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의 사회정치학
파블로 세르비뉴, 라파엘 스테방스 지음 | 에코리브르
붕괴의 사회정치학
파블로 세르비뉴, 라파엘 스테방스 지음
에코리브르 / 2022년 10월 / 312쪽 / 18,500원
서론: 언젠가 반드시 다루어야 할 주제위기, 재앙, 붕괴, 쇠퇴…… 뉴스에서 세상의 종말을 암암리에 읽을 수 있다. 항공기 추락, 태풍, 홍수, 꿀벌 개체 수 감소, 주가 하락, 전쟁 등과 같은 몇몇 재앙은 현실적이라 뉴스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실패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거나 ‘지구 차원의 위기’를 선포하거나 ‘여섯 번째 대멸종’을 주장한다면, 이것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미디어에서 쏟아 내는 재앙 선포는 받아들이면서, 주요 재앙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재앙주의자’로 취급하는 것은 모순이다! 예로 IPCC가 2014년 기후 변화에 대한 새 보고서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새 기후 시나리오에 대해, 또는 이것이 사회 변화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실질적으로 토론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재앙이다.
어쩌면 우리는 나쁜 소식에 지쳤을 수도 있다. 게다가 지구 종말에 대한 위협은 항상 존재하지 않았던가? 최악의 모습으로 미래를 보는 것은 유럽이나 서구의 전형적인 자기애적 현상이 아닐까? 재앙주의는 자금이 부족한 녹색당(환경 보호주의자) 지도자나 과학자들이 만들어 낸, 대중을 위한 새로운 아편이 아닐까? 그러니 프랑스인 여러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우리는 ‘위기’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재앙, 실제로 지속적인 재앙이나 현실의 속도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재앙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아닐까? 우리는 이제 우리가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선 심각한 환경, 에너지, 기후, 지정학, 사회 및 경제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이러한 모든 ‘위기’는 상호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시스템으로 인해 우리의 이웃(심지어 공동체 내의 모든 사람)이 생존 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는 능력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엄청난 양의 증거와 단서를 가지고 있다.
1부 붕괴의 시작
자동차의 가속자동차에 비유해 보자. 산업화 시대가 시작되면서 자동차가 등장했다. 몇몇 국가들이 자동차에 올라탄 채 시동을 걸었고, 한 세기가 지나는 동안 다른 국가들도 여기에 합승했다. 우리가 산업 문명이라고 부르게 될 이 자동차에 올라탄 국가들은 모두 매우 특별한 길을 걷는다. 단계적으로 천천히 시동을 걸었지만 이 자동차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 속도를 냈고, ‘대가속’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파르게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날 엔진이 과열되었다는 몇몇 징후가 나타났고 속도계의 바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속도를 계속 높여야 할까? 안정시켜야 할까? 다시 낮춰야 할까?
지수 함수의 세계: 우리는 기하급수적 성장을 상상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물론 우리는 위를 향해 뻗어 가는 곡선, 즉 성장 곡선을 자주 접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까! 사람들은 산술적 성장, 예를 들어 한 달에 1센티미터씩 자라는 머리카락은 쉽게 상상하지만 기하급수적 성장은 상상하기 힘들어한다. 참고로 수학에서 지수 함수는 하늘까지 상승한다.
현실 세계, 즉 지구에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천장이 있다. 생태학에서는 이 천장을 생태계의 수용 능력(K로 표시)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시스템이 지수에 반응하는 방식은 3가지가 있다. 초원에서 번식하는 토끼 개체군을 예로 들어 보자. 이 개체군은 천장에 닿기 전 천천히 안정되어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환경과 균형을 이루거나, 개체군이 초원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 한계치를 초과한 다음 그 초원을 가볍게 파괴하는 범위 내에서 안정되거나, 또는 천장을 뚫고 계속해서 증가해 초원을 초토화하고 뒤이어 토끼 개체군이 붕괴한다.
