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웬디 미첼 지음 | 문예춘추사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웬디 미첼 지음
문예춘추사 / 2022년 10월 / 260쪽 / 16,000원
왜곡되는 ‘감각’
식사 방법치매는 예전에 식사하며 느꼈던 즐거움을 서서히 좀먹으면서 우리와 음식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나는 음식이 주는 사교의 기회, 스토브 위에서 부글부글 끓는 커다란 카레 통, 물씬 풍기는 향신료 냄새, 식탁에 둘러앉은 친구들을 좋아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식사하면서 사교를 나누는 것이 어려워졌는지, 식탁에서 나누는 대화를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졌는지, 냅킨을 무릎에 떨어뜨리고 뒤로 기대앉아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는지 정확하게 꼽기가 어렵다. 또 접시 위에서 포크와 나이프가 부딪쳐서 나는 금속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마음이 불안하고 불안정해진 때가 언제인지도 말하기 힘들다.
식사는 단순히 맛과 냄새뿐만 아니라 촉각과 청각, 시각 면에서도 아주 감각적인 경험이다. 식탁보가 검은색이면 식탁이 다이닝룸 중앙에 생긴 커다란 싱크홀처럼 보여서 혼란스러웠다. 거기에 눈이 익숙해지거나 머리가 상황을 파악하여 그것이 사실 식탁보임을 깨달은 후에도 그 아래에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식탁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하얀 접시도 문제였다. 치매 환자에게 하얀 접시에 색이 흐릿한 매시드 포테이토나 얇고 납작한 생선 조각을 담아 주면, 환자는 접시에 음식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환자의 눈은 예전처럼 음식을 갈망하지도 않는다. 음식과 접시의 색깔 대조가 뚜렷해야 접시에 음식이 있는지 없는지 구별할 수 있다.
직장에서 이 증상이 치매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내 병을 숨기기 위해 노란색 접시를 구입했다. 일반적으로 스크램블드에그 외에는 노란색 음식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접시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음식이 접시 여기저기로 밀렸고 접시 밖으로 떨어졌다. 이 문제는 상단이 접이식으로 된 그릇으로 해결했다. 테두리가 있어서 서툴러도 음식이 그릇 밖으로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노란색 접시를 중고 가게에 갖다주고 대신에 큰 파스타 그릇을 샀다. 그렇게 하면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은 낮아질 테니까.
우리는 뇌 안에 복잡한 질병이 생기고서야 비로소 일상의 잡다한 일들이 실제로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알게 된다. 예를 들어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려면 한 손은 포크로 음식을 붙들고 다른 손은 나이프로 그것을 썰어야 한다. 이 일은 어린아이들이 양손으로 피아노 치는 법을 배울 때를 생각나게 하는데, 뇌로서는 한 손이 다른 손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따라서 양손이 따로따로 건반을 치는 법을 배우려면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치매 진단을 받은 후 늘 하던 방식대로 식사해 보려고 했지만, 갑자기 음식이 내게서 달아났다. 마치 내 양손이 더 이상 협력하지 않는 것 같았다.
포크로 소시지를 찍으려고 했는데, 소시지가 통째로 접시 가장자리로 밀려가서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뜯어 먹어야 했다. 고기를 자르는 일은 어렵고 힘들었다. 수치심을 느끼며 식사해야 했기 때문에 나 자신이 멍청이 같았다. 그러나 나는 뇌에 여러 능력을 조금씩 갉아먹는 질병이 있다는 것이 왜 부끄러운 일이냐고 스스로 다짐했다. 부끄러워하기보다 대처 방법을 찾는 편이 더 나았다. 다행히 해결책은 간단했다. 나이프를 숟가락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포크로 자르고 숟가락으로 퍼 올리면 되었다. 그렇게 그 문제는 극복했지만, 고기는 여전히 삼키기 힘든 음식이었다. 고기를 먹을 때 얼마나 오래 씹었는지 또는 얼마나 더 씹어야 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 결과 충분히 씹지 않은 상태에서 삼키려고 하다가 고기가 목에 걸려 캑캑대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냥 먹는 일에만 집중하기도 힘든데 자르고 씹는 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고기는 포기하고, 생선을 먹었다. 뜨거운 음식 역시 곤란하다. 최근 치과 의사가 내 입 안에 화상 자국이 많다는 소견을 말했는데, 뜨거운 감자를 입에 넣어 화상을 입고도 다음 한 입을 먹을 때에는 그 사실을 잊고 또 넣었기 때문이다.
