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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냐 개화냐 조선의 마지막 승부수

이광희, 손주현 지음 | 푸른숲주니어


척화냐 개화냐 조선의 마지막 승부수

이광희, 손주현 지음

푸른숲주니어 / 2022년 8월 / 175쪽 / 14,800원





프롤로그 - 척화냐 개화냐, 그것이 문제로다




‘제목 : 통상 수교 거부가 옳았을까요, 개화가 옳았을까요? / 보낸 사람 : 만장이 / 받는 사람 : 멍 박사님 - 멍 박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파란중학교 2학년 만장이라고 해요. 박사님께 좀 어려운 질문을 드리려고 해요.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불과 삼백여 년 만에 일본에게 또다시 침략을 당해서 망하잖아요. 도대체 왜 그런 일을 당한 거예요? 그때 조선 입장에서는 통상을 강력히 거부하면서 끝까지 외국 세력을 막는 게 옳았을까요? 아니면 적극적으로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게 이득이었을까요? 모쪼록 명쾌한 해설로 저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시길 바랄게요.’


하, 난감한 질문이군. 기우는 조선의 운명을 막기 위해 ‘척화가 옳았냐, 개화가 옳았냐?’ 이게 궁금하단 말이지? 나도 이 문제로 고민했는데, 결론을 못 내리고 있지 뭐야. 이럴 땐 역사 전문 인공 지능 로봇인 알파봇과 함께해야겠지? “알파봇?” 하고 불렀지만 답이 없어 문자를 주고받았다.

[멍 박사] 좀 어려운 질문이 들어왔어. [알파봇] 뭔데요? [멍 박사] 조선 시대 말, 통상 수교 거부가 옳았는지, 아니면 개화가 옳았는지 그게 궁금하대. 나 때는 ‘통상 수교 거부’ 같은 말 안 쓰고 그냥 ‘쇄국 정책’이라고 했는데 말이야. [알파봇] ‘통상 수교 거부’로 용어 정리된 게 언젠데요? [멍 박사] 그렇지? 그건 그렇고, 이야기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알파봇] 그야 뭐……, 조선이 어쩌다 문을 여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부터 알아봐야죠. 그러고 나서 조선 사람들은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또 어떻게 대처했는지 설명하면 되지 않겠어요? 그 당시 백성들의 입장도 짚어 보고요. [멍 박사] 역시! 넌 소중한 내 동료이자 명석한 연구자야. 난 구글을 준대도 너랑 바꾸지 않겠어!



서양에서 불어오는 개항의 바람




먼저, 개항 이전 조선 안팎의 사정을 살펴볼게. 개항이라는 건, 말 그대로 항구를 개방해서 외국과 교류를 한다는 뜻이야. 그런데 그때 조선은 중국 외에는 딱히 교류하는 나라가 없었어. 굳이 꼽자면 가끔씩 통신사를 보내던 일본 정도? 그렇다면 조선에 개항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15세기 서양의 사정은 어땠을까? “알파봇, 조선의 개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나라는 어디야?”

에헴, 가장 먼저 살펴볼 나라는 포르투갈이에요. 포르투갈은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거쳐 중국의 마카오까지 진출했어요. 결국 포르투갈의 대항해는 유럽 여러 나라들이 아시아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출발점 역할을 했지요. 그러니 조선의 개항에 큰 영향을 미친 셈이랍니다.

그런데 그 당시 포르투갈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력은 제법 컸지만, 아무리 그래도 에스파냐만은 못할 거예요. 에스파냐는 포르투갈이 인도 항로 개척에 열을 올리자 이탈리아 출신 모험가인 콜럼버스를 후원했어요. 그때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도착한 곳이 쿠바 옆, 바하마 제도의 한 섬이었답니다. 사실은 거기가 아메리카 대륙이었던 거예요! 그 후 에스파냐 사람들은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떼 지어 몰려갔어요. 금과 은을 마구 캐내 막대한 부를 쌓았지요. 에스파냐의 성공을 지켜본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앞다투어 벤치마킹(?)을 했어요. 그 바람에 바닷길이 유럽의 배들로 복작복작해졌지요. 에스파냐가 개척한 바닷길을 통해 대항해의 바람이 머지않아 동아시아, 아니 조선까지 불어닥치기 시작했으니……. 그야말로 나비 효과가 대단했다고나 할까요?