앞의 3가지 이론적 도표는 세 시대를 설명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첫 번째 도표는 1970년대의 정치 생태계를 나타내는데, 그 당시 우리는 여전히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경로를 따라갈 시간과 가능성이 있었다. 두 번째 도표는 1990년대의 생태계를 나타내는데, 생태 발자국이라는 개념 덕분에 우리는 지구가 전체적인 수용 능력을 초과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후 매년 인류가 ‘하나 이상의 행성을 소비’할 만큼 생태계는 악화하고 있다. 세 번째 도표는 2010년대의 생태계를 나타내는데, 20년 전부터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면서 우리를 수용하고 버텨 내는 지구 시스템을 훨씬 더 꾸준한 속도로 파괴하고 있다. 낙관론자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분명 붕괴의 범위에 들어가 있다.
전반적인 가속화: 우리는 사회의 수많은 매개 변수와 지구에 가하는 충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인구수, GDP, 물과 에너지 소비, 비료 사용, 엔진 또는 전화기 생산, 관광,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홍수 빈도, 생태계 훼손, 산림 파괴, 종의 멸종률 등 그 목록은 끝이 없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이 ‘계기판’은 인류가 지구 시스템의 주요 생물 지구 화학적 순환을 엉망으로 만드는 세력으로 부상한 시기를 가리키는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폭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몇 인류세 전문가는 인류세의 시작을 산업 혁명 기간인 19세기 중반으로 추정한다. 이 시기에 석탄과 증기 기관이 널리 보급되어 1840년대에는 철도가 급성장했다. 그 후에 최초의 유전이 발견되었다. 열-기계와 기술 과학의 시대는 농업과 수공업의 시대를 대체했다. 빠르고 저렴한 운송 수단의 출현으로 무역로가 열리고 거리감이 사라졌다.
산업화한 세계에서 자동 생산 라인의 지옥 같은 속도가 보편화하고, 물질적 편리함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서서히 높아졌다. 공중위생, 식품 및 의약품의 혁신은 수명을 연장하고 사망률을 극적으로 감소시켰다. 그 결과 지난 8000년 동안 약 1000년마다 2배씩 증가했던 세계 인구가 단 1세기 만에 2배로 늘어났다! 1830년 10억 명이던 인구가 1930년에는 20억 명이 된 것이다. 그런 다음 가속도가 붙어 인구가 또다시 2배가 되는 데는 4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1970년에는 40억 명, 오늘날에는 70억 명으로 늘었다. 20세기가 진행되는 동안, 에너지 소비는 10배, 산업 광물 채취는 27배, 자재 사용은 34배 증가했다. 우리가 불러일으킨 변화의 규모와 속도는 역사상 유례가 없다.
이런 엄청난 가속화는 사회적 차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독일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는 이러한 사회적 가속화의 세 가지 측면에 대해 설명한다. 첫 번째는 기술의 가속화다. “이동 및 통신 속도의 증가는 ‘공간 축소’라는 현대적 시간 경험을 가능케 했는데, 공간적 거리는 그걸 가로지르는 것이 더 빠르고 단순해짐에 따라 실제로 더 짧아진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는 사회적 변화의 가속화, 즉 우리의 습관, 관계 유형이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웃이 이사 왔다가 점점 더 빨리 이사 가고, 직장 동료나 인생 파트너와 함께하는 기간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우리는 진정한 ‘현재의 축소’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생활 속도의 가속화다. 이는 기술 및 사회적 가속화에 대한 반응으로 더 빨리 생활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는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해야 하는 (또는 하고 싶어 하는) 일이 계속 늘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극심한 ‘시간 부족’은 현대 사회의 영구적인 상태가 되었다.” 그 결과는? 행복에 대한 상실감, 번아웃 및 우울증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리고 진보의 절정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감당하고 있는 이 사회적 가속화는 더 이상 우리의 생활 수준을 개선하려는 야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단지 현상 유지에 기여할 뿐이다.