내가 음식에 대해 무심해진 원인이 신경학적인 것인지, 아니면 그저 치매 때문에 식사할 때 힘들어서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음식, 심지어 요리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대체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뇌가 그냥 그 전체 과정에 신경을 꺼 버린 탓인지 모른다. 아니면 뇌 안의 어떤 회로가 사라져서 더 이상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식사하는 것은 연료를 얻기 위해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적게 먹고 있는지에 대해 블로그에 글을 올리자, 음식을 보내 주겠다는 제안이 쇄도했다. 심지어 내가 기억 장애를 앓고 있는 것은 뇌에 필요한 필수 영양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치매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바로 치매가 우리의 먹는 방법은 물론 먹는 음식까지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요양원 식사연구원인 린제이 콜린스는 치매를 진단받고 나서 환자의 먹고 마시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고 있다. 콜린스는 박사 학위의 연구 주제를 그러한 변화가 요양원에서 나타나는 과정의 이해로 정했다. 2020년에 발표된 그 연구 보고서에서 콜린스는 요양원에서 제공하는 음식의 질과 종류, 먹는 음식이나 식사 시간을 환자가 통제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다루면서, 정체성의 상실, 먹고 마시는 것이 교제의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는 점 등 요양원에서 먹고 마시는 행위의 많은 다양한 면들을 고찰했다. 나는 그 보고서의 결론을 읽은 뒤, 특히 제공되는 음식의 선택 부분에서 기분이 우울해졌다. 요양원 입소자는 흔히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있는 사람이 아닌 ‘먹여야 하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음식에 대한 선호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보고서에는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경험은 이전에 자기 집에서 생활했을 때와 달랐다.”며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식사와 간식을 먹는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음식의 양과 질도 바뀌었다. 이로 인해 과거보다 더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고, 개인의 필요와 선호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게 되었다. 삼킴 곤란 증세가 있는 치매 환자의 경우, 정체성 상실과 개인적인 선호도에 대한 인지 부족이 훨씬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런 사람들은 그저 먹여야 하는 사람, 선택을 할 수 없는 사람, 맛없고 천편일률적이라고 여겨지는 음식과 음료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의 성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서 좋아하는 음식을 빼앗으면 그의 성격이 어느 정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간병인이 개개인의 주문을 받아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나도 안다. 또 나처럼 몇 달 동안 날마다 똑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을 보면 눈살을 찌푸릴 거라는 점도 안다. 그렇지만 대안은 무엇이겠는가? 나라면 요양원에서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맛이 없는 음식이 나온다면 식사를 거부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마 그냥 까다로운 환자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 음식을 먹지 못하는 진짜 이유(맛 때문일까? 음식이 담긴 접시가 문제인가? 아니면 음식을 자르는 데 필요한 운동 능력에 문제가 있어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기가 너무 어려운가?)를 알리지도 못하고 말이다. 게다가 치매의 여러 가지 형태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준다. 삼키는 데 문제가 있는 환자는 식사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차라리 먹지 않으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언어 치료사가 도움을 주거나 영양사가 삼키기 수월한 음식을 알려 줄 수 있는 상황에서는 음식을 거부했다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요양원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 요양원 직원들은 치매 환자에게 색상과 대조가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할 것이다. 컵과 컵 받침을 머그잔으로 바꾸고, 음식이 접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접시는 테두리가 있는 그릇으로 바꾸자. 그리고 환자가 두세 가지 음식 중에서 선택하게 해 주자. 뜨거운 음식을 제공하지 말거나 빨리 식도록 작게 잘라 주자. 식사에 방해가 되는 소음과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는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하자. 그리고 치매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이 있다. 환자가 그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환자가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를 기반으로 그를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치매 환자가 앞에 놓인 음식에 손도 대지 않는 것은 그가 마주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러니 섣불리 그를 까다로운 사람으로 판단하지 말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보길 바란다.
새로 도전하게 될 ‘관계’어린 시절의 젬마와 세라가 신발 끈 묶는 법을 익히려고 애쓰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첫 시도는 아마 대여섯 살 즈음에 했던 것 같다. 그 작은 손가락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려고 애쓰며 스스로 묶어 보려고 했다. 그 전까지 나는 아이들이 신고 벗기 편하도록 버클이 있는 신발을 사 주었다. 하지만 끈으로 묶는 신발이 필요한 시기가 왔고 아이들은 친구들이 신은 것과 같은 신발을 원했는데, 그 친구들은 구멍에 끈을 꿰는 기술을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딸아이들한테는 그 기술이 어른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므로, 꼭 해내기로 굳게 결심한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 우리는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똑같은 운동화를 신었다. 그 운동화를 신고 끈을 묶고, 쓰리 픽스는 물론 다른 지역과 레이크랜드의 산책로를 수 킬로미터씩 오르내렸다. 내가 발을 내려다보면서 신발 끈을 묶지 못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신발 끈은 각 신발짝의 양쪽에 매달려 있었고, 엉클어진 털실 뭉치처럼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인 상태였다. 무력감과 절망감이 느껴졌다.
이제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신발 끈을 묶어 주는 일은 세라의 몫이었다. 예전에 내가 세라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내가 상상했던 방식도, 원했던 방식도 아니었다. 그 작은 몸짓 하나에서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음을 느꼈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딸들이 간병인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대신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신발 끈을 묶지 않는 것이다. 세라는 내가 신던 신발을 돌려주었고, 두 손으로 세게 한 번 잡아당기자 내 낡은 신발은 예전처럼 꽉 조였다. 또 다른 문제가 나를 좌절시켰지만(다음 문제는 그렇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독립은 하루 더 유지되었다.
