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 지음 | 크레타
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 지음
크레타 / 2022년 10월 / 276쪽 / 18,000원
1장. 그림에 음악 더하기
영웅을 사랑한 예술가들_ 바스키아 × 베토벤거리의 화가, 검은 피카소, 앤디 워홀의 후계자 등.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여러 개입니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지만 남달랐던 재능에 호감형 외모,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지원과 지지까지. 노숙하며 거리를 배회하던 화가가 미술계의 새로운 얼굴이 되어 대중의 사랑을 받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스키아는 인기가 절정에 올랐던 27세에 요절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로써 그의 신화 공식이 완성되었죠.
무명의 길거리 그라피티 아티스트였던 바스키아가 20대 초반 어마어마한 유명세를 얻게 된 데는 ‘최초로 유명해진 흑인 화가’라는 인식도 한몫했습니다. 하지만 바스키아는 “나는 흑인 아티스트가 아니라 그냥 아티스트”라며 세상의 평가를 강박적으로 싫어했죠. ‘검은 피카소’라는 별명도 흑인을 비하하는 뉘앙스 때문에 싫어했습니다.
바스키아가 활동했던 시기의 뉴욕은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했습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택시도 쉽게 잡지 못하는 현실에 그는 분개하곤 했죠. 때문에 마일스 데이비스, 듀크 엘링턴, 무하마드 알리, 행크 에런 등 음악과 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흑인 영웅들에 대한 그의 존경심은 남달랐습니다. 마음속 영웅들을 그린 그림에는 그의 사인이나 다름없는 ‘왕관’이 그려져 있습니다. <뉴욕, 뉴욕>의 오른쪽 위를 보면 고고히 빛나는 왕관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바스키아만의 독특한 표식으로 왕관이 그려진 그림은 그렇지 않은 그림보다 더욱 깊은 의미가 있고, 가격도 몇 배나 높습니다.
베토벤이 사랑한 나폴레옹: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은 하이든, 모차르트와 함께 고전주의 시대에 활동하며 낭만의 시대로 가는 물꼬를 튼 작곡가입니다. 클래식 음악계의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곡가 중 한 사람이죠. 베토벤의 인생에서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1789년 발발한 프랑스 혁명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유럽인들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유럽인들은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하면서 혼란스러운 시기를 평정할 영웅을 기다렸죠. 그때 등장한 사람이 나폴레옹입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부터 시작해 공화국 설립,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 쿠데타 등 엎치락뒤치락하던 권력 싸움은 군사령관 나폴레옹에 의해 진압됩니다. 이후 이집트 원정과 이탈리아 원정에서 승리하면서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죠. 유럽의 많은 지식인은 나폴레옹을 숭배했습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마저 나폴레옹의 흉상을 자신의 작업실에 둘 정도였으니까요.
이 시기 베토벤은 자신의 우상이었던 나폴레옹을 염두에 둔 교향곡을 작곡합니다. 그렇게 완성된 곡의 표지에는 <보나파르트 교향곡>이라고 적어 두었죠. 하지만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르자 베토벤은 분개합니다. “그 역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군. 자신의 야욕을 위해 모든 인간 위에 올라서서 독재자가 되려 하다니!”라며 ‘보나파르트’라고 적어 놓은 부분을 좍좍 그어 구멍을 내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교향곡의 부제를 ‘영웅’이라고 고쳐 썼고 지금까지도 <교향곡 3번>은 ‘영웅 교향곡’이라고 불립니다. 베토벤은 생전에 대중에 잘 알려진 교향곡 5번 ‘운명’보다 3번 ‘영웅’을 더 높이 평가했는데요. 영웅은 곧 베토벤 자신의 모습, 역경을 헤쳐 나가는 의지를 가진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덧없도다, 천재들의 마지막 순간: 뛰어난 음악성으로 동시대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전설’로 이름을 떨친 베토벤. 하지만 그의 말년은 고통으로 가득했습니다. 20대 후반부터 청력에 이상이 생겨 40대에는 완전히 귀가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죠. 이 밖에도 베토벤은 사망하기 전까지 만성 복통과 잦은 음주로 인해 간 질환, 두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베토벤처럼 생전에 부와 명예, 인기 등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바스키아에게도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긴다고 생각했고, 대중을 만족시킬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으며 마약 중독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결국 작업실에서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급사하고 말죠. 참으로 허무한 마지막입니다.
