 비난하는 글을 보냈다. 그녀는 국민 건강 보험이 수련의들의 노동 시간을 주 56시간으로 제한함으로써 이미 이런 공약에 ‘무릎을 꿇은 셈’이라고 주장하면서, 주 4일 노동은 그들의 수련에 피해를 주고 의료 서비스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개탄했다.

물론 극단적인 경우일 수 있지만, 이 사례는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만족스러운 대안을 상상하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걸 잘 보여 준다. 주당 노동 시간이 40시간이든 혹은 그 이상이든 간에 우리는 그것을 그냥 ‘정상(normal)’이라고 인지해 왔다. 통상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일, 모호하지만 옳은 일이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2020년의 코로나19 위기가 전 세계에 걸쳐 정상적이라고 생각해 왔던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쉽게 파괴했는지 생각해 보라.

‘정상(normal)’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어떻게 ‘정상’이라고 여기게 됐는지 좀 더 살펴보자. 19세기 영국의 정규 노동 시간은 주당 6일이었고 하루에 10시간에서 16시간씩 일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부터 영국과 미국의 노동자들이 노동 시간에 대한 ‘정당하고 충분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고, ‘8시간 운동’이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의 자유’를 요구했다. 1856년에는 호주의 석공들이 세계 최초로 하루 8시간 노동을 위한 투쟁에 성공했고, 영국에서는 1889년에 가스 노동자들이 최초로 하루 8시간 노동을 쟁취해 냈다. 이후 1919년, 막 설립된 국제노동기구(ILO)는 산업노동 시간 협약을 제정해 하루 8시간 또는 주 40시간 노동의 원칙을 확립했고 52개국이 이를 비준했다.

이후 1926년 미국 포드자동차는 임금 삭감 없이 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주 5일, 40시간 노동을 도입한 최초의 회사 중 하나였다. 이후 생산성은 향상했고 포드자동차는 나날이 성장했다. 이후 노동 투쟁과 정부 정책이 결합하면서 20세기 중반까지 이틀 동안의 주말과 주 40시간 노동은 표준이 되어 널리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평균 노동 시간은 계속 감소했지만, 1980년대만큼은 아니었다. 이후 많은 나라에서 이런 흐름이 완화되었고 어떤 나라에서는 오히려 역전되었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30년 동안, 생산성은 빠르게 증가했다. 동시에 단체 교섭도 경제 분야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했고, 공공 부문 조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부분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이익이 임금 인상과 평균 노동 시간 감소라는 측면에서 사회 전반에 걸쳐 더 고르게 퍼져 나갔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선진국들을 지배하던 게임의 규칙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업과 정부의 투자가 전반적으로 줄어들면서 노동 생산성 성장률도 떨어지기 시작했고 제조업은 쇠퇴하고 서비스 부문은 성장하면서 산업 구조도 재편되기 시작했다.

이후 정보 통신 기술이 점점 더 지배적인 산업으로 부상했지만, 수십 년 전 제조 및 생산 공정을 개선했을 때에 비하면 GDP 성장에 대한 측정 가능한 한계 이익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경제 규모는 이전보다 더 느리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전보다 더 큰 몫이 노동자들을 희생시키면서 부동산 소유주와 주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은 결정적이었다. 더 나은 임금과 노동 조건을 위해 교섭해야 할 노동조합의 역량은 크게 약해졌다. 전반적으로, 부의 수익률에 비해 급여는 훨씬 느린 속도로 증가했다. 소득 불평등은 전후(戰後) 유례가 없을 만큼 유럽과 북미 전역에 걸쳐 심각해졌고, 이후 다른 나라에서도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증상들을 통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문화의 발전


이 모든 것의 이면에는, 무엇이 ‘정상’인가에 대한 것만큼이나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를 형성하는 생각들의 결합이 존재한다. 포드자동차가 주 5일 40시간 노동을 도입했던 해인 1926년, 미국 종합 철강 회사의 이사회 의장이었던 앨버트 H. 개리 판사는 인터뷰에서 주 5일 노동이 비현실적이고 경쟁에 뒤떨어지는 데다 비논리적인 일이라며 이는 철강 노동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성경에서 이르길, ‘6일 동안 네 모든 일을 힘써 하라.’고 했는데, 7일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일곱 번째 날은 쉬어야 할 날이고 이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노동 시간 단축에 대한 개리 판사의 혐오는 상업적 위험에 대한 단순한 두려움을 넘어선 더 깊은 무언가를 끌어냈다. 그는 노동이야말로 신으로부터 주어진 인류의 목적이라는 널리 퍼진 믿음을 활용했다. 노동이 잔인하고 강압적인 것이라면 데카르트가 제안했던 것처럼 몸과 마음의 구분이 도움 되었다. 만약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면, 신을 닮은 본질은 안전하게 마음(혹은 영혼)에 놓일 수 있고, 산업 자본주의의 광산, 제분소, 공장 등을 위한 기계가 되기 위해 갈고 닦은 유한한 육체로부터 따로 구분되어 영생할 수 있을 것이었다.

