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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눈으로 봉화를 다시 보다

강동완 지음 | 너나드리


통일의 눈으로 봉화를 다시 보다

강동완 지음

너나드리 / 2022년 7월 / 224쪽 / 21,000원





국립 백두대간수목원 - 1,400km에 이르는 한반도의 줄기




통일의 눈으로 봉화를 다시 보려 마음먹었을 때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을 첫 출발지로 정한 건 순전히 백두와 금강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경북 봉화에서 백두와 금강을 그릴 수 있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백두대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왠지 모를 기백과 장엄함이 느껴진다. 백두산부터 시작해 지리산까지 이른다는 한반도의 억센 기상 때문이었을까?

‘대간’은 백두산부터 함경도 단천의 황토령, 함흥의 황초령, 설한령, 평안도 영원의 낭림산, 함경도 안변의 분수령, 북강원도 회양의 철령,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국토의 대동맥을 이르는 말이다.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한반도 지도를 떠올려 보면 백두대간은 호랑이의 등줄기에 해당한다.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이르는 백두대간의 길이가 1,400km라는 안내문을 보며 그 숫자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본다. 중국과 북한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맞댄 북중 국경의 거리가 약 1,400km였다. 통일을 이루기 전 죽음의 띠라 불렸던 동서독 접경 길이도 정확히 1,393km였다.

한반도의 남과 북을 잇는 백두대간의 길이 역시 1,400km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남의 나라에서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 망원 렌즈로만 겨우 바라볼 수 있었던 조국의 반쪽 땅이었다. 1,400km 북중 접경을 달리며 언제가 되어야 북한 땅에서 압록강 건너 중국을 바라볼 수 있을까 한스러웠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조국이지만 강변에 내려서기조차 어려웠다. 중국과 북한 사이에 국경의 이름으로 둘러쳐진 철조망은 분단인의 출입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정작 같은 조국 땅에 발붙이고 서 있어도 나머지 반쪽 땅에 이를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백두대간의 줄기는 끊어졌고, 포효하는 호랑이는 두 동강이 났다.

‘죽음의 띠’가 ‘생명의 띠’로 변한 동서독 접경 1,400km를 종주하며 언젠가 통일된 조국의 땅끝까지 맨발로 걸어도 소원이 없겠다는 마음이었다. 백두대간은 분명 북녘 산하로부터 남도 끝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등줄기이지만 남북한 사람만은 그 길에 닿을 수 없다. 현재까지는…. 백두대간의 길은 다시 이어져야 한다.

한국의 시베리아 춘양 - 봄의 볕을 기다리며: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이 자리한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마을은 1,000m가 넘는 고산이 4개나 에워싼 협곡 마을로 백두대간 마루금이 병풍처럼 둘러진 곳이다. 한국의 시베리아로 불릴 만큼 높은 산 아래 골바람이 억세고 차다. 그래서 춘양은 봄볕을 그리는 이름이다. 서벽리 마을의 ‘서벽(西碧)’은 아침 햇살에 서쪽 옥돌봉이 푸르게 보인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수목원이 들어선 지역은 북쪽으로 백두대간에 속하는 구룡산, 동쪽으로는 태백산 사고지 터가 있는 각화산, 남쪽으로는 외씨버선길이 있는 문수산, 서쪽으로는 옥석산 옥돌봉이 우뚝 서 사방으로 높은 산을 이루고 있다. 백두대간 마루금과 연결되는 옥돌봉을 사이에 두고, 옛 보부상들이 다니던 길인 봉화군 물야면 방향의 주실령 고개와 강원도 영월로 통하는 도래기재로 이어진다.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는 해발 700m에 자리해 마치 아늑한 고향 집 어머니 품처럼 안겨 온다.

백두대간의 상징, 백두산 호랑이: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은 태고의 자연이 숨 쉬는 대한민국 생태계의 보고라 말하는 백두대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시설이자 세계에서도 두 번째로 큰 수목원이다. 1,530만 평 정도 되는 면적을 가꾸는 손길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애틋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중에서도 <호랑이 숲>은 또 하나의 자랑거리다. 수목원 내에 조성된 <호랑이 숲>은 축구장 4개 크기 규모로 국내 호랑이 관련 시설 중에는 가장 크다. 우리 땅에서 사라진 지 100년이 넘은 멸종 위기종 백두산 호랑이(한국 호랑이)의 종 보존과 그 야생성을 지키기 위해 자연 서식지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으로 조성했다.