한편 조선의 개항에 큰 영향을 끼친 나라가 하나 더 있어요. 네덜란드예요. 1500년대 후반, 네덜란드 선박 한 척이 일본에 표류했어요. 그 당시 일본은 에도 막부 시대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네덜란드와 수교를 하게 되었답니다. 에도는 지금의 ‘도쿄’를 가리키고, 막부는 ‘군사 정권’이라는 뜻이에요. 음, 에도 막부는 도쿄를 중심으로 한 군사 정권쯤 되겠네요. 일본은 네덜란드를 통해 선진 문화와 기술을 전해 받았어요. 그걸 바탕으로 훗날 조선을 침략했으니, 네덜란드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하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조선의 개항에 영국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나라는 없을 거예요. 영국은 1600년대 엘리자베스 여왕 때부터 1800년대 말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백여 년 동안, 온갖 방법이란 방법을 죄다 동원해 지구촌 최강의 제국이 되었어요. 한편 그 당시 영국은 중국에서 마시는 차를 수입했는데, 인기가 너무 많은 나머지 은화가 중국으로 계속 쏟아져 들어갔어요. 그리고 그 바람에 무역 적자가 생기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가져가 몰래 팔았어요. 당연히 중국은 아편 밀매를 금지했지요. 그러자 아예 중국으로 쳐들어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열한 전쟁이라고 불리는 ‘아편 전쟁’을 일으켰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승리해 막대한 배상금을 받았을 뿐 아니라, 중국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게 조선과 무슨 상관이냐고요?

영국은 중국까지 제압하고 나자 전 세계에 걸쳐 거대한 영토를 거느리게 되었어요. 이제 식민지를 지키는 데 혈안이 되었지요. 특히 러시아가 만주와 한반도로 내려오는 걸 극도로 경계했답니다. 그러다 1885년에 영국이 조선의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했어요. 러시아 해군을 견제하기 위해 자기네 해군 기지를 설치하려는 속셈이었지요. 이후 결국 청나라의 중재로 이 년여 만에 철수를 했는데, 그 일을 빌미로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입김이 더욱더 강해졌다고 해요. 그 결과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던 일본과 부딪쳐 청일 전쟁이 일어나는 계기로 작용했답니다. 나중에 영국은 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키는 걸 묵인했어요. 이러니 영국이 조선에 끼친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아무리 영국이 조선의 개항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프랑스만 하겠어요?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면서 군함을 동원해 대포를 쏜 첫 번째 나라거든요. 조선은 강화도에 침입한 최초의 서양 국가인 프랑스를 멋지게 물리쳤어요. 이 사건을 ‘병인양요’라고 해요.

그럼 정리해 볼까? 알파봇이 전해 준 이야기의 핵심은 두 가지야. 첫째, 조선에 불어 닥친 개항의 파도는 주변 나라에서 일으킨 게 아니라 오백여 년 전 유럽의 서쪽 끝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서부터 일렁이기 시작했다. 둘째, 그 거대한 파도를 네덜란드와 영국, 프랑스가 조선으로 이끌고 왔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이토록 복잡한 상황에 처한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킨 나라는 어디일까?



개방 압력에 대처하는 한ㆍ중ㆍ일의 방식




조선과 이웃한 청나라와 일본은 서양의 개방 압력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먼저 청나라는 서구 여러 나라에 문을 연 뒤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 함풍제의 후궁이었던 서 태후는 아들이 황제 자리에 오르자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데만 골몰했지. 음, 그렇다고 개혁의 움직임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야. ‘양무운동’을 통해서 서양 기술을 도입하고 근대적 군대와 무기를 갖추기 시작했거든. 다만 중국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술만 도입했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어. 반면에 일본은 달랐어. 천황을 지지하는 젊은 무사들이 힘을 모아 막부를 타도해 버렸지. 그러고 나서 1868년에 어마어마한 개혁을 실시했는데, 그걸 ‘메이지 유신’이라고 불러. 일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싹 다 바꾸어 나갔어. 몸통은 그대로 유지한 채 서양 기술만 배우려던 청나라와 달리, 모든 면에서 서구를 따라 하려 했거든. 그렇게 서구의 제도와 문물을 발 빠르게 받아들인 덕에 부강한 나라로 서서히 바뀌어 갔지.