기계로 작동되는 시계는 이런 훈련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였다. 시계 장치가 신뢰받으며 널리 사용됨에 따라 마르크스가 ‘시간의 상품화’라고 정의한, 또 역사학자 에드워드 톰슨이 ‘산업적 시간 의식’의 탄생이라고 묘사했던 바로 그런 상황이 시작됐다. 산업은 노동자들이, 계량화할 수 있고 사고팔 수 있으며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계가 되기를 요구했다.

아무튼 ‘시계의 시간’은 이익과 성공을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는 근면의 윤리를 강력한 직업 윤리로 받아들이는 데 기여하고 강화했다. 이 윤리는 여러 나라에 걸쳐 경제와 문화의 발전에 깊게 뿌리내렸다. 또한, 현대 자본주의가 잘 굴러가도록 하면서도 점점 더 해로운 영향을 끼쳤다. 장시간의 유급 노동이 미덕이자 성공을 위한 길이라면, 이는 곧 인간 존재의 주된 목적과 가치가 생산력에 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이런 논리라면, ‘비생산적인’ 사람은 가치가 없다는 말이 된다. 겨에서 밀을 골라내듯, 열심히 일하는 ‘노력파’는, 게으른 ‘놀자파’에서 분리되고, 전자는 그만큼 보상받고, 후자는 그만큼 처벌받는다. 점점 더 인색해지는 ‘사회 보호’ 시스템에 의해서 말이다.

우리는 ‘정상(normals)’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경제와 문화라는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신호들이 있다. 오늘날 선진국에서 경제 성장이 사실상 연간 노동 시간의 단축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 있는 그리스나 멕시코처럼 더 가난한 나라들은 연간 노동 시간은 많은데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반면, 다른 쪽 끝에 있는 북유럽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연간 노동 시간은 적은데 생산성은 높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노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칙 같은 건 없다. 중요한 건, 생산성만이 아니라 그렇게 생긴 이득을 누가 어떻게 얻는가 하는 것이다. 노동 시간과 다른 경제적 기반 사이의 관계는 문화와 제도에 의해 뒷받침되는 특별한 경로 의존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국가가 얼마든지 그런 경로를 바꿀 수 있고 실제로 바꿨다는 걸 보여 준다. 정치인, 노동조합, 그리고 더 넓은 범위의 시민 사회가 어떻게 결정하고 행동하는가에 따라 실질적이고 중요한 차이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문화적 편견에 영원히 갇혀 있을 운명이 아니다.

개리 판사처럼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표준 노동 시간이 있다고 믿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구성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우리가 바꿀 수도 있다는 데 동의할 수 있다. 주 5일 혹은 주당 40시간의 유급 노동은 ‘정상’도, ‘필연적인’ 일도 아니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파는 과정이 우리 삶의 다른 측면을 통제하거나 형성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우리 각자가 더 많은 걸 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 경제에 유익하다고 가정하면서 모두가 일하기 위해 살고, 돈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결국 모든 경제 활동은 인류와 지구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지 그 반대여서는 안 된다.

과로는 건강을 해친다.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 되면 돈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 주는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자원 집약적인 물건을 점점 더 많이 소비하다 보면 우리의 유한한 행성은 더 버티지 못하고 전 세계를 재앙으로 몰아넣을 위험이 크다. 시간은 잘 가꾸고 보살펴야 할 자산이다. 돈과 상관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우리 삶의 조그만 구석으로 밀쳐놓고 꽉꽉 짜낼 수만은 없다. 바로 이런 사실들이 우리가 주당 노동 시간을 더 줄여 나가야 할 강력한 이유들이다.