한계는 어디일까: 따라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천장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다. 우리에게 계속 가속할 능력이 있을까? 기하급수적 성장에 한계가 있을까? 그렇다면 붕괴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았을까? 앞에 언급한 자동차에 대한 단순한 비유는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위기’라고 부르자)를 명확하게 구별하게끔 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것은 2가지 유형의 한계, 정확하게는 한계와 경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계는 열역학 법칙에 부딪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연료 탱크의 문제다. 한편 경계는 건널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우리는 이미 그 경계를 지나치고 나서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는 차량의 속도와 핸들링의 문제다.
우리 문명의 한계는 재생 불가능한 ‘비축’ 자원(화석 연료 및 광물)의 양과 재생 가능하지만 재생할 시간을 갖기엔 지나치게 꾸준한 속도로 고갈되고 있는 ‘유동’ 자원(물, 목재, 식량 등)의 양에 따라 정해진다. 엔진은 항상 충분히 효율적일 수 있지만, 연료 부족으로 인해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한편 우리 문명의 경계는 그 문명을 유지하는 시스템, 즉 기후, 지구 시스템의 거대한 순환 생태계 등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파괴할 위험이 있어 넘지 말아야 할 문턱을 나타낸다. 자동차가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리면, 더 이상 도로의 세부 사항을 인식할 수 없어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이러한 위기들은 본질적으로 그 속성이 완전히 다르지만, 모두 속도를 높이고 있는 자동차라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각각의 한계와 경계는 그 자체로 문명을 심각하리만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의 경우 문제는 동시에 여러 한계에 부딪히고 이미 여러 경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자동차 그 자체는 수십 년이 지나면서 완벽해졌다. 훨씬 더 넓고 현대적이며 편안해졌지만, 그러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속도를 줄이거나 선회하는 것이 불가능한 데다 ? 가속 페달이 바닥에 고정되고 조향 장치가 막혀 있다 ? 더 곤란한 점은 자동차 내부가 극도로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우리 사회, 즉 열-산업 문명이고, 우리는 그 안에 타고 있다. 그리고 GPS는 햇볕이 잘 드는 목적지를 향해 맞춰져 있다. 그리고 휴식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자동차 실내에 편안하게 앉아서 속도를 잊은 채, 길을 건너다 자동차에 치이는 생명체, 소모하는 엄청난 에너지, 배출하는 배기가스의 양을 무시한다. 당신도 잘 알겠지만, 고속 도로를 타고 나면 중요한 것은 도착 예정 시간, 에어컨 온도, 라디오 프로그램뿐이다…….
1부에 대한 종합 평가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 정리해 보자. 우리 산업 문명은 재정적 혼란과 사회적 불안을 피하고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속도를 높이고 복잡해졌다. 에너지 관점에서 매우 효율적인 화석 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에 부채를 기반으로 극도로 불안정한 성장을 이룬 경제가 결합하면서, 산업 문명은 폭발적으로 팽창해 왔다. 그러나 이제 지구 물리학적 한계나 경제적 한계로 인해 산업 문명의 성장이 멈추고 생산성이 감소하는 국면에 이르렀다. 한계를 밀어내기 위해 오랫동안 사용해 온 기술은 더 이상 빠른 성장을 보장하지 못하고 혁신적 대안을 방해함으로써, 지금의 산업 문명을 지속 불가능한 궤도에 가두고 있다.