암석과 어울리는 고산 식물을 자연스럽게 배치해 만들었다는 ‘암석원’과 ‘야생화 언덕’을 지나 20분 정도 언덕길을 오르면 호랑이 숲에 이른다.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해 이중으로 철조망을 쳐 놓았는데 그 높이가 무려 5~8m나 된다. 호랑이는 주로 밤부터 이른 새벽까지 활동하기 때문에 한낮에는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쉬거나 잠을 잔다. 그 시간이 관람객들에게는 호랑이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다.

봉화의 깊은 골짜기에서 만난 백두산 호랑이:
현재 수목원 호랑이 숲에는 한청(2005년생, 암컷), 우리(2011년생, 수컷), 한(2013년생, 수컷), 도(2013년생, 암컷), 무궁(2020년생, 암컷), 태범(2020년생, 수컷) 등 6마리의 호랑이가 있다. “백두산의 호랑이야 지금도 살아 있느냐, 살아 있으면 한 번쯤은 어흥 하고 소리쳐 보라.”는 어느 대중가요 가사처럼 백두대간을 호령했을 백두산 호랑이의 기백을 다시 보고 싶다. 수목원 내 곳곳에는 호랑이 관련 조형물이 아기자기 놓여 있다.

시드볼트(SEED VAULT) - 지구의 씨앗 보관소:
수목원에서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장소지만 꼭 기억해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시드볼트(SEED VAULT)라 불리는 ‘장기종자보관소’이다. 이곳은 세계 최초의 지하 터널형 야생 식물 종자 영구 저장 시설로서 고산 식물을 포함한 야생 식물 종자를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세계적으로 식물의 씨앗을 장기 저장하는 SEED BANK는 많지만, 영구 저장하는 시설로는 아시아권 최초의 시설이다. 국내외 야생 식물 종자 4,500여 종 9만 5,000여 점이 저장된 세계 최고의 종자 보존 시설로서 안전한 보존을 위해 지하 터널형 구조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종자 전쟁이라 불릴 만큼 신품종의 종자 개발 및 공급을 둘러싸고 국가나 기업 간 정치적, 경제적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시드볼트가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세계 각국의 종자를 저장함으로써 지구 온난화 및 급격한 기후 변화와 국가 재난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분단 70여 년의 시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DMZ(비무장 지대)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생태계의 보고다. 백두대간에 자생하는 수많은 식물과 DMZ 안의 종자를 파악하고 보존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백두산은 세계적으로 식생의 특징이 뚜렷하며, 다양한 종자식물이 자생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 막혔다. 지금이라도 남북한 학자들이 공동 조사단을 꾸려 백두산 지역의 식물 종자 보존을 위한 작업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두산 고산 지대에서만 자란다는 ‘두메투구꽃’의 종자를 직접 보고 싶다.

백두대간에 백두가 없다?:
수목원을 둘러보며 이토록 다양한 꽃과 나무들을 정성스럽게 가꾸고 키워 내는 수목원 사람들의 수고로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른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새싹 하나, 나무 한 줄기 허투루 보지 않고 고이 가꾸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의 손길 덕분에 우리는 어쩌면 자연과의 공존을 꿈꿀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방문자 센터에 마련된 실내 전시관의 전시물을 보면 내심 마음 한 켠에 불편함이 있다. 바로 백두대간을 설명하는 한반도 지도 대부분이 북한이 잘려 나간 채 남한만의 반쪽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보호 지역이란, 산림청장이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정, 고시한 지역을 말한다.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해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광대한 규모의 백두대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고 한다.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있다는 것도 생소했다. 그런데 분명 백두산부터 시작하는 백두대간인데 법령은 강원도 고성 지역부터 시작한다. 대한민국의 법이 현재 미치지 못하는 북한 지역이라 해도, 백두가 없는 형상의 반쪽 지도를 보는 건 내심 마음이 편치 않다. 북한 지역을 빈 여백으로 두고 “통일의 그날, 백두대간의 지도를 완성하겠습니다.”라고 포스터 하나쯤 있었으면 어떨까?