우리는 왜 더 적게 일해야 하는가




여기에서는 주당 노동 시간 단축을 위한 움직임이 건강 악화, 노동 시간 분배의 불평등, 성별 불평등, 보육을 비롯한 다른 공공 서비스의 변화, 민주주의의 향상, 그리고 생태적 지속 가능성 증진 등을 포함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방법을 모색한다.

건강과 웰빙


긴 노동 시간과 과로는 사람들이 병가를 내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인 심각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병가가 기록된 노동자들 외에, 과로로 인한 폐해를 무릅쓰고 계속 일하는 많은 다른 노동자들도 있는데, 그들은 질병뿐 아니라 오류와 사고의 위험을 높일 수 있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다. 과로는 기업이 더 큰 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성과를 좀먹는다. 더 중요하게는 과로가 사람들의 삶의 질을 훼손하고 그들이 더 풍요롭고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 시간의 단축은 우리 대부분의 고용 경험을 향상시키고 건강을 보호하며 업무의 질만큼이나 삶의 질도 증진시킨다. 한편 건강과 행복의 혜택은 임금 손실 없이 노동 시간이 단축될 때 더 크지만, 비록 임금이 다소 삭감되거나 임금의 인상 폭이 줄어들더라도 노동 시간 단축은 종종 스트레스를 비롯한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여러 증상을 줄여 줌으로써 맡은 업무의 질을 높여 주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노동과 시간의 분배


2018년 영국에서 불완전 고용자로 지정된 사람은 239만 명이었던 반면, 그럴만한 여유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더 적게 일하고 싶다고 답한 사람은 1,024만 명이었다. 그리고 666만 명은 급여 손실 없이 더 적은 시간 일하기를 희망했다. 아무튼 우리에게 노동 시간의 공정한 분배는 부족한 상황이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유급 노동과 휴무 사이의 균형을 누릴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노동 시간뿐만 아니라 임금과 안전 또한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있다. 2008년 이후, 급증한 제로 아워(Zero-Hours) 계약이나 이른바 ‘긱 이코노미(gig economy)’는 주요 고용 수치들을 복잡하게 만들어, 저임금과 불안 및 불안정 고용 같은 심각한 문제들이 가려질 수도 있다. 그리고 또 자동화가 더 많이 진행되면 기존의 노동 시간과 소득 간 불평등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개인의 건강과 행복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해롭다. 신체와 정신의 건강, 약물 남용, 교육, 구속, 사회적 이동, 신뢰와 공동체의 삶, 폭력, 십 대의 임신, 아동 복지 등을 살펴보면, 부유하면서도 불평등 정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그 결과가 나쁘다. 물론 노동 시간 단축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동 시간 단축은 ‘긱 이코노미’의 시대에 시급을 높이고 고용 안정성과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유급 일자리를 노동 인구 전체에 더 고르게 분배함으로써,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게 하는 대신에, 더 많은 사람이 충분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넉넉하게 구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유급 노동과 무급 노동


유급 시간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처럼 돌봄, 양육, 요리, 세탁, 청소, 그 밖의 수많은 일상 활동들 속 무급 시간도 마찬가지다. 이런 활동들은 공식적인 경제를 떠받치는 필수적인 토대를 제공하는 ‘핵심 경제’인데, 이 핵심 경제는 인적 자산과 인간관계의 재정산을 포함한다. 하지만 무급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핵심 경제는 대체로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고 무상으로 이루어지며 나아가 무시되거나 부당하게 착취당한다. 그러나 사실은 엄청난 가치가 있다. 이것 없이는 공식적인 경제도 전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건강한 사회냐 아니냐의 문제는 이 핵심 경제 속 관계의 질에 따라 전적으로 달라진다.

핵심 경제는 그것이 운용되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 더 풍요로워지고 확산될 수도 있지만, 더 약화되거나 침체될 수도 있다. 공식적인 경제가 직장에서 인간적인 시간을 너무나 많이 소비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바로 그 핵심 경제를 약하게 만들고 깎아내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주당 노동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사람들이 수익이나 거래와 상관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 숨 쉬는 활동에 기여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시간을 제공함으로써 핵심 경제가 더욱 번창하도록 돕는다.

젠더 관계


핵심 경제 역시 경제적 삶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반영하는데, 핵심 경제 활동의 대부분은 보수 없이 일하는 여성의 몫으로 돌아간다. 여성들은 대부분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파트타임이나 임시직, 불안정한 직업들을 떠맡는다. 그녀들의 시간이 대부분 무급 돌봄 책임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이는 일자리나 재력 등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 불평등 상태를 발생시킨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