저는 종종 “우리는 삶 속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베토벤, 바스키아처럼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기댈 곳 없이 쓸쓸한 마지막을 보낸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리 각자가 가진 지식과 재능을 세상에 나누며 서로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기쁨과 위로의 제스처를 주고받을 때 삶이 한결 풍요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지친 이들을 위한 음악 진통제_ 쇼팽역사에 길이 남은 음악가들은 재미있는 별명들을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피아노의 예술적인 면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프레데리크 쇼팽은 ‘건반 위의 시인’이라 불릴 정도로 평생 작곡한 곡들 대부분이 피아노곡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콩쿠르도 있습니다. 1927년에 시작해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세계 3대 콩쿠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015년에 1등 수상과 함께 폴로네이즈 최고 연주상을 받았습니다.
쇼팽이 피아노곡 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치가 될 수 있었던 데는 피아노의 개량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페달로 음을 길게 지속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의 개성을 담은 실험적인 곡들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이죠. 특히, 쇼팽은 어릴 때부터 병약해 큰 음량으로 연주할 수 없었고, 연주 스타일 또한 섬세했던지라 개량된 피아노 덕을 많이 봤습니다. 쇼팽의 파리 데뷔 연주는 그를 후원하던 피아노 제조사인 플레옐의 홀에서 열렸는데, 데뷔 연주의 성공 덕분에 쇼팽은 귀족들의 살롱 콘서트를 드나들며 떠오르는 스타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후원자와 예술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평범함 속에 빛나는 멜로디: 쇼팽의 녹턴 장르 중 대표곡을 뽑아 보라고 하면 곧바로 <녹턴 Op.9-2>의 멜로디가 떠오릅니다. 이 곡은 봄바람 혹은 사뿐사뿐한 왈츠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클래식 라디오 방송의 시그널로 이 곡의 도입부 멜로디를 사용하고 있을 만큼 한 번 들으면 기억에 남을 만한 멜로디를 갖고 있지요. ‘녹턴’이라는 장르를 쇼팽이 창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 장르를 높은 서정성과 예술성을 띤 장르로 확립시켰습니다. 쇼팽이 녹턴이라는 장르에서 이런 위상을 차지하게끔 해 준 것이 바로 작품 번호 9번에 담긴 세 개의 녹턴이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쇼팽 생전에는 녹턴의 멜로디들이 평범하게 취급받으며 “살롱 음악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평을 듣곤 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시간이 지나야 진가를 발휘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주는 선물: 폴란드에서 음악 교육을 받다가 22세에 유럽 문화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이주한 쇼팽은 조용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으로 인해 처음에는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늘 고국과 가족을 그리워했습니다. 몇 년 후 그는 친구들과 독일에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어릴 적 같이 어울려 놀던 마리아 보진스카라는 여성과 재회하고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죠. 올리브색 피부와 검은 눈동자를 갖고 있던 그녀는 나폴레옹 3세가 한때 좋아했고, 폴란드 시인 스워바츠키는 그녀를 위한 시를 지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였습니다.