북한 지역을 담지 않은 남한만의 반쪽 지도는 사실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쉽게 볼 수 있다. 통일의 마음을 오롯이 담기에도 부족한데, 일상의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분단의 장벽으로 마음을 닫게 만든다. 반쪽 지도가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소는 바로 7번 국도 어느 휴게소였다. 7번 국도는 부산에서 출발해 울산, 포항, 영덕, 울진, 강릉, 주문진을 거쳐 고성까지 이르는 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길로도 알려질 만큼 그 비경을 자랑한다. 그런데 분단으로 인해 더 가지 못할 뿐, 사실 7번 국도의 종점은 강원도 고성이 아니다. 이 길은 부산에서 출발해 한반도 최북단인 함경북도 온성까지 닿는다. 한반도를 연결하는 등줄기 같은 7번 국도를 달리는데 정작 휴게소에는 반쪽짜리 지도가 걸려 있었다. 통일은 누군가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일상 공간에서부터 통일의 마음을 담는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수목원에 흐르는 작은 실개천은 수많은 협곡을 굽이굽이 돌아 낙동강에 이르러 거대한 물줄기를 이룬다. 통일의 여정도 그러하지 않을까? 통일된 나라에서 맞는 산촌의 여름 방학과 크리스마스, 그때 우리는 어떤 꿈을 만들고 있을까?



낙동강 세평하늘길 - 협곡이 숨겨 놓은 오지 트래킹




‘낙동강 세평하늘 둘레길’은 백두대간 협곡이 꼭꼭 숨겨 놓은 비밀의 장소 같다. 바람결에 흐르는 구름처럼 세상 시름 잠시나마 떠나보낼 오지 트래킹으로 이만한 코스는 없을 듯하다. 분천역을 출발해 승부역까지 이르는 12.4km 구간에 바람처럼 길이 열렸다. 험준한 협곡과 낙동강 물길이 사람에게 내어준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다. 그 시절, 기차만 겨우 다닐 수 있었던 산골 오지에 사람들이 발자국을 내고, 강물이 내어준 만큼 소담한 길들이 서로 연결되었다.

영동선 철로를 따라 난 철길, 금강송 우거진 울창한 숲길, 출렁다리로 이어지는 협곡 길, 강변 옆으로 이어지는 자갈길, 잠수교와 철교 아래를 지나는 흙길 등으로 이루어진 길들은 다채로운 인간사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길마다 홀연히 새겨진 억센 삶의 기억들을 더듬는다. 느림의 미학이라 표현하기에는 길 너머 풍경이 너무도 경이롭다.

낙동강 세평하늘길에서는 구석구석 녹아든 12선경을 만난다. 용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용관바위를 지나면 깊은 골짜기에 암벽, 은병대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관란담에는 잔잔한 물결이 바위를 휘감아 흘러 못에 고인다. 거북 형상의 바위인 구암에 깃든 애절한 설화는 우리의 마음을 적시기에 충분하다. 두 봉우리의 높이와 크기가 어쩜 저리도 똑같이 닮았을까 하고 느꼈다면 그건 제5선경인 연인봉과 선약소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서로 1년에 한 번밖에 만날 수 없는 ‘설홍선녀’와 ‘남달’의 전설은 마치 지금 남북한의 모습이지 않을까?

연인봉을 지나면 계곡 사이로 기차가 지나는 철교를 하나 만난다. 산허리를 휘감아 달려오는 기차가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가 이내 다시 나타난다. 험준한 협곡을 이어 주는 건 터널의 몫이다. 터널에 들어서면 캄캄한 어둠 속에 어디로 가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터널 밖에서 바라보면 터널은 그야말로 서로를 이어 주는 고리다.

골짜기와 산이 하나로 어우러진 백두대간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또 다른 세상이다. 분천역을 출발해 비동승강장을 거쳐 양원역과 승부역에 이르는 굽이굽이마다 통일의 발걸음을 내디뎌 보자. 끊어져 신음하는 백두대간의 길들이 하나로 가닿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고서….