그때 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나름대로 개혁을 하기 위해 노력했어. 청나라와 일본에 각각 영선사와 수신사를 보내 어느 나라를 모델로 삼을지 정하려고 했거든. 하지만 불행하게도 명성 황후와 민씨 일가가 모든 권력을 틀어쥔 채 수탈에만 열을 올리는 바람에 제대로 된 개혁을 시도할 수가 없었어. 그럼 한번 정리해 볼까? 그 당시 청나라와 일본 모두 강제로 개항을 당(!)했어. 중국은 영국에, 일본은 미국에 의해서 말이야. 하지만 개항 이후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지. 부분적인 개혁에 나선 청나라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전부 다 확 바꾼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으니까.



어디로 가야 하나, 갈림길에 선 조선




지금 조선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서양 세력을 물리치긴 했는데, 일본이 집요하게 조약을 맺자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거든. 그래서 긴급히 개화파 박규수 선생과 척화파 최익현 선생을 모시고 조선이 과연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의견을 들어 볼 생각이야. “알파봇, 두 분 좀 모시고 와야겠는데?” “이미 대기 중이세요.”

[멍 박사] 일본이 저토록 집요하게 조약을 맺자고 난리를 치는데, 조선은 이제 어찌해야 할까요? 비상시국이니만큼 바로 토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요. 먼저, 개항에 왜 찬성 또는 반대를 하는지 두 분의 의견을 들어 보겠습니다. 그다음에는 조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얘기해 주십시오. 적극적으로 개항을 주장하시는 박규수 선생님 말씀부터 들어 볼까요? [박규수] 개항은 세계적 흐름이야. 다들 조약을 맺어 문호를 개방하고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세계사적 전환점에 서 있지. 부국강병으로 가는 첫 단추라고나 할까? 개항이 아니고선 지금 조선은 살길이 없네. [멍 박사] 개항이 부국강병이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그럼 최 선생님은 왜 개항에 반대하시나요? [최익현] 개항은 망국 첩경입니다. 망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란 얘기지요. [멍 박사] 최 선생님,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가 뭔가요?

[최익현] 개항이란 게 통상을 하자는 것이지 않소? 통상을 하자면 서로 물건을 사고팔아야 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물건은 우리 땅에서 나는 걸로 한정되어 있고, 저들이 만드는 물건은 대량 생산으로 만든 사치스러운 것들이오. 게다가 저들의 요구는 끝이 없소. 매번 맞춰 주지 않으면 화를 내며 약탈하거나 짓밟을 것이오. 지금 개항을 하면 몇 년 못 가서 나라가 망할 게 뻔하오. 이러한 시국에 박 선생님께서 주상 전하께 개항을 해야 한다고 종용을 하고 계시니, 정말로 실망스럽습니다. [박규수] 허허, 참 딱하네그려. 나도 일본이 통상을 구실로 무력을 행사한다면 당당히 물리칠 것이네. 십 년 전에 평양에서 있었던 제너럴셔먼호 격퇴를 보지 않았나? 미국 상선에 불을 질러 버리라는 명령을 내린 사람이 바로 날세. 부당한 압력은 물리쳐야 마땅하지만, 개항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네. 그것이 세계적 흐름이야. 언제까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소리만 하고 있을 텐가? [멍 박사] 제가 정리해 보겠습니다. 박규수 선생님은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빨리 개항을 하되 여차하면 몰아내면 된다는 의견이시고, 최익현 선생님은 조선이 아직 그럴 힘이 없으니 개항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시군요.



조선의 문을 강제로 연 강화도 조약




이렇게 개항을 하네 마네 하면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강화도에서는 조선의 역사를 뒤바꿀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어. 1876년, 일본군이 전함을 이끌고 강화도 앞바다에 떡하니 나타난 거야. 지난해 발생한 운요호 사건의 시비를 가리자나? 아, 운요호 사건이 뭐냐고? 1875년에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에 접근했는데, 조선 수군이 포격을 가한 사건이야. 일본이 그 당시 사건의 진상과 책임을 묻겠다며 반년 만에 전함 여섯 척을 앞세워 강화도에 나타난 거지. 한 대 얻어터지는 척하면서 돌아갔다가 잔뜩 무장을 한 채 떼로 몰려온 셈이야.

아무튼 강화도 연무당에서 조선과 일본 대표단 사이에 협상이 시작되었어. 일본 대표는 운요호 사건부터 꺼내 들었지. “조선은 어찌하여 일본기를 단 운요호를 먼저 공격했소?” 그러자 조선 대표가 반박했어. “일본 깃발은 보지 못했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니, 자위권 차원에서 대포를 쏘게 된 거 아니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일본이 본색을 드러냈지. “거두절미하고, 일본과 조선 두 나라 간의 조약을 맺읍시다.” 조선 대표는 순간 벙쪘지. “갑자기 조약이라니요?”