마리아와 쇼팽이 일주일간의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와야 했을 때, 쇼팽은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곡 <왈츠 Op. 69-1>을 그녀에게 선물합니다. 후에 이 둘은 약혼까지 하지만 마리아 부모님의 반대로 파혼하고 맙니다. 쇼팽의 건강이 큰 이유였습니다. <왈츠 Op. 69-1>은 아픈 사랑의 기억을 담은 곡이기에 쇼팽 생전에는 출판되지 않았지만, 사후에 친구가 악보를 발견하고 작품 번호를 붙여 출판하게 됩니다. 지금은 <이별의 왈츠>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리며 피아니스트들이 자주 연주하는 곡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에서 받은 영감: 파리 사교계에서 주목받던 음악가 쇼팽은 20대 후반에 몇 번의 사랑에 실패하고 건강까지 악화되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동년배의 피아니스트 리스트를 알게 되고, 그의 연인 마리 다구 백작 부인과도 친분을 쌓게 되죠. 그녀는 본인의 살롱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쇼팽은 그곳에서 조르주 상드라는 작가를 만나게 됩니다.
조르주라는 남성의 이름을 필명으로 썼던 이 여성의 본명은 아망틴 오로르 뒤팽. 쇼팽보다 여섯 살 연상이었고 아이들의 싱글 맘이자 소위 히트 작가였습니다. 두 사람은 출신도, 살아온 배경도, 추구하는 가치도 달랐지만 상드는 쇼팽에게 모성애를 느꼈고 먼저 적극적으로 구애한 끝에 쇼팽이 28세, 상드가 34세 때부터 10여 년간을 함께했습니다. 이들의 다사다난했던 지난 연애 행적을 비추어 볼 때 의외의 조합이었죠.
1838년, 쇼팽의 유전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자 두 사람은 따뜻한 지중해에 위치한 마요르카로 휴양을 떠납니다. 당시 폐결핵은 전염병에다 불치병으로 여겨져 사람들이 피해 다녔고, 이혼한 여성과 청년의 결합은 좋게 보일 리 없었습니다. 어느 날 상드가 쇼팽을 위해 멀리 떨어진 마을에 먹을 것을 구하러 갔다가 폭우에 발이 묶여 여섯 시간 동안이나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급류에 신발까지 잃어버렸고 그녀를 태웠던 마부는 도망가기까지 했죠. 홀로 크고 어두운 수도원에서 상드를 기다리던 쇼팽은 상드가 무사히 도착하자 크게 안도하며 눈물을 흘렸고, 이런 사연을 바탕으로 작곡한 곡이 <빗방울 전주곡>입니다.
곡의 초반에서 피아니스트가 일정한 박자로 치는 왼손의 음들을 잘 들어 보세요. 툭툭 떨어지기 시작하는 약한 빗줄기를 묘사하는 듯하죠. 곡의 중반으로 갈수록 음량이 고조됩니다. 어두워지는 하늘, 거세지는 빗줄기, 쇼팽이 당시 느꼈던 외로움, 연인에 대한 걱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합니다.
2장. 이음줄과 붙임줄
커피 한 잔 어때요?_ 바흐 × 차이콥스키 × 피아졸라 × 쇤필드하루 두 잔의 커피를 마시는 저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라는 튀르키예 속담과 “커피는 천 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모스카토 와인보다 부드럽다.”라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커피 칸타타> 가사에 굉장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음악가 중에도 커피 애호가가 많습니다. 모차르트는 연주가 끝나면 당구장에서 블랙커피와 담배 한 대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고, 베토벤은 매일 아침 60개의 원두를 일일이 세어 커피를 내려 마셨는데 이는 오늘날 에스프레소 한 잔에 들어가는 원두의 양과 비슷하다죠. 강박에 가까운 완벽함은 그의 음악에도 녹아 있습니다. 작곡가들은 커피에서 얻은 영감을 어떻게 악보 위에 풀어냈을까요?
바흐의 <커피 칸타타>: 이 곡은 <커피 칸타타>라고 알려져 있지만 <조용히 하세요. 떠들지 말고>가 원제입니다. 사뭇 딱딱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내용은 유쾌합니다. ‘커피를 마시면 얼굴이 검은색이 된다.’, ‘불임이 된다.’ 등 떠도는 소문 때문에 커피를 금지하는 아버지와 커피와 사랑에 빠진 딸의 실랑이를 담은 곡입니다. 딸이 ‘하루 세 잔의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 구운 염소처럼 바짝 마를 것’이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이렇게 협박합니다. “건강에 해로운 커피를 끊지 않는다면 약혼자와 결혼시키지 않을 거야!”