이와 동시에 경제 및 생태계의 복합적인 시스템은 특정 한계를 넘어서면 사전에 알 수 없었던 새로운 평형 상태로 갑자기 떨어지거나 심지어 붕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는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몇몇 ‘경계’를 사회 차원에서, 그리고 종 차원에서 이미 넘어섰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고 있다. 지구 기후 시스템, 수많은 생태계 시스템, 지구의 생물 지리 화학적 대순환 시스템은 우리가 알고 있던 안정적 범위를 벗어나 거대하고 급격한 혼란을 겪을 것이며, 이는 다시 산업 사회와 인류 그리고 다른 종들까지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 시대의 특징일 수도 있는 모순 ? 어쩌면 문명이 한계를 향해 돌진하고 경계를 넘었던 모든 시대의 특징일 것이다 ? 은 문명이 강력할수록 더 무너지기 쉽다는 것이다. 인류의 절반 이상이 누리며 살고 있는 현대의 세계화한 정치ㆍ사회ㆍ경제 시스템은 자원을 심각하게 고갈시키고, 기후와 생태계 시스템을 교란한다. 과거에 성장을 가능케 했으며 오늘날 안정성을 보장해 주고 생존을 가능케 해 주는 조건들마저 위험할 정도로 파괴하고 있다. 동시에 점점 더 세계화하고 상호 연결된 우리 문명의 구조는 시스템 안팎의 사소한 혼란에도 매우 취약해져 시스템 붕괴의 역학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다. 아주 심각한 기후 및 생태계 교란(종을 위협하는 유일한 요인)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려면, 이제 엔진을 꺼야 한다. 위험 요소를 없애기 위해 우리가 가야 할 유일한 길은 화석 연료의 생산과 소비를 중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적 그리고 아마도 정치적ㆍ사회적 붕괴를 초래하거나, 심지어 열-산업 문명을 끝장나게 할지도 모른다.
우리 산업 문명의 엔진을 보존하려면,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은 경계를 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계속 탐사하고 발굴하고 생산하고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필연적으로 기후, 생태, 생물 지구 물리학적 전환점으로 이어지고 자원의 정점에 부딪혀 궁극적으로 경제적 붕괴라는 동일한 결과를 초래한다. 인류, 그리고 살아 있는 거의 모든 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만 빼고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음 사실을 확신한다. ① 우리 사회의 물리적 성장은 가까운 장래에 멈출 것이다. ② 우리는 지구 시스템 전체를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바꾸어 놓았다. (적어도 지질학적 차원에서는 그러하다.) ③ 우리는 매우 불안정하고 ‘비선형적인’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이 미래에는 대규모 혼란이 일상화할 것이다. ④ 우리는 이제 잠재적으로 글로벌 시스템 붕괴를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많은 경제학자, 기후학자, 물리학자, 농업경제학자, 생태학자, 군인, 언론인, 철학자, 심지어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사회가 붕괴할 수 있다고 추론한다. 다시 자동차에 비유하면, 우리는 가속 페달을 이렇게 세게 밟은 적이 없었다. 연료 표시등에는 이미 경고 표시가 들어왔다. 속도에 취한 채 우리는 표지가 설치된 경로를 벗어나 장애물로 가득 차서 시야가 거의 확보되지 않는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고 있다. 일부 승객은 자동차가 매우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운전대는 그들의 손에 있지 않다. 운전자는 계속해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위기’를 하나 혹은 여러 개씩 따로 떼어 내지 않고 하나의 큰 그림으로 보면, 우리 시대를 훨씬 수준 높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예는 흥미롭다. (괄호는 해당 위기를 나타낸다.) 숲의 파괴(생물 다양성)는 바이러스(건강)의 확산에 유리했지만, 다수의 사망자와 일자리를 잃은 사람과 봉쇄 조치로 인해 경제 활동(경제)을 지연시켰고, 공급망(기반 시설)과 수확(식량)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했다. 그 결과 전염병이 시작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서아프리카에서 100만 명 넘는 사람이 기아의 위협을 받았고, 기니의 보건 시스템은 매우 취약해졌다(기반 시설).
산업 보건 시스템이 더 이상 대응을 하지 못하면, 전염병은 어떻게 될까? 이와 마찬가지로, 피크 오일과 같은 경고에 직면했을 때,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는 과학 등의 분야에서는 자발적으로 ‘해결책’을 찾고자 했지만, 그것이 종종 인접한 ‘위기들’과 양립할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모든 영역 간의 상호 연결성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러한 함정을 피하거나 더 많은 에너지와 원자재를 소비해 상황이 악화하는 걸 막을 기술적 ‘해결책’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