승부역 - 전쟁의 승부가 결정 났던 심산유곡




<낙동강 세평하늘길> 코스 중 양원역에서 승부역까지 구간은 5.6km에 이른다. 바람의 손짓대로 느릿느릿 걷다 보면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 꽃밭도 세평이라는 승부역에 다다른다. 승부역은 첩첩산중 깊은 계곡에 자리해 기차가 아니면 접근이 어려운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 역이었다. 옛날 전쟁이 났을 때 승부(勝負)를 결정지은 마을이라는 지역명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부를 잇는다(承富)’라는 뜻의 한자를 사용한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산과 낙동강 물줄기뿐이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는 글귀가 역사 옆 바위에 새겨져 있다. 1962년부터 19년 동안 이곳에서 근무한 역무원이 써 놓은 글귀라고 한다. 세평은 워낙 산세가 험해 하늘을 올려다봐도 하늘이 세 평 정도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다는 의미다. 말 그대로 세 평의 공간만 있어도 미소 지을 수 있을 만큼 세상과 단절된 고요함에 매료된다. 심산유곡 간이역을 홀로 지켜 온 역무원의 외로움이 깊은 철학적 사유로 배어난 듯하다. 지금은 백두대간 협곡열차와 강릉역에서 출발해 분천역까지 이르는 ‘동해산타 열차’가 다니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손꼽힌다.

영암선 개통기념비:
승부역 뒤편 언덕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을 새겨 넣은 ‘영암선 개통기념비’가 있다. 영주에서 철암까지 이르는 86.4km의 철도 노선인 영암선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 정부 최초의 철도 부설 공사로 착공되었다. 하지만 6ㆍ25 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휴전 직후 미국의 원조 자금으로 다시 공사를 시작했다. 당시의 열악한 장비와 기술력으로 험준한 산맥을 뚫고 이으면서 교량 55개소와 터널 33개소로 만들어졌다.

험난한 산악 지형과 협곡을 이어야 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며 우리 손으로 건설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을 새겨 영암선 공사 중 가장 어려움이 많았던 승부역에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 전면 중앙에는 자연석 판에 ‘영암선 개통 기념’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기념비 뒤편으로 놓인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투구봉 전망대를 지나 질금 전망대에 이른다. 이곳에 서면 한반도 지형을 닮은 세평 뜰 경관이 펼쳐진다.

아버지 어머니의 청춘 시절:
영암선 개통이 1955년이라는 안내판을 보면서 문득 ‘같은 시기 북한은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북한 노래 <아버지 어머니의 청춘 시절>이라는 곡이 떠올랐다. 가사 중에 “나의 어머니 청춘 시절 해주와 하성에서 흘렀네, 첫 열차 떠나보내며 울고 웃던 그 처녀가 나의 어머니였네.”라는 가사에서 “해주와 하성에서”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바로 북한이 1958년 8월 13일 첫 열차를 개통했던 해주-하성 구간의 건설 성과를 선전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북한의 언론 매체에 따르면 이 건설 공사에 1만 5천 명의 청년들이 탄원했다고 선전한다. 당시 건설장에는 “하루빨리 공사를 앞당겨 끝내고 어머니 수령님 계시는 평양으로 첫 열차를 몰아가자!”라는 구호가 붙었다. 김일성이 직접 개통식에 참여했을 정도니 북한에서 얼마나 이 공사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2022년 지금 현재도 북한에서는 수많은 청년들이 자원해서 험지로 탄원하고 있다며 선전한다. 그러면서 자력갱생의 모범적 사례로 해주-하성 열차 건설 공사에 동원된 청년들의 자발적 탄원과 동일시하며 영웅으로 치켜세운다. 1950년대 북한 청년들의 짓밟힌 꿈은 2022년 지금까지도 계속된다.



옥방마을 - 근대화의 열망을 이룬 100년 마을의 흔적




봉화군 소천면 장군봉(1,135m) 남쪽 오미마을에서 샘물 하나가 땅속에서 솟아 북쪽 방면으로 흘러간다. 영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이 물줄기는 회룡천이다. 회룡천은 남회룡분교 앞을 지나면서 옥방천으로 불리다가 36번 국도를 만나는 지점부터는 광비천으로 바뀌고, 이어 영동선 승부역과 분천역 중간쯤에 가서는 승부리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쳐져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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