그러는 동안, 일본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였어. 바다에 떠 있는 전함에서 대포를 쏘며 긴장감을 조성하질 않나, 회담장을 무장한 일본 군인들로 에워싸질 않나……. 가장 무시무시한 건 조선군 훈련장을 빼앗아서 한 사격 연습이었지. 최신식 무기인 기관총을 마구 쏘아 댔거든. 일본군이 드르르륵, 하며 총을 쏘자 기관총을 처음 보는 조선 대표단은 뒤로 나자빠질 지경이었다나?

일본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무력시위를 벌이면서 13개의 항이 적힌 조약서에 서명하라고 압박했어. 서명을 빨리 하지 않으면 더 많은 함대를 불러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공갈 협박을 했지. 결국 조선 대표는 십여 일 만에 울며 고추냉이 먹는 심정으로 일본과 조약을 맺었어. 이것이 바로 조선을 개항하게 만든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한 조약이면서, 훗날 조선의 문을 닫게 만드는 시작점이 된 ‘조일 수호 조규’야. 우리에게는 ‘강화도 조약’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

조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언뜻 괜찮아 보이는 말도 꽤 있어. ‘조선은 자주국이며 일본과 평등하다.’ 나쁠 거 없어 보이지? 그런데 일본의 속셈은 다른 데 있었어. 그때는 청나라의 입김이 조선에 아주 세게 작용하고 있었거든. 그러니 위의 문구는 조선을, 자주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더 이상 청나라의 속국이 아니니 앞으로 신경 끄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거야.

이외에도 ‘조선과 일본인이 자유롭게 왕래하게 하자.’라는 내용도 있었는데, 이건 두 나라 상인들이 서로 장사하는 걸 허락한다는 뜻이야. 그 바람에 조선에서 생산한 곡물이 싼 가격에 일본으로 수출되었고, 대량 생산된 일본의 공산품이 조선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되었지. 결국 조선의 수공업은 강제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어. 또 일본인이 조선에서 죄를 지어도 조선 관청에서 재판하지 않고 일본인이 재판을 하는 ‘치외 법권’을 인정하는 조항에다, 일본 배가 조선 해안을 자유롭게 측량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지. 조선 법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우리 영토 구석구석을 탐사해 본격적인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의도였던 거야. 그러니까 강화도 조약은 조선에는 하나도 이득이 되지 않고, 일본에게는 조선 침략 계획의 첫 단추를 훌륭하게 채운 조약이었지.



대한 제국으로 가는 길




개항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대한 제국에 이르게 되었는지 한번 살펴볼까? ① 동학 농민 운동, 1894년 - 갑오년에 일어난 전라도 농민들의 ‘반봉건 반외세’ 운동이었어. 말이 너무 어렵다고? 다시 말하면, 사회를 개혁하고 외국 세력을 물리치자는 의미야. 처음엔 탐관오리를 처단하기 위해서 들고일어났는데, 더 나아가 낡은 제도를 없애려는 개혁 운동으로 발전했지. 이때 덜떨어진 조정에서 동학 농민군을 진압해 달라면서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하는 바람에 일본군도 덩달아 조선에 상륙하게 돼. 이게 조선의 운명, 아니 동아시아의 운명을 가르는 계기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② 청일 전쟁, 1894~1895년 - 청나라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상륙하자 동학 농민군은 조정과 전주 화약을 맺고 자진 해산했어. 그러자 조정은 청나라와 일본 군대에 나가 달라고 요구했지. 청나라와 일본은 서로 ‘쟤네가 나가야 우리도 나갈 건데?’ 하는 식으로 버텼어. 그러던 중 일본군이 경복궁을 습격해 친일 인사들로 내각을 세우고, 청나라 함대를 공격하면서 기어이 전쟁을 일으키고 말아. 음, 청일 전쟁이 일어난 거야. 조선 땅에서 외국 군대가 서로 맞붙어 싸우게 된 셈이지. 철저하게 대비한 일본군에 비해 준비가 덜 된 청나라는 이 전쟁에서 패한 뒤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되었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은 내 거!”라고 선언하면서, 청나라로부터 랴오둥반도까지 얻어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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