간병치매 진단이 환자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 치매 진단은 환자 한 사람의 생활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의 생활을 바꾼다. 치매를 진단하는 과정은 외로울 수 있다. 나는 작성해야 하는 서류에 ‘치매’라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었을 때도 혼자 검사받으러 다녔다. 그러나 결국 최종 진단을 받고 충격 속에서 무슨 생각에서인지 컨설턴트에게 내 딸들과 직접 이야기하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고서는 아직도 어린애처럼 보이는 내 딸들이 컨설턴트의 사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하게 하고 나는 나왔다. 그 아이들에게는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 또는 아마 나를 너무 염려하여 내 앞에서는 묻지 못할 질문이 있을 테니까. 이제 막 진단받은 환자가 그렇듯이 그 순간의 우리는 무슨 질문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앞으로 우리가 궁금해할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수도 있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어쨌든 나는 내가 받은 이 진단이 나만큼이나 아이들에게도 중요하며, 이 진단으로 아이들의 생활도 바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 치매 진단은 지나치게 임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우리의 뇌를 들여다보고 뇌세포 간의 연결이 느슨해졌거나 사라진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근본 원인이 진행성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나면, 우리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된다. 추적 검사도 없고 나나 다른 사람을 위한 대처 전략도 없다. 내가 암이나 뇌졸중, 당뇨병을 진단받았다면 컨설턴트가 나를 퇴원시켰을까? 그런데 왜 뇌 질환을 진단받은 후에는 사후 관리나 지속적인 지원이 없는 걸까?
하물며 조기 발병 치매 환자는 사회적 지원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간병인’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아야 하는 남편과 아내, 자녀가 아주 많다. 이들은 아무 준비나 계획, 경고도 없이 인생을 바꾸는 이 질병을 진단받는 즉시 사회의 기대와 부담까지 떠안게 된다. 사람들은 치매 환자의 가족들 중에 67만 명에 달하는 이 간병인들 덕분에 매년 국민의료보험 예산 110억 파운드(약 17조 5천억 원)가 절약된다는 사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치매 환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의 부재와 이 병이 초래할 수 있는 모든 결과(그중 다수는 이 책에 대략적으로 설명되어 있다)를 준비하는 것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 계속 이야기해 왔다. 이는 우리 친척과 가족,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안다면 또는 ‘이게 정상인가요?’라고 쉽게 물어볼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대처 준비를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디아 파빈 박사가 나에게 자기 연구의 프로젝트 심사원단에 들어오겠냐고 요청했을 때, 나는 받아들였다. <돌봄 희망 연구>라는 이 프로젝트는 치매 진단이 환자를 돌볼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파빈 박사는 문화적으로 친척이나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지만 별로 내키지는 않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간병할 마음은 있지만 사실상 필요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을 나란히 비교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이 두 사례 가운데 하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그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몇 년 동안 나는 노년 계획을 망쳐 버린 남편의 치매를 원망하는 아내나 엄마를 보살피고 싶지만 충분하지 못한 지원 체제를 알아보느라 지쳐서 자기 건강을 잃은 딸까지, 이런 사례들을 많이 접했다. 양자의 균형을 잘 맞춘 사람은 찾기 어렵지만, 영감을 주는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 기쁘다. 그런 여성 한 명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의 남편은 치매에 걸렸고 부부에게는 어린 자녀 두 명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일일 지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고 덕분에 가족은 좀 더 균형 잡힌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도움이나 임시 간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는 예측하기가 아주 힘들다.
간병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치매 환자를 돌보는 방법은 대부분 치매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환자의 유형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격도 변하는데, 원만해질 수도 있고 더 고약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치매가 성격의 다양한 층위에 또 다른 차원을 더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치매는 여전히 그 사람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볼 때처럼 병이 아니라 먼저 그 사람 자체를 봐야 한다. 준비가 되었는지 아닌지의 차이가 치매 환자와 간병인 모두의 삶을 바꿀 수 있다. 파빈 박사의 보고서에 담긴 간병인들의 인터뷰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가장 준비하지 못한 2가지가 있는데, 분노와 죄책감입니다. 그래도 알긴 했어요. 추상적으로 분노와 죄책감이 아주 크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걸 실제로 느끼게 된 거죠. 가끔씩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하는 아내에게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어요. ‘아, 그만 말해. 백번도 더 말했잖아.’ 그래도 아내는 이해도 못 하고, 자기가 말하는 걸 어쩌지 못해요. 그런데도 나는 말합니다. ‘그만 말해.’ 지금도 아주 많은 일들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다르게 할 수도 있었는데 하고 말이에요. 그때 알았다면, 아내의 공격성에 좀 더 오래 대처할 수 있었을 겁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면 절대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았을 거예요. 절대 승낙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아주 많았을 거예요. 주변을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아요. 내가 뭔가를 해야 했는데,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인간일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