바흐의 칸타타 중 유일하게 종교색이 드러나지 않은 이 곡은 놀랍게도 커피 광고 음악입니다. 당시 라이프치히에 살던 바흐는 ‘짐머만 커피 하우스’의 의뢰를 받아 작곡, 연주하게 되는데 정부가 외화 낭비라는 구실로 규제했던 커피와 커피 하우스 홍보가 주목적이었습니다. 그 시대 커피 하우스는 여성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당시 남성 성악가가 딸 역할을 맡아 유머러스한 느낌이 더욱 강했다고 합니다.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중 ‘아라비안 댄스’: 매년 겨울 대형 공연장에서 표트르 차이콥스키(1840~1893)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상연되는 것은 하나의 관례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가득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을 담았기에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으로, ‘꽃의 왈츠’, ‘사탕 요정의 춤’, ‘중국의 춤’ 등 한 번 들으면 귀에 팍 꽂히는 멜로디가 인상 깊습니다. 특히, 다섯 번째 악장인 ‘아라비안 댄스’는 ‘커피 요정의 춤’이라고도 불리며 신비롭고 나른한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일반 관현악곡에는 잘 쓰이지 않는 잉글리시 호른과 탬버린 등의 악기를 사용해 동양적인 분위기를 내고, 무용수가 아라비안 의상을 입고 이국적인 춤을 춥니다. 이 곡의 마지막 부분에는 ‘여리게’를 뜻하는 악상 기호 피아노 ‘p’가 다섯 개 붙어 있는데,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킬 때처럼 아쉬움과 여운을 남깁니다.
쇤필드의 <카페 뮤직>: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작곡과 교수로 재직 중인 폴 쇤필드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하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미국 민속 음악과 클래식을 접목시킨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특하게도 탈무드와 수학 분야에도 큰 열정을 갖고 있죠.
1985년 어느 날 저녁, 그는 담배 연기 가득했던 미네소타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내내 연주했던 피아노 트리오로부터 영감을 얻게 됩니다. 가벼운 클래식, 20세기 초 미국 음악, 집시풍의 음악,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음악 등 여러 가지 스타일이 모두 섞여 있는 연주였습니다. 이후 쇤필드는 고급 식당에서도, 클래식 공연장에서 연주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하이클래스 디너 뮤직을 만들고자 했고, 그렇게 탄생한 곡이 <카페 뮤직>입니다. 팔색조처럼 다양한 음악 스타일로 구성된 이 곡은 예상보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연주되고 있습니다.
커피와 클래식 음악.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입문이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점차 자신만의 취향을 갖게 된다는 것, 혼자 즐겨도 좋으나 여러 명이 함께해도 좋다는 것, 순간의 감각이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는 것, 똑같은 것을 접해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어떤 커피와 어떤 음악 취향을 갖고 계실지 참 궁금합니다.
이토록 극적인 순간_ 헨델과거에도 요즘처럼 극적인 예술 양식을 탄생시킨 시대가 있었습니다. 바로크 시대는 ‘찌그러진 진주’라는 어원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마냥 아름답고 고귀한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끓어오르는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했습니다.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비발디, 바흐, 헨델이 있고요.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평생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던 바흐, 그와 대비되는 인물이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개방적인 스타일로 작곡 활동을 했던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입니다.
동갑 바흐와 헨델: 흔히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이는 두 사람이 클래식 음악의 지반을, 기악과 성악 두 분야의 기본을 단단히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바흐와 헨델은 모두 1685년생으로 동갑이지만 많은 면에서 대비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흐는 독일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데 반해 헨델은 세계인이었습니다. 태생은 독일이지만 26세에 영국으로 귀화해 평생을 영국인으로 살았죠. 영국에서 그의 독일 이름 ‘게오르크 프리드리히’는 영어식 ‘조지 프레데릭’